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더니 현준이가 화가 나는 듯 본인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천천히 키보드를 들었다.
상담사들이 모두 현준이의 모습을 유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결국 현준이는 들고 있던 키보드를 내려치더니 박살을 내버렸다.
"거지 아니거든요."
그리고 본체를 내리 들더니 바닥에 던져버렸다.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까, 수리비 청구하세요. 업무 방해죄로 고소해도 좋으니까.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현준이는 내게 윙크를 날렸다. 고소해도 좋다고 얘기한 건 이제 내가 막아줘야 하겠지.
나름 선방했다.
좋은 어시스트였다.
결국 현준이가 사무실을 빠져나가자, 팀장은 다시 두꺼비집의 전기를 올렸다.
그가 진이 빠져버리는 듯 보였다. 팀장으로서 책무가 있고 회사 내규 탓에 따르는 것뿐이다. 그가 무슨 죄가 있겠나.
어쩔 수 없는 처사겠지.
그리고 팀장은 상담사들을 보며 말했다.
"일단 다들 한 시간 휴식하고 다시 시작할게요."
결정은 여러분들이 하는 거니까.
심현우 팀장의 휴식 시간 공지에도 어느 누구도 선뜻 자리에 일어나지 못했다.
현준이가 던져 부서진 키보드와 모니터를 팀장이 정리하려 할 때 부팀장과 사원 몇 명이 함께 도와주려 했다.
그러자 팀장은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얼른 가서 식사하라고 다그쳤다.
그리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에서 좀 떨어진 식당에서 현준이와 밥을 먹기 위해 만났다.
그는 아직도 흥분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아. 진짜 심장 떨려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저 진짜 고소당하면 어쩌죠?"
"고소당할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밥을 먹는 내내 현준이가 발을 떨어댔다. 식탁이 덜컹거릴 정도로.
"아직도 긴장되냐?"
"제가 느끼는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될지 잘 모르겠지만..만약 제가 휴먼매니저가 없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못했겠죠. 그런데 대표님.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회사로 복귀해."
"대표님은요?"
"할 일 마무리하고 들어갈게."
"넵!"
현준이를 휴먼매니저 사무실로 보낸 뒤 나는 홀로 화승 콜센터 사무실에 들어갔다.
이른 시간에 들어간 탓에 팀장은 여기저기 흩어진 키보드 버튼을 줍고 있었다.
키보드 버튼이 사방에 튀어버려 줍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내가 팀장 옆에 서서 도와줬다.
"좀 쉬세요. 아직 휴게시간 남았는데."
"괜찮아요. 컴퓨터는 어쩌죠? 완전히 박살이 나서."
"고소해야죠. 일단 대표님 곧 오신다고 했으니까."
"심팀장님."
"네?"
"제가 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요. 수습 기간에는 최저임금이 90%를 주는 게 맞는 거로 아는데요. 왜 우리 회사는 70%인거죠?"
"..."
"사실 면접 당시 여쭈어보고 싶었는데, 잘릴까봐 물어보질 못했거든요."
"70%는 저희 대표님이 정한 부분이라서요. 저도 90%인 줄은 몰랐네요. 제가 개선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이.."
"됐습니다."
심팀장이란 사람의 행동거지를 봐서는 화승대표 김한성의 심복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권위 앞에 복종하는 어느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 상담사 직원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정을 쉬이 읽어 내릴 수가 없었다.
어떤 분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고, 다른 직원은 여전히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었다.
하여튼
콜센터 일 특성상 기분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참아야만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을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업무 시작을 한 게 오후 2시 50분이었다.
화승 대표 김한성이 사무실 문을 발칵 열고 등장했다.
그는 박살 난 컴퓨터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고, 이내 팀장을 불러내었다.
"일을 이따위로 하면서 팀장 달고 싶어?"
그가 나긋나긋한 말투로 팀장에게 말했고, 팀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콜센터 사무실 중에서 이곳이 제일 개판이야. 대체 사람은 무슨 기준으로 뽑는 거야?"
그러더니 화승 대표는 나를 바라봤다. 며칠 전 나와 밥을 먹었을 때 사회성 없는 막장 인간으로 보여줬으니까.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다신 이런 일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무슨 수로 다시 재발하지 않겠다는 건데?"
"심층 면접으로 사람을 뽑도록 하겠습니다."
"그걸로 안 될 것 같은데, 사원들 잠시 콜 대기 시켜 봐."
일순간 모든 이목이 화승 대표 김한성에게 쏠렸고, 화승 대표는 상담사들을 보며 말했다.
"팀장 할 사람?"
"...!"
"우리 강남지부 팀장이 영 못미덥고 능력도 떨어지니까, 팀장을 새로 뽑아야 할 것 같은데, 할 사람 있나? 월급에 10만 원 더 얹어주니까 괜찮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김한성이가 책상을 손으로 탁탁 쳐대며 다시 말했다.
"여보세요. 다들? 제 말 들리죠? 할 사람 없어요?"
"..."
"참나, 하여튼..어휴."
그러더니 옆에 있는 팀장을 보며 말했다.
"사원들이 야망도 없고 책임감을 갖기 싫어하니까 어쩔 수 없네. 운 좋은 줄 알아."
"네. 정말 죄송합니다."
"깽판 치고 간 인간은?"
"귀가했습니다."
"그 인간 신상 넘겨주고, 다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일 안 해요?"
김한성의 일갈에 상담사들이 모두 헤드셋을 끼고 콜을 받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