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 (106/200)

최일 고등학교 다섯 가해자 중 한 명.

"이 인간을 이렇게 만나네."

그녀의 병을 낫게 해주고 싶었다.

"제가 처음 아내 아프다고 해서 직장에 한 번 데리러 가봤다가 호기심에 한번 슥 봤거든요? 사실 콜센터라고 해서 사무실은 크게 기대도 안 했는데, 와아, 완전 닭장이더라고요 닭장."

휴먼매니저 사무실은 연신 콜센터 아웃소싱 관련된 이야기만 쏟아져 나왔다.

오과장도 그럴 것이, 아내가 콜센터 일을 하다 우울증을 겪었다고 했으니, 어찌 보면 고발하고 싶은 내용이 많아 보였다.

"그러면 20평 남짓한 사무실에 정말 틈도 없이 사무 책상을 만들어다가 콜을 받는 거네?"

"그렇죠."

"하루에 8시간 근무?"

"보통 그래요. 그런데 아시잖습니까. 회사 일 하면서 밥 먹는 시간 제외하고 어떻게 온종일 앉아서 일만 합니까? 화장실 좀 갔다 오는 거고 커피 한잔도 타서 일하는 건데, 이놈의 회사는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한다니까요."

"흐흠."

오과장이 아주 열이 뻗치는 것 같은지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그런데 제가 더 열 받는 건 뭔지 아세요? 중간업체에서 대체 얼마나 떼먹는지 한 달에 월급이 180만 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회사 대표한테 가서 대신 따졌더니, 원청에서 320만 원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중간에 100만 원 이상을?"

"그렇죠. 그런데 대표는 나름 선심이랍시고, 인센티브라며 던져주는데, 결국 아내가 받아야 할 돈을 생색내며 주는 거죠."

영악한 수법이다.

중간 착복을 한 돈으로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과 실적을 쌓기 위해 인센티브 제도를 만든 것 같았다.

"화승같은 곳 말고 좋은 회사들도 있겠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사무실 주소가 어디야?"

"...?"

"내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서."

"알바 사이트에 나올 겁니다."

오과장은 이내 알바사이트를 뒤지며 해당 회사를 찾았다.

그가 불러준 사이트를 검색하여 들어가니, 첫째로 보이는 것은 ‘정규직 전환 가능’이라는 문구였으며, 통신사, 은행, 공기업, 등 많은 분야에서 콜센터 아웃소싱을 계약 맺고 있었다.

도급사 소속이 본사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는 문구를 보고 실소를 뿜었다.

물론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가능은 하다.

도급사 직원을 퇴사한 뒤 다시 정규직 본사 면접을 통해 정규직으로 입사하면 된다.

방법은 그것 하나,

그런데 도급사 소속 인원이 실적이 좋아서 본사 정규직으로 간다?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근무조건 관련하여 세부 사항을 살폈다.

우수 사원은 해외 연수, 인센티브, 승진 기회, 등 무슨 복지 혜택이 주렁주렁 달려있었으나, 실제 오과장에게 들어본바 이루어지는 게 거의 없다고 했다.

게다가 원청에서 320만원을 받으면서도 근로자에게 180만 원을 주는 것은, 어찌 보면 근로자가 마땅히 받아야 될 돈으로 생색을 내가며 인센을 주는 꼴이다.

법이 바뀌어서 이 부분이 개선 돼야 함에도 수십 년 째 제자리다.

원청에서 얼마를 받고, 몇 퍼센트를 중간에서 가져가는지 근로자에게 공개해야 마땅하다.

답답할 노릇이다.

오과장의 말마따나 사람을 닭장에 가둬놓고 영혼을 뽑아 먹는 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

닭은 알을 낳고, 사람은 멘탈을 내놓고.

"여기 지원 한번 해봐야겠다."

잠입 취재라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화승은 최일 고등학교 다섯 가해자 중 한 명이 대표로 있는 곳이다.

‘김한성’

"대표님이요? 거기를 왜 갑자기..?"

