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을 필두로 호프집으로 왔다. 부팀장과 사원들이 호프집 테이블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아주 간혹 사원들끼리 회식을 한다고 했다.
부팀장이 말문을 열었다.
"하여튼 이번 신입은 아주 개차반으로 뽑았다니까요. 아휴, 팀장님만 불쌍하지. 도일씨보고 하는 소리는 아니에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들 의리 하나는 있다니까. 다들 팀장 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봐?"
"그 짓을 누가 하고 싶어 해요? 인원 관리한다고 스트레스 받는 일인데, 차라리 콜이나 받으렵니다."
팀장과 사원들이 연신 떠들어댔다. 그리고 나는 내 옆에 앉은 1팀 부팀장에게 물었다.
"팀장님이 직원들에게 신경을 잘 쓰나 봐요?"
"그럼요. 제가 콜센터 경력만 5년이에요. 이곳저곳 많은 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우리 심팀장 만한 사람은 없었다니까요."
"제 지인 중에 한분이 콜센터 근무 했을 때 우울증을 겪고 그만 뒀는데, 사무실에서 아무 책임도 없다는 투로 얘기를 했나 보더라고요."
오과장의 아내를 얘기한 부분이었다. 이곳에서 근무 했으나, 우울증에 걸려 퇴사했었다.
"도일씨?"
"네?"
"저도 그렇고, 여기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다들 그 정도 병은 하나씩 달고 있어요. 우울증이요? 너무 흔해서 이 바닥에서 병으로 취급 해주지도 않아요. 무슨 말인지 알죠?"
"..."
"도일씨도 언젠가 알게 될 거에요."
"..."
그때 다른 팀의 부팀장들이 연신 팀장을 위로해주며 띄워주자, 팀장이 훌훌 털어버리려는 듯 맥주를 들이켜며 말했다.
"다들 잊자. 뭐 하루 이틀이냐."
"팀장님 기분 좀 풀어지셨어요?"
"어. 덕분에."
1팀 부팀장은 팀장의 판단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듯 사원들을 보며 부연 설명 했다.
"점심시간이야 어느 콜센터를 가도 다 조별로 나뉘어서 먹어요. 아마 신입이라 그걸 잘 모르고 저지른 것 같은데, 경력 없는 신입 분들 잘 새겨 들어야 돼요. 콜센터 일이라는 게 시간에 쫓기는 일이에요. 황금 시간대라는 게 있는 거고, 저희가 그걸 놓치게 되면 회사 순위가 낮아지는 건 당연한 거예요. 어쨌든 팀장님 말씀처럼 우리 회사 업체 순위가 높아야 재계약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렇긴 하죠."
몇몇 사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팀장의 말에 동의했다. 부팀장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팀장님도 그렇고 부팀장인 저도 그렇고. 콜센터 상담사가 부당한 게 한두 가지 아닌 거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일이란 게 특수성이 있는 건데, 입맛에 맞춰서만 할 수는 없잖아요."
"맞아요."
팀장은 이내, 매우 뿌듯한 얼굴로 부팀장을 바라봤다. 남녀관계 옆에서 보면 뭐 다 비슷하지만, 서로 사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서로를 비호하고 있었다.
부팀장은 이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도일씨도 처음이라고 했죠?"
"네."
"콜센터 상담사는 마음을 비워야 돼요. 계산적일 필요도 없고 본인이 부당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모르겠는데요."
"어느 콜센터에 가나 다 똑같은 처우를 받으니까요. 그런데 차이 나는 건 결국 인센 이거든요. 우리 회사가 그래도 인센 하나는 꼬박 챙겨주니까요."
"네."
그때 팀장이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다들 솔직히 속 시원했지?"
"에이,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팀장님."
"솔직해지자고. 그 신입이 개념 없는 행동인 건 맞지만, 사원들 입장에서는 사이다 같은 행동인 거지. 막말로 나도 이번 신입처럼 다 깽판 치고 나가면 속 시원할 것 같은데?"
"..."
"그런데, 다들 알잖아요? 저도 이러고 싶어서 여러분들을 통제하는 게 아니에요. 어쨌든 회사 지침인 거고."
