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역시 대표님 같이 성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이런 최일고, 최일대 라인을 타야 한다니까요.”
나의 칭찬 질에 김한성 대표가 나름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죠. 일명 최일 라인이라고 하죠.”
“거기는 학폭 같은 거 없죠?”
“없죠. 그런 곳은. 학부모들도 원채 대단하신 분들이 많으니까요. 그런 일 생기면 난리 나죠.”
그리고 그는 이내 흥미가 떨어진 듯, 내 옆에 앉아 연신 밥을 축내고 있는 현준이를 보며 말했다.
“옆에는 몇 살이죠?”
“먹을 만큼 먹었습니다.”
“군대는 갔다 왔어요?”
“공익입니다.”
“아. 공익. 나는 면제라서 반갑네요.”
“흐흐.”
“옆에 계시는 도일씨는 사회생활에 많이 지쳐서 사회를 비관적으로 바라보시는 것 같은데, 우리 회사 인센 조건은 그렇게 까다로운 게 아녜요. 아시다시피 어느 회사나 기본급이 있고, 성과금이 있잖아요?”
“네. 알고 있습니다.”
“현준씨에 대해서 제가 팀장에게 조금 들은 게 있어서 말씀드리자면, 인센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다만, 기본급에는 충실하자는 거예요. 월급 괜히 받는 거 아니잖아요. 남들 하는 만큼만 해야 이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요.”
“물론이죠.”
“콜센터 일이 스트레스 많은 직종이고 감정 노동이긴 하지만, 적응 잘하고 재능 있고 수완 생기면 영업도 가능하고요, 월에 천만 원씩 가져가는 사람들도 간혹 있고요.”
“네.”
“뭐 진상고객들이나 스트레스 때문에 그만 두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그런 거 편견이라고 생각하고, 돈만 바라보세요. 돈. 그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잖아요?”
“맞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현준이와 김한성 대표가 대화를 할 때 내가 궁금한 게 있어 끼어들었다.
어떻게 회사를 설립했고, 대표가 됐는지, 궁금했다.
무례한 질문일 수 있으나 이미 내 캐릭터는 완전히 사회성이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놨기 때문에 김한성 대표는 그저 쓴웃음으로 일관하여 내게 답해줬다.
김한성 대표는 화승을 설립했을 때 나이가 30대 초반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가 일성은행 임원이었고 퇴직할 때 아웃소싱 기업을 차렸다고 한다.
“제가 능력이 뛰어나서 일성은행과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아버지 회사 물려받은 격입니다.”
“아..”
“하여튼 어려운 거 있으면 팀장에게 말씀하시고요.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식사들 하고 들어가시죠.”
“네.”
그가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정장을 챙겨 입고 나갔다.
그가 현준이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엄청나게 불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회사로 들어갔을 때, 우리는 팀장으로부터 깨지고야 말았다.
“제정신이세요?”
“...”
“당신들 때문에 인원을 어떻게 뽑았냐고 제가 욕먹었잖아요. 대체 무슨 질문을 했기에 대표님이 그렇게 화를 내시는 겁니까?”
“별 질문 안 했습니다. 워낙 대단하신 분 같아서요. 어떻게 회사를 차렸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참나. 그게 궁금하면 저한테 물어보지 그랬어요. 저희 대표님 성질 제대로 한번 돌면 저나 도일씨 서로 큰일 나는 거 아시죠?”
“...”
“휴우. 하여튼 이번 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니 넘어간다고 했으니까 다행인줄아세요. 도일씨가 사회성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니까...앞으로 대표님 뵐 날도 없을 거고.”
“네.”
내가 무리해서 대표의 이력을 물어보긴 했으나, 정보 하나는 얻었잖아?
‘일감 몰아주기’
일성 은행의 임원이었던 김한성의 아버지는 퇴직을 하고 아웃소싱 업체를 차렸다.
그 과정이 수의 계약이든 정당한 입찰 과정을 겪었든 일감몰아주기 정황이 보였다.
간혹 대기업 임원이 퇴사한 이후 하청업체를 차려서 일감을 몰아서 받는 경우는 허다하다.