"잠입이라고 해야 할까? 현준아!"

"네 대표님!"

"너 예전에 내가 알바할 수도 있다고 한 거 기억나지?"

"그럼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자 지원 같이 넣자고."

"넵!"

현준이와 나는 해당 회사의 번호로 연락하여 알바사이트에 기재된 지원 양식을 토대로 문자 지원을 넣었다.

이력서 지원이 아닌 문자 지원이라 이름과 나이 주소, 경력 유무, 장애 유무 등을 작성하여 보냈고,

몇 분 만에 문자가 날아왔다.

[오늘 면접 가능하신 가요?]

[그럼요^^]

* * *

건물은 영세한 빌딩의 꼭대기 층이었고, 20평정도 되는 사무실에 정말 오과장 말마따나 사무책상이 닭장마냥 붙어 있었다.

피라미드 회사를 방불케 하는 사무실 현수막에는 ‘최선을 다해 고객을 응대하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고,

나와 현준이는 팀장이 올 때까지 그저 멀뚱히 앉아 구경을 해댔다.

콜센터 사무실답게 목소리가 굉장히 많이 들렸다.

누가 누군지 모를 목소리가 뒤섞여 마치 시장처럼 정신이 없었는데, 실제 업무를 보는 상담사들은 헤드셋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소음이 들리지 않으니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면접관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현준이와 나에게 다가왔고 우리는 회의실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나는 준비된 이력서를 사무실 팀장에게 건넸다.

"콜센터 경력이 없으시네요?"

"네."

"알바 생각은 몇 달 하실 생각이세요?"

"모르겠네요. 제가 생활비가 없어서요."

"오래?"

"네."

"평소 말은 잘하세요?"

"그럼요."

"말을 잘 해야 돼요. 우리 사무실은 아웃바운드가 아니라 인바운드거든요. 은행 고객들을 직접 상대해야 돼요."

그러더니 그가 내게 건네준 종이에는 몇 가지 대사가 쓰여 있었는데, 팀장은 그것을 읽어보라며 말했다.

나는 대본집에 쓰인 그대로 읽었고 팀장은 나름 흡족하다는 투로 말했다.

"콜센터 전화해본 경험 있을 거 아녜요."

"네."

"굉장히 친절하고 착하죠? 그런데 그게 그냥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공부해야 돼요. 검색할 시간도 없어요. 바로 질문에 답이 나올 정도로 업무 숙지를 하고 있어야만 해요."

"네. 그 정도는 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는 석 달의 수습기간이 있다며 내게 빨리 일을 배우라고 했다.

"수습 기간의 월급은 어떻게 됩니까?"

"석 달 수습기간 동안 기본급의 70% 들어갈 겁니다."

실제 법적으로 90%다.

20%는 팀장 입으로 꿀꺽하겠다는 뜻인데, 나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일단 합격이 우선이니까.

따지고 들면 불합격당하겠지?

면접이 끝나자 팀장은 현준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젊으시네?"

"네."

"말을 좀 잘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

"그럼요."

"제가 따로 연락드릴 테니까 오늘은 일단 들어가세요."

"...?"

현준이의 입이 대빨 나와버렸다.

뭐 이력서도 볼 것도 없이 아웃인 것 같았다. 아니면 인력을 한 명만 뽑는 건가?

이미 팀장은 나를 점찍어 둔 것 같았고 현준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현준이는 그게 아주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저도 대본 주시면 잘 읽어볼 수 있습니다."

현준이가 팀장에게 적극적으로 본인 근무 의지를 피력했다.

팀장은 피식 웃으며 현준이에게 대본을 건넸다.

뭐, 솔직히 잘했고 못 했고 떠나서 입만 뚫리면 가능한 수준인데, 팀장은 현준이의 목소리를 꽤 심각하게 듣고 있었다.

"목소리가 둔탁하네요?"

"네?"

"안 좋은데. 발음 뭉개지고."

"아."

"일단 오늘 두 분 고생하셨고요. 제가 오늘 저녁 6시 전에 합격 여부 문자 넣어드릴게요."