"네. 알죠. 팀장님도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사실 대부분의 콜센터 상담사들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봤다.
특히 경력 있는 상담사들.
본인들이 겪은 일들이 숱하게 많으니 웬만한 부당한 일을 부당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어딜 가나 똑같으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맞는 말을 해댔다. 속절없는 말들을 저리 늘어놓으니 마치 화승이란 회사에 조형된 인조인간을 보는 것 같았다.
나도 하릴없이 앉아만 있을수 없었다.
"제가 한 말씀만 드려도 괜찮을까요?"
내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일순간 모든 시선이 내게 향했고, 나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다들 정신이 나가신 것 같아요."
"...!"
"도일씨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정신이 나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서요.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되질 않거든요."
"하아. 대체 뭐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죠? 도일씨? 당신마저 갑자기 왜 이러는 겁니까?"
팀장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연이어 터지는 신입들의 깽판에 믿지 못하는 거겠지.
그리고 나는 본격적으로 물 흐르기 시작했다.
"당신들이 받는 기본급, 최저임금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세요?"
정당하냐고 묻는 말에 팀장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며 말했다.
"도일씨, 아까 수습 기간 70% 공제하는 것 때문에 기분 나빠서 이러는 거예요? 제가 그거는 어떻게든 대표님에게 얘기해서 최대한 맞추는 쪽으로 해드릴게요."
"아뇨. 필요 없어요. 그 돈 받겠다고 여기서 일하는 거 아니니까요. 제 질문에 답변만 좀 부탁드릴게요. 최저임금이 정당하다고요?"
내 질문에 다른 부팀장이 말문을 열었다.
"뭐 어디를 가나 최저임금 아닌가요? 편의점 알바도 최저임금인데, 저희야 뭐 특별한 업무 능력이 갖춰줘야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최저임금이라고 해서 별로 불만은 없어요. 만약 도일씨, 그게 불만이라면 출입문을 열려 있습니다. 언제든지 그만두시면 될 일이에요."
"아, 그래서 불만은 없으시다?"
"네. 어차피 본사에서도 그렇게 주는 거 아닌가요? 대기업들이 문제예요. 대기업들이 싸게 싸게 인원을 써먹으려고 그러는 거죠."
그러더니 몇몇 직원들이 맞장구를 쳐댔다.
"맞아요. 대기업들이 문제죠. 대기업들이 막말로 저희들 신경이나 쓰나요?
"하여튼 대한민국 대기업들은 하나같이 돈독이 올랐다니까요. 우리 같은 상담사들을 무슨 인간 취급하겠어요? 소모품 취급하는 거지"
그들의 말을 경청한 뒤 내가 말문을 열었다.
"대기업의 문제도 맞죠. 당연히. 지당한 말씀이죠. 만약 당신들이 말하는 대기업에서 우리 월급을 최저임금으로 책정해주지 않았다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알기론 일성은행에서 저희들 1인 용역비로 280만 원 정도 넣어주는 거로 알고 있어요."
오과장이 알아본 바는 320만원 이라고 했으나, 실제 도급 용역비 산출액은 280만원이었다.
"네?"
헌데, 직원들이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급 운영에 대해서 잘 모르시니까 이해가 힘드신 거 알고 있는데요. 일성에서 중간업체 화승과 계약 했을 때 1인당 용역비로 280만 원을 책정하고, 280만 원의 일부는 중간업체, 화승에서 먹고 차액을 우리한테 최저임금 책정을 해놓고 주는 거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되질 않아서요."
"이해 못하는 게 당연해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니까."
일순간 팀원들의 분위기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질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제가 받은 180만 원의 금액은 잘못된 거라는 거죠?"
"그럼요. 한참 잘못된 거죠."
"...이걸 그러면 어떻게.. 그럼 제가 받아야 할 돈은 어디로 간 거죠?"
"그게 당신들이 그렇게 집착하고 있는 인센이에요. 마땅히 받아야 할 돈으로 당신들을 무한 경쟁시켜서 노동력을 뽑아먹고, 생색내며 성과보수를 챙겨주는 꼴이죠."
"..그게 말이 되는.."
일부 직원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팀장이 말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죠? 당신이 회사 간부라도 되는 건가요?"
