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상하차하고 조선소 중에 뭐가 더 힘들죠?
언제부턴가 최부장을 잊고 살았던 터라 그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들은바가 없었다. 그런데 새까맣게 탄 얼굴과 삐쩍 말라 움푹 파인 볼을 미루어보아 꽤 고생하며 돌아다닌 것 같았다.
"잘 지냈냐? 이야 사무실 좋네."
최부장이 소파에 앉아 사무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가 네 이름으로 된 빌딩 아니냐?"
"맞아요."
"강남 한복판에 이만한 빌딩 한 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웃소싱을 한다? 너도 참 별 난 놈이네."
"..."
"나도 요즈음 좀 벌어보겠다고 코인 판이나 좀 알아보려 했더니 영 내 적성에 맞질 않더라고. 몇 초 사이에 상하한가를 치는데 생활이 안 돼 생활이. 매일 그것만 쳐다보고 산다니까."
"좀 따셨어요?"
"따긴, 물 타려다 된통 당하고 다 빼버렸지."
"그런 거 함부로 했다가 큰일 나요 부장님."
"요즘 시대 코인으로 젊은 갑부들이 많아졌다더니, 저기 워킹휴먼 빌딩도 이번에 30대가 매매 했다고 하더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비트코인이라도 좀 사두는 건데 말이야."
"..."
"세상 참 말세야. 로또 1등 당첨자가 천 명이 나왔잖아?"
나는 급히 말을 돌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어때요? 워킹휴먼은 잘 돌아가고 있어요?"
최부장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회사 상황이 어렵다고 들었었다. 그래서 최부장의 부탁으로 오과장이 휴먼매니저로 이직을 했다.
"회사는 살았지."
최부장이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말했다.
커피를 내려놓고 그가 말을 더 이어 나갔다.
"회사는 살았는데, 내가 죽게 생겼다. 이번에 지방으로 완전히 내려가야 할 것 같거든."
"지방이요? 지방에 물류센터 오픈 하세요?"
"아니. 물류센터는 송팀장이 전부 맡기로 했고, 이번에 천사장이 조선소 아웃소싱 뚫었거든."
“네? 조선소요? 천사장님이 그쪽에 인맥이 있었나요?"
"천사장 친척이 한일 조선하고 거래를 했나보더라고. 자세한 건 몰라."
"아..요즘 조선 업계도 인력이 많이 없다던데. 괜찮겠어요?"
최근 뉴스를 통해선 봤었다. 과거에 비해 수만 명의 인력이 이탈했다고 들었다.
"도일아."
"네."
"주식이나 코인은 하한가에 들어간다고 했지?"
"그렇죠?"
"인력도 하한가에 들어가야 되거든."
"네?"
"10년 만에 수주 물량이 최고라는데, 일할 인력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이겠냐."
"...?"
"기회가 왔다는 거야. 이번에 인력만 제대로 끌어모으면 큰돈은 쉽게 벌어들일 수 있다는 거지."
"아..제 동생도 조선소에서 근무하거든요. 동생이 그러더라고요. 조선소에 일 할 사람이 없어서 일감은 더럽게 많다고요."
"그래?"
동생이 조선소에서 일을 한다고 얘기하니 최부장은 호기심 짙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술이나 한잔할까?"
최부장과 함께 인근 호프집에 들렀다. 최부장은 이제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그래도 담배 끊으신 게 올 한해 들어 가장 잘한 일이 아닌가 싶네요."
"말도 말아라. 그거 끊겠다고 금연 껌을 얼마나 씹어 댔는지, 이가 아플 지경이라니까."
"흐흐."
"네 동생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데?"
"어느 회사에서 일하는 지는 저도 잘 모르고요. 예전에는 용접한다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또 요즘은 단기로 족장? 족장인가 뭔가 한다고 하더라고요."
"족장? 네 동생이 덩치가 좀 있냐?"
"네. 크죠. 우락부락 근육도 좀 있고."
"해체 팀에 있을 확률이 높네."
"네?"
"건설현장에서 건물 외부에 설치된 발판들 본 적 있지?"
"자주 보죠."
"그걸 설치하고 해체하는 일을 족장이라고 그래. 힘들겠네. 경력은?"
"꽤 했죠. 3년? 2년 채우면 정규직 달수 있다고 하더니 결국 관두더라고요. 그러더니 또 조선소 들어갔고요."
"원래 조선소가 그런 곳이야. 그래서 아웃소싱 업체들이 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곳이지."
최부장의 말이 아주 쉽게 이해됐다. 뜨내기 들이 많을수록 하청업체는 더 이득이다. 금전적인 이득,
역시, 물류센터나 조선소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물류센터처럼 물량 단가로 계약하는 게 아닌 사람 명수로 인도 급으로 하는 게 많다고 한다.
만약 10명이 투입되는 현장 1인당 용역비 20만 원을 원청에서 준다면, 숙련공 한 명에 조공, 즉 초보자들을 여러 붙여서 인건비를 절감한다고 했다. 그렇게 남긴 이득인 꽤 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웃긴 일이 발생하는 게 뭔 줄 아냐?"
"뭐죠?"
"원청에서는 20만 원의 일당을 주고 있으니까 현장에 일하는 근로자들을 숙련공으로 본다는 거야. 그런데 이게 일이 빨리빨리 되겠냐고. 실상은 숙련공보다 초보자들이 더 많은데."
