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 (110/200)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휴먼매니저 대표 김도일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대표님! 제가 어제 방문했는데 안 계시더라고요.

"네. 들었습니다. 급여를 전부 반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호호, 제가 겸직이 안 되는 일이라서요. 여태 사대보험이나 소득도 미신고로 잡고 일을 했거든요. 혹시 제가 거기에 근무했던 기록은 잡히지 않겠죠?

"그럼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어쨌든 그간 너무 감사했습니다. 청소 아주머님들하고 좋은 휴게실에서 맘 편하게 쉬고 일했다니까요.

"그런데 화연씨,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알아요. 무슨 말씀 하실지.

"뭐 하시는 분이세요? 학벌도 정말 좋고 어디를 가든 인정받으실 분 같은데, 왜 청소부 일을 했는지 아주 궁금했거든요. 사실 사연이 있겠거니 했는데, 이번에 급여를 반납하신 거 보고 도저히 못 참겠네요."

-도일씨 혹시 뉴스 안 보셨어요? 경술대학교 총장 배임, 횡령으로 입건 됐다고요. 뭐 총장뿐만 아니라 다른 교수들도 마찬가지고요.

"듣긴 했습니다만."

-도일씨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제가 말씀드리면요. 저 검사예요.

"네?"

-검사요.

"하."

-죄송하게 됐어요. 그간 청소부로 있으면서 총장실하고 교수, 행정실을 아주 쉽게 드나들 수 있었거든요. 미리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저번에 대표님이 총장실을 쓰레기로 뒤엎어버린 이후로 차마 말씀을 못 드리겠더라고요. 대표님이 청소부들의 복지에 힘쓰고 부당한 일에 나서는데, 제가 찬물을 끼얹을 것 같았거든요.

"아.."

말문이 막히고야 말았다. 과거 경술대학교 총장실을 뒤엎었을 때, 그녀는 총장실 청소를 도맡았다.

-그래도 대표님 같은 분이 계신다는 게 참, 아직은 세상 살맛나네요. 청소부로 있으면서 엄청 서러운 일도 많았는데요.

"그러면 화연씨가 경술대 사학비리를 파헤친 거예요? 영화에서나 봤던 것처럼 청소부로 위장수사?"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도일씨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그거 불법 아닌가요?"

-이만 끊을게요.

"저기! 잠깐만요! 이대로 끊으시면 어떡합니까.

-네...?

"저랑 일 하나 해보실래요?"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거지 아니거든요.

경술대학교는 갖은 사학비리로 정평이 나있던 학교였다.

언론과 법조계까지 손을 뻗쳤던 경술대학교 총장의 사학비리를 일망타진한 것이 화연씨라는 것.

회계장부 조작, 특히 등록금, 입시전형료, 임대료 등을 정상적으로 수입 처리하지 않고 일부를 누락시켜 횡령하였으며, 교수들에게 자체 연구비를 지급하여 이를 전액 또는 회수하여 비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게다가 신규 교수 채용 조건으로 약 1억 원의 금품수수를 하였으며 이사회 회의록을 허위 작성하여 회의 수당을 사적 사용했다고 한다.

총 40건에 달하는 경술대 총장의 협의 중 여태 기소 된 건은 단 한 건이었으나, 청소부로 위장하여 모든 증거물을 직접 수집 확보한 뒤 기존 40건에서 54건으로 기소하였고, 혐의가 모두 인정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화연씨, 대단한 양반이었네.

주말을 비워 그녀를 만나기 위해 향했다.

그녀는 주말임에도 오피스 룩을 입은 모습이었는데, 일에 미쳐 환장해버린 일 중독자라고 했다.

서울중부지검에서 근무 중인 그녀를 강남의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주말인데 출근하는 건 좀 너무한 처사 아닙니까?"

"제가 일 중독자라서요. 도일씨는 결혼했나요?"

"아뇨. 여자 친구는 있습니다. 화연씨는요?"

"했겠어요? 아쉽네. 도일씨 정도면 내가 채가려고 했는데."

"40대 마인드라 그런지 굉장히 적극적이네요."

