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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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구조의 조선소

늦은 새벽이라 장례식장의 접객실은 조용하기만 했다.

문상객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다.

"술은 안 돼."

"줘. 괜찮아."

동생은 기어이 술을 마시겠다며 나섰고, 어쩔 수 없이 한 잔을 따라줬다. 술을 먹지 않으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도현이가 술 한 잔을 마시며 깊은 탄식을 내쉬었다.

"괜찮냐?"

"좋은 형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버린 게 믿어지질 않네."

동생이 말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술을 마셨던 사이라고 했다.

"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거든. 나랑 3년 전에 기숙사에서 살다가 결혼하고 전셋집 얻었다면서 그렇게 좋아했는데. 휴, 혼자된 형수님은 이제 어떡하냐."

도현이가 소주를 털어내며 말했다. 성질도 착하고 모나지 않은 녀석이고, 상처받으면 그게 오래간다.

아마, 이번 사건은 꽤 오랜 기간 동생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았다.

"도현아."

"응?"

"우리 어렸을 때, 늦은 밤에 잠 안 오면 무슨 얘기 했었는지 기억나냐?"

"...알지."

"각자 원하는 소원 얘기하면서 잠들었잖아."

"맞아. 그런데 너무 옛날 일이라 기억은 잘 안 나네."

"우리 그거 한번 해보자. 도현이 네가 지금 당장 바라는 게 뭐야? 네가 바라는 게 있으면 얘기해. 뭐든 괜찮으니까."

한번 얘기한 소원은 서로 무조건 들어줘야만 했다. 그게 자장면을 먹고 싶든, 소풍을 가고 싶든, 그 소원은 거창하지 않았고 소소했다.

그래서 동생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딱히 소원은 없는데, 앞으로 이런 사고는 터지지 않았으면 해. 그것 말고는.."

"그럼 이제 내가 소원 빈다?"

"뭐야?"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은 하지 않기로."

내 말을 들은 동생은 감동한 듯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제 들어가자."

"응."

다음 날 아침

동생은 늦은 새벽 겨우 잠들었었다. 아침이 됐지만, 동생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나도 간신히 아침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준비했다.

앞으로 동생이 나을 동안 1인 병동에서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휴게소에서 사 온 생필품을 정리했다.

병원 인근의 목욕탕에서 샤워를 한 뒤 백반 집에서 홀로 밥을 먹었다.

속을 채우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했으니 새로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릿속에 계획을 정리했다.

동생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함이었다. 매우 간단하고 쉬운 일이기 때문에 딱히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첫째로 내가 찾은 곳은 동생이 소속된 회사였다. 그곳에서 어떻게 산재를 처리해줄지 궁금했던 참이었고 그들의 태도를 한번 살펴보고자 했다.

-맨파워

동생이 소속된 회사 이름이었는데, 역시,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똑똑

사무실 문을 계속 두드려보아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유리로 된 문이라 내부를 살필 수가 있었는데, 너저분한 사무실에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안전모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장갑과 안전화도 방치된 채 먼지 쌓여 있었다.

그때

"누구세요?"

계단을 올라오던 한 사내가 수상스러운 내 행동을 보며 인상 가득 찡그리며 물었다.

"팀장님 되시나요?"

"직원인데요."

"김도현이라고 여기 소속된 직원 아시죠?"

"네."

"제가 형이거든요. 치료비하고 휴업 수당 어떻게 해줄 건지 물어보려고요."

"팀장님 안 계시니까 나중에 오세요."

"직원이라면서요?"

"제가 결정할 권한 없으니까, 나중에 오시라니까요. 말귀를 못 알아들으세요?"

그가 침을 퉤 뱉으며 나를 밀친 뒤 사무실로 들어갔다.

-쾅

사무실 문을 거세게 닫고 들어가자, 순간 내 머리도 빡 돌아버렸다.

싸가지 없는 새끼.

나는 사무실 문 근처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를 들어 정문에 던져버렸다.

-와자창!

물론, 이건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사무실 유리가 깨져버렸고, 직원은 너무나도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당신 미쳤어?"

"팀장 불러."

"뭐?"

"부르라며 불러요. 사무실 다 부수어 버리기 전에."

"이 개새끼가!"

-퍽

직원이 내게 달려들자 단숨에 제압해버렸다. 무릎과 턱에 한방씩.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려 하지 않지만, 딱 봐도 양아치 같이 굴었던 탓에 그만한 대우를 해줬다.

이제 좀 얌전해진 사무실 직원이 팀장에게 전화했다.

팀장이 한걸음에 달려온 것은 이 직원이 팀장의 조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몇 대 처 맞은 조카가 울먹이며 삼촌에게 전화하니 뚜껑이 잔뜩 열린 채 그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의 한 손에는 야구방망이가 들려져 있었다.

"당신 뭐야?"

팀장은 야구방망이를 바닥에 질질 끌며 내게 말했다.

"도현이라고 알죠?"

