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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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틀렸소? 당신이 언제 제때 물량 대금을 준적이나 있냐고, 매번 시발 나보고 대출 당겨라 뭐 담보 잡아라, 그 지랄 떨었던 게 어제 오늘 일 아니냐고.”

“...”

“괜히 나만 오해받잖아 씨발. 솔직히 말해서 저번 주에도 준다고 했던 물량대금 아직도 못 받았거든? 내가 친척이라고 여태 눈감아 주고 했는데 씨발넘아.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고.”

“...”

“그리고 너희들.”

마상구가 팀원들을 바라봤다. 팀원들도 딱히 대들지 못하는 것을 보니 마상구의 말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 것 같았다.

“내가 매번 말했지. 너희들 술 처먹이고 고기 맥이고 뭐 하는 거 내가 빚내서 하는 거라고. 쪽팔리게 살지 맙시다. 응? 어휴 씨발. 내가 이런 새끼들을 팀원이라고 뒀다는 게 아주 쪽팔리다 쪽팔려!.”

그가 스스로를 항변하며 울분에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원청, 1차 하청을 거쳐 내려오는 도급비용 삭감은 조선소 구조상 자주 발생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물량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빚쟁이로 사는 물량팀장들도 간혹 있었다.

그런데 원청에서 1차, 1차에서 2차, 그리고 3차. 이 구조에서 가장 피해 받는 건 결국 근로자들이었다.

1차 하청 대표 마영훈은 쏠린 시선을 탈피하기 위한 반박할 단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근로자들의 비난과 원망은 마영훈에게 향했다.

마상구는 히죽히죽 웃으며 마영훈을 바라봤다. 그리곤 손가락을 뚝뚝 꺾으며 주먹을 쥐었다.

마지막 비수를 꽂았다.

“저 씹새끼가 헤쳐 먹은 정도면 빌딩을 세웠을 거다. 그리고 며칠 전에 벤츠로 바꾼 거 알지? 그거 공사대금에서 존나게 빼먹은 거야 병신들아. 그걸 모르고 여태 존나게 땀 뻘뻘 흘려댔지? 퉤! 씨발 하여튼 여기 있는 새끼들은 다들 팔다리밖에 없다니까. 진짜 원흉이 뭔지 생각 좀 하고 살자고.”

그가 조소하며 말했다. 마영훈은 이내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어지럼증이 몰려오는 듯 이내 머리를 부여잡으며 쓸어 올렸다.

1차 하청 직원들을 본공이라고 칭했다. 본공들 또한 이 작태를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당황해하고 있었다.

“마상구 팀장이 한 말이 사실이요?”

사내가 말했다. 그러자 마영훈은 셔츠의 단추를 풀어 헤치며 다 거짓말이라고 다그쳤다.

그런데 하나둘씩 증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 개새끼, 벤츠로 바꾼 거 보니까 하여튼 헤쳐 먹은 게 많은 것 같았다니까.

증언이 쏟아졌다. 수많은 조문객들 사이에서 누가 무슨 말을 외치는지 쉬이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 빌딩 새로 세워서 사무실 이전한 것도 전부 우리 돈 착취한 거였나?

-다 뱉어내 시발 새끼야!

-작년에 못 받은 상여금 좀 달라고 씨발! 직영이나 본공은 받았다는데 왜 우리는 못 받냐고!

-우리가 본공들보다 못하는 게 뭐냐? 막말로 우리가 기술이 딸리는 것도 아니고 일도 더 잘하는데 씨발.

여기서 ‘본공’은 1차 하청 직원을 뜻하는 단어였다.

이제, 1차 하청 직원들도 하소연하듯 말했다.

-우리 본공들 월급 좀 올려라 어째 10년째 똑같나. 이러니 조선소 탈출은 지능 순이라 그러지. 어휴.

-조선소는 탈출이 답이야.

-그런데 물량 팀들은 무슨 상여금? 조선소에서 없어져야 할 팀들 아님? 저 새끼들 때문에 우리 힘이 없어지는 거라고.