팀장은 우리를 돌려보냈고 나와 현준이는 사무실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현준이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본인이 이런 알바자리를 떨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

"저 불합격 한 것 같습니다."

"아냐, 합격이야."

"네?"

"내기할까?"

"분명히 팀장이 저한테 목소리가 두껍다고 했는데요. 그리고 저를 보는 태도부터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크크. 원래 좀 얕잡아 보이니까 그런 거겠지. 뭘 기대했어? 그럼 나는 네가 합격한다해 걸고, 너는 불합격에 거는 거다?"

"알겠습니다."

"이기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

시간이 조금 남은 덕에 현준이와 나는 다시 회사로 향했다.

직원들에게 면접 얘기를 해주며 현준이가 콜센터 알바에 탈락할 수도 있다고 얘기하니 정주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당연한 듯이 얘길 했다.

"쟤는 여기 아니면 아무도 받아주는 곳 없을 거예요."

"미쳤어?‘

정주임이 비웃음으로 말하자, 현준이가 삐진 듯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뼈를 묻으라고, 무슨 망령이 끼어서 퇴사해서 딴 일 알아보지 말고. 알았냐? 꼬맹아?"

"지도 마찬가지면서."

정주임과 현준이가 티격태격하는 것을 틈타 나는 오과장을 이끌고 옥상으로 향했다.

오과장은 현재 아내가 우울증에 걸린 탓에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요즘 우울증은 감기처럼 흔하잖아.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쾌차할 거다."

"네. 대표님. 감사합니다."

오과장의 표정이 무겁기만 보였다. 처가에 아이들을 맡겼다고 할지라도, 아내의 빈자리는 큰 법이다.

"우울증 환자는 면회가 가능하지?"

"폐쇄병동 입원은 아닙니다."

"가자."

"어디를 말씀이십니까?"

"제수씨 보러 가자고. 우리 직원 가족이면 내 가족인데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아..그렇게..까지."

"얼른."

"네."

차를 타고 오과장의 아내가 입원한 정신 병원으로 향했고,

면회를 통해 제수씨를 만날 수 있었다.

눈은 멍했고, 피부는 수척했고, 굉장히 행동이 느릿느릿하여 정상인 같아 보이진 않았다.

오과장은 약기운이 강한 탓에 매일 하루 12시간 이상 잠을 잔다고 했다.

환자복을 입은 그녀가 대뜸 내 손을 잡으며 말했고, 순간 오과장이 당황하였다.

"고마워요. 우리 남편 신경 써줘서."

"...아닙니다."

제수씨가 내 손을 잡으며 감사의 표시를 했다.

"우리 남편이 예전 직장에서는 많이 방황했거든요. 그런데 대표님 만나서 다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았어요."

"원체 일을 잘하고 사람 보는 눈도 좋거든요. 직원들 관리도 잘해요. 저도 오과장에게 많이 배웁니다."

오과장의 눈시울이 다소 붉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아내가 부언했다.

"예전 회사 다닐 때도 대표님 얘기를 많이 했어요. 언젠가 대표님하고 일을 하고 싶다고.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제 좀 잘 살 것 같은데 결국은 제가 이런 꼴이 돼버렸네요."

"얼른 쾌차하셔야죠."

"네."

무슨 위로의 말을 건넬지 몰랐다.

우울증 환자를 처음 대면하는 것도 그랬고, 그녀의 말투가 굉장히 느릿느릿한 탓에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오과장이 말했다.

"이번에 네 회사 들어갈 거야."

"뭐?"

"그러니까 어떤 부당한 대우를 당했고 무슨 일을 겪었는지 지금 전부 얘기해줘. 대표님에게."

"..."

아내는 한 몇 분 입을 머뭇거렸다.

나는 제수씨가 입을 열 때까지 참고 기다렸고, 조금씩 말문이 열렸다.

"블랙리스트 고객을 어느 날부터 전담하게 됐어요."

"그게 무슨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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