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대에 올려놓은 수많은 생필품과 먹을 것들을 계산하니 총 20만 원이 나왔다. 맘 같으면 트럭째로 사고 싶었으나, 양손에 들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었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있을 때, 깨톡이 울렸다.
휴먼매니저 직원들의 단체 깨톡이었는데, 사진들이 몇 장 올라와 있었다.
직원들끼리 회식을 한 듯 고깃집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밑으로 오과장이 글을 달았다.
오 [대표님, 항상 감사드립니다. 애사심을 모르고 자란 저희들에게 회사를 사랑하게 만드는 법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 [오과장님 취했음;;]
정 [오버하지 마세요. 과장님^^ 대표님 사랑합니다.^^]
이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 [요 며칠 거제 갔다 올 것 같으니까. 다들 다음에 보자고.]
회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 * *
서울에서 밤 9시에 출발했는데, 새벽 한 시가 돼서 거제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멀어도 너무 멀다.
동생은 엄마 생일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서울에 오가곤 했는데,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진즉에 서울에 집 하나 해줄걸.
거제 시내에 위치한 병원에 도착하니, 정문에서 좀 떨어진 장례식장 입구에는 사진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마 한일조선의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린 듯했다.
담배를 뻑뻑 태우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빨간 띠를 둘러맨 몇몇 시위자들도 보였다. 그들을 지나쳐 병원 정문으로 향했다.
"김도현이요."
"가족분이세요?"
"네. 형이요."
"3층 303호 병실로 가시면 됩니다."
"장례식장은 왜 저렇게 사람이 많죠? 흡연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은데, 병원에서 민폐 아닌가요?"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기 때문에 에두르며 물어보았다.
"죄송합니다. 한일 조선 대표가 방문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다들 시끌벅적 한 것 같은데요."
이번 산재로 한일 조선의 회장이 장례식 장에 방문한다고 했다.
시위자들과 기자들은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는데, 지레짐작해보자면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본인 욕바가지 처먹을 장소에 제 발로 오는 인간이 있다?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갖은 꾀병을 부리며 본인도 입원하는 게 우리 회장님들 습관이다.
동생을 만나기 위해 303호로 향했다. 8인 병실이었는데, 그곳에 이번 조선소 사고로 피해를 당한 근로자들이 있었다.
"형."
"괜찮아?"
동생이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허벅지에 화상을 당했는지 전체가 발갛게 익어있었다.
화상당한 국소 부위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는데, 제수씨가 옆에서 냉찜질을 계속해주고 있었다.
제수씨와 인사를 한 뒤 동생 곁에 앉아 몰골을 확인했다.
"하아, 꼴이 이게 뭐냐."
나는 동생을 보며 하소연하듯 말했다. 불과 어제만 해도 서울에서 함께 할 생각에 기뻤는데, 이런 사달이 날줄 누가 알았겠나.
동생은 움직임 없이 멈춰있는 자세로 병실에 누워 나를 바라봤다.
입가가 침울하게만 보였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인마."
동생은 그저 내 얼굴을 보며 사과했다. 동생의 화상 부위가 걱정이었다. .
"이정도 부상이면 통원치료는 안 될 것 같은데, 병원에서 퇴원해도 된다고 했어?"
"머리에 파편이 조금 스쳐서 상처 난 거 조금 있고, 허벅지에 불이 붙어서 화상이 좀 심각하긴 한데, 내가 통원 치료하고 싶다고 했어."
"왜? 병원비 아까워서? 어차피 회사에서 병원비 전부 내줄 거야."
"그렇긴 한데.."
"더 입원해. 너 치료 끝날 때 까지.."
"..."
"그리고 여기는 8인실 밖에 없냐?"
"모르겠네.."
다소 시끄럽게 굴었던 탓에 다른 환자들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늦은 새벽이었다.
너무 민폐다. 나는 동생을 홀로 두고 제수씨와 함께 복도로 나왔다.
이제 두 살 된 조카는 제수씨 등에 업혀 잠에 들었다.
"고생 많았어요."
"아니요. 고마워요. 와줘서요."
"얼른 집에 들어가세요. 제가 동생 옆에 있을게요."
"네."
"제가 태워줄게요."
제수씨를 아파트 앞에 내려 준 뒤 나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고, 새벽 두 시가 넘었을 무렵,
아직도 한일조선 회장은 도착하지 않았는지 기자들은 여전히 장례식장 앞에서 진을 치며 앉아 있었다.