"간부는 아니지만 제가 이런 쪽에 경험이 많거든요. 물류센터, 경비, 청소, 은행 쪽에 경험도 있고요."
"..."
일순간 아무도 말을 열지 못하고, 그저 생맥주만 할짝거리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씨발."
그때 1팀 부팀장이 욕을 하며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그녀가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여태 내가 180만 원, 많으면 210만 원 받던 게 다 중간에서 착취를 해간 돈이었다는 거죠?"
"정확합니다. 아마 부팀장님은 5년간 콜센터 경력이 있으시니까, 한 달에 40만 원씩 빼 먹혔다고 치면..와, 거의 5년 동안 2,400만 원을 못 받은 거네요."
"받을 방법이 있나요?"
"없어요. 이미 근로계약서에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겠다며 스스로 서명 했잖아요?"
"하.."
그때 부팀장이 그만 생맥주를 바닥에 쏟고야 말았다.
유리잔이 바닥에 깨졌다.
그리고 급히 호프집 직원이 달려들어 치우려고 했으나, 부팀장은 본인이 치우겠다며 직접 손으로 유리를 만졌다.
그리고 부팀장의 얼굴이 마치 홍시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경력 5년 차 콜센터 상담사였다. 그래서 더 억울하게 느껴졌다.
"팀장님."
"네.."
"팀장님이 제 말을 들어줘야만 변화를 모색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물을게요. 팀장님은 여기 있는 사원들이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하세요?"
팀장은 아까와는 다른 의기가 떨어져 기운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태껏 인정하지 못했던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
"아뇨. 매일 죽을 것같이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일하는데, 그런 감정 노동을 받아 가면서 온갖 병을 달고 사는데, 어떻게..최저임금을 받고 일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래서 달라지는 게 뭐죠?"
"..."
"그걸 인정한다고 해서 달라질게 없잖아요. 막말로 저희가 파업을 한다고 해도 전부 해고당하면요? 저희 같은 사람들을 누가 관심이나 가져준답니까?"
팀장이 직원들을 대표하며 말했다. 팀장도 직원들을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
"해고? 해고가 두려워요? 이보세요. 그게 이 윗대가리 들이 바라는 당신들의 공포예요. 최저임금 줘가면서 해고가 두려운 당신들이 얼마나 절박한지, 그걸 너무 잘 아니까 몇 번씩 찔러보는 거고, 참으니까 더 찔러보는 거고, 어? 이게 되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라고요. 해고당하면 당장 먹고 살 일 힘들겠죠."
"..."
"그런데 해고당할 게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한번은 부딪쳐 봐야죠. 내가 들고일어나서 정말 작은 변화를 끌어낸다면, 그게 지금 수십만 콜센터들을 대표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성과가 어디 있습니까?"
"..."
"그리고 제가 일일이 당신들에게 떠먹여 줄 마음은 없습니다. 결정은 여러분들이 하는 거니까."
선택적 태업을 위한 행동양식
호프집의 분위기는 김빠진 맥주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부팀장은 의자에 풀 죽은 자세로 앉아 기본 안주만 집어 먹으며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있었다.
다른 사원들도 마찬가지 팔짱을 끼거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거나,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리며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그때 숨을 내쉬면서 뭐라고 투덜거리며 혼잣말을 하던 사원 한 명이 이내 아래턱을 바짝 당기며 눈을 치켜세우더니 나를 바라봤다.
"파업하자는 거네."
일순간 그 사원으로 시선이 모두 쏠렸고, 팀장의 미간이 좁아지며 맥주를 탁 내려놓았다.
"파업.."
팀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자 읊조렸다. 파업을 위해서는 팀장의 위치와 역할이 중요했다.
파업을 동참하지 않으면 팀장은 화승의 입장에서 사원들과 협의를 봐야 하는 것이고, 동참한다면 화승과 대적할 수가 있었다.
"파업하려면 노조를 설립해야 돼.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들 임금을 중간에서 착복한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저도 찬성합니다."
부팀장이 말문을 열었다.
"다른 분들은요?"
"저도 찬성합니다."
"저도!"
"노조 설립을 찬성하시는 분들은 몇 명이나 됩니까?"
