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 (118/200)

* * *

"나 결혼한다. 씨발."

"지영씨랑?"

"어."

명석이는 내 말을 듣고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그를 만난 것은 다음 날 늦은 오후, 홍대 인근의 카페였다.

명석이의 추진력으로 동창회 준비는 거의 막바지였다.

"동창회가 아니라 총각파티가 될 것 같은데?"

클럽은 이제 내 결혼식 총각파티 같은 수준으로 바뀌어버렸다. 동창회를 빙자한 결혼식 전초전?

"나름 괜찮네."

"전 여친 들도 부를까?"

명석이가 장난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 대 환장 파티를 열고 싶은가보다.

"아서라. 여자들 필요 없다. 이번 기회에 인맥이나 끌어야지"

"너 친구 없잖아. 나 빼고."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친구나 좀 모아보려고."

"흐흐."

명석이와 홍대 인근의 클럽으로 향했다. 홍대에서 가장 오래된 클럽이고 장사도 잘 안돼서 이제 폐업 수순을 밟고 있었는데, 역시 주말임에도 사람의 거의 없었고, 한 사람이 미친 듯이 무대에서 홀로 놀고 있었다.

동창회를 위해 클럽을 빌린다고 했었다. 사장은 석연치 않은 투로 말했으나. 아마 주말 장사를 쉽게 포기 못하는 것 같았다. 끽 해봐야 주말 매출 몇 백도 안 될 것 같아, 대충 하루 임대료 오백만 원을 불렀더니, 클럽 임대는 손쉽게 해낼 수 있었다.

VIP룸이라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마치 오래된 노래방에서 풍기는 칙칙한 맥주 쩐내가 났다.

주황색 가죽 소파는 마치 90년대를 온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었으나, 그때의 추억과 분위기를 테마삼아 하는 동창회기 때문에 썩 마음에 들었다.

나는 홍대에서 잘나간다는 파티 플래너를 모셨고, 앞으로 있을 클럽 동창회 메인테마에 관해 설명했다.

가격 불문, 2000년대 초반이나 중반처럼 그때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고 했으나, 이미 그런 분위기가 나고 있는데 무엇을 더 바꾸느냐며 반문했다.

파티 플래너는 정말 그때의 분위기를 내보고 싶다면 몇몇 옛날 가수나 복고풍 DJ들을 섭외하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해줬다. 몇 가지 이벤트와 분위기를 띄울 DJ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동창회 연령대가 40대도 올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게 좋을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회사 상무로 있는 선배도 온다고 했으니 말이다.

"대체 몇 명이 온다는 거야?"

"지금 내가 추려놓은 인원만 약 80명."

"80...명?"

"어, 동창들은 총 60명 정도 오고, 선배들은 7명, 나머지는 후배들.."

"와.."

"학교 인별그램에 올렸더니 재학생들도 몇몇 오고 싶어 한다고 하더라고. 인맥을 쌓고 싶어서 그런 것 같던데, 어쩌지?"

"몇 명인데?"

"생각보다 이게 꽤 일이 커져가지고.."

"몇 명인데 얘기해봐."

"30명?"

"와.."

"나름 중성대학교에서 유명해졌나 보더라고. 잘나간다는 선배들이 클럽을 빌려서 동창회를 하겠다는데, 재학생 후배들도 그 선배들을 한번 보고 싶은 거겠지."

"음.."

고민이었다. 굳이 재학생들 까지 끼어버리면 동창회가 아니라 놀자판이 돼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기회는 이제 오직 한번 뿐.

"부를까?"

명석이가 고민하는 내 얼굴을 보며 물었고, 나는 확답을 내렸다.

"불러."

"콜."

"그리고 내 옆집에도 우리 후배 있잖아."

"걔? 걔는 못 부르지. 연예인인데."

"왜 못 불러? 걔들이야 어차피 기획사에 행사비 주면 뛰는 애들 아냐?"

"생각해보니 그러네."

