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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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는 술자리를 중간에 빠져나왔다. 그들이 입에 침을 튀기며 회의를 진행하는데, 나도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나만큼 든든한 지원군이 있을까?

일당백으로 싸워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내가?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들의 의견 따위 무시해버리고 내가 바라는 뜻대로 일을 해결하면 그만이다.

화승 대표와 담판을 지어서 부당 착복을 멈추게 하면 될 일이고, 키다리 아저씨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그들이 행복하게 잘 살면 될 일.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냐는 것이 내가 맞닥뜨린 딜레마였다.

나는 그들의 입에 밥을 들이밀며 떠먹여 주는 인간이 아니다.

마치 성장기 청소년들과 같다고 보면 될까?

돈을 쥐여 주는 법보다, 직접 쟁의하여 얻는 법을 알려주는 게 내가 덜 피곤하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그게 더 의미가 있으니까.

언젠가 내가 찜해 놓은 800억짜리 청화 빌딩, 강남역 인근에 위치해서 저 건물만 사놓는다면 아무 일도 안 하고 그저 매일 골프만 치며 홀인원 인생을 살 수 있는 건물이 있었다.

고작 며칠 지났다고 그새 시세가 올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총 지하 4층부터 12층까지 이루어진 건물을 사게 된다면 이곳에 휴먼매니저 사무실을 일구고, 콜센터 사무실을 입점할 계획이었다.

현재 청화빌딩의 소유자는 한일조선의 법인으로 등록돼있었고, 계속된 적자가 지속되자 빌딩을 매물로 내놓았다고 한다.

한일 조선이라면 꽤 큰 기업인 줄 아는데, 조선업이 어렵긴 어렵나 보다.

일단 나는 다주택자였기 때문에 별도로 부동산 법인을 설립해야만 했다. 어쨌든 임대수익이 날 경우 법인으로 절세 혜택을 받는 게 이득이었고 직원들이 직접 관리해주기도 편했다.

찜해둔 빌딩을 사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친 뒤 조금 늦은 시간 출근 했다.

아무도 내가 오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헤드셋을 끼고 근무에 열중이었다.

그런데 분위기는 우중충하기만 했다. 며칠 전 면접을 보기 위해 사무실에 처음 입성 했을 때의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했던 상담사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팀장은 내내 사무실을 바삐 돌아다니며 사원들의 업무를 체크하고 있었다.

"늦었으니까 얼른 업무 시작하시죠."

"네. 죄송합니다."

팀장이 내게 채근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이었는데, 어제 내가 중간에 술자리에 빠진 뒤로 내가 모르는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설마?

현실과 타협을 선택한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별로 놀랍지는 않은 선택이다.

그리고 팀장은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업무 매뉴얼 양식이었고, 그곳에 한 문장이 눈에 띄게 보였다.

‘선택적 태업을 위한 행동양식’

내가 잘못 본 건가? 나는 콜대기를 걸어 놓고 상담사들의 뒤섞인 목소리 속에서 분명히 한 문장을 듣게 됐다.

"일성은행 화승 콜센터는 태업 기간이라 일정 시간 이상의 상담은 어렵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태업’이었다. 태업은 노동쟁의 중 하나였는데 겉으로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도적으로 게을리 하여 회사에 손해를 주는 방법이었다.

파업 같은 경우는 출근을 하지 않고 회사의 지위와 명령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쟁의를 하는 것인 반면에, 태업은 출근은 하되 노동을 통해서 쟁의를 하는 것이었다.

나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파업을 반대하는 직원들도 있었기 때문에, 일부 소수의 인원들이 노조를 설립하여 그 인원들만 태업을 하게 된다면 반대 인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이제 문제는 나도 동참하는 것.

콜이 걸려왔다. 그리고 선택적 태업을 위한 행동 양식의 첫 번째에 적힌 글귀,

‘태업 참여자는 고객에게 태업 기간이라고 알릴 것’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지금쯤이면 고객들의 컴플레인이 일성은행 본사까지 흘러갔을 것이고,

그 컴플레인은 화승의 대표 김한성에게 들어갔겠지.

연신 사무실을 배회하는 팀장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멍청하게 인력파견회사를 차렸거든.

현재 세 시간 동안 태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본사로부터 별다른 얘기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고객들의 반응은 이러했다. 물론 몇몇 고객들은 응원차원으로 격려를 해주긴 했으나, 역시 이용에 불편을 느낀 고객들도 꽤 많았기 때문에 불만이 쇄도했다.

