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 (115/200)

"여기는 콜센터가 들어갈 거야."

"네? 그러면 저희는 어느 사무실을?"

"1층에 작은 사무실이 하나 있더라고."

"아.."

"현재 공실이 여기 말고 없는데, 우리가 여길 쓰기에는 너무 넓잖아?"

"그렇죠."

"아쉬워하는 것 같은데?"

"아뇨. 여긴 너무 넓어요. 차라리 저희가 좁은 곳을 쓰는 게 맞죠."

"빌딩 이름도 바꿀 거야. 뭐가 좋을까?"

다들 고민하고 있을 때 정주임이 말문을 열었다.

"뭐 어렵게 지을 필요가 없다고 보는데요."

"...?"

"대표님 이름 따는 게 제일 간편하죠? 도일빌딩. 너무 사람 이름 같지도 않아서 어울리는데요?"

"다들 괜찮아?"

"네."

‘도일빌딩’

옛날에 ‘길은 하나다’라는 뜻으로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었다.

여러 갈래 길 중 어느 길을 걷든, 그 길만 꾸준히 걷길 바라셨다.

"도일빌딩 괜찮네."

"김한성 대표는 화승 계약 건을 전부 우리 회사로 넘기고 싶어 하는데.. 대표님 대체 어떻게 구워삶으신 거예요?"

"본인 죄가 깊으니까. 이제 그걸 털어내고 싶은가봐."

"아.."

"계약은 어떻게 돼?"

"일성은행의 콜센터 지분율이 거의 40%를 육박해서요. 화승이 계약한 콜센터 상담사 직원만 100명이더라고요."

"100명? 그렇게 많았어?"

"중요한 건 김한성 대표가 1인당 40만 원씩 착복해서 벌어들인 금액이 한 달에 사천만 원이라는 거예요. 거기서 화승 아웃소싱 직원들 월급 준다고 쳐도 엄청나게 많이 남긴 사업이었죠. 대표님이 큰 계약 하나 따신 거죠. 흐흐."

"큰 계약은 맞지. 그런데 우리가 콜센터로 큰돈을 벌어들인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

"어쨌든 상담사들이 마땅히 받아야 될 금액이잖아?"

"네. 맞습니다."

"오과장은?"

"네?

아무 말 없이 맥주만 할짝거리던 오과장이 내 말을 듣고 놀란 듯 맥주를 급히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영업해 보겠다더니, 성과는 있어?"

"아직까지는 성과가 크게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죄송하긴, 앞으로 할 일도 많은데. 그리고 조만간 직원 한 명 더 들어올 거야."

"아.."

일순간 휴먼매니저 직원들 사이에서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똘똘 뭉쳐있는 그들에게 누군가 끼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

"콜센터 상담 경력도 꽤 많으신 분이라 많은 도움 될 거야. 잘들 지내야 돼. 너희들끼리 똘똘 뭉치는 것도 좋은데, 만약 텃세라도 생겨봐. 다 아웃이야."

"텃세라뇨 대표님. 능력 좋으신 분이 들어오신다면 제 속이 뻥 뚫릴 것 같은데요."

정주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맙고. 그리고 아까 현준이 말마따나 콜센터만큼 돈 되는 아웃소싱도 없더라. 한 평도 안 되는 닭장 같은 공간에 사람을 앉혀 놓고 효율성을 엄청나게 뽑아 먹잖아?"

"그렇죠."

"그런데 우린 그렇게 하지 말자고. 콜센터 상담사들처럼 감정 노동이 심한 일도 없거든.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어?"

"복지라도 좋아야죠."

"빙고. 1인당 사무실 규격 최대한 넓히고 언제든지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 만들어주고, 스트레스 풀 수 있도록 복지 방안 좀 마련해 두자고."

"네."

"어려운 점 있으면 이지혜씨한테 물어보고. 아마 5년간 상담사 일을 했으니까 상담사들의 고충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과장이 일성은행 측하고 최대한 협의해서 진상 고객들 특히 블랙리스트 고객들 대처 방안에 대한 매뉴얼 좀 구체적으로 만들어 봐. 이건 제수씨한테 도움을 받아도 좋고."

"네."

"그리고 정주임."

"요즘 GN아파트는 어때?"

"아! 조만간 정길완 경비 반장님이 책 출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책?"

