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이중으로 갈취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
조선소 원청이 ‘청일’에게 근로자들의 임금을 주면, 거기에 수수료를 떼고 2차 하청 즉, 맨파워에게 급여를 건넨다.
맨파워 팀장은 여기서 또 수수료를 떼고 팀원들에게 임금을 지불한다. 이렇게 이중갈취가 성립되는 것이다.
친인척끼리 해먹기 위한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임금체불도 다분하다.
맨파워에서 각 팀원들에게 급여를 주는 방식이라, 만약 팀장이 돈을 들고 나른다면 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물량 팀은 평균 10명에서 20명, 많게는 30명까지 만들어지는데 한 달 월급을 들고 나를만한 구미가 당기는 금액이다.
그래서 내 동생도 과거 팀장이 4대보험 명목으로 돈을 빼먹고 월급을 들고 날라서 받지 못했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나요?"
"쉽게 해고시킬 수 있고, 공기를 단축시키면 인센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런 하청의 재하청이 생긴 배경은 많다.
물량팀이 만들어진 계기는 결국 빨리 작업을 끝낼수록 원청에서 1차 하청에게 인센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선업 수주가 불황이면 직원들을 대거 구조조정 시켜야 했기 때문에 이런 물량팀원들은 아주 손쉽게 잘라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위험한 일을 외주화했기 때문에 다칠 경우 1차 하청은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고, 2차 하청은 폐업하고 도망가 버리면 그만이다.
결국 사고가 발생하면 누구 한 명이 총대 메어 책임지지 않을 수 있고, 책임도 안 지면서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고 게다가 원청은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불합리한 관행을 눈감아 주는 것이다.
불과 수십 년 전부터 관행된 일이라곤 했지만, 현재도 그런 물량팀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청일’대표로부터 세세한 부분을 들을 수가 있었다.
"오늘 밤 9시에 뵙죠."
"네?"
"장례식장이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청일 대표로부터 본사 관계자의 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한일 조선 본사는 현장으로부터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다단계 구조로 된 탓에 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와야 했다.
맨파워에서 청일, 그리고 본사.
본사 건물 내부로 진입하자 경비원들이 막아섰다.
기자들이 수시로 찾아온 탓에 어쩔 수 없는 처사라고 했다.
그들이 내게 방문 목적을 물었고, 나는 회장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장례식장에 삼천 명 정도 올 것 같아.
어제 새벽에 회장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왔지만,
역시,
회장이 머무는 곳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현재 자택에서 칩거 중이거나 해외로 도피한 것 같았다.
대신
한일 조선의 본사 로비에서 특별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최부장과 천사장.
그들은 워킹휴먼을 간신히 회생시키고 조선소 아웃소싱 사업을 뚫었다고 했다.
회의를 막 끝내고 사무실에서 빠져나오는 모습들이었다.
천사장의 압도될 정도의 덩치와 기운 있는 걸음걸이는 여전했다.
"도일이냐?"
"사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내가 천사장에게 잘못한 건 없는데, 괜히 불편한 마음이 생겼다.
아마, 워킹휴먼을 박차고 나온 게 큰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내가 힘들 때 회사 입사를 시켜준 분이고 내 미래를 응원해줬던 양반이었다.
워킹휴먼에 다녔을 당시 풍문으로 들었던 것은 천 잔을 마셔도 쓰러지지 않는 주당이라고 했다.
그런데 천사장은 오과장에게 들은바 회사가 어려워지자 중간착취를 일삼는다고 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망해가는 워킹휴먼을 살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 못하랴.
어쨌든 천사장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는 게 현재 내 판단이었다.
그들과 흡연실로 향했다. 어쨌든 회포를 풀어야 마땅하지만 나는 오늘 저녁 할 일이 있었다.
"무슨 일이야?"
최부장이 물었다.
"본사 사람들 좀 만나러 왔어요."
"그래? 네가 한일조선에 지인이 있었냐?"
"아뇨, 제 동생이 이번 폭발사고로 크게 다쳤거든요. 합의금이나 치료비에 관해서 할 말이 있어서요."
"아.."
그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천사장과 최부장이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는 게 느껴졌다.
최부장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 때문에 금연 껌을 씹었고, 천사장이 인상 가득한 얼굴로 담배를 물었다.
최부장이 굉장히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동생은 괜찮고?"
"다행히 치료는 잘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망하신 분이랑은 서로 알고 지냈던 사이겠네?"
"네, 연고도 없는 곳에 와서 고인이랑 서로 의지했던 사이인 것 같아요."
"크흠."
"왜요?"
"이번에 그 사고건 때문에 하청 업체들끼리 서로 돈을 좀 모으는 것 같더라고."
"어떤 돈이요?"
"여기는 워낙에 사고가 잦으니까.. 하청 업체들 사이에서 계를 걷는 것 같아. 누가 죽으면 합의금 마련하는 차원에서."
"네?"
"사업에 끼려면 돈을 낼 수밖에 없는 거지. 지방 텃세가 유독 심한 것 같은데, 크흠."
"그래서 얼마 내셨어요?"
"냈겠냐? 지랄들 마시라고 죽어도 안 낸다고 했지. 지네들 사고에 왜 우리가 돈을 내줘? 씨발놈들. 진짜. 사람 목숨을 아주 돈으로 때우려고 든다니까."
"아.."
게다가 예전부터 내려온 관행이라고 했다. 워낙에 사고가 많이 발생하니 하청 업체들끼리 계를 부어 사고가 발생한 업체에게 돈을 몰아준다고 했다.
