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같은 인간은 어차피 변하질 않아."
"..."
"네가 속한 구조 속에서 학생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폭력을 쓰고 있잖아."
"..."
"그래서, 너를 사회에서 제명해야겠는데."
"네?"
"그전에 정산 먼저 하자고."
그가 온순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지금부터 그는 내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이다.
"첫째로 그간 당신이 중간 착취해간 금액들 전부 돌려주는 게 우선일 것 같은데."
"..."
"둘째로 네가 가진 재산을 비롯해서 아버지 재산까지 전부 사회에 환원했으면 하고. 무기명으로."
"..."
"마지막으로 일 마무리 되면 나한테 연락하라고, 특별히 갈 곳이 있으니까."
그가 얌전해진 틈을 타,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갔다. 사무실에 몰려 있는 군중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며 일이 어떻게 풀렸는지 궁금해 했다.
일성은행의 CS팀 본부장은 잔뜩 화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김한성 대표 당장 나오라고 하세요!"
"지금 할 일이 더 있는데, 번호표 뽑고 더 기다려야 될 것 같은데요?"
"뭐? 당신 뭐 하는 새끼야? 너희들 때문에 지금 고객들만 10명이 빠져나갔다고, 예금만 수억이 빠져나간 건데, 이거 우리 손해배상 청구할 거야. 알아서들 해!"
"일성은행 ‘김재석’? 본부장님?"
"...?"
"나도 일성은행에 예금 들어간 게 100억이 넘으니까, 함부로 소리치지 마시고."
"네?"
"얌전히 번호표 뽑고 기다리라니까. 못 믿겠으면 여기서 가까운 일성은행 지점장에게 전화해 보든가, 나랑 친한 사이니까."
"..."
그를 물리고 난 뒤 나는 부팀장과 팀장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들을 보며 말했다.
"그간 착취한 금액, 일일이 확인해서 지급해주기로 했으니까, 회의실에 들어가셔서 대표하고 얘기들 나눠보세요."
"..정말입니까?"
"들어가서 확인해보시든가요. 그리고 이지혜 부팀장님?"
"네?"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 * *
이지혜 부팀장을 인근 병원으로 데려갔다. 김한성에게 따귀를 맞은 탓에 붉게 달아오른 뺨에 생채기가 났다.
바로 치료를 해줘야만 했다.
그녀는 강단이 있었다. 권위 앞에서 당당히 나섰고 남들을 대표해 목소리를 냈다.
이 정도면 재목이지.
물론 팀장도 마찬가지 그도 불합리함에 맞서 싸우기 위해 직접 나섰다. 그런데 나는 이지혜 부팀장에게 더 마음이 끌렸다.
그녀를 휴먼매니저에 입사시킬 생각이었다. 콜센터 유경험자가 기존 직원들 중에 없었기 때문에 이지혜 부팀장 정도면 충분히 맡길 수가 있었다.
치료를 끝낸 뒤 그녀와 인근 카페에 들렀다.
그래도 간단히 면접은 봐야지?
"부팀장님 월급이 19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였죠?"
"네. 그런데, 대표가 착취해간 금액을 합하면 240만 원이 제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겠죠."
"240만 원으로 생활이 되나요?"
"네?"
"결혼도 하셨고, 아이도 둘씩이나 있으면 그 정도는 모자라죠."
"한참 모자라긴 하죠."
그녀가 쓴웃음으로 커피를 마셨다.
"그래서 제가 제안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
나는 지갑에서 휴먼매니저 명함을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녀가 명함을 받아 한참을 들여다봤다.
‘휴먼매니저 대표 김도일’
"아웃소싱 기업인가요?"
"네."
"대표님 죄송하지만 앞으로 아웃소싱 소속으로 일은 더 이상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긴 그녀의 마음도 이해 못하는바 아니다. 그간 5년간 착취당했던 것뿐만 아니라, 착취당한 돈으로 성과급을 위해 경쟁을 했으니까. 그건 그녀에게 꽤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저희는 다릅니다. 아시잖습니까. 제가 이곳에서 잠입하여 직원이 된 것도, 부당하게 착복을 당하는 직원들을 구제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대표님. 그간 저도 콜센터뿐만 아니라 다른 아웃소싱 소속으로 일을 숱하게 겪어 보면서도, 달라지는 게 전혀 없다는 거예요. 대표님의 뜻은 잘 알겠지만, 이제 저는 다시 일어설 힘도 사라졌어요. 아무튼..앞으로 제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지혜 부팀장이 거즈를 붙인 뺨을 어루만지며 구슬프게 말했다.
폭력, 게다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당한 폭력은 앞으로 그녀에게 오랜 시간 트라우마로 남겠지. 그래서 그녀를 더 일으켜 줘야만 했다.
"부팀장님."
"네.."