"바빠서 그래요. 성질도 급하고. 그런데 갑자기 만나자고 한 용건이?"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흰 봉투를 건넸다. 그녀가 어제 휴먼매니저에 들러 반납한 480만 원이었다.

"받아요. 어차피 화연씨가 이 돈 받아서 검사 옷 벗는 거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요. 사실 제가 청소부 일을 거의 못 했거든요..그간 아줌마들이 잘 봐줘서 넘어가 줬는데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출근도 개차반으로 했어요. 그래서 양심상 찔려서 못 받겠네요."

"그래도 받아요. 필요 없으니까."

"이 돈으로 저희 청소부 아줌마들 맛있는 거나 좀 사드리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특이하시네. 도급업체에서 돈 욕심이 없는 게 참."

"원래 제가 그래요."

"정체가 뭐예요?"

"도급사 사장이잖아요. 그리고 저는 돈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중간착취를 하지 않는다고 보면 되죠. 정당하게 근로의 대가를 지급하는 것뿐입니다."

"아하."

화연씨가 내 말을 듣고 이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탈세하세요?"

화연씨의 물음에 그만 마시던 커피를 뿜어버렸다. 아씨.

"그게 무슨 말입니까. 탈세라뇨."

"도일씨 같은 사람은 제가 처음 보거든요. 직원들의 정당한 근로의 대가? 푸하하, 검사일 하면서 제가 그 소리를 누구한테 들었는지 아세요?"

"네?"

"탈세한 기업 회장님들이요."

"흐흐."

"농담이에요. 도일씨 성격 뒤끝 있거나 그러는 거 아니죠?"

"걱정하지 마시죠. 뒤끝 없으니까."

"하긴 도일씨가 경술대 총장실을 쓰레기로 뒤엎어 버렸을 때 성질 파악했죠. 아, 이 인간 성질 제대로구나. 저 그때 엄청 놀란 거 알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민폐였네요. 총장실을 자유롭게 드나들어야 했는데, 제가 막아버렸으니까요."

"흐흐, 도일씨가 그런 행동을 저질렀을 때는 이미 제 수사도 거의 끝 무렵이었거든요. 사실 빼먹을 게 더 이상 없어서 청수부 일을 관두려고 했을 찰나에 도일씨가 등장한 거였어요. 그런데 막상 총장실을 그렇게 뒤엎는 거 보니까 제 속도 엄청 시원했답니다. 묵힌 체증이 쑥 내려간 느낌?"

"다행이네요."

"아줌마들이 고생 많았을 텐데 휴게실도 생기고 청소용품도 전부 새것으로 바꿔주시고, 반자동 청소용품? 그것도 새로 들어오더라고요. 요구르트 아줌마처럼 운전하면서 청소하는 기계도 있던데요? 나름 재밌기도 했고."

"네."

그녀는 카페에 들어온 지 약 10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아메리카노를 거의 절반 이상을 마셔버렸다.

성질이 엄청나게 급한 게 보였다.

"그래서 같이 일을 해보자는 건 무슨 뜻이에요? 제가 도일씨가 마음에 들어서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일을 하자는 건 제가 이해하기 어렵네요."

화연씨가 먼저 본론을 띄웠다. 어젯밤에 통화했을 당시 같이 일해보자고 했었다.

"제가 여태 은행 경찰, 아파트 경비, 물류센터로 있으면서 한 가지 부족했던 점이 뭔지 아십니까?"

"...?"

"기소 권한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솔직히 저희 일이야 노동법을 따라서 검사 분들이 나설 일은 크게 없지만, 형사 사법처리할 수 있는 부분을 놓치고 간다는 게 아쉽잖아요. 믿을 만한 검사도 없고."

"저는 믿을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럼요, 제 직원이었잖아요?"

"흐흐 검사 믿으면 안 되는데. 도일씨는 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는 거예요?"

"화연씨도 저한테 비밀로 했던 것처럼 저도 언젠가 말씀드릴게요. 만약 제가 건수가 생기면 화연씨에게 넘겨드릴게요. 일을 함께해보자는 의미가 그런 뜻이에요."

"건수?"

"공익 제보를 검사가 무시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화연씨가 웃어댔다. 아마 일중독자인 그녀에게 좋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

그렇게 5분이 흘렀을 때 이미 화연씨의 커피는 동나고 있었다.

