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 (103/200)

학교장이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일순간 강당의 학생들이 조용해졌다.

나는 교단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교장이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들께서는 이사회 회의록을 학생들에게 교부해주시기 바랍니다."

교사들이 일제히 회의록을 학생들에게 뿌렸고, 강단에 앉은 기관장과 교육감 후보들도 회의록을 전달 받았다.

교부된 이사회 회의록은 어제 있었던 이사회 회의 결과였다.

학교 폭력을 당했던 최해랑이 어떻게, 왜 ,무슨 이유로 그런 일을 겪어야만 했는지 구체적으로 담겨있었다.

"교부된 이사회 회의록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최영성 이사장의 손과 발이 벌벌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제 스스로 단두대를 만들고 단두대에 모가지를 들이미는 짓을 하고 있으니,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회의록을 읽고 있던 교육감 후보들이 연신 분노를 표하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이따위 짓을 눈감아준 선생이 누구냐며 고함을 지르기도 하며 파격적인 쇼를 보인 후보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사진기자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학생들도 마찬가지, 회의록에 담긴 내용을 보며 소란이 잦아들지 않았다.

물고문하고, 대리숙제 시키고, 심부름시키며 체육관에 불러 집단 폭행을 했던 내용들이 상세하게 기재됐으니 학생들도 놀랄 수밖에.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이런 잔인한 얘기를 왜 갑자기 꺼내 들었냐며 따지기 시작했고, 가시방석에 앉은 이사장은 이내 자진해서 교단으로 향했다.

"제가 묵인했던 일입니다."

일순간 이사장의 고백에 웅성거림이 단번에 잦아들며 이목이 쏠렸다.

"제가 당시 담임이었으며 학교 폭력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묵인하며 자행되도록 방치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꽤 충격적인 반응들이었다.

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않았고, 분위기는 마치 초상집과 같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나설 차례였다.

나는 이사장이 위치한 교단 바로 앞으로 향했고 단상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그랬나요?"

"부모들의 권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저는 학교 폭력을 묵인했습니다. 학교 폭력을 주도했던 가해자들도 저의 무너진 권위를 이용해 폭력을 저질렀습니다."

"가해자들이 누굽니까."

"박동수, 최재철, 김한성, 최여진, 김세리입니다. 총 다섯 명입니다."

"재발 방지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기록부에 기록해야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현 시간부로 학폭을 행한 가해자들의 생기부에 학폭 내용을 모두 기록하겠습니다. 관련된 자료는 회의록 마지막 페이지를 보시면 될 겁니다. 이미 이사회에서 결정 난 부분입니다."

"야이 씨벌놈아!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이 개새끼야!"

삼촌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이사장에게 욕을 내뱉었다.

이사장은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고, 삼촌은 의자를 집어 들어 분노에 휩싸여 교단에 집어 던졌다.

의자는 이리저리 굴러 교육감 후보들이 있는 곳까지 향했고, 이리저리 몸을 피했다.

"뭐야 저 새끼 당장 끌어내!"

때마침 학교장이 소릴 쳤으나, 내가 막아섰다.

"학교폭력 피해자 가족입니다. 내버려 두시죠."

"당신은 뭐야!"

"저도 가족이거든요."

내 말을 듣던 삼촌이 다소 얌전해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사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사장님."

"..."

"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있기 때문에 가해자 학생들을 처벌할 수는 없는거죠?"

"맞습니다."

"그런데 이사장님은 무슨 책임을 지렵니까?"

"..."

"당신이 교사로서 의무를 저버린 거, 제가 알기론 의무에는 공소시효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

"당시 학폭을 알고 있었음에도 알리지 않은 이사장님도 책임을 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

"학교폭력은 여전하고 선생들의 권위는 땅에 추락했습니다. 당신이 교직에 선 순간부터 현재까지 변한 건 없습니다. 이제 그 자리는 내려놓으시죠."

최영성 이사장이 고개 떨구며 직고했다.