"그렇겠네요. 원청은 왜 일이 안 되냐며 답답해할 거고. 하청업체는 남겨 먹어야 하고."
"그래서 또 기형적으로 생겨버린 팀이 물량 팀이라는 거야."
"물량 팀이요?"
"아주 웃긴 바닥이라니까. 원청하고 1차 하청업체하고 계약을 했음에도 일이 더디고 진행이 안 되잖아? 그러면 원청에서 공사 기간 맞춰야 하니까 아주 발에 불똥이 떨어져 버리거든. 그럴 때 물량 팀을 출동시키는 거지."
"아..TF팀 같은 거네요?"
"좋게 말하면 TF, 실상은 2차, 3차 다단계 하청 계약해서 밤낮없이 일만 존 나게 시키는 노예 팀이지. 내 살다 살다 이런 기형적인 도급 구조는 처음 본다니까. 경성택배도 울고 갈 수준이야."
대부분 이런 물량 팀에서 사고가 잦게 발생한다고 했다.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한 팀이니 일이 아주 급하게 흘러가며, 안전 수칙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한다.
"혹시 물류센터 상하차하고 조선소 중에 업무 강도를 따진다면 뭐가 더 힘들까요?"
단순한 호기심으로 최부장에게 물었다.
최부장은 조선소 일을 경험해본답시고 단기로 아주 짧게 일을 해보았다고 한다.
"음.."
최부장이 고민했다.
"상하차가 더 빡세. 내가 봤을 때는 그래."
"에이, 부장님이 해보셨어요?"
"내가 봤을 때 상하차가 더 힘든 것 같은데? 그런데 네 동생이 하는 족장은 모르겠다. 비슷할 수도 있고."
"음.."
"족장 팀도 인력 구하기가 엄청 까다롭다고 들었거든. 하루 일당 14만 원 줘도 인력이 붙질 않는다더라.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겠지."
"14만 원이면..?"
"중간에서 사대보험 명목으로 떼고 소개비 떼고, 이것저것 복지 명목으로 떼고. 요즘 평균 단가가 14만 원이야, 그런데 간혹 11만 원 주는 업체들 있는데, 그런 곳은 가면 안 되고. 동생은 얼마 받는 데냐?"
"잘 모르겠는데요."
"물어봐. 어디 가서 착취당하고 있을 줄 누가 아냐?"
"전화해 볼까요?"
"해봐."
최부장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동생에게 바로 전화했다.
"어이, 도현아."
-형. 웬일이야. 늦은 저녁에 갑자기.
"너 조선소 어디 다녀?"
-한일.
"한일 조선?"
-어. 갑자기 왜.
"너 거기서 얼마 받아?"
-11만 원.
"11만 원.. 아웃소싱 끼고 일하는 거지?"
-아니. 우리 팀장이 따로 있어. 아웃소싱 업체 아니야.
"그게 그거야 도현아."
-그래?
"관 둬라."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갑자기 전화해서 일을 관두라니.
"관두라면 관둬 새끼야."
-아니 뭔 대책이라도 생겨야 관두든가 하지.
"끊어."
-뚝
역시, 동생은 일당 11만 원을 받고 있을 하고 있었다.
최부장의 말에 의하면 최저저단가로 일을 하고 있는 경우다.
최부장은 동생과 내가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는지 한숨을 쉬었다.
"사대보험도 확인해보라 그래."
"네.."
"요즘은 또 법이 바뀌어서 회사에서 4대 보험을 가입해주지 않아도 유예해주거든"
"유예 해준다고요?"
최부장의 말에 의하면 지난해에만 조선업 관련 업체 고용·산재보험료 473억 원에 대한 체납을 유예했다고 한다. 아웃소싱 업체들의 인력난이 심각한 것에 대한 방책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유예조치로 노동자들이 4대 보험에 가입되지 못하고 피해만 보고 있다고 한다.
대체 누굴 위한 정책이지?
"하여튼 소수의 아웃소싱 업체들 때문에 우리같이 선한 회사들만 욕먹는다니까. 씹새끼들."
최부장과 그날 밤 많은 얘기를 나눴다. 조선업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최부장이 자세히 설명해줬다.
그런데 설명해줘도 잘 모르겠다.
건설업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어려운 단어들이 많았다.
포설이니 파워니 도장이니, 배 한 채가 건설되는데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팀들이 있었다.
어쨌든 그 가운데 동생 도현이가 맡은 일은 족장이라고 했다.
‘족장’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발판을 비계라고도 했다.
그걸 설치하고 해체하는 게 조선소 일 중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피로한 일이라고 한다.
이런 일을 몇 년씩이나 했다고?
도현이에게 미안해졌다.
어느덧 술자리는 새벽을 넘기고 있었고, 최부장은 이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회사에서 주무시게요?"
"대리비 아깝게 뭐 하러 집에 가냐. 회사에서 자면 되지."
"여전하시네요."
"도일아."
"네 부장님."
"우리가 또 언제 얼굴을 보겠냐. 다음번에 만나거든 더 좋은 모습으로 보자고."
"알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최부장이 내게 손짓하며 인사했고 미련 없는 발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택시비도 아까운지 걸어갈 참이었나 보다.
때마침 옆에 택시 한 대가 있었고, 나는 최부장을 불렀다.
"부장님!"
"어이!"
"택시비 결제 해놨으니까 타고 가시죠."
택시가 천천히 최부장 곁으로 향했고, 최부장은 고맙다는 투로 간단히 인사를 한 뒤 택시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