"일단 내가 개인적으로 물어볼게, 안되면 어쩔 수 없고."

그리하여 동창 및 선후배 80명과 재학생 30명의 어마어마한 동창회 파티가 성사됐다. 총 110명.

이정도 수준이면 중성대 동창회에서 가장 큰 규모 아닌가?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일곱 번째 메인 퀘스트 나를 위한 투자의 성공률이 상승했습니다!]

[현재 달성률 10%! 앞으로도 꾸준한 재생 부탁드립니다!]

로또 1등 천 명 당첨

명석이가 건네준 동창회 참석 인원 명단을 살펴본바, 역시 내가 잘 모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특히 후배들은 대부분 내가 모르는 동생들이고, 선배들도 몇몇을 제외하곤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궁금증.

대체 명석이는 이런 인원들을 어떻게 끌어모은 걸까?

그가 아무리 마당발이라며 인맥이 넓다고 했지만, 이 정도 포용력을 가진 놈인 줄은 몰랐다.

아마 SNS를 손에 떼지 않으며 거의 일상화 된 덕에 이런 인맥을 가꿀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동창회 인원 중 내 유일한 연예인 인맥 옆집 여자를 초대하기 위해 찾아갔다.

내가 연예인을 섭외하고 싶은 이유는 단순했다. 멋있잖아? 그리고 선배로서 한번 건의해 볼 수도 있는 거지 뭐.

-딩동

"누구세요?"

"옆집입니다."

한수애, 그녀는 대한민국 신인 여배우상을 받은 배우였다.

나는 그녀에게 중성대학교 동창회 초대장을 건네며 말했다.

"중성대학교 총동창회 하거든요. 와서 자리를 빛내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제가 거길요?"

그녀는 퉁명스러운 투로 대답했다. 행사라고 생각한 모양인가? 행사비?

"기획사에 물어봐야 돼요.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가고 싶어도 못가요."

"동창회라고 해서 행사를 뛰어 달라는 뜻이 아닌데요. 뭐 어쩔 수 없죠. 이번에 제가 주최하는 동창회인데, 이웃이라 한번 물어본 거로 생각해주세요. 이만 가볼게요."

"저기, 잠깐만요!"

"네?"

"혹시 김도일 선배님 맞죠?"

그녀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는데, 명석이가 중성대학교에 문의하여 총동창회 홍보를 열심히 해둔 탓이었다.

중성대학교와 연관된 SNS에 주최자 김도일, 이명석의 이름으로 홍보 중이었다.

"여태 궁금했는데, 대체 뭐 하시는 분이세요? 클럽에서 동창회를 여는 것도 궁금했고, 경품? 같은 것도 엄청나고."

"궁금하면 와요. 참고로 댄스대회에서 3등만 해도 500만 원 상품권 드리니까요."

어느 정도 넘어온 것 같았다.

* * *

동창회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새롭게 이사한 휴먼매니저 사무실에서 시간을 축내다가,

동생 도현이에게 정말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형"

동생 도현이의 떨리는 목소리, 거친 숨소리, 그리고 갑자기 걸려 온 전화, 불안감이 감도는 목소리에 뭔 일이 터졌을 것 같았다.

"왜?"

"형 놀래지마. 청심환 하나 먹고 와야 될 것 같은데?"

"그냥 말해 뭔데?"

"로또 1등 당첨됐어."

"잠깐 끊어봐."

1,016회차의 1등 당첨 인원을 1,000명으로 설정했는데, 하필 이번 회차의 로또 당첨자가 도현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도현이와 통화를 끊고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살폈다.

[벼락 두 번 맞을 확률로 1,821만원의 당첨금을 수령한 1등 당첨자들.]

[1등 당첨자가 1,000명? 뭔가 있다.]

[거짓과 선동이 난무하는 이번 1016회차의 로또, 과연 진실은?]

[로또 시스템 오류? 조작 정황 포착]

[1,3,9,15,21,44 1등 당첨 인원 천 명이 나온 번호는 평범했다.]