당연한 처사였다.

"네 고객님 현재 태업 진행 중입니다."

-왜요? 왜 우리가 피해 봐야 하는 거죠?

"3분간 상담은 진행 가능하십니다."

-기분 나빠서 못하겠는데요. 왜 우리가 피해 보냐는 거죠.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가 노동쟁의를 통해 인력을 증원하고, 급여 인상을 위해서 어쩔 수가 없는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고객들이 피해를 보냐고요. 제 말 못 알아먹어요?

"알아듣습니다."

-거기 대표 바꿔 봐요.

"대표님은 현재 안 계십니다"

-컴플레인은 어디에 걸면 되는 거죠?

"일성은행 본사에 전화하시면 됩니다."

-뚝.

이 짓을 한 시간을 반복하니 슬슬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고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콜센타 태업한다고 들었는데요.]

오 [가능하면 저희도 가서 도와드릴 의향은 있습니다.]

김 [괜찮아. 현재 조용히 태업중, 별 의상 없이 흘러가고 있음, 김한성에 대해 조사하라고 한거는 어떻게 됐어?]

고 [탄생부터 현재까지 모조리 전부 낱낱이 파헤치고 있습니다.]

김 [오, 능력잔데? 오늘 안에 깨톡으로 보내줘.]

고 [넵! 흐흐, 요즘은 돈 주면 다 알아봐 주더라고요.]

정 [대표님, 건물 매입 문제로 법무사님 사무실에 찾아 오셨습니다. 계약문제 때문인 것 같은데, 대표님 인감이 필요한데 어쩌죠?]

김 [사무 책상에 있으니까 알아서 찍어. 법무사가 알아서 해줄 거야.]

오 [그러면 저희 이사 가는 겁니까?]

김 [그렇겠지?]

오 [대에박.]

김 [하여튼 오늘 일 끝나고 보자고. 다들 태업하지 말고 열심히 일 하고 있어. 태업을 직접 해보니까 스릴 넘치긴 한데, 사장 입장에서는 복장 터지는 일이니까. 지금 김한성 대표 도착함. 이따 통화하자고.]

오 [넵!]

-쾅!

때마침 김한성 대표가 엄청나게 화가 난 모습으로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리고 전후 사정을 살피지도 않고 분노에 휩싸인 그는 의자를 벽에 집어 던져버렸다.

-쾅!

상담사들이 전부 콜대기를 걸어놓은 뒤 헤드셋을 벗어 던지고 김한성 대표를 바라봤다.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수 없는 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김한성의 거친 숨소리만 정적을 채웠다.

태업을 진행한 지 단 세 시간 만에 일성 은행 CS팀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김한성을 비롯하여 일성은행 본부장까지 곧 있으면 사무실에 들른다고 하였다.

"주동자가 누구야?"

김한성이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우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새끼냐고! 안 나와!"

김한성의 윽박질에 다들 몸을 움찔거렸다. 팀장은 그저 김한성의 거센 기운에 주눅이 든 듯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팀장이 이럴 때 나서줬으면 좋으련만, 막상 대표가 앞에 있으니 몸이 나서질 못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나서려는 찰나 1팀의 부팀장인 그녀가 손을 들며 말했다.

"제가 했습니다."

그녀가 자리에 일어섰고, 김한성은 손목시계를 풀에 헤친 뒤 터벅터벅 그녀 앞으로 향해 걸어 나갔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찰싹.

"이건 네가 업무방해를 한 죄야."

"..."

김한성은 부팀장에게 거센 따귀를 때렸고, 부팀장은 일순간 몰아치는 따귀 세례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찰싹.

"이건 우리 회사 손해배상이고."

-찰싹.

-찰싹.

그녀가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에 털썩 쓰러졌고, 흐느낄 틈도 없이 다시 일으켜 세워 그녀의 따귀를 쳐댔다.

그 모습을 차마 지켜보지 못한 심현우 팀장이 나섰다.

"대표님, 폭력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너무해? 뭐가 너무한데?"

김한성은 이내 심현우 팀장에게 다가갔고, 심현우 팀장은 긴장된 낯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부팀장은 결국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붉게 달아오른 뺨을 어루만졌다. 일순간 벌어진 폭력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폭력은.."

"폭력? 우리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잖아. 이건 어떻게 배상할 건데. 지금 일성은행 CS팀 난리 났잖아. 이 씨발넘들아! 우리 때문에 예금 해지하겠다는 고객들만 20명이 넘는다고!"

