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도일빌딩에 임대한 사무실은 스타트업 기업 두 곳과 중견 건축 기업 한 곳, 병원, 약국, 뭐 정체를 알 수 없는 네트워크 사무실도 있었다.
"현재 공실은 없어요. 그래서 제가 미리 알아봤는데 여기 근방에 28평짜리 소형 빌딩 사무실에 사무실 공실이더라고요. 그쪽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본사하고 가까운 곳에 사무실 하나 더 얻어 보자고. 그리고 지혜 팀장님."
"네!"
"홈쇼핑 계약은 이지혜 팀장님께 맡길 테니까 한번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있나요? 개선했으면 하는 방향?"
정주임이 손을 들며 말했다.
"대표님, 어제 어떤 여자가 사무실에 전화하더니 대표님 번호 좀 알려달라고 하던데요."
"누구야? 이름은?"
"저도 몰라요. 물어봤더니 대답도 안 해주고요."
"그래서 번호는 알려줬어?"
"아뇨. 미심쩍어서요. 회사 홈페이지에 있는 번호가 전부라고 했죠."
"잘했어."
"누구예요? 짐작하는 사람이라도 있으세요?"
정주임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지? 저 표정을 본 건 과거 클럽에서 마주쳤을 때였다.
"전혀 모르겠네.."
그런데,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내 인생에서 여자라면 연락이 끊겨버린 전 여자 친구나, 지영씨, 엄마가 전부다.
"굉장히 젊은 여자 목소리였어요. 혹시라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려요."
"알았어. 고마워."
"그리고 대표님?"
"응?"
"담배 한 대 피우시죠."
* * *
정주임과 함께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건물 옥상에는 회사원들이 여러 보였다. 정주임과 아메리카노 한 잔을 쭉 마시며 담배를 물었고 그녀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뭐예요?"
"..."
"지영언니 인별그램 들어가 보니까 게시글 전부 닫았던데, 싸웠어요?"
"싸우긴 개뿔. 아냐."
"아.."
정주임은 지영씨와 구면이었고 인별그램도 팔로우했기 때문에 간혹 연락 하는 사이였다.
"사무실에 연락 오는 젊은 여자애도 그렇고 대표님 혹시 바람나셨어요? 지영언니를 두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내가 미쳤어? 난 죽어도 바람은 안 펴!"
"왜 갑자기 버럭 하시나."
"크흠."
"이거 봐요."
"뭐야?"
정주임이 스마트폰을 건넸다. 그녀의 스마트폰에는 영상이 있었는데, 재생 버튼을 눌러보니, 아뿔싸.
"이게.."
과거 클럽에서 한수애와 함께 섹시댄스를 추는 영상이었다.
당시 학부생들이 찍어서 인별그램에 올린 것 같았는데, 더 가관인건.
내가 지영씨를 발견하고 한수애를 밀쳐내며 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가는 것까지 있었다.
하아, 씨발. 뭔 이런 병신이 다 있나. 내 영상을 보고도 참 쪽팔리고 한심해 보였다.
120개가 달린 댓글을 눌렀다.
ㄴ 킹받네 ㅋㅋㅋ 그런데 한수애가 이런 캐릭터였나?
ㄴ 클럽 댄스 대회 1등 상금 1억임. 그런데 주최자가 도망갔다고 들었음 ㅋㅋㅋㅋㅋ
ㄴ 아 존나 골 때리네. 한수애 고소 안 함?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한수애 개빡치겠는데 돈도 못받고 영상만 퍼지고
ㄴ 솔직히 춤이야 뭐 연예인이라 이슈 되는 것뿐이고 더 나쁜 새끼는 주최자 아님? 그 새끼 신상 털어야겠는데?
ㄴ 와, 댄스대회 상금 1억이면 프로그램 하나 만들어도 되겠다.
-뚝.
댓글을 확인한 뒤 처참한 심정으로 정주임을 바라봤다.