그리고 나는 기사들의 댓글을 살폈는데, 네티즌들의 성화같은 반응들이 많았다.

ㄴ이번 회차는 조작이 확실해졌다는 이유.

ㄴ조작 확실함, 매번 시스템 오류 난 듯 ㅋㅋㅋㅋㅋ

ㄴ이번에 조작 확실히 밝혀서 국회까지 끌고 가야 함 미친놈들

ㄴ조작이라는데 내 손모가지 건다. 이거 밝혀라. 미친놈들아

ㄴ천명이 말이됨?말이됨?말이됨?말이됨?말이됨?

ㄴㅋㅋㅋㅋㅋ1등 당첨금이 1,821만원, 아 조졌다 인생.

ㄴ이정도 수준이면 판매금액 높여야 할 것 같은데..

ㄴ일단 두고 봐야 함. 시스템 오류인 것 같은데 이거 로또회사에서 보상해줘야 하는 거 아님?

ㄴ시스템 오류라는 거 자체가 조작이라는 증거임.

ㄴㅇㅇㅇ 동의 보상 해줘야 함 ㅅㅂ번개를 두 번 맞을 확률인데 이천만 원도 안 되는 건 로또 폐쇄 해야지.

댓글은 총 삼만 팔천 개가 달렸는데, 역대 인터넷뉴스 최다 댓글이라며 신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그만큼 이번 1,016회차의 로또 1등 천 명 당첨 사건은 해외 토픽을 넘어서 범지구적인 이슈였다.

아주, 난리, 난리, 생난리다.

그리고 나는 도현이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필 이번 회차에 네가 1등이 됐다고? 그런데 당첨금이 천팔백만 원이고?"

-미쳤지? 내가 아내하고 같이 로또 방송 보다가 당첨된 거 확인하고 미친 듯이 뛰었거든? 그런데 다음날 보니까 시발, 천 명이더라고. 이게 말이 돼?

"존나 억울하겠네."

-억울한 걸 떠나서 내 인생에 아주 회의감마저 든다니까. 이건 뭐 놀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인터넷 댓글도 난리인 것 같던데?"

-지금 나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데, 당첨 후기들 보니까 어떤 사람은 저녁에 당첨 확인 된 거 확인하고 전 재산 코인에 몰빵했다던데? 그런데 다음날 당첨금 이천만 원 확인하고 거품 물었다잖아. 크크크.

"정말?"

도현이의 얘기를 들으니 꽤 심각한 수준으로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하아, 내가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닌가 싶다.

도현이의 성화가 계속 이어졌다.

-지금 후기글 계속 올라오는데, 어떤 사람은 1등 당첨된 거 확인하고 깨톡으로 회사 부장한테 쌍욕 털고 때려치웠다는데 크크크크. 이건 존나 웃긴 케이스지.

"아..너는? 너도 뭐 헛짓거리 한 거 아니지?"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하, 씨발 베트남 음식점이나 개업할까 했는데...

"지금은 뭐 하고 살고?"

-재취업했는데, 또 매번 지랄 맞는 팀장 밑에서 겨우 버티고 있지. 어째 내 인생은 왜 이러냐.

"그래도 1등이 된 게 어디냐. 그 돈으로 뭐할 거야?"

-뭐하긴 뭐해. 1년 치 연봉보다 적은 금액인데, 그냥 묶어 뒀다가 비상금으로 써야지. 뭐, 엄마한테 용돈 좀 보내주고. 형은 잘사니까 내가 챙겨주지 않아도 되지?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조만간 서울 올라갈 것 같아. 그때 한번 보자고. 내가 형한테 하고 싶은 말도 있고.

"뭔데? 무슨 얘기?"

-만나서 얘기하자고. 그리고 형, 이번에 로또 1등 된 건 엄마한테 얘기하지 마. 괜히 기대하실 텐데 이천만 원도 안 되는 돈이면 이건 인생 역전이 아니라 후퇴 수준이니까. 아오! 시발 이럴 거면 1등이 되지 말던가, 생각할수록 화가 나네.