"..."

"어떻게 배상할 거냐고 묻잖아!"

대표가 고함을 내지르자 모두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였다.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개새끼들을 거둬서 밥 먹이고 일 시켜 줬더니 이따위 뒤통수를 치나? 뚫린 입이면 다 될 줄 알았어?"

"저희들이 부당하게 착취당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대표님께서 저희들 임금을 착복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임금? 하, 미쳐버리겠네. 또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고 그래."

"저희들도 전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태업을 진행한 것입니다."

"증거 있어? 증거도 없잖아. 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지껄이고 다니고 그래? 엉? 누구야?"

"..."

"누구냐고 이 씨발놈아!"

"제가 했습니다."

김한성은 이내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내 얼굴을 기억하는 눈치였다.

불과 며칠 전 현준이와 함께 밥을 먹었으니까. 그때 당시 나는 사회 부적응자로 연기를 했었다.

김한성은 이내 넥타이를 완전히 풀어 헤친 뒤 바닥에 내던졌다.

학교폭력의 주범답게 역시 화나면 주먹 먼저 나가는 것 같았다.

"너 저번에 나랑 밥 처먹던 신입 맞지?"

"어. 맞는데, 말 좀 곱게 하자. 응? 여기 사원들 보는 데 쪽팔리게 왜 폭력을 쓰고 그러냐."

나는 폭력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터벅

-터벅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부팀장에게 다가갔다.

"많이 부었네요."

"..."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녀가 분노로 일그러진 눈을 치켜세우며 김한성을 바라봤다.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위로를 해준 뒤 나는 김한성에게 다가갔다.

-터벅

-터벅

내 시선에는 그의 목울대가 보였다.

꽤 신장이 큰 탓에 내 머리끝이 그의 목울대 수준이었으니까.

김한성이 조소를 내뿜으며 나를 바라봤다. 긴장감이 흘렀다. 사무실의 중심에서 대표 김한성과 내가 대치했다.

"너 뭐 하는 새끼야?"

"뭐하는 새끼인지는 차차 알게 될 거고, 일단 우리 상담사들 급여 등쳐먹은 거 돌려줘야겠는데."

"뭐? 이 새끼가 미쳤나. 너 지금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야? 어?"

"돌려줘."

"뭐?"

"그간 네가 해 쳐먹은 우리 상담사들 급여 지금 돌려주라고."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는 거야 새끼야. 뭘 알고 씨불여. 너희들이 직접 근로계약서에 서명했잖아. 최저임금에 서명한 새끼들 아냐? 그런데 내가 착취를 했다고? 등신들 같이 배운 게 없으니 이따위 일이나 하고 있지. 에이 시발 퉤."

"..."

그러더니 김한성은 침을 퉤 뱉으며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어, 김소장, 여기 강남센터 오늘부로 폐쇄 시켜 버려라. 다 잘라버려 씨발 놈들. 다 하나같이 양아치 같은 새끼들이니까. 뭐? 노무사? 상관없어. 씨발 다 잘라버리게. 에이 개버러지 같은 새끼들."

김한성은 상담사들을 보며 말했다.

"다들 잘 들어. 이 병신 같은 새끼들아. 내 앞에 있는 이 개새끼 사회부적응자고 사회 경험도 없는 새끼야. 이런 새끼 말을 듣고 이따위 일을 저지른 너희들을 내가 도저히 직원으로 두질 못하겠으니까. 오늘부로 여기 폐쇄다. 하여튼 무식한 새끼들 데려다가 일 시키려니, 어휴."

"김한성씨."

"내 이름 부르지 마! 이 씨발넘아. 확!"

맞은 만큼 돌려주는 놈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게 복수라고 했고, 정의라고 했다.

그런데 꼭 분을 이기지 못해 두 배로 돌려주는 놈들이 간혹 있다.

그런 인간을 사회부적응자고 또는 괴물이라고 했다.

"못 돌려주겠다는 거죠?"

"..."

나 또한 시계를 풀에 헤친 뒤 책상에 올렸다. 그리고 소매 버튼을 풀고, 넥타이를 살짝 풀어 헤쳤다.

"지금 한번 해보자는 거야?"

김한성이 기가 찬 노릇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개의치 않으며 한 손가락으로 그의 이마를 밀쳤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내 팔을 휘둘러내자, 그의 무릎을 발로 가격했다.