으레 공기업이나 대기업의 관행이라곤 하지만 그 과정에 불법이 있었을 수도 있으니 이건 내가 아주 소중한 정보를 얻은 꼴이지.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원활한 상담을 위해 고객님의 생년월일 여섯 자리와 계좌 번호 및 비밀번호를 눌러주십시오."
-제가 그것까지는 몰라요. 저희 남편 카드라서요.
"고객님 그러면 혹시 옆에 남편분이 계시면 바꿔주시겠습니까?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쳐야만 상담이 가능합니다."
-제가 아내라니까요. 지금 남편은 출근하고 없어요. 카드 내역을 알려달라는 게 어려운 거 아니잖아요?
"고객님 제가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본인 확인을 해야만 상담할 수 있습니다."
-아내라니까요. 제가 몇 번을 얘기해요, 아내라고요 아내!
"우리 회사 지침에 따라서 본인이 아니면 카드 내역을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남편분의 동의를 얻으시면 가능합니다."
-제 남편은 지금 출근했다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지금 전화했겠죠?
"네 고객님, 그러시면 남편분이 전화 통화 가능하실 때 다시 상담 문의 하시면 카드 내역 관련해서 답변 드리겠습니다."
-아니! 아니! 아니! 제가 아내라고요 아내! 우리가 거기 VIP라고요. 여태 당신네들 회사 카드를 쓴 게 몇 년인데 이런 식으로 못 믿는 건가요?
"지침에 따라야 해서요. 어쩔 수 없습니다. 고객님."
-상담사님 이름이 김도일이라고 했죠?
"네 맞습니다."
-두고 봐요.
-뚝.
짜증나게 계속 지랄이네.
본인이 아니면 상담이 어렵다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집을 피워댔다.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바로 다음 콜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일성 카드 상담사 김도일이라고 합니다."
-저기요 제가 카드를 해지하려고 하는데, 포인트 쌓인 것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현금으로 출금할 수 있으며, 일성 카드 홈페이지에서 쇼핑몰 포인트로 사용할 수 있으십니다. 고객님."
-제가 지금 포인트를 한 삼만 포인트 정도 모았는데요. 혹시 다른 사람 카드로 옮길 수가 있나요?
"네. 직계가족인 경우 카드 포인트 이동은 가능하나 혹시 가족 분들이 일성카드를 이용하시나요?"
-아뇨. 가족이 아니라 제 여자 친구요.
"네? 죄송하지만 직계 가족이 아니라면 포인트 승계가 불가능하십니다. 고객님."
-그러면 제가 카드 해지하면 전부 사라지잖아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현금으로 출금 가능하며 쇼핑몰 포인트로 이용하시면 됩니다."
-제 여자 친구가 신일카드를 쓰거든요. 거기서 공연 예매를 하려고 하는데
"고객님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현금으로 출금하셔서 신일카드에서 예매하시면 됩니다. 고객님."
-아, 네 감사합니다.
-뚝.
하, 시발 뭔 병신들만 모아놨나.
내가 운이 좋은 건지 다행히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진상들은 만나지 않았다.
나름 할 만하다고 해야 할까?
카드 상담이라 할부이자, 포인트, 카드 발급 가능 유무, 포인트, 내역, 등에 관한 문의가 잦게 들어왔다.
컴퓨터에 실시간으로 뜨는 고객의 정보로 상담이 가능했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사무실 분위기는 먹구름이 낀 듯 우중충하기만 했다.
1년간 근무했던 직원 한명이 퇴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여기서 근속 일이 가장 길었던 최고참이었는데 퇴사한다고 하니 직원들의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 분위기가 그대로 사무실에서 느껴졌다.
퇴사하는 그녀는 2팀의 에이스였기 때문에 2팀에서 성과를 가장 많이 냈던 직원이었다.
그래서 2팀이 회사에서 인센티브를 가장 많이 가져갔다고 들었다.
이제 시간은 18시.
퇴근 준비를 하는 사원들이 퇴사를 하는 직원에게 다가가 포옹을 하거나 고생했다며 다음 회사는 더 좋은 곳으로 가라는 투로 말했다.