"알았어."

-형은 지금 일하지? 내가 이따가 전화 줄게.

"그래, 수고"

스마트폰을 사무 책상 위에 내려놓고 머리를 쓸어 올렸다. 하아.

한숨을 푹 내쉬자 정주임이 걱정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무슨 일 있으세요?"

"동생이 로또 1등에 당첨됐다는데, 뭔 이번 회차 당첨자가 천 명이라잖아."

"그거 조작이잖아요."

"뭐?"

"지금 국민 청원 글 올라왔는데 벌써 서명만 백만 명이 넘었거든요. 이번 회차 로또 1등 당첨자들에게 인당 10억은 줘야 한다고요."

"그렇게 안 될걸."

"왜요?"

"로또회사에서 인당 10억을 준다고 하면 본인들 과오를 인정한 꼴이잖아?"

"아..그래도 너무 억울할 것 같은데, 저라면 잠 못 자고 매일 이불킥 하면서 살 것 같아요."

"..."

휴먼매니저의 주의 사항이 이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사회 혼란이 야기됩니다.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쨌든 궁극적인 목적은 게임당 판매 금액을 높이는 게 주목적이었지만, 나의 이번 호기심은 아주 큰 파국을 불러일으켰다.

당첨 확인 하자마자 코인에 몰빵한 인간,

회사 부장에게 쌍욕하고 퇴사한 인간들도 있었는데, 순전히 나의 호기심으로 발생한 사달이었다.

씨바

일이 이렇게 커질 줄 알았나?

인터넷으로 실시간 뉴스를 틀었는데 이번 로또 사태를 시스템 오류로 인정하지 않으며 단순히 로또 당첨자가 많은 것뿐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 밑에 댓글들은 이미 쿠데타 수준의 반응들이었다.

ㄴ씨발 그게 말이 됨? 평생 많으면 20명 나오던 당첨자들이 한 번에 천명? 구라도 적당히 ㅅㅂ

ㄴㅇㅈ 와 국민청원 가시죠. 이번 기회에 로또 다 엎어버려야함

ㄴ그런데 진짜 천 명이 나올 확률은 어떻게 됨?

ㄴ확률이 없음, 그냥 제로임. 불가능한 일이 발생한 거임.

ㄴㄷㄷㄷ

ㄴ지금 CNN에서는 이번 사건을 로또게이트라고 이름 지었네요. ㅋㅋㅋ 쪽팔리게

ㄴ다음 회차에 만약 10명 나오면 이 새끼들 시스템오류 고쳐서 주작한 거 확실한 거임.

그리고 이번 1,016회차에 당첨자가 가장 많이 나온 곳이 서울의 ‘돼지 복권방’이라고 했는데, 무려 23명의 당첨자가 한 번에 나왔다고 한다.

아마 서울에서 구매율이 가장 높은 곳이니만큼 당첨자도 가장 많이 나온 것 같았다.

서울에서만 224명이 나왔고, 경기에서 290명, 나머지는 지방에서 골고루 당첨자들이 나왔다.

심지어 국회 의원 중 한명도 이번에 로또 1등에 당첨이 됐는데, 이번 일을 로또 게이트라고 명명하며 진상조사에 들어가야 한다며 SNS에 올렸다.

그것보다 국회의원도 로또를 하는구나 싶었다. 신기하네.

「로또 LV8 SKILL 당첨 인원 선택」

[현재 스킬을 발현하시겠습니까?]

「YES」

[1,017차 1등 당첨 인원을 선택하십시오.]

[...]

이건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가 없는 문제였다. 좀 더 심사숙고해서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만약에 내가 10명을 쓴다고 한다면 전주와 격차가 너무 많이 나서 또 불만이 쏟아질 게 분명하고, 그렇다고 수백 명을 쓰자니 이건 또 말도 안 되는 확률이다. 아니 제로에 가까운 확률.

일단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좀 더 생각해보자.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