그때 누군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 입원했답니다! 다들 퇴근 하시죠!"
한일 조선 회장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기자들과 시위대들이 급히 자리를 비우며 철수했다.
* * *
"303호 김도현 환자, 1인실로 좀 옮길까 해서요."
원무과로 향했다. 동생이 1인실을 썼으면 싶었다.
"네? 이번에 산재 당하신 분 맞죠?"
"네. 왜요?"
"8인실 쓰셔야 해요. 산재는 다인실만 처리 가능하거든요."
"돈 낼게요. 1인실로 바꿔줘요."
산재 환자들이 모인 8인실에서 동생의 짐을 챙겼고 간호사들이 직접 동생의 의료용 침대를 끌어다 주었다.
위치는 5층.
동생은 한결 가벼운 표정이었는데, 차마 그 속내를 읽을 수가 없었다.
씩씩거리면서 호흡하는 게 몸이 성치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했고, 눈빛이나 경직된 표정은 아직 사고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동생은 애써 밝은 웃음을 지었다.
"서울 올라갈 준비하느라 엄청 설레고 기뻤는데, 하아, 내 인생은 어째 이렇게 꼬이기만 하냐."
"그런 말 하지 말고 새끼야. 꼬이긴 뭐가 꼬였다 그래. 나 같은 형 있으면 너는 인생 풀린 거야."
"말이라도 고마워"
"얼른 나을 생각이나 해. 네 식당 자리하고 집도 알아놨으니까."
"진짜?"
"네가 사고 난 날 식당 계약 끝냈고 아파트도 알아봤어. 그런데 새끼야 네가 온종일 전화를 안 받는데 내가 얼마나 불안 했는지 아냐? 이제 네 의지에 달린 거야. 그러니까 딴 것 신경 쓰지 말고 치료에만 전념해라."
동생을 기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동생은 연신 손톱을 물어 씹으며 안절부절 하는 것 같았다.
앞이마를 주무르며 뭔가 긴히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시선을 내리깔며 동생이 말했다.
"형."
"응?"
"내가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뭐야?"
"나, 저기.. 장례식장 좀 같이 가줄 수 있어?"
"갑자기?"
동생은 꼭 장례식장에 가야한다고 했다. 이번에 사망한 고인은 도현이의 아는 형님인데 3년 전 조선소로 처음 왔을 때 본인에게 일을 차근차근 알려줬던 용접 사수라고 했다.
"꼭 가야겠냐?"
"..."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어딜 간단 말인가, 말리고 싶었으나, 동생은 의지를 꺾지 않았다.
기어코 휠체어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 앞은 불과 몇 분전 소란은 찾을 수가 없었고 여느 평범한 장례식장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조선소 현장 직원들의 모습이 여러 보였다. 아마 고인의 동료인 것 같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장례식장을 들린 것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있는 현금을 탈탈 털어 부조한 뒤 상주와 묵례를 하고 분향했다.
고인의 영정사진을 봤는데, 40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다.
미망인이 돼버린 고인의 아내는 분향소 구석에 앉아 그저 고개를 떨궈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동생은 허리를 굽힐 수 없었기 때문에 묵례로 고인의 넋을 달랜 뒤 그래도 육개장은 먹고 가야 한다며 기어이 테이블에 앉았다.
사고를 당한 고인은 평소 밤 10시까지 잔업을 했다고 한다.
물론 급여도 꽤 받았다고 했다.
동생 말에 의하면 경력도 많은 용접 선배였기 때문에 잔업을 하게 되면 하루 일당이 35만 원 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그래서 너는 저분 밑에서 일하다가 그만둔 거고?"
"좋은 사람이야. 그나마. 내가 많이 믿고 의지했거든. 딱 형 같은 사람이야. 그러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까?"
"그래?"
동생은 연고도 없는 거제로 왔을 때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며 지냈던 사람이 이번에 사고로 돌아가신 고인이라고 했다.
"천천히 먹어라."
"형도 배고팠잖아. 좀 많이 먹어둬."
"장례식장에 배 채우러 오는 인간도 있냐? 적당히 먹어. 내일 맛있는 거 사줄게."
"어."
동생은 걸신들린 사람처럼 육개장을 먹어댔다. 꾸역꾸역 입에 넣길 반복하던 동생은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며 수저를 세게 쥐었다. 동생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아..씨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