한 잔을 더 시켜줄 심상으로 물어봤으나, 그녀는 이미 볼일이 끝났다는 듯 자리를 정리하려는 눈치였다.

"이제 또 들어가시는 건가요?"

"일 마무리해야죠. 어제 일을 채 마무리 못하고 퇴근했거든요."

"제 여자 친구가 상담사거든요? 정신과 상담사인데, 상담받을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

"일중독자요."

"조만간 제가 커피 한잔 살게요. 저 진짜 늦었으니까요. 도일씨 오늘 즐거웠어요."

그녀는 정말 바쁜지 내게 인사를 한 뒤 급히 카페를 빠져나갔다.

내 직원이었는데, 아쉽다.

어쨌든 화연씨 같은 믿음직스러운 든든한 동료를 얻은 것 같아 뿌듯했다.

무슨 일이든 언젠가 또 만날 날이 오겠지.

* * *

[10년 일해도 최저임금 콜센터]

[콜센터 노동자 절반 죽고 싶다 생각한 적 있다.]

[콜센터 중간 착취, 해결 방법은?]

[부당한 대우 1등 알바 콜센터]

[화장실도 눈치 보나? 콜센터 알바를 해부한다.]

[우울증 직종 1위 콜센터]

[서서히 사라져가는 직종 1위 콜센터]

[AI시대, 이제 콜센터도 AI다.]

콜센터 관련된 기사를 찾아본바 이미 10년 전부터 불거진 일들이 현재까지도 아무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감정 노동자 보호법이 생긴 이래 고객들의 폭언이 사뭇 감소했다는 추세라고 하지만, 폭언을 하지 않더라도, 상담사들의 기를 죽이거나, 무시하거나, 조롱하며, 지능적으로 괴롭히는 고객은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에서 상담사들을 보호해주는 것도 아니다.

본사로부터 평가 점수를 좋게 받아야 하므로 상담사들의 고충을 묵살해버리는 게 일상다반사다.

비록 내가 콜센터 일을 얼마 하지 않았지만, 내가 느끼는바 그랬다.

이제 콜센터 일이 얼마나 구태의연하게 흘러가는지 확인이 끝났다.

어느 평범한 회사의 아침처럼, 콜센터 사무실은 본인의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헤드셋을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계획한 첫 번째 단계를 실행해야 했다.

그들에게 부당함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들이 어떤 계약을 맺었고, 중간에서 얼마나 착복을 당하며 일하는지 알려줘야만 했다.

그게 첫 번째 임무였다.

현준이의 눈빛은 차분하고 침착하며, 빛이 나고 있었다.

현준이와 내기를 통해서 소원권을 하나 획득한 바 있는데, 현준이에게 감정을 숨길 필요 없이 화가 나면 화나는 대로 행동해달라고 얘기했다.

쉽게 말해 깽판을 쳐달라는 주문.

그래서 현준이는 잔뜩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리고 업무 시작 약 10분 전, 2팀의 팀원들이 모여 부팀장을 중심으로 막간 회의를 시작했다.

이번에 인센티브를 4팀에서 먹었다는 것인데, 우리가 이번에 잘해서 꼭 인센티브를 먹어보자는 뜻으로 부팀장이 연신 동기부여를 해댔다.

그리고 부팀장은 현준이를 보며 아무리 신입이고 잘 모른다고 하지만, 어제 일처럼 절대 고객들과 말다툼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모르는 게 있으면 콜을 자신에게 돌리라고 말했다.

인센에 아주 미칠 듯이 집착하는 게 보였는데, 한 달에 가져가는 오만 원이 그들에게 그만큼 소중해 보였다.

내가 속해 있는 1팀도 마찬가지였다. 부팀장은 새로 온 나를 보며 아주 만족스러운 눈빛을 보냈는데, 아마 2팀의 신입 현준이같은 실수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업무 시작 5분을 남긴 시점에 나는 현준이와 담배 한 대를 태우기 위해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저 때문에 2팀 분위기가 아주 곱창 났네요."

"어차피 너는 오늘이 마지막 근무잖아."