"이건 내가 수습 기간 동안 떼인 급여고."

그러자 그가 갖은 과도한 행동으로 바닥에 털썩 쓰러졌고,

"CCTV다 있어 개새끼야. 너 뒤진 줄 알아. 히히, 그러게 병신아 능력껏 사람 몸에 손대야지."

"네가 부팀장 따귀 때린 건 괜찮고?"

"저년 깽값이야 내가 얼마든지 줄 수 있거든, 너는 그런 돈 없잖아?"

"착각하셨네."

"뭐?"

의자를 들어 그의 허리에 내던졌다. 그가 고통을 호소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건 부팀장이 맞은 거 돌려주는 거고."

이내 그도 분을 못 이겨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는 듯 내게 달려들었다.

흥분한 채 달려드는 인간들을 상대하는 건 굉장히 쉽다.

제힘과 분노에 못 이겨 이성을 잃어버리니까.

달려드는 그를 피해서 다리를 걸었고, 그가 굴러 넘어졌다.

"이 개새끼가!"

그리고 넘어진 그의 얼굴을 향해 무릎으로 가격하니, 그가 옅은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멱살을 잡았고, 다시 한번 물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여태 당신이 착취한 급여, 어떻게 할 거야?"

"미..친..놈"

"하아.."

-퍼억.

내가 때린 게 아니었다.

일순간 등장한 부팀장이 그의 머리를 발로 가격하였다.

그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부팀장이 씩씩거리더니 이내 쓰러진 그의 몸을 발로 차기 시작했으나, 내가 그녀를 말렸다.

말리려 들수록 그녀가 더 흥분한 듯 달려들었고, 이내 팀장까지 나섰다.

그녀가 울분을 토하며 자리에 털썩 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쓰러진 김한성.

울고 있는 부팀장.

얼빠진 사람처럼 멍한 사원들.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제 일을 정리할 차례였다.

그들을 보며 말했다.

"저 좀 도와주시죠."

* * *

"으..으.."

의자에 앉아 의식을 잃은 김한성이 천천히 의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사무실 내 위치한 회의실에 그를 앉혔고, 의식을 차릴 때까지 기다렸었다.

회의실 문을 잠가놓은 탓에 현재 일성은행 측에서 도착한 CS팀 본부장과 직원들은 그저 회의실 밖에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몇몇 사원들이 본부장과 본사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담사들에게 잘 일러둔바, 착취된 급여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태업을 진행한 바라고 솔직히 전달하라고 했다.

그들의 시선이 창밖에서 느껴졌다. 블라인드를 어둡게 친 뒤 다시 김한성 앞에 앉아 그를 바라봤다.

"정신이 좀 드냐?"

"..."

"정신 차리라니까!"

언성을 높이자 그가 정신이 번쩍 드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눈두덩이 찢어져 피가 흘렀으나 이내 응고돼 있었고, 볼과 관자놀이 전면으로 시퍼런 멍이 나있었다.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너..이 개새끼..가만히 안 둘 줄 알아.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넌 평생 교도소에서 썩어야 돼. 시발놈아."

"김한성, 나이는 35살, 학교는 최일고, 최일대를 나왔고, 대학을 졸업한 뒤 할 일 없이 백수 짓을 하다가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았을 거고... 재산은 현재 당신 이름으로 예금된 4억, 그리고 곧 돌아가실 아버지 부동산 유산을 합하면 약 120억 정도 될 것 같은데.."

"하, 씨발 너 대체 뭐 하는 새끼야?"

"120억, 이야 너희 아버지가 벌어둔 돈이 꽤 많았네? 내가 처음에 100억 이상을 손에 쥐었을 때 뭐 했는지 아냐?"

"뭐?"

"멍청하게 인력파견회사를 차렸거든."

"...!"

"그런데 우리 회사는 네 회사처럼 남의 뒤를 빼먹질 않아."

"..."

"그래서 너무 억울해. 씨발. 너희들 같은 더러운 새끼들 때문에 내가 욕을 먹잖아? 사람 장사, 사람 등골 빼먹는 인간, 뭐 그런 부류? 그런데 나는 너희 같은 양아치 새끼가 아니거든."

"..."

"그래서 내가 보상을 좀 받아야겠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보상금액은 120억이면 충분할 것 같고."

"...!"

"너희 아버지가 일군 사업 거래처면 뭐 더할 나위 없고."

깔끔하게 연봉 팔천만 원으로 계약하시죠.