근로자와 합의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천사장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아마 이 부분에 있어서 최부장과 천사장의 이견 다툼이 있었던 것 같았다.
"품앗이하자는 게 나쁜 건 아니거든."
천사장이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최부장과 의견 다툼이 있었다는데 더 큰 확신이 들었다.
천사장은 어쨌든 사업 수완이 탁월했기에 마름꾼과 같이 회사 수익을 위해 외연을 확장하는데 주력했고, 최부장의 성질은 그러질 못하였다.
천사장의 말에 최부장이 반박했다.
"그러니 사람 장사한다는 소릴 듣지 안 그래요?"
최부장이 천사장을 쏘아보며 말했다. 50대들의 기 싸움이 흥미가 있었다.
"크흠."
"사업하나 쥐었다고 굳이 그들 틈에 끼어서 노 절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막말로 아직 바다 냄새도 제대로 못 맡아본 신생 기업인데, 우리에게 돈을 달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최부장, 거 알았다니까. 그래서 내가 그 놈들한테 돈을 줬냐? 안 줬잖아. 도일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천사장이 내게 말했다. 하청 업체들끼리 품앗이하여 사망한 근로자에게 합의금을 마련해준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럴싸했으나, 뭔가 더 깊이 생각할수록 싸이코패스 집단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고예방 목적으로 돈을 쓰면 될 텐데, 미리 합의금 명목으로 품앗이로 계를 걷는다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조선소가 미쳐 돌아가는 거 같네요. 애초에 그 돈으로 안전 관리자 한 명을 더 구인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세상일이 어떻게 뜻대로만 흘러가겠냐. 지네들 잇속 챙기느라 바쁜 세상인데. 다 그 나물에 그 밥이지 뭐, 새삼스럽게."
천사장은 내 대답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는 투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여튼 덩치는 크면서 간혹 이럴 때 보면 밴댕이 소갈딱지 같아 보였다.
"그래서 본사 사람들은 만났고?"
최부장이 내게 물었다. 그의 질문에 솔직히 답하면, 나를 미친놈으로 볼 것 같았다. 차마 한일 조선 회장을 만나기 위해 왔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못 만났습니다. 사실 본사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찾아오지 않은 것 같아서, 이왕 온 김에 얘기 좀 하려고 했죠."
"걔들 죽어도 안 와"
"그렇겠죠. 알아요. 뭐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닐 텐데요."
"그래. 네가 이해해. 이러려고 하청 주는 거 아니겠냐? 책임 회피하려고."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번 사고로 만약 동생에게 더 큰 일이 생겼으면 제가 조선소는 전부 폭파해버리려 했거든요. 폭파가 뭡니까? 조선업계를 아주 한국에서 퇴출해버리려고 했다니까요."
"폭파?..퇴출?"
사실 이런 황당무계한 말을 내뱉을 때가 속 시원했다.
폭파와 퇴출은 다른 의미로 따지면 현재 자행되는 불합리한 관행을 모조리 없애버리고자 하는 의미였다.
어차피 조선소는 내가 계약을 따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그간 조선업에 관행처럼 이어져 내려오던 하청 계약 자체를 없애버리고자 했다.
그렇다면 현직 근로자들은 전부 본공, 즉 한일 조선의 본사 소속 근로자서로 지위를 마땅히 누릴 수 있었다.
"조선소 하청이 꽤 심각한 수준이잖아요? 다단계 구조라 2,3차 하청 직원들은 거의 뭐 노예 수준에 가깝고요. 맘 같으면 하청을 다 없애버리고 싶어서요."
"크흠."
"그런데 그게 뭐 제 뜻대로 되겠어요?"
천사장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그들도 1차 하청이다. 천사장은 가시 돋은 내 말에 다소 기분이 나쁜 것 같아 보였다.
천사장과 최부장은 1차 하청 계약을 따내기 위해 담보 대출 약 20억을 받았고, 조선소 인근에 사무실도 매입했다고 한다.
적어도 1차 하청을 받기 위해선 이정도 능력 과시는 해줘야 한다고 했다.
"우린 안 그래.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말이야."
최부장이 말했다. 물론 최부장은 그러지 않겠지만, 이미 변해버린 천사장의 얼굴에는 돈독이 가득히 올라온 게 보였다.
투자한 만큼 회수한다. 그리고 마름꾼은 모름지기 폭력과 협박, 갈취를 행사할 줄 알아야겠지.
"최부장님, 어차피 회사도 돈 되는 일 찾아서 지방까지 오셨잖아요? 게다가 이번 일을 기회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
"워킹휴먼이 어떻게 일을 처리하든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다만, 제 동생에게 피해를 준 업체는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어떻게 할 거야?"
천사장이 담배 연기를 아주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그 담배 연기가 내 얼굴을 향하는 것 같아 썩 기분이 나빠졌다.
마치, 네가 조선소 1차 하청을 어떻게 손 봐 줄 것이냐는 뉘앙스였다.
"혼나야죠."
"..?"
"오늘 밤 9시, 장례식장에서 전부 모이기로 했거든요. 청일 대표도 온다고 했으니까요."
"청일에서 간다고? 그 양반이? 그 인간 절대 그럴 인간 아닐 텐데 말이다."
"온다고 했어요."
"누가?"
"제가 오라고 했거든요."
"네가? 네가 얘기해서 온다고?"
"네."
천사장은 아주 이해가 되질 않는 듯 계속 되물었다. 이러다가 대화가 끝나질 않을 것 같아. 확실히 매듭을 지었다.
"책임질 사람을 부르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