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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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다음 날 아침, 회사에는 귀여운 흰둥이 한 마리가 있었다.

이지혜 팀장이 얘기한 특효약은 ‘강아지’였다. 꼰대력 만렙인 아버지에게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사주고 난 뒤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중소기업에 가면 자주 출몰한다는 사내 마스코트, 강아지,

나는 개인적으로 강아지를 키워본 적은 없으나 너튜브를 통해 강아지 영상만 보고만 있어도 심심한 기분은 달랠 수 있었다.

"이름은 뭐로 지을까요?"

현준이가 새끼 진돗개를 안으며 말했다. 아주 작고 아담해서 현준이의 큰 손에 푹 들어가 안겼다.

이제 이 녀석의 이름을 지어 줘야 했다.

"휴먼."

"네?"

"이름은 휴먼으로 짓자고."

"강아지 이름이 휴먼이라고요?"

"왜 안 되냐?"

"좋네요. 휴먼. 넌 오늘부터 휴먼이야."

"흐흐."

그저 웃음이 나왔다. 요 며칠간 이런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웃음을 얼마 만에 느껴보는지…

"그럼 우리 사무실 직원이 전부 휴먼의 매니저가 되는 겁니다."

"뭐?"

"우리 회사가 휴먼 매니저잖아요. 그럼, 앞으로 이 강아지의 매니저가 되는 거죠. 제 말이 맞죠?"

"흐흐흐.

지혜씨의 말마따나 사내 사무실에 강아지가 있으니 분위기가 말랑말랑해진 느낌이 들었다. 업무를 보다가도 슬쩍 강아지를 한번 쳐다보면 괜히 미소가 지어졌고,

스트레스를 받아 담배 한 대를 뻑뻑 피우며 다시 사무실에 들어 왔을 때 새끼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면 근심이 사르르 녹았다.

이지혜 팀장의 특효는 통했다.

최부장이 강아지를 좋아하는진 잘 모르겠으나, 오늘부로 넌 휴먼매니저 실습사원 ‘휴먼’이다.

* * *

-휴먼매니저

현준이의 뜻대로 휴먼매니저의 회사티를 맞춰 입었다.

반팔 티셔츠에 등짝에 거대하게 각인된 ‘휴먼매니저’ 누가 보면 다단계 회사인 줄 알겠다.

-멍! 멍!

현재 시각 오후 네 시, 적막한 사무실에서 ‘휴먼’이 밥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제 곧 있으면 최부장이 휴먼매니저로 들어온다.

워킹휴먼의 관계를 어떻게 마무리 했는지 잘 모르겠으나,

정주임을 통해서 듣기론 천사장이 월급을 올려주겠다며 붙잡았다고 한다.

이제 와서 최부장의 월급을 올리기엔 너무 늦었지,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란 말이 있다.

최부장의 연봉은 1억이다.

이지혜 팀장이 팔천만 원,

오과장이 연봉 칠천만 원, 정주임이 육천오백, 현준이가 오천만 원이다.

이 정도면 휴먼매니저 사원들 대기업 부럽지 않다.

다만 그에 따른 책임감도 막중하게 심어줬다.

인력을 관리하는 것과 사업을 가꾸어 나가는 것, 그리고 대기업과 줄다리기를 통해 사원들의 복지를 책임지는 것.

중점은 휴먼매니저에 소속된 현장 사원들의 퇴사율을 낮추는 것.

그러기 위해선 개개인마다 고충을 흘려듣지 않고 귀를 기울여야했다.

-철컥

최부장이 휴먼매니저 사무실을 열고 들어왔다. 환한 미소와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그리고 싸구려 가죽의 해진 사무용 가방.

내가 처음으로 워킹휴먼에 입사 했을 때, 최부장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일 잘하게 생겼네’

마찬가지, 최부장은 누가 봐도 일을 잘하게 생겼다.

-멍!멍!

휴먼도 최부장을 반겼고, 사원들도 자리에 일어나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잘들 있었냐?"

최부장이 오과장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오과장을 직접 휴먼매니저로 전출시켰다. 최부장에게는 아픈 손가락일 것이다.

정주임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현준이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반가움을 표했다.

