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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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장은 워킹휴먼을 정리하는 대로 출근하기로 했다.

사원들의 의견을 따로 묻지 않았다. 굳이 그들의 의견을 미리 물어서 판단할 일은 아니었다. 통보였다.

"최부장님이 오신다고요?"

오과장이 화색을 하며 말했다. 정주임, 고사원이 차례로 워킹휴먼을 떠나고 마지막으로 최부장과 함께 일했던 사람이 오과장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 반기는 분위기였다.

"너희들은 어때?"

고사원과 정주임을 보며 물었다. 현준이는 표정을 잘 못 숨기는 성격이라 그의 생각이 얼굴에 다 묻어났다.

"최부장님은.. 무섭습니다."

"으휴."

현준이의 솔직담백한 말에 정성희가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도 현준이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 몰랐다.

"최부장님이 널 갈굴 일이 뭐가 있을까? 업무 태만? 회식만 축내서?"

"크흠.."

정주임의 일갈에 현준이가 입을 삐쭉 내밀며 딴청을 피웠다. 그리고 이지혜 팀장은 최부장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별말이 없었다.

"최부장님 오시면 제가 했을 때처럼 신고식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신고식?"

오과장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생각해보니 오과장이 처음 휴먼매니저로 입사했을 당시 신고식을 했었다. 그런데 최부장님에게는 딱히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최부장님이 막내가 되는 거죠?"

현준이는 간혹 이런 때에 머리가 잘 굴러가는 것 같았다.

최부장님을 놀려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은데,

그 후폭풍을 어찌 감당하려는 건지 참.

"너희들이 장난을 치든 신고식을 하던 내가 딱히 개입 하고 싶진 않은데, 너희들이 감당해야 될 거다. 최부장님 들어오면 너희들보다 직급이 가장 높을 거니까."

"그래서 하는 겁니다!"

"뭐?"

"앞으로 평생 저희들의 상사가 될 분인데, 언제 한번 이런 기회가 있겠어요?"

명분을 만들었구나.

현준이는 역시 잔머리가 뛰어나다.

이제 더 나은 삶만 남았으니까.

-탁탁

-탁탁

돼지껍데기가 익어가며 기름을 튀기며 사방에 퍼졌다.

현준이는 어떻게 하면 최부장님의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개최할지 고민이 짙어 보였다.

오과장에게 현준이는 아픈 손가락이다. 현준이가 간혹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쓸 때마다 아픈 동생을 보는 기분이라고 했다.

"적당히 하자 현준아."

"과장님, 제가 생각해 놓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오과장이 현준이를 보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옅은 웃음에 담긴 의미는 그저 철없는 동생을 대하는 표정이었다.

"얘기해봐. 한 번 들어나 보자고."

내가 현준이에게 말했다. 한껏 들떠있는 현준이를 기죽이긴 싫었다. 현준이가 신나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오과장님 신고식 때는 오과장님이 신입 막내 콘셉트로 저희가 갈구는 수준이었잖아요?"

"그랬지."

오과장은 당시 생각이 나는 듯 양 눈썹이 치켜 올랐다.

아직도 분해 보였다.

"최부장님은 연세도 있으시고 경험도 많으시니까 그 정도 이벤트야 단번에 알아챌 거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이름하야 휴먼매니저 직원들의 대격변!"

"너 무슨 웹소설 보냐?"

"솔직히 우리 회사 분위기 완전 힙하잖아요? 연령대도 전부 삼십대고, 제가 20대 초반이고, 흐흐, 이건 놀려먹기 위한 게 아니라, 최부장님을 휴먼매니저의 사내 분위기에 빨리 적응시키기 위한 계획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저는 휴먼매니저를 대표하는 MZ세대고 우리 부장님은 X세대라고 할 수 있겠죠? 대부분 결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이라고 하지만, 저는 분명 섞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얘기해봐."

현준이의 말마따나 연령대의 차이가 나긴했다. 모조리 30대와 20대다. 최부장 홀로 50대라 세대 차이는 물론이고 소통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데, 최부장은 상사의 위치로서 직원들을 대하면 그만이다. 딱히 문제될 건 없어 보였는데, 어쨌든 그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첫째로 최부장님의 힙을 살려주는 겁니다."

"뭐?"

"최부장님 나이 오십! 결코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회사 단체 셔츠를 맞추는 겁니다. 고등학교 때 반티라고 보면 될까요?"

"그걸 입히자고? 최부장님에게?"

"등짝에 휴먼매니저라고 딱 박는 겁니다. 대표님이 허락해주신다면 저희 휴먼매니저는 앞으로 정장이 아닌 회사티를 입었으면 합니다."

"티 한 장 입으면 세대 차이가 허물어지고 서로 손에 손잡고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

현준이가 어물거렸다. 그 이후 딱히 생각해 놓은 게 없는 것 같았다.

"심각한 꼰대분인가요?"

이지혜 팀장이 말했다. 심각한 꼰대라는 말투에 뭔가 가시가 돋쳐 있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최부장은 꼰대라고는 볼 수 없었다.

적어도 ‘라떼는 말이야.’ ‘이건 너를 위한 잔소리야’ ‘새파랗게 어린놈이’ 등의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잘못하면 질타하고 모르면 알려주고 남들보다 늦게 퇴근해서 항상 일을 먼저 마무리하고, 이걸 꼰대라고 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

"최부장님이 심각한 꼰대라고 생각해?"

내가 그들을 보며 되물었다. 오과장이 우물거렸고, 정주임은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정주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전에 워킹휴먼에서 대표님 퇴사하시고 더 심해졌죠. 그때 회사 분위기도 안 좋고 하니까 출근도 매일 15분 전에 와있어야 했어요. 퇴근은 뭐, 맘대로 하지도 못했고요."

"그건 그때고"

"..."

"우리 회사가 수직적이고 경직된 분위기가 아니잖아? 너희들이 내 눈치 보면서 퇴근을 못한 때가 있었냐? 자발적으로 일이 많으면 알아서들 야근하고 하지 않았나? 내가 없을 때도 말이야."

"..."

"아랫세대와 가치관이 다르다고 최부장님이 태도를 바꿔서 너희들을 대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

"그건."

"그리고 왜 먼저 너희가 선을 그어? 최부장님이 언제 너희들하고 섞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어?"

"아니에요."

"일단 지켜봐, 최부장님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내가 봤을 때 최부장님 같은 사람 없거든. 너희들에게 득이 됐으면 됐지, 결코 손해를 끼칠 사람은 아냐."

"저도 한 가지 아이디어가 있거든요."

이지혜 팀장이 말했다. 그리고 이지혜 팀장은 팔목을 걷어붙이며 나를 바라봤다.

"뭐죠?"

"사실 저는 최팔도 부장님을 뵙지를 못해서 성격은 잘 모르지만..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분위기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 거라고 보거든요, 여담이긴 하지만 저희 아버지도 굉장히 고집이 세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 제가 이거 한 방으로 특효 봤습니다."

"...?"

이지혜 팀장에게 이목이 쏠렸다. 나 또한 꼰대력을 한 방에 해결했다는 이지혜 팀장의 특효약이 궁금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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