-물량 팀은 어차피 사라져야 하는 팀이고 이참에 잘됐다고 보는데?

-물량 팀 때문에 우리 조선소 이미지가 바닥 이라고!

-지랄들하고 자빠졌네. 우리 물량 팀 없으면 작업도 잘 못하는 것들이.

그들이 서로를 헐뜯으며 말했다.

그때, 어디선가 편육이 날아들었고,

-찰싹.

마영훈의 얼굴에 된장 묻은 편육이 찰싹 달라붙었다.

계속해서 편육이 날아들자, 마영훈이 급히 고개를 숙여 테이블 밑으로 몸을 피했다.

“하아.”

그만 한숨을 팍 나와 버렸다.

항상 이렇다.

매번 똑같다.

싸우는 건 그들이고, 목적과 방향은 매번 틀어졌다.

이 지랄 맞은 조선소 구조는 그들끼리 서로 헐뜯으며 싸우게 만들고 발전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제 장례식장에 많은 사람을 불러 모은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할 때였다.

거대한 힘.

재산을 무한히 증식할 수 있는 로또보다 더 거대한 힘을 이제 꺼낼 때였다.

[김도일님의 잠재된 능력을 도식화하여 스킬목록을 발현합니다.]

[스킬 목록]

「건강」 「기억력」 「로또」 「공감력」

「정치」 「친화력」 「식견」 「매력」

「무력」 「설득」 「혼란」 「체력」 「계산」

「이해」 「기합」 「희생」 「도발」 「공신력」

………

나는 「혼란」 이란 스킬을 선택하여 시스템 활성화를 시켰다.

「혼란」

-혼란(混亂)

어지럽고 질서가 없음.

-1,500UNI로 스킬레벨업 가능

[혼란 스킬 세부 능력]

「1LV SKILL 타인의 혼란을 가중」

「2LV SKILL ??」

「3LV SKILL ??」

「4LV SKILL ??」

「5LV SKILL ??」

혼란 스킬은 총 레벨5까지 사용할 수 있었고, 나는 로또 레벨8스킬을 초기화하여 총 8000UNI를 얻어 혼란을 최고레벨로 달성시켰다.

[혼란스킬을 레벨업 합니다.]

「혼란 LV1」

···

···

「혼란 LV5 상승」

「LV5 SKILL 실제와 허상」

허상(虛像)이란 실제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나타나 보이거나 실제와는 다른 것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습을 말했다.

[실제 또는 허상을 발현하십시오.]

휴먼매니저의 지침대로 수많은 조문객들에게 펼쳐 보여야 할 실제 또는 허상을 결정해야 했다.

과거 혹은 미래, 또는 현재의 다른 면,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들을 단번에 휘몰아치게 만들고 싶었다.

[실제를 발현하십시오.]

싸움은 잦아들 기세가 없었다. 1차 하청 직원과 물량 팀은 편육과 육개장을 던지고 서로 쌍욕을 해대며 드잡이 질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 얌전히 술 마시던 본사 직원들 또한 몸싸움에 휘말렸고

접객실은 일순간 난장판이 되고 있었다. 조선소장 김한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시작으로 돌아가야 했다.

현재의 작태를 만든 원흉, 그 발단으로 돌아가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누군가는 IMF이후로 비정규직이 생겼다고 했지만, 그때 이후로 심화 됐을 뿐이다.

시작은 1974년 한일조선소 최초의 도급 하청 반대 시위였다.

이런 기회 다시는 안 올 겁니다.

접객실 내부의 벽에 마치 혈흔을 낭자한 것 같은 육개장의 벌건 육수가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다.

한 놈은 머리에 육개장을 잔뜩 뒤집어썼고 다른 놈은 편육이, 소주병, 종이컵, 뭐, 집어 던질 수 있는 물건들이 제 자리를 잃고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서로를 욕하고 때리고 헐뜯으며 일대 난투극이 일어났었다.

허나,

일순간 벌어진 소란은 나의 스킬 실행과 함께 동시에 잠잠해졌다.