이지혜 팀장이 쭈뼛쭈뼛 갈피를 못 잡고 망설이더니, 최부장님이 먼저 다가갔다

"대표님에게 들었습니다. 이지혜 팀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란 말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건만, 최부장은 나와의 친분보다는 사내 질서를 더 중요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막내 사원 휴먼.

최부장이 뜬금없이 등장한 새끼 강아지를 들써 앉으며 쓰다듬었다.

"웬 똥개가 있냐."

"족보 있는 강아지입니다. 그리고 저희 막내 사원 휴먼이요."

"막내? 흐흐, 앞으로 잘 부탁한다. 막내야."

최부장이 휴먼을 내려놓고 마련된 중역 소파에 앉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사무실을 둘러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워킹휴먼 물류1팀은 왜 그렇게 더럽고 지저분했던 거야?"

"그야, 제집 같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랬겠죠."

최부장의 책상은 이미 따로 마련해두었다. 바로 현재 내가 앉고 있는 자리였다.

내가 여태 해왔던 일들을 최부장에게 위임하고 싶었다.

나는 결과보고만 받고, 최부장이 사무실의 모든 흐름을 파악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거다.

그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맞고.

"멋있죠?"

최부장과 함께 옥상의 흡연실로 향했다. 빌딩 옥상을 올라가면 워킹휴먼에서는 보지 못한 강남의 빌딩 숲을 볼 수가 있었다.

"좋네."

최부장이 전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전보다 한결 가벼워진 어깨와 표정이었다.

그는 금연 중이기 때문에 담배는 물진 않았다.

"사원들의 표정이 다들 살아있다."

"네?"

"내가 여태 여러 회사를 돌아다니며 영업을 해봤는데, 그래도 한 가지 느낀 건 사무실에 딱 들어가자마자 풍기는 분위기란 게 있거든, 그런데 여기 분위기는 좋아. 가벼우면서도 다들 묵직하게 본인 할 일 하는 거, 이게 말처럼 쉽게 만들어지지 않거든."

"이제 부장님이 이끌어주시면 됩니다."

"뭐?"

"저는 천사장님처럼 이리저리 좀 쏘다니고 싶어서요."

"벌써?"

"할 일이 태산인데, 일 때문에 미뤄둔 일이 많거든요."

"흠."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장님. 그리고 이거요."

"설마 했다."

그에게 건넨 것은 이번에 새로 맞춘 휴먼매니저 티셔츠, 최부장이 티셔츠를 펼쳐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거 누구 아이디어야?"

"현준이요."

"그럴 줄 알았다."

그가 한참을 바라보더니 이내 와이셔츠 위에 휴먼매니저 반팔티를 입었다.

"어울리냐?"

"어울리긴 한데, 사이즈가 너무 작은 것 같기도 하고, 부장님 배가 너무 많이 나온 거 아닙니까?"

"뭐?"

"살 좀 빼셔야 할 것 같은데요."

"흐흐흐. 알겠수다, 김대표."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부하 직원들과 믿고 따르는 상사가 휴먼매니저에 들어왔다

이제 완전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개개인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다.

뭐하나 잘난 크게 잘난 건 없으나, 뚜렷이 모난 것도 없는 굉장히 평범한 회사원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앞으로의 일이 기대된다.

이제 더 나은 삶만 남았으니까.

기억을 여행하는 취미

최부장은 휴먼매니저에서 잘 적응했다. 여태 했던 업무를 다른 사무실에서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기 때문에, 사실 적응이랄 게 없었고,

그저 어떻게든 물류센터 계약을 가져오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내고 있을 뿐이었다.

물류센터는 내게도 아픈 손가락이다.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워킹휴먼을 퇴사했기 때문에 진한 아쉬움이 남았었다.

황부장과 박찬혁과의 싸움, 박찬혁과 나와의 갈등, 지금 생각해보면 피라미 수준들이라 그저 손가락으로 튕겨내면 그만이다.

박대리는 내가 나간 이후 다시 워킹휴먼에 입사했으나 또 퇴사했다고 한다.

최부장에게 듣기론 박대리는 박찬혁이 만든 도급회사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

부산에서 터를 잡고 사업을 꾸려나간다고 했으니 앞으로 물류센터를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부딪힐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아쉽다.