"네. GN아파트에서 겪었던 일들을 수필로 책을 내셨다고 하더라고요. 출판회 때 대표님 찾아뵙고 인사드린다고 하셨습니다."

과거 정길완 반장은 GN아파트에서 갑질을 당했던 경험을 수기로 작성하여 기록에 남겼었다. 그리고 내가 GN아파트의 경비 계약을 따낸 뒤로 정길완 반장은 매번 부정적인 이야기만 써놓았던 수필을, 이제 긍정의 이야기로 바꿔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마지막 장을 기어이 완성을 한 것 같았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이제 정길완 반장님도 곧 퇴직하실 것 같아요. 연세도 꽤 많으시고, 저번에 사무실에 한 번 찾아오셨는데, 체력도 예전보다 많이 떨어지셨다고 하더라고요."

"조만간 한번 들려야겠네."

"네."

"그리고 너희들한테 하나만 묻자."

나는 다리를 꼬고 앉아 그들을 바라봤다. 언젠가 궁금했던 점이었다.

"너희들이 학폭을 당했어, 그런데 그 학폭 가해자가 정말 잘나가는 연예인이나 기업가라면 어떻게 할 거야?"

"끌어내려야죠,"

현준이가 단호히 말했다.

"오과장은?"

"학폭을 얼마나 어떻게 당했냐. 그 정도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정주임은?"

"학폭 피해자가 트라우마로 심각한가요?"

"가족들도 힘들어하지."

"인생 조져야죠."

‘김한성’을 어떻게든 처리해야만 했다. 현재 내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이라 내 전용기사로 써도 상관은 없으나, 이건 순전히 내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맞은 만큼 돌려주는 놈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게 복수라고 했고, 정의라고 했다.

그래서 그 복수는 피해자 가족들이 해야만 했다.

김한성을 만난 것은 그가 우리에게 모든 계약을 넘긴 뒤였다.

그를 ‘도일빌딩’의 로비에서 만났다.

초췌한 눈빛과 어스름하게 파인 볼, 요 며칠 안 본 사이 그의 행색은 걸인처럼 보였다.

그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으니 주위 가족들의 마찰과 갈등을 어떻게든 이겨내야 했겠지.

"그래서 앞으로 계획은 뭡니까?"

"따라오시죠."

* * *

김한성을 데려간 곳은 학교폭력 피해자 가족들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를 그곳에 던져주기만 하면 될 일, 그들이 무슨 선택과 결정을 하던 나는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그들이 정의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김한성은 내 옆에서 잔뜩 긴장한 낯빛으로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나는지 수시로 바지에 손을 문지르며 땀을 닦아냈고,

목이 바짝 마르는 듯 헛기침을 수시로 해댔다.

이제 곧 김해랑의 집에 도착한다.

"축사에 끌려가는 소하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

"이미 죽을 걸 안다는 거예요."

"아.."

"그래도 소들은 밥 먹고 똥 싸고 놀 거 다 놀고, 그러고 삽디다. 뭘 그렇게 우울하게 앉아 있어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네.."

"그런데 김해랑 가족분들 중에 삼촌이 계시거든요. 성질도 엄청 더럽고 진짜 무슨 깡패마냥 생겨서..진짜 당신 죽을 수도 있어요."

"..."

"당신이 지은 죄를 김해랑 가족분들 앞에서 얘기할 때 그들이 무슨 결정을 하든 저는 개입하지 않을 작정이거든요."

"네."

"그게 정의잖아요? 맞은 만큼 돌려주는 거."

"맞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뭡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직접 그들에게 물어보고 그들이 말하는 데로 사세요."

"네."

좁은 비탈길 언덕을 오르니 김해랑의 집 앞에 도착했다.

김한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 집을 바라봤다.

-쾅

-쾅

"삼촌!"

내 말을 듣던 삼촌이 이내 문을 열고 나섰고, 나와 김한성을 번갈아보던 그가, 이내 말문을 열었다.

"뉘여?"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죠? 또 만날 일 있을 거라고. 제 옆에 있는 친구가 김한성입니다. 김해랑 학교폭력 가해자, 김한성이요."

"...!"

-퍽.

삼촌의 거센 주먹질에 김한성이 그만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씨벌놈."

* * *

-후우.

달이 붉게 물들었다. 언덕으로 내려 보이는 달동네의 전경과 붉게 물든 달이 썩 예쁘게만 보였다.