「LV5 SKILL 실제와 허상」

역시, 스킬이 만렙이라 그런가.

-혼란(混亂)스킬이란 상세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어지럽고 질서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스킬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질서와 침묵을 가져올 수 있었다.

현재 접객실에 앉아 있는 근로자들의 눈빛이 멍했다.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도 있었고, 테이블에 엎드려 있거나, 뜬 눈으로 앉은 사람들도 있었다.

근로자들은 현재 내가 발현한 [실제]의 역사적 한 장면의 환영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기분이 들었다. 현재 접객실에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째깍째깍

시계의 초침이 움직였다.

분명히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다만,

[1974년 한일조선소의 도급 반대 시위]

근로자들은 실제 했던 과거의 역사 속에 갇혀 있었다.

1974년은 조선소 역사가 처음 시작되는 해였으나,

도급 반대 및 잦은 해고에 대한 항의를 위해 노동자 약 2,500명이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아침 출근시 작업장으로 가지 않고 한일조선소 본관으로 몰려갔다.

여태까지 정규직으로 받았던 월급을 도급화하여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한일 조선소 본사의 지침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1974년에 발생한 이 시위는 출근후 아침부터 밤새 지속됐으나, 결국 수백 명의 경찰 병력에 의해 진압됐으며 그해 도급화가 정식적으로 시작됐다.

조선소 첫 하청 도급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배 한 척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나라가 그해에 기술공들의 노력과 땀으로 배 한 척을 만들어 냈고,

그것과 동시에 정규직이었던 그들을 내치며 도급 하청으로 전환 시킨 해였다.

48년 전의 일이다.

내가 그들을 48년 전의 역사로 보낸 이유가 있었다.

그때,

-철컥

밖에 있던 동생 도현이가 접객실 내부로 들어왔다. 하필, 지금 이 순간?

"형?"

"어, 도현아."

"이제 좀 조용해졌네?"

나는 적잖이 당황한 모습으로 동생을 대했고,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들어왔다.

동생은 일대 벌어진 소란의 흔적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바닥에 누워 자는 사람은 뭐야? 어이, 이 양반아 여기서 자면 어떡하냐고."

동생이 재차 흔들어 깨워보지만 발현된 스킬 탓에 묵묵부답이었다.

"술을 많이 먹었나보네."

동생은 결국 포기하고 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와 옆 테이블에 앉았다. 동생이 연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조용하네. 다들.."

"그러게 깊은 생각을 하나봐."

"..."

"부의금은 얼마나 모였고?"

"몰라, 세다가 포기했어."

그는 한일 조선 김한필 소장과 마상구, 마영훈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뭐야? 다들 눈에 초점이 없는데?"

동생은 그들이 초점 없는 눈빛으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의아해했다.

그리곤 마상구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마팀장님? 팀장님?"

동생이 재차 흔들어보지만 마상구는 아무 대꾸 없이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곤

볼을 꼬집었는데도 별 반응이 없자, 기겁하듯 뒤로 물러섰다.

"뭐야 씨발,"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난투극을 벌였던 사람들이 얌전히 앉아 사색에 빠져 있으니 도현이도 당황할 수밖에.

그들의 육신은 현재 접객실에 있지만, 그들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과거 1974년 한일 조선소 최초의 도급 반대 시위였다.

그런데 이걸 도현이가 어떻게 이해하랴.

"다들 왜 이래?"

동생이 겁에 질려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동생을 이곳에 둘 수가 없었다.

"나가자."

동생을 끌고 흡연실로 향했다. 동생이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입에 물며 불을 붙였다.

스킬로 발현된 역사의 한 장면이 끝나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밥은?"

"먹어야지."

동생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작금의 사태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귀신에 홀린 모습이었으니, 정상적인 사람이 본다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술 처먹어서 개 되는 인간들 처음 보냐? 됐고, 담배나 한 대 줘."

나는 애써 에둘러 도현이에게 말했다. 도현이는 미심쩍은 표정을 하며 내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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