* * *

난 최일 재단 같이 돈만 밝히는 재단법인에 단 한 푼도 쓸 생각이 없다.

물론 최일 재단을 내가 꿀꺽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투자 퀘스트를 깨기 위한 목적이라지만 돈을 쓰더라도 좋은 데 써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회견은 삽시간에 끝났고 이사장은 이사회를 거쳐 이사장직을 내려놓기로 했다.

물론 가해자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제 발로 단두대에 걸어 들어올 인간은 없겠지. 그래도 성과라면 변화의 길을 모색했다는 것.

나는 앞으로 이 다섯 명의 이름을 머릿속에 지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박동수, 최재철, 김한성, 최여진, 김세리

언젠가 만나면 다 뒤졌어.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은 내 모교 일반사립 광성고등학교다.

부실 재단으로 손꼽히며 현재 재단이 학교에 납부해야 할 법인납부금도 제로인 상태.

이 정도 수준이면.

내가 학교를 가꿔볼 수 있지.

이사장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요즘 사학법인 외부 재원 유치가 힘든 거 알고 있는데요. 학교에 부담해야할 법정부담금이 현재 1억이 넘는데, 이거 너무 부실한 거 아닙니까? 교육청에서 가만히 있어요? 국가 세금으로 줄줄이 빠져나가는데."

"아시잖습니까. 요즘 사학재단도 너무 어려운 상황이에요. 법인으로 묶인 모든 부동산들 경매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렵죠. 아주 어렵죠. 이사장님도 어떻게든 재단 살려보려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

"이사장님처럼 양심 있는 분들 없거든요. 어차피 국가에서 내주는 세금으로 학교 운영하면 그만인데. 안 그래요?"

"맞습니다."

"좋은 학교인 것 같은데, 더 좋은 학교로 만들어볼 생각 이 있다면, 제 손 잡았으면 하는데요."

"..."

"저희 회사가 재단 관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

"현재 법인으로 묶여 있는 재단 재산들 전부 우리 회사가 사겠습니다. 이제 그만 편하게 쉬시죠. 제가 명예 이사 직위는 남겨드리겠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갑자기.."

"학교가 변한 게 없잖아요? 뭐, 적당히 투자도 할겸."

이유 불문 퇴학입니다.

오랜만에 휴먼매니저 사원들과 식당에 들렀다. 점심은 회사 직원들과 한 끼 하고 싶었다.

김치찌개가 자글자글 끓고 있었고 배가 고픈 나머지 허겁지겁 밥을 먹어댔다.

정주임이 내가 밥 먹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대표님 대체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시는 거죠?"

"일이 바빠서 그래. 워킹휴먼 때도 천사장이 회사에 들어온 적 있었냐?"

"거의 없었죠."

"그러니까 그런 줄 알아."

사원들은 내가 허겁지겁 밥을 먹는 모습을 걱정된 눈빛으로 바라봤다.

며칠 최일고등학교와 광성고등학교를 들락거리며 일을 처리하느라 휴먼매니저를 거의 들리지 못했었다.

그렇게 한 공기를 뚝딱하고 오과장이 내게 사이다 한잔을 건넸다.

"체하겠어요. 천천히 드세요."

"땡큐."

시원하게 사이다 한잔을 마셨다. 오과장이 최일고와 관련된 조사 내용을 내게 말했다.

"현재 태성 그룹 계열사 중에 태성 알루미늄이란 회사에서 80억 정도 출연했습니다. 지배구조를 살펴보니까 태성 그룹의 대주주는.."

"됐어."

"네?"

"미리 말을 못 해줘서 미안한데, 이제 알아볼 필요 없어."

-꿀꺽꿀꺽

최일고등학교 최영성 이사장은 이사회 회의를 통해서 자진해서 사퇴했다.

17년 전 사건, 선생으로서 의무를 저버린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 이사장 자리는 공석으로 두라고 지시 했다.

말을 아주 잘 들었다.

이사장은 내 권위에 충성하는 인간이니까.