"대표님, 이제 노는 물이 완전히 달라졌네요. 하긴, 대표님 재력이면 연예인 정도 만날 수 있죠. 그것도 13살이나 어린 연예인하고요."
"이거 아냐."
"뭐가 아니에요. 영상에 떡하니 나왔는데."
"또 누가 알아?"
"그게 뭐가 중요해요. 다 큰 성인이 클럽에서 부비부비를 하든 원나잇을 하든. 그런데 대표님 클럽 정말 좋아하신다. 저야 일 때문에 바빠서 주말에도 뻗어 자기 바쁜데, 대표님은 아주 부지런하셔."
"비꼬냐?"
"제가 짐작하자면요."
"..."
"사무실에 전화 온 여자..한수애인 것 같아요."
"..."
"제가 촉이 좀 좋나요? 이번에 탐정 놀이를 했는데, 한수애가 출연한 영화 속 목소리하고 똑같더라고요. 대표님이 그렇게 좋나 봐요?"
"그런 게 아니라. 하아. 일이 좀 꼬인 거야."
"연락처 남겼는데, 드릴까요?"
"..."
"드려요? 한수애 전화번호?"
"됐다. 주지마. 필요 없어."
"오. 바람피우는 건 아니다?"
"필요 없다니까."
괜히 성질이 나버려서 기분이 팍 상해버렸다. 내 사생활을 모조리 다 파악해버린 요 얄미운 정주임 앞에서 표정조차 숨기기가 어려웠다.
"지영씨는.."
"네?"
"지영씨한테 뭐 들은 거 없냐고."
"제 전화도 안 받던데요. 아예 휴먼매니저 직원들하고 전부 손절하려나 봐요."
"하아."
"사실 클럽 다니는 남자를 저도 몇 번 만나보긴 했는데, 그거 끊기 어렵거든요. 대표님도 그거 끊으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거예요."
"..."
"화이팅!"
* * *
퇴근하는 길에 한수애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주임의 말대로 회사에 전화를 한 사람이 한수애가 정말 맞을까? 그런데 한수애가 어떻게 내 회사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만약 한수애가 내 회사에 대해 알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한테 들었을 확률이 높은데,
혹시?
나는 급히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했다.
"명석아."
-어 도일아.
"너 혹시 한수애랑 통화했냐?"
-아니, 전혀. 걔가 나랑 무슨 통화를 해.
"그러냐?"
-갑자기 걔는 왜. 저번에 클럽에서 만난 뒤로 연락 왔었냐?
"아니 그게 아니라. 하아, 됐다. 내가 알아서 할게."
괜히 회사에 연락이 왔었다고 하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 것 같았다.
"요즘 뭐 하고 사냐?"
-마마님 앞에서 충성을 다하면서 살지. 매일 애국가를 외운다. 내가.
"내 생각은 안 나든? 그때 이후로 어떻게 연락 한 통이 없냐."
-미안해. 내가 요즘 몸을 사리고 살아서. 알잖아?
"알긴 뭘 알아. 알고 싶지도 않아 인마. 암튼 넌 의리 없는 놈이라니까."
-네가 내 맘을 아냐? 10살 연상이랑 만나 봤어?
"암튼 의리 없는 새끼라고. 끊어 새끼야. 다음에 술이나 사."
-뚝.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한수애를 신경 쓰고 싶지 않았으나 클럽 영상이 인터넷에 퍼져버린 것도 미안했고, 클럽 상금 대회라고 1억을 준다고 했으면서 흐지부지 없던 일로 돼버린 게 찔렸다.
승강기가 오늘따라 천천히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6층.
대문 앞에는 여러 쪽지가 붙어 있었다.
-전화 주세요. 010-xxxx-3312 옆집.
옆집이라고 쓴 것으로 보아 한수애가 쪽지를 남긴 것 같았다.
아마 계속 문을 두들기고 벨을 눌러보아도 대답이 없으니 쪽지를 남기지 않았나 싶었다.
쪽지를 접은 뒤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삐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