나는 그의 전 재산과 거래처를 전부 달라고 요구했다.

그의 반응은 몹시 차분하기만 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 탓에 그의 말문이 턱 막혀버린 것일까.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다리를 흔들거렸다.

"맞네, 사회 부적응자. 살다 살다 너 같은 새끼는 내가 처음 보거든, 뭐? 내가 가진 전 재산을 주고, 거래처도 달라고? 이야, 아주 배짱이 넘치셔."

"어려운 일 아니잖아?"

"크하하."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기분?

더 지껄여 보라는 듯 나를 호기심 짙은 눈으로 바라봤다.

"더 해봐. 아주 꿈과 야망이 야무진 인간 같은데, 내 목숨까지 달라고 그러지 이제? 응?"

"목숨? 그러면 더 좋고."

"이 개새끼가.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네 뒷배를 봐주는 인간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내가 아는 검사들만 수십 명이야 이 개새꺄. 너 여기서 나가면 바로 수갑 차고 감방행이라고."

"아, 검사? 검사 누구?"

"..."

"검사라면 내가 아는 검사들도 많지, 중앙지검에 있는 박동수검사도 있고.. 박동수 너도 알지?"

최일 고등학교 학교 폭력 5인방 중 검사가 있었다. 그 중 한 명이다. 그래서 그에게 넌지시 던져 본 것이다.

"네가 박동수를 어떻게 알아?"

그도 이제 장난기 섞인 눈빛이 아닌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잘 알지."

그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박동수 검사를 알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에게 위압감을 주는 걸까.

"내가 중간에서 빼먹은 돈 때문에 단순히 이러진 않을 것 같고."

"..."

"대체 이유가 뭐야? 인력파견업체 사장님께서 왜 굳이 콜센터 직원으로 잠입을 해서 깽판을 치는 거지?"

이제 그에게 사실을 얘기해 줘야만 했다. 나는 주머니에 고이 잠든 ‘김해랑’의 교복 이름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내려놓았고, 김한성은 그 명찰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김..해랑?"

"뭐, 네가 이유를 물어봐서 굳이 답변하자면, 사실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 첫째로 네가 떼먹은 임금이 만만치 않다는 거고, 둘째로 우리 회사 직원 아내가 여기서 근무하다가 우울증에 걸렸단 거고, 셋째는 나도 콜센터 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었던 거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네가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거야. 인간쓰레기가 사회에서도 버젓이 쓰레기 짓을 하고 있으니 이걸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

"그 표정은 뭐야? 이제야,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시나?"

그가 고개를 푹 숙여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가소로운 눈빛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그거 걔가 자퇴하고 뒤진 거잖아 씨발."

"..."

"하아, 씨발 진짜 짜증나게. 그래, 내가 좀 때리고 괴롭혔다. 그게 뭐 어때서? 학창시절에 다들 그러고 놀지 않나? 그렇다고 내가 씨발 자살을 부추기진 않았잖아."

"그 말 진심이냐?"

"진심이고 나발이고 씨발놈아. 적당히 좀 하자고, 17년이나 지난 일들을 왜 이렇게 꺼내고들 지랄이야 짜증나게."

"휴."

"학폭? 웃기고들 있어 씨발. 철없을 때 저지른 짓 가지고 왜 이렇게 들쑤시고 지랄들이야."

"철이 없었다?"

"제 정신이면 그랬겠냐? 그래서 이제 정신차리고 반듯하게 살잖아?"

"그래서? 지금 이게 반듯하게 사는거고?"

-쾅

-쾅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 겁니까!’

‘지금 삼십분이 넘었잖아요! 문 좀 열어보세요!’

때마침, 일성은행CS팀 본사 직원들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회의실 문을 두들겨댔다. 나는 블라인드 틈을 살짝 젖혀 외부를 살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회의실 앞을 모여 있었다.

책상을 걸터앉아 김한성을 바라봤다.

"철이 없었고, 이제 반듯하게 살아간다고 얘기하는 너를 보면서 내 생각이 더 확고해졌네."

"뭐?"

"밖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은데, 얼른 정리할 거 정리하자고."

"...?"

"네가 가진 거래처 총 몇 개야?"

"하, 씨발 또 그 소리네. 너 지금 그 게 말이 되는 소릴 지껄.."

「설득스킬을 발현 합니다.」

「LV2 SKILL 권위에 대한 복종」

-김한성은 김도일님의 권위에 복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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