"그러면 여태 제가 알아본 건.."

"회사일 하루 이틀 해?"

"엎어진 거죠?"

"아니. 다른 일이 생겼거든."

그리고 최해랑의 삼촌과 약속한바 언젠가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약속이었다.

최해랑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해자 다섯 명,

박동수, 최재철, 김한성, 최여진, 김세리, 언젠가 사회에서 마주칠 인간들이다.

특히 박동수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인간이다.

최재철은 현재 공무원으로 해외주재원으로 근무 중이라고 했고, 나머지 자영업, 주부, 회사원이었다.

한 사람을 죽음에 몰아넣고 떵떵거리며 아무 일 없이 사는 이 인간들의 정의 구현은 언젠가 실행하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내가 최일고를 대신하여 선택한 곳이 내 모교 광성고등학교였다.

"최일고 대신 광성고등학교를 먹었어."

"네에?"

최일고는 부자학교라 투자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부잣집 도련님들이 누릴 만큼 누리고 있는 학교에서 뭘 더 하나,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알아봤으나, 전액 입학 장학제도는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부자들만 가는 학교다.

"광성고등학교를 먹었다는 말씀입니까? 대체 무슨 학교입니까?"

"내 모교."

"모교요?"

"똥통이야. 시설도 구리고, 동네도 구려."

최일고등학교와 반대로 내 모교 광성고등학교는 쉽게 말해 실제 똥통 학교다.

학생들이 똥통이라는 뜻이 아닌, 실제 시설과 설비가 굉장히 낙후되고 오래된 학교다.

학생 때는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시설이 낙후됐던 설비가 개판이든 간에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학창 시절을 지냈는데,

막상 최일고와 광성고를 비교하자니 그 차이가 매우 확연히 드러났다.

"그러면 우리 회사가 광성고 재단을 흡수한 겁니까?"

"왜 싫냐?"

"아뇨. 신기해서요."

"재밌을 거다."

"그러면 거기 학교는 어디 있는 곳입니까?"

"서울에서도 좀 낙후된 지역이긴 한데, 지금 재개발 진행하고 있더라고. 과양동이라고 아냐?"

문제는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 주위의 동네도 그러했다.

내가 학교에 다녔을 17년 전만해도 학생들 사이에서 빈부격차가 전혀 없었다. 적어도 내 주위 친구들 전부 못살았다.

주위 판자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지금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니까 재단 법인 초대 이사장 꽤 유명하신 분이네요?"

"어. 옛날에 70년전에 설립한 이사장은 유명했지. 전재산 탈탈 털어서 만든 학교니까"

"아.."

학교 재단법인도 굉장히 가난했다.

부동산이 있었으나 자세히 뜯어보니 수익성이 거의 없는 임야 부지였다.

쉽게 말해 조상 땅을 법인 재산으로 묶어둔 꼴.

합해봐야 총 2억인데 임야 부지를 누가 2억 주고 사겠는가, 결국 세금만 내고 있던 땅이었다.

그래서 광성고등학교의 재단법인이 소유한 부동산을 매매하여 휴먼 매니저 법인으로 돌렸다.

언젠가 땅을 쓸 목적이 있다면 용도 변경 하며 건물이나 짓지 뭐.

"그럼 거기 이사장님 자리는 대표님이 들어가는 겁니까?"

"아니."

광성고등학교 이사장은 명예 이사직으로 남기로 했고, 이사장 직위는 공석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순전히 내 판단이었다.

이사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한 월권을 없애고 싶었고, 막대한 월급을 이사장에게 줘가며 둘 필요가 없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그 돈으로 학생들 장학금 주는 게 더 이득이다.

물론 최일고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사장이 권력을 잘못 휘두르면 학교장과 선생들만 피곤하니까.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

사원들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고, 나는 광성고등학교로 향했다.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뒷골목에서 돈을 빼앗는 불량학생들을 처리해야지?

* * *

광성고등학교의 복도를 거닐던 중 익숙한 얼굴의 선생님을 마주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