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가 흩어지며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나는 동생에게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줄 수가 없었다.
"도현아."
"응?"
"궁금하냐? 저 인간들이 왜 저러고 있는지?"
동생이 끄덕였다.
"간혹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도 있거든, 나도 처음에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그냥.. 나만 알고 있으니까 괜찮더라고."
"..."
"너도 너만 알고 있을 수 있냐?"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휴먼매니저 이능이 처음으로 생겼을 때?
내가 로또 5등에 당첨됐을 때? 중복 당첨? 독식? 로또 1등이 천 명이 나온 것부터?
아니면 조문객이 삼천 명이 오게 된 이유?
어떤 것부터 시작하든 휴먼매니저란 이능은 그가 받아들이기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때 동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형.."
"...?"
"그냥 얘기 하지마."
"뭐?"
"형만 알고 있으면 아무 일도 없고 괜찮은 일이라며..그러면 형만 알고 있어. 괜히 내가 알고 있어서 형한테 피해주기 싫으니까."
"피해주는 거 아냐."
"아냐, 내가 피해주는 거 맞아. 그러니까 그냥 얘기하지마."
"무슨 얘기인 줄 알고 그러는 거야?"
"됐고, 그만하자. 그리고 저 안에 있는 인간들이 술을 처먹어서 개가 됐든, 뭔가에 충격을 받아서 눈뜬장님이 됐든, 중요한 건 형은 형만의 비밀이 있다는 거야. 그건 내가 알아선 안 되는 거고."
"..."
동생이 무슨 생각으로 내게 이런 말을 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동생의 뜻대로 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담배를 마저 피운 뒤 다시 접객실로 들어갔고, 사람들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듯 몸을 움츠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누워 있던 한 근로자가 멍한 얼굴로 일어나 옷을 털어댔고, 테이블에 엎드린 사람들도 서서히 몸을 꿈틀거리며 정신을 깨고 있었다.
1974년 한일조선의 근로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통해 요구했던 것은 현재의 하청 도급을 철폐해달라는 것, 차별대우를 없애는 것, 부당해고를 금지하는 것, 상여금을 지급하라는 것의 등이었다.
허허벌판 아무것도 없는 모래사장에서 조선업은 시작됐다.
제대로 된 배 한 척 만들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기업과 근로자들이 똘똘 뭉쳤고 정규직과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했다.
그런데, 완공하자마자 정규직이었던 근로자들의 월급을 반으로 줄여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하청 도급으로 전환 시키는 일말의 사태에 대규모 시위로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48년이 지난 현재,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48년 전의 근로자와 현재의 근로자들은 여전히 똑같은 요구사항으로 소리를 치며 쟁의하고 있었다.
매해 조선업 망한다, 몇 해 가지 못한다. 수주 절벽이라 일이 없다. 라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며 구조조정을 해댔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때때로 수주 호황, 조선 호황이란 기사가 쏟아지며 다시 인력을 끌어모았다.
수년 주기로 똑같은 방식이었다.
2022년 현재 조선업이 호황이라 외치며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는 기사가 숱하게 쏟아진다.
그리고 또 수주 절벽에 가까워지면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분다며 수천 명이 잘려 나갈 것이고, 공사 대금을 삥땅친 하청 업체들이 고의 폐업하고 결국 돈을 받지 못한 근로자들은 길바닥에서 나앉으며 머리띠를 둘러멘다.
그렇게 버틴 게 조선업 48년이고 비슷한 주기로 반복된다.
그래서 조선업이 망했나? 바다에 배가 안 다니나?
지구 면적의 70%가 바다인데, 조선업이 망하려면 70%의 바다를 육지로 메꿔야 가능하려나.
이제 좀 지긋지긋하다.
도현이가 얘기했던 말이 생각났다.
개구리는 점점 뜨거워지는 물속에 있으면 인지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는 얘기였다.
이제 뛰쳐나와야 할 때였다.
한일 조선 김한필 소장이 짙은 한숨을 내쉬며 소주 한 잔을 벌컥 들이켰다.
정적이 맴돌았다. 아무도 쉽게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들이 보고 느낀 게 뭔지 나는 모르지만, 아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일 조선이 최초로 먼저 선보여 줬으면 합니다."
"..."
정적 속에서 내가 말을 내뱉자 일제히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한일 조선이 최초로 선 보이자고 말했던 것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뜻이었다.
1974년, 2,500명의 기능공 직원들 모두 정규직으로 입사시켰던 때로.
"1974년 한일조선은 배 한척을 만들기 위해 2,500명을 정규직으로 입사시켰습니다."
1974년도 얘기를 꺼내니 김한필 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배를 만들자마자 그들을 해고했고 하도급제로 전환해 월급을 반 토막 냈고요."
"..."
"표정이 왜 그러시죠?"
"아..아닙니다."
소장은 본인이 불과 몇 분전에 마주했던 역사의 한 장면이 내 입에서 나오니 의아한 듯 보였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 수주를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인건비 절감을 위한 방안일 겁니다. 그때 당시는 그럴 수밖에 없었죠."
"지금은요?"
"지금은.."
"지금도 수주가 없나요? 일이 없어서 직원들을 잘라내야 하는 상황인가요?"
"아닙니다..인력이 없는 상황입니다."
"왜 인력이 없어진 겁니까?"
"..."
김한필이 대답하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보다 수만 명의 인력이 조선업을 이탈했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시죠."
"..."