현재 아파트 경비원들도 무탈하게 잔잔히 근무하고 있었다.

일성은행의 청원경찰은 매일 떡볶이를 같이 시켜 먹으며 잘 어울린다고 한다. 물론 잔심부름은 일절 시키지 않는다.

청소 용역 업체 직원들은 도일빌딩에서 근무하거나 휴먼매니저의 법인소속인 광성고등학교에서 근무 중이다.

현재까지 아무도 퇴사하지 않고 잘 다닌다는 것은 나름대로 근무 환경에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콜센터는 이번에 이지혜팀장이 쇼핑몰 아웃소싱을 따냈기 때문에 사업을 더 늘리고 있었다.

총 40명의 인력을 새롭게 구인했고 사무실을 하나 더 임대하여 콜센터를 꾸렸다.

[한일 조선소 하청업체 일제히 계약 해지]

[한일 조선소 직영 인원 늘린다. 주가일시 상승]

[저가 수주를 일삼던 한일조선소, 기술력에 목숨 걸다. 그 첫 번째 단추를 꿰다.]

한일 조선소도 변화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찾아보며 나름 흐뭇했다.

휴먼매니저가 한일조선소의 하청 계약을 따냈다면, 만만치 않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허나, 기형적인 구조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하청을 없애버리는 결정을 내렸다.

기형적인 구조란 하청에 하청을 주는 구조를 뜻했다.

누군가는 해양플랜트 산업이 하청 없이 어떻게 굴러가느냐 하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본사의 인건비 절감과 수주절벽시 쉬운 해고를 위한 선택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부상당하고 죽어 나가는 근로자들만 40년째 수천 명이 됐다.

조선업 특성상 기술과 숙련공이 없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구조다.

우리나라 조선업이 현지의 성공을 바탕으로 해외에 1조를 투자하여 진출하였음에도 몇 년 가지 못해 망해버린 건,

현지 인력들의 기술력이 없었기 때문이며, 현지의 하도급 체계를 그대로 계승하여 인건비를 절감하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쫄딱 망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짓을 수십 년째 하는 짓, 이제는 정신을 좀 차렸으면 싶다.

휴먼매니저에는 최부장이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기 때문에 딱히 내가 나설 일이 없어졌다.

주말에 할 일 없이 집안 소파에 앉아 몇 시간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축내고 있었다.

여유가 생기면 시간이 남아돈다. 시간이 남아돌면 뭐라도 하게 되는데, 중요한 건 할 게 없다.

이번에 새롭게 입양한 강아지 ‘휴먼’을 집으로 데려올까 싶었지만, 주말에는 정주임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늘어진 티를 입고 온종일 TV를 보는 것도 재미가 슬슬 떨어져갔고

게임을 하려해도 손과 머리가 따라주질 않으니 따라가질 못하겠다. 롤이란 것도 한번 해봤는데 영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취미로 노래?

한 두 곡 부르면 목 아프고 혼자서 부르면 재미가 없다.

춤?

혼자서 추면 미친놈처럼 보일 뿐이다.

부동산 투자?

세를 받아먹고 살 바에는 로또 1등에 한 번 더 당첨되고 만다.

취미 생활은 삶의 엔돌핀이라고 하지만, 이미 휴먼매니저의 자극에 익숙해져 버린 나는 무엇을 해도 재미가 반감이 됐다.

그렇다면 내 취미생활은 휴먼매미저의 스킬을 이용하면서 재미를 찾아가는 게 맞겠지?

기억력의 스킬을 발현시켰다. 내 머릿속에 잠든 오래되고 잊힌 기억을 다시금 재생시켜주는 스킬인 것 같았다.

「기억력」

-뇌에 받아들인 인상, 경험 등 정보를 간직하는 것.

-2000UNI로 스킬레벨업 가능

[혼란 스킬 세부 능력]

「LV1 SKILL 기억력 상승」

「LV2 SKILL ??」

「LV3 SKILL ??」

「LV4 SKILL ??」

「LV5 SKILL ??」

기억력 스킬은 총 레벨5까지 달성할 수 있었고, 나는 총 9,000UNI가 있었기 때문에 기억력 스킬을 레벨 4까지 올렸다.

[기억력스킬을 레벨업 합니다.]

「기억 LV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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