고대 서양에서는 이것을 블러드문이라고 했는데, 불길함과 저주의 상징이라고 했다.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었다. 김해랑의 집 내부에서 들려오는 김한성의 절규에 섞인 목소리로 짐작하는바, 누군가 사달이 나도 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삼촌이 그를 쥐어패며 아작을 내지는 않는 것 같았다. 간혹 들려오는 김해랑 어머님의 목소리와, 삼촌과 어머님의 말다툼으로 짐작하건대, 어머님이 삼촌의 폭력을 말리는 것 같았다.

이제 김한성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나는 김한성에게 그들이 바라는 뜻대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했었다.

집안의 노예로 살든, 매일 봉사를 하며 살든, 폐인의 인생을 살든, 모든 권한은 김해랑 가족에게 있었다.

-퉤.

그때 삼촌이 침을 퉤 뱉으며 집 밖으로 나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씽긋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고맙소."

"김한성이는 뭐랍니까?"

"죽을죄를 지었다면서 울고불고 별 개지랄을 떨어대는데, 영 시원찮지."

"어떻게 할 작정이죠?"

"우리가 말하는 데로 살겠다는 양반인데, 맘 같으면 사지를 분해 시켜 버리고 싶지만, 우리 누나가 영 맘이 약하니 그것은 안 될 것 같고.."

"아.."

"내 밑에서 일이나 시킬 작정인데."

"일이요?"

삼촌은 막노동을 한다고 했다. 막노동 중에서도 힘이 센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 무거운 짐을 이고 나르는 직종이라고 했다.

김한성은 노동 교화형을 당한다고 보면 될까?

* * *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여섯 번째 메인 퀘스트 「투자」를 완료하셨습니다!]

[완료보상 1000UNI를 지급합니다.]

사람에 대한 투자 퀘스트를 완료하게 됐다.

현재 휴먼매니저 V1.0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총 1만UNI를 획득해야만 했는데, 현재 총 8,000UNI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두 개의 퀘스트를 완료하면 휴먼매니저를 업그레이드하여 상위 버전의 스킬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일단 8,000UNI로 로또 스킬을 레벨업 했다.

「로또 LV7」

「로또 LV8 상승」

「새로운 로또 스킬이 생성됩니다.」

「로또 LV8 SKILL 당첨 인원 선택」

‘당첨 인원 선택?’

[김도일님이 선택 가능한 명수를 기재하시면 그 주 1등 당첨 인원이 결정됩니다.]

‘만약에 내가 100명으로 쓰면 100명이 전부 당첨이 된다는 거야?’

[맞습니다.]

‘1,000명을 써도?’

[네. 로또 시스템의 전산을 해킹하여 1,000명이 구매한 로또 번호를 파악한 뒤 해당 차수의 당첨 인원을 결정합니다.]

‘시스템을 파괴할 수도 있는 거네? 내가 엄청나게 많은 인원을 쓴다면?’

[사회 혼란이 야기됩니다.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흐흐.’

나름 재밌는 스킬이었다. 로또 1등 당첨인원을 선택한다면 내가 0명을 쓰면 언제든 강제 이월을 시켜버릴 수 있었다. 무한 이월?

무엇보다, 1등 당첨 인원이 천 명이 됐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썩 궁금하기도 했고, 당첨금액도 궁금했다.

만약에 로또 구매자들의 소비 심리를 이용한다면..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당첨금액을 늘릴 수가 있었다. 흐흐.

휴먼매니저는 사회 혼란을 야기한다고 했지만, 뭐 얼마나 큰 일이 발생하겠어?

그게 저를 위한 투자고요.

1015회차의 1등 당첨 인원은 총 8명, 총 240억의 금액을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이제 곧 있을 1016회차의 1등 당첨 인원을 선택해야만 했다.

스킬을 쓰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한번 실험삼아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로또 LV8 SKILL 당첨 인원 선택」

[현재 스킬을 발현하시겠습니까?]

「YES」

[1등 당첨 인원을 선택하십시오.]

[1,000명]

일단 1,000명으로 입력했다. 평균적으로 250억 원 정도의 판매 금액을 1등 당첨 인원이 나누어 먹는다고 가정했을 때 1,000명의 1등 당첨 인원이 생긴다면, 약 2,500만 원을 가져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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