착취당하며 나가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참 안쓰럽기만 했다.
은행 본점에서 화승에게 1인당 인건비를 적어도 280만 원 정도로 계산한다면, 화승 업체에서 중간에서 가로채 가는 금액이 간접노무비를 제외해도 1인당 50만 원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하도급 계약서를 살펴봐야 내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을 정확히 알겠지만, 기본 시급부터 최저임금이라면 뭐 안 봐도 비디오지.
현재 내가 속해있는 화승 강남 지부의 사무실에는 총 4팀이 존재했는데, 내가 속한 곳이 1팀이었고, 현준이는 2팀으로 속해 있었다.
게 중에 가장 많은 콜수와 상위 업무평가 받은 팀에게 한 달에 30만 원을 준다고 하였으니, 한 명에게 돌아가는 인센은 약 한 달에 오만 원 정도,
이걸 받기 위해서 아득바득 콜만 받아낸다는 거다.
사원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금액을 가로채고 콜센터 상담사들끼리 경쟁을 시키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
퇴사하는 그녀가 직원들과 전부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눈 뒤 마지막 뒷정리를 시작했다.
버릴 건 다 버리고 가는 듯 그녀의 책상은 이제 모니터와 본체만이 남아 있었다.
"다들 고생들 하셨어요."
그녀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떠났다.
남은 사원들은 이제 팀장을 필두로 업무 평가를 하고 퇴근할 차례였다.
그때,
팀장이 몹시 화가 난 투로 사무실 단상에 서서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 회사가 전 분기만 해도 1등이었는데, 이번 분기는 3등으로 떨어졌어요. 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겁니까?"
"..."
현재 일성 은행으로부터 아웃소싱 받은 중간 업체는 약 일곱 업체.
그중에서 화승이 3등을 했다는 것이다. 전 분기 1등자리를 빼앗겼다는 것.
"경력자분들이 빠지고 있으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한 사원이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러자 팀장이 반박했다.
"경력자들이 있으나 없으나 콜수는 항상 비등비등했어요. 중요한 건 상담 품질이 저해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제가 지금 들려드리는 녹음은 경각심을 가지라는 뜻에서 틀어드리는 거니까,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팀장은 최근 있었던 상담 녹음 파일을 우리에게 틀어줬다.
굉장히 격앙된 고객의 목소리가 들렸고, 상담사는 역시 예상했던바, 현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좁은 사무실에 현준이와 고객의 상담 내용이 울려 퍼졌다.
-그따위 상담 마인드로 대체 뭐 하려고 하는 겁니까? 간단한 산수조차 제대로 못 하잖아요. 제 말이 틀렸어요?
-고객님, 대뜸 산수 문제를 내는 건 저희가 맡아야 될 업무가 아니라 서요.
-당신들이 카드사에서 근무하면 그 정도 산수는 할 줄 알아야 마땅하지, 그래서 테스트를 한번 해본 거라고요.
-상담하실 내용 더 없으시면 끊겠습니다.
-뚝.
일순간 상담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팀장이 우리들을 보며 말했다.
"들으셨죠? 고객님이 저희 상담원에게 산수 문제를 냈으면 친절하고 정확하게 맞춰주면 될 일이에요. 굳이 따져가며 할 필요는 없다는 거라고요. 고현준씨."
"네."
"이런 식으로 대처하시면 당연히 본사에서 컴플레인 들어올 텐데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너무 어이없잖아요. 막말로 여기가 수학 콜센터도 아니고."
"제 말 뜻을 이해 못하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객하고 말다툼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그냥, 네, 네 하고 안 되겠으면 저를 바꿔주면 될 일이라니까요."
"알겠습니다."
"다들 잘 들으세요. 앞으로 한 번만 더 고객님들하고 말다툼 일어나면 근로계약서 조항에 따라서 즉시 해고처분 하도록 하겠습니다. 본인이 잘못한 게 없더라도 ‘죄송합니다’ 한마디 하면 끝날 일을 어렵게 만들지 말자고요. 다들 아셨죠?"
"네."