"하청 직원들 전부 직영으로 올리세요. 기능공들이 최저 시급 받고 일하지 않습니까. 이게 말이나 됩니까? 누가 땡볕의 뜨거운 철판 속에서 그 돈 받고 일하고 싶겠습니까?"
그러자 이내 서로를 헐뜯으며 싸웠던 하청 직원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맞습니다!
-하청 도급을 없애라!
-차별 대우 철폐!
-상여금을 지급하라!
"대단히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직영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해결할 문제는 아닙니다."
"소장님."
"..."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말입니다. 직영으로 올라간다면 사고는 줄어들겠죠. 그리고 하청회사를 거치면서 착복당하는 금액만 제대로 근로자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일 조선 소장이 자신의 소주잔에 술을 따랐다.
"현재 인력난도 심각한데다 직영으로 올린다면.. 인력 수급이 더 어려울 겁니다. 게다가 언제 또 수주 불황이 닥칠지 모릅니다. 그들을 안정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더 심각하게 무너집니다."
"그 얘기는 정규직을 하청 도급으로 후려 쳤을 때, 1974년 당시 회장님들이 했던 말입니다. 이제 좀 그런 말은 지긋지긋하지 않나요? 저도 하나 장담하자면 하청 도급 때문에 인력 수급이 안 되는 거고, 기술자들이 조선업을 떠나고 경쟁력도 사라져버리지 않나 싶은데요. 지금이 기회라고 봅니다. 앞으로 수년간 수주는 따놨으니 이제 기술력으로 승부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바꿔보시죠..앞으로 이런 기회 다시는 안 올 겁니다."
"..."
"고인이 된 빈소를 보면서도 느끼는 게 없습니까? 아니면 48년 전처럼 단체로 시위를 해야 바뀌려나요?"
물론 1974년 시위가 평화롭게 흐르진 않았다. 수백 대의 기계가 불에 타고 불법으로 사무실을 점거하여 농성했다.
단체 시위를 해야 하냐는 내 말을 듣던 김한필 소장이 주위를 둘러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근로자들의 눈빛들이 하나같이 매서워 보였으니까.
로또 1등 당첨됐었지?
이제 내가 이곳에서 할 일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6억.
이번 장례식으로 걷은 부조금은 정확히 6억 일천 만 원이었다. 내가 오천만 원을 냈고 십시일반 모인 금액과 합하여 총 6억 일천만 원이었다.
거기에 산업재해 처리로 나오는 유족 보상금을 합하면 풍족하진 않더라도 먹고살 수 있는 수준의 금전적 기반은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고인의 아내는 왜, 어떻게 많은 부조금이 모였는지 알지 못했다.
갑자기 찾아온 조문객들에게 적잖이 당황하며 상주 노릇을 할 뿐이었다.
멀리서 그 가족들을 지켜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잘 살았으면 싶다.
그리고 조선소장 김한필은 점진적으로 직영 근로자를 늘리기로 했다. 이례적인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고는 조선소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산재라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본질적으로 하청 업체의 관리 태만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그럼 근본적인 원인이 뭡니까?
-원청의 경영 태만입니다. 도급하청의 관계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며 근로자들의 복지 향상과 임금 증가에 힘쓰도록 하겠습니다. 수주 절벽시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서 한일조선만의 기술력을 개발 또는 회사를 인수하여 경쟁력 확보에 힘 쓸 계획입니다.
현재 계약된 23개 업체의 1차 하청 계약이 끝나면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잘됐다.
차후 결과는 시간이 얘기해주겠지.
그리고 1차 하청과는 별개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최부장과 천사장이었다.
휴.
이번에 조선소에서 1차 하청 사업을 꾸려보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왔다.
이번 계약을 위해 지방에 건물까지 매입하며 대출까지 받아 보증금을 확보한 줄 아는데, 하청 업체 숫자를 줄인다고 했으니,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지는 상황이었다.
워킹휴먼은 따로 살려둬야 할까. 김한필 소장에게 따로 얘기해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되는 일이 없네."
지금 내 앞에 앉아 푸념하며 커피를 마시는 최부장을 만난 건 카페였다.
조선소 현장의 특정 블록에 공사를 도급 받기로 하였으나, 김한필의 기자회견으로 불투명해진 상태였다.
"천사장님은요?"
"일이 너무 갑자기 꼬여버려서 멘탈이 완전 털려버렸지."
"..."
"올 한 해는 되는 일이 없네."
최부장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있었던 사건을 그에게 설명해줬다.
장례식장에 조선소장이 왔었고 청일 대표가 왔었는데, 그곳에서 근로자들끼리 대판 싸움이 났었다고.
"그 이후에 김한필 소장이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오늘 기자회견을 열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최부장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잖아? 실제로 소란이 빚어져 싸움이 났었으니까.
최부장의 거취를 생각해보건대, 워킹휴먼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천사장도 변했다.
"워킹휴먼에 뼈를 묻으실 작정입니까?"
"뭐?"
"천사장도 중간착취에 손을 뻗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최부장님이 그걸 눈뜨고 지켜볼 성격도 아닐 텐데.."
"매번 얘기하고 있다. 그러지 말자고. 그런데 내 말을 듣나? 회사가 무너지기 십상인데."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
"부장님도 그런 사람 아닌 거 알고 있고요."
"중간착취 금지법이 생기면 이제 이 짓도 못 해 먹을 거라는 거 천사장도 알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더 빼먹으려고 드는 거지."
"부장님은요?"
"..."
"부장님 생각이 중요하죠. 부장님도 거기에 동참하셨습니까?"
최부장의 답변 여하에 따라 판단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