"그러긴 한데..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괜히 제가 깽판만 치는 것 같아서."

"깽판? 무슨 깽판?"

"2팀 부팀장이 인센 하나에 매달리는 것 같은데, 저 때문에 이번 달 2팀이 인센 못 받으면 괜히 제가 민폐를 끼치는 거잖아요."

"현준아."

"네?"

"5만 원 먹겠다고 달려드는 게 더 웃기잖아. 저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상담사들이 마땅히 받아야 될 기본급을 중간에서 착복하고 그 돈으로 팀들끼리 경쟁을 시키는 게?"

"그러고 보니까...맞네요."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 내가 전부 책임질 테니까. 그러니까, 오늘 너는 마지막 근무라고 생각하고 제대로 뒤엎어. 네가 어시스트하면 내가 아주 제대로 골을 넣어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믿는다? 내가 널 강성으로 키운 거 헛되지 않게. 응?"

"믿어주십시오."

내 계획이 제대로 풀리기 위해서는 현준이가 제대로 뒤엎어줘야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월초가 돼서 그런지 카드발급 상담 및 포인트 상담이 엄청나게 많이 빗발쳤다.

그래서 점심시간도 미리 계획된 12시에서 1시로 미루어졌고, 이제는 다시 2시로 미뤄져 버렸다.

상담사들의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는 잠시 콜대기를 걸어두고 현준이를 바라봤다.

응..?

깽판을 칠거면 좀 빨리 치던가.

그는 계속 상담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 말을 못 알아들었나?

나는 현준이에게 깨톡을 보냈다.

[뭐하냐? 현준아.]

[오늘따라 고객들이 전부 친절해서요. 제가 깽판 칠 명분이 없어요.]

[야. 너 진짜 융통성이 왜 이렇게 없어?]

[네?]

[점심시간이 지금 12시가 훨씬 지났잖아. 지금 콜 대기 걸어놓고 주위 둘러봐.]

현준이가 이내 헤드셋을 내려놓고 상담사들을 둘러봤다.

배가 고픈지 연신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상담사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상담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현재 시각 오후 1시 30분.

현준이가 갑자기 자리에 일어났다.

나는 현준이의 행동을 호기심 짙은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현준이가 향한 곳은 두꺼비집.

그가 전원 버튼을 내려버리자, 일순간 사무실의 모든 전기가 꺼져버렸다.

일순간 모든 상담사들이 정전이 된 줄 알고 의자에 일어나 두리번거렸고,

팀장이 회의실에서 뛰쳐나와 상황을 살펴댔다.

"무슨 일이야? 정전이야?"

"아뇨 제가 껐습니다."

"뭐?"

일순간 팀장이 당황하여 말문이 막혀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상담사들이 이 광경을 아주 흥미롭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지금 무슨 말입니까! 당장 전원 올리세요!"

"싫은데요."

"올리라니까!"

"배고파서 못하겠다고요! 팀장님은 회의실에서 도시락 까먹는 거 뻔히 보이는데, 왜 우리만 점심시간을 놓쳐가면서 해야 하는 건가요."

"제가 먼저 밥을 먹는 건, 상담사들이 밥을 먹을 때 제가 콜을 받아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미리 먹는 거예요. 그리고 카드 업무 특성상 어쩔 수가 없어요. 회사원들이 문의가 많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콜이 밀린다고요. 황금 시간대를 놓치면 우리 회사가 당연히 실적에서 밀리게 되니까 불가피한 선택이라고요."

"회사 실적이 좋으면요?"

"네?"

"저희한테 돌아오는 게 있어요?"

"현준씨가 일을 얼마나 안 해봤는지, 사회 경험이 얼마나 없는지 여기서 티가 나네요. 회사일 처음 해보세요? 회사 이익이 전부 당신한테 돌아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말귀가 안 통하시네. 어쨌든 저는 여기서 더는 못 버티겠으니까 관두겠습니다."

"관둬요. 관둬! 어휴, 업무 파악도 한참 덜떨어지고 몇 번을 알려줘도 못 알아 처먹는데, 옆에서 아주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별 그지 같은 인간을 뽑아가지고."

"거지요?"

"네 거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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