* * *
현준이가 생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잔을 테이블 위에 탁 내려놓았다.
정주임과 오과장이 현준이의 몰골을 보며 웃어댔다.
"그러게 그럴 줄 알았어. 어떻게 첫날부터 그런 사고를 치냐?"
"다짜고짜 전화해서 본인 확인 안 하냐며 몰아붙이는데 그러면 어뜩합니까. 그래서 제가 본인 확인도 제대로 하고 카드 내역 전부 말해줬는데도 말투가 아니꼽다면서 학벌 운운하며 산수 문제를 내잖아요. 제가 어떻게 참아요?"
"그래도 대표님도 참으면서 하시는데, 좀 참지 그랬냐. 쪽팔리게."
"으악 열 받아!"
"현준이 말이 맞아. 상대방이 본인 감정에 못 이겨서 현준이한테 막말한 거야. 그런데 이게 죄송한 일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죄송하다고 말을 하고 끊어야 한다는 게 웃긴 거지. 뭐 어쩔 수 없는 감정노동이라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너무 하잖아?"
"..."
"그리고 현준아 한 번만 더 진상 고객들 만나면 넘기지 말고 화끈하게 질러버려라."
"네?"
"너는 그래도 돌아갈 곳이라도 있잖아."
"..."
"여기 사람들은 돌아갈 곳이 없어. 그러니까 네가 제대로 보여줘. 잘려도 좋으니까."
"알겠습니다. 이게 소원인가요?"
"그래, 소원으로 치자."
이내 현준이의 입가에 미소가 퍼졌다.
그때 정주임이 내게 서류를 건넸다. 일성 은행과 하청 계약된 콜센터 회사 목록이었다.
"대표님께서 요청하신 자료예요. 최근 1년간 일성은행하고 계약한 아웃소싱 콜센터 업체예요."
"땡큐."
"현재 대표님께서 근무하고 계시는 화승 건물은 총 5층의 건물이며 매매 금액은 약 120억 원이고, 임대 수익은 연 4%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건물은 왜..?"
"그냥 궁금해서."
물론 사버릴 작정이었다. 부동산 임대 수익률 4%면 꽤 괜찮은 곳이다. 연 4억 정도의 이익을 얻을 수가 있었다.
"대표님."
정주임이 내게 말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내용을 말하려는 투로 목소리를 내리 낮게 깔았다.
"이번에 경술대학교 계약 해지되면서 미화 직원들 전부 나눠서 GN아파트, 광성고, 은행으로 보냈는데요. 화연씨 있지 않습니까."
"알아. 왜? 저번에 그만둔다고 했잖아. 문제 있어?"
경술대학교에서 청소부로 근무했던 학벌 좋은 화연씨가 이번에 청소부 일을 그만둔다고 했었다. 그런데 뭔가 일이 많이 꼬였나보다. 정주임이 말했다.
"아뇨. 문제라기보다는 정말 이상해요. 어제 아침에 한 번 들리셨는데, 급여를 전부 반납하셨어요."
"뭐!"
순간 마시던 맥주를 뿜을 뻔했다. 급여를 반납한다니, 그러면 여태 왜 일을 했던 거야?
"무슨 말이야 그게, 급여를 왜 반납해?"
"그래서 저도 물어봤죠. 대체 왜 급여를 반납 하냐고, 그랬더니 짧게 대답하셨어요."
"뭐라고?"
"본인은 겸직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겸직? 그러면 투잡을 뛰고 있었던 거야?"
"그렇겠죠? 그래서 무슨 일을 하고 있냐고 그랬더니 대답을 안 해주시더라고요. 회사 지출로 전부 잡아놨던 금액이라 화연씨에게 돌려받은 480만 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알았어. 일단 내가 통화 한번 해볼게. 화연씨 전화번호 아는 사람?"
이제 궁금증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왜 급여를 다 반납하면서 까지 겸직을 했는지, 물어보고자 했다.
홀로 호프집을 빠져나와 화연 씨에게 전화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전화를 받을지는 모르겠으나,
몇 번의 전화 울림 끝에 화연씨가 피곤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