"뭐? 그 새끼는 왜. 네가 그 새끼 보호자라도 되는 거야?"

검게 탄 얼굴과 짧은 스포츠머리.

그가 왜 야구방망이를 들고 왔는지 모르겠으나, 이내 차분한 내 말투에 야구방망이를 내려놓았다.

"제가 김도현의 형입니다. 그리고 걔 사고 났잖아요. 몰랐어요?"

"알고는 있는데, 그게 뭐 어쩌라고."

"치료비는 줘야 할 것 아니냐고."

"그 새끼가 근무시간에 거길 돌아 댕기니까 사고가 난 거잖아. 본인 구역도 아니면서 왜 싸돌아 댕겨가지고."

사실 치료비 따위는 필요 없다. 이 인간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한번 떠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느꼈다.

이 인간들을 좋게 대우해줄 필요가 없다는걸.

"그래서 회사는 책임이 없다?"

"동생 책임이지.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좀 다쳤다고 다 책임져? 다 큰 성인이잖아. 본인이 책임질 건 책임져야지."

"하!"

"그러니까 돌아가쇼. 나한테는 이런 거 안 통하니까."

"사실 나는 동생 치료비는 필요 없는데,:"

"뭐? 하, 이거 또라이네 진짜."

"하나만 물어보려고요."

"뭐요!"

"사망하신 분, 소속된 회사는 어디예요?"

팀장에게 관계자의 번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그들에게 얘기해야만 했다.

"오늘 밤 9시, 장례식장에서 뵙죠."

"무슨 개소리야? 내가 거길 왜 가"

물론 ‘설득’의 기술을 사용해야만 했다. 밤 9시,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는.

* * *

맨파워 팀장으로부터 전화번호를 얻은 뒤 내가 다시 찾은 곳은 이번 사망 사고의 책임자가 있는 1차 하청 회사 사무실이었다.

회사 이름은 ‘청일’

"무슨 일로 오셨죠?"

꽤 넓은 사무실의 대기실에 앉아 있을 때 한 여직원이 내게 찾아왔다.

"대표님 좀 뵙고 싶어서요."

"약속 잡으셨나요?"

"아뇨."

"돌아가세요. 못 봐요."

물론 절차가 있는 걸 안다. 그러나 내게 시간이 부족하다.

"지금 뵙고 싶은데."

맨파워는 2차 하청이었다. 1차 하청으로부터 재하청을 받는 회사라 사무실도 그리 크지 않았고 영세했는데,

조선소 1차 하청 ‘청일’은 말이 달라진다.

보증금도 수십억 있어야 하고 건물 한 채 정도는 있어야 원청의 입찰 기회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대표님 안 계신다니까요."

그녀가 짜증나는 투로 말했다. 사고가 발생한 뒤로 이렇게 무작정 찾아오는 기자들이 많다고 했다.

그녀를 설득한 뒤 나는 대표가 있는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뭐야! 미스 김! 아무도 들이지 말라니까!"

대표는 굉장히 당황한 듯 보였다. 중역 책상에 앉은 대표 앞에 의자를 끌고 앉았다.

나이는 60대 초반으로 보였고 사우나를 하고 온 듯 익숙한 향수 냄새가 풍겼다.

그에게 휴먼매니저 명함을 건네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휴먼매니저 대표 김도일이라고 합니다."

"..."

그가 내 명함을 받아들고 아무 말이 없었다. 기가 막힌 노릇인가?

"여기가 1차 하청이고 맨파워가 2차 하청이죠?"

조선소 다단계 하청의 일반적인 구조는 원청 조선소에서 1차 하청에게 일감을 주면, 1차 하청은 일감과 인력을 쪼개어 2차 3차 하청, 즉 물량팀이라 불리는 팀을 만든다.

"요즘 많이 힘들죠? 어제 사고가 발생한 뒤로 많이 피곤하실 텐데. 장례식장은 다녀오셨나요?"

"아직 못 갔습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찾아오신 겁니까?"

"궁금한 게 많아서요. 여러 가지 묻고 싶은 것도 있고."

1차에서 2차로 하청을 주는 이유는 단순하다.

공사기간을 단축할 요령이고, 공사 기간 단축과 동시에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함이었다.

공정별로 2차, 3차 하청을 만들어 까다롭고 힘든 작업을 구분 없이 일을 시킨다.

물론 급여는 괜찮다.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만들어진 팀이기 때문에 일당은 괜찮은 편,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2차, 3차 하청 소속은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맨파워 팀장하고 무슨 관계죠?"

"친척입니다."

‘청일’과 ‘맨파워’는 친인척 관계였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

"그러면 제 동생은 맨파워 소속입니까? 청일 소속입니까?"

"청일 소속이지만 맨파워 소속이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꼬아 놓나요?"

"이중으로 돈을 갈취하기 위함입니다."

2차 및 3차 하청은 근로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많이 없고, 퇴직금, 연차, 휴업수당, 산재 처리가 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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