내가 물었다. 그러자 부팀장들이 전부 손을 들었고, 사원들 몇몇이 주춤거리더니 눈치를 보며 손을 들었다.
정확히 여섯 명. 노조 설립 기준에 충족했기 때문에 설립은 가능했다.
그런데 노조 설립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저야 여기서 근무하는 날도 곧 얼마 남지 않아서요. 노조를 설립하든 파업을 하든, 월급만 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저는 빠지겠습니다."
"저도 반대요. 그냥 알바로 하는 거라서요. 괜한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네요."
노조 설립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은 기세로 말했다. 만약 단체 교섭을 위한 파업을 하게 된다면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으니까.
팀장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단체 교섭으로 진행할 경우 과반수가 찬성해야만 가능합니다. 한 번만 뭉쳐보죠."
"팀장님이 갑자기 생각이 바뀐 이유가 단순히 돈 때문이라면 저는 딱히 동참하고 싶은 이유가 없는데요. 그리고 너무 말이 쉽게 바뀌잖아요? 제가 여기서 팀장님을 뵙는 동안 매번 저희들을 채찍질해놓고선, 본인 이익을 위해서 노조 설립을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
"제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동안 저도 모르는 부분이었으니 가만히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가만히 있나요."
"저는 딱히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지금이 좋다니까요? 어차피 한 달 있으면 복학해야 하는데, 그 기간 동안 팀장님이 파업을 하게 되면 밀리는 콜 업무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이 전부 감당해야 하잖아요. 저는 싫어요. 혹시 제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 있나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녀의 말에 일제히 몇몇 사원이 손을 들었다.
그들은 알바로 몇 개월만 하려고 콜센터 상담사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었다.
"그러면 어쩌자는 겁니까? 당신들이 퇴사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인가요?"
"노조 설립에 반대하는 거고, 파업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받는 건 더더욱 싫고요."
"하아. 지선씨! 그래도 변화를 이끌려면."
"그 변화가 저한테 무슨 상관인데요? 전 대학 졸업 한 학기 남아서 콜센터 일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
"그리고 파업을 한다고 해서 업체에서 그간 부당 착복한 돈을 돌려준다는 보장이 있나요? 보장도 없잖아요. 기껏 시간 투자해서 파업에 참여했다고 해도 당신들 파업에 들러리 하는 것 밖에 더 되나요?"
"저도 지선씨 말에 동의합니다. 부팀장님이나 팀장님이야 원체 콜센터 일을 오래 하셨고 앞으로도 콜센터 일을 꾸준히 하실 거라 파업을 선택할지 몰라도, 저희들에게 득 될 거는 없다고 봅니다. 알바생들은 빼주세요. 그리고 파업을 진행하게 되면, 저희들이 업무가 늘어나니까 이 부분도 신경 써주셨으면 해요."
노조 설립을 반대하는 무리들의 주장에 일제히 팀장을 비롯하여 부팀장들이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차피 본인들 이익을 위해서 파업을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처사였다.
반대 무리중 한 명이 손을 들며 말했다. 안경을 치켜세우며 이번 사달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제시했다.
"저도 김도일씨 말을 듣고 꽤 충격이긴 했지만, 파업을 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들 그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그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고, 이곳에서 3개월간 근무 중이라고 했다.
"아웃소싱 회사 소속에서 파업을 한다면 결국 저희가 단체 교섭을 할 상대는 화승이라는 것이죠. 아시다시피 현재 콜센터 아웃소싱 구조는 원청의 힘이 막강하다는 겁니다. 아시잖아요? 저희들도 1팀부터 4팀까지 나눠서 무한 경쟁을 시키는 것처럼, 콜센터 업체들도 마찬가지로 실적 경쟁과 압박에 시달리고 있죠."
"..."
"아마 저희가 파업을 하게 된다면, 당연히 일성은행은 화승과 계약해지 하려 들것이고, 그런 통보가 날아오면 결국 저희들만 콜센터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뜻이에요. 피 보는 건 우리고, 결국 더 피 보는 건 화승이라는 거죠. 이게 대체 우리가 파업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결과가 뭐죠?"
"..."