"왜 다시 못 일어선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사고로 산재병원에서 2년간 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막막했죠. 제 인생이 끝난 것 같았고, 미래도 없고 암울하기만 했으니까요."
"아.."
"혼자 일어서는 거 힘든 거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누군가 옆에서 도와줬거든요. 그때 저를 도와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 저도 이 자리에 앉아있지 못할 겁니다."
"..."
"이지혜 부팀장님이 일어설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녀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속에서 차오르는 울분을 기어이 참아내며 내 얼굴을 바라봤다.
"제 손 잡아주시죠."
"..."
"하는 거죠?"
"네.."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이제 본격적으로 회사에 대해 설명해줄 시간.
"우리 회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계약직, 비정규직 그런 거 없습니다. 들어오시면 정직원으로 대우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직원도 현재 4명이고, 다들 가족 같은 분위기라 좋거든요."
"와.."
"급여도 부팀장님 경력을 인정해드리고 섭섭하지 않게 맞춰드리겠습니다. 현재..저희 직원 막내가 300만 원 정도 받거든요."
"네?"
부팀장은 이내 300만 원이란 소리를 듣고 토끼 눈을 뜨며 나를 바라봤다. 게다가 그 막내가 누군지 알면 더 놀라겠지.
"기억나실까 모르겠는데, 여기서 키보드 부수고, 본체 부수면서 깽판치고 나간 친구 있지 않습니까?"
"네. 알죠."
"그 친구가 우리 회사 막내입니다."
"와..그러면 그 친구도 일부러 직원으로 위장한 거였네요? "
"그럼요. 전부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그녀가 손에 땀이 나는 듯 바지에 문질러대며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현재 화승에서 계약한 콜센터를 전부 넘겨받기로 했습니다. 사무실은 강남 빌딩으로 200평정도 마련해 놓긴 했는데, 제가 이상적인 사무실 환경을 잘 모르거든요. 부팀장님께서 그간 5년이란 경력이 있으시니, 한번 맡겨보고 싶습니다."
"제가..그럴 능력이 될까요."
"충분합니다. 우리 휴먼매니저 회사 사훈이 뭔지 아십니까?"
"...?"
"들이대는 거요. 그래야만 본사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거든요. 부팀장님께서 일전 보여주신 그 행동이면 됩니다. 어떻게 하실래요?"
"하겠습니다."
"경력 5년 차니까.. 그래도 급여는 꽤 받으셔야 할 테고, 얼마 받고 싶으세요?"
나는 이 질문을 할 때마다 항상 설렌다. 그들이 고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러줄 의향이 있으니까. 그 기쁨을 같이 느끼는 게 기분이 좋다.
"그래도 막내가 300만 원이라고 했으니까..저도 막내로.."
"5년이면 우리 회사에서 경력으로 따지면 최고참이거든요."
"아.."
"깔끔하게 연봉 팔천만 원으로 계약하시죠."
"...!"
"그 정도면 괜찮을까요?"
그녀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간 서러운 감정들이 일순간 복받친 것 같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
새로운 로또 스킬이 생성됩니다.
한일조선해양.
회계장부를 조작한 분식 회계를 저지른 회사였고 그 피해액은 수천억 원에 달했으나, 국가의 지원으로 간신히 회생한 회사였다.
정확히 한일조선해양이 소유한 820억 원의 한일빌딩을 매수했고, 임대수익률은 4.3%로 적당히 양호한 편이었다.
인터넷 신문에도 짤막하게 내용이 올라갔다. [아웃소싱 기업 휴먼매니저 대표 김o일 800억대 빌딩 매수]
빌딩을 매수했다는 단순한 일보다는 더 좋은 일로 신문기사에 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간 내가 해온 일들은 지극히 비합리적인 것을 합리적으로 바꾸는 단순한 변화였기 때문에, 시선을 받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이 거슬렸다.
[대체 어떻게 사업을 해야 아웃소싱 기업이 빌딩을 삼?]
[역시 도급 회사의 착취는 여전함.]
[미친, 35살이 회사 대표인 거로 아는데 800억 빌딩을 매수?]
[하청 도급은 대부분 착취로 벌어들인 금액임]
[도급은 없어져야 함. 대체 사법부는 뭐함?]
[나도 존나 아웃소싱 회사에서 치를 떨며 뛰쳐나옴, 저게 다 내 피와 땀임. 개새끼들]
나름 씁쓸하긴 했으나, 그간 하청 회사가 저질러온 부당한 행태를 감안한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들이었다.
휴먼 매니저 사원들과 텅 빈 사무실에서 책상 하나를 두고 둘러앉아 맥주 한 캔을 따다 마셨다.
넓은 사무실에서 책상을 두고 네 명이 둘러앉으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현준이가 연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휴먼매니저 사무실이 이렇게 커질 줄은.."
한 층에 200평정도 되는 사무실이라 사이즈가 엄청나게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