그가 구조적인 문제를 아주 정확히 짚어나가 또박또박한 말투로 말했다.
하긴 우리가 일성 은행의 소속이라면 단체 교섭은 일성은행과 이뤄지겠지만, 도급사 소속이 파업해봐야 결국 개미들 싸움이라는 것.
그가 말을 이어 나갔다.
"도일씨가 말해준 부분을 저도 생각을 안 한 게 아닙니다. 한국에서 꽤 잘나가는 은행이 저희들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책정해줬다곤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해결책이 뭔가요? 도일씨가 불씨를 피웠으면 마땅히 어떤 해결책이라도 있었을 거 아닙니까?"
"해결책은 굉장히 쉽습니다."
내 말에 모두가 이목이 집중됐다.
"그런데 그 해결책을 위해서는 당신들이 먼저 똘똘 뭉쳐야만 한다고 보거든요. 알바생들 말에도 동의하는 부분이고, 방금 얘기했던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준 사람의 말에도 동의하는 바죠. 제가 옛날얘기를 하나 해드리자면요. 저도 반대하는 사람들 입장이었을 때가 있었다는 겁니다."
"..."
"저도 지선씨처럼 학생일 때가 있었고 시작도 해보지 않고 포기했던 경우도 있었죠. 그게 10년 전 일입니다. 제가 20대 중반이었을 때 택배 상하차 일을 했었을 때죠.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게 있나요?"
"..."
"콜센터도 마찬가지에요. 10년 전이나 현재나 노조는 주야장천 만들면서도 실제로 상담사들의 근무 환경이 나아졌냐는 거죠. 아니잖아요? 도급 운용은 10년째 더 지속되고, 중간착취는 예전보다 더 지능적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고요."
"..."
"솔직히 개미들 싸움 맞습니다. 우리가 정규직입니까? 본사 계약직보다 못한 도급사 소속 계약직이잖습니까.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월급은 적게 받고, 그런데 그 월급마저 중간에서 착취를 해간다는데, 이걸 본인이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하고만 있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네요.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아닙니까."
구조적인 문제를 짚었던 안경을 쓴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파업만이 답이 아니라는 거죠. 노조 설립도 마찬가지예요. 노조 설립? 좋아요. 그거야 뭐 동사무소 등본 떼는 수준처럼 쉽고 간편하잖아요?"
"..."
"그런데 팀장님이 저희 책임자라면 저희들을 이용하려 하지 마시고 한 번이라도 대표님하고 일차적인 협의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라면 그렇게 할 것 같습니다."
결국 파업만이 답이 아니라는 주장, 노조 및 파업 절차 같은 극단적인 선택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먼저 대화를 시도해달라는 사원의 주장이었다.
허나, 팀장의 표정은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우리 대표 성격 아시지 않습니까. 저 혼자 목소리를 낸다면 아무 힘도 없을 것이고, 받아들여지지도 않을 거라고요. 오늘 있었던 일만 봐요. 제가 신입 한 명을 잘 못 뽑았다고 팀장을 교체하려고 들었잖아요."
"그러면 왜 팀장을 달았나요? 저희들 채찍질하고, 업무 효율성 높이려고요? 그때만 팀장이고, 이제와선 동료라고요?"
"그건.."
"팀장님 하는 거 보고 저는 동참하든가 할게요."
"저도요! 팀장님이 일단 화승 대표님하고 대화를 나눈 뒤에 도저히 답이 없다면 저도 동참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찬성입니다! 일단 팀장님께서 일차적으로 저희들 의견을 먼저 피력해주셔야 한다고 봅니다."
팀장은 굉장히 난처한 기색으로 땀을 삐질 흘려댔다. 역시 어느 사회를 가나 팀장이나 반장의 위치는 함부로 다는 게 아니다.
팀장으로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
"네."
"너무 겁먹지 마시죠. 저는 사원 분들이 틀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놀랄 정도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사원 분들이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팀장님이 적극적으로 사원들의 의견을 피력했음에도 대표와 잘 풀리지 않는다면, 그들이 언제든 지원군이 돼주겠다고. "
"네."
"팀장님이 이번 일을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면, 여기 계시는 사원 분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될 겁니다."
팀장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