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나세요?"
"..."
이사장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명찰을 급히 책상에 내려놓더니, 갑자기 누군가한테 급히 전화하려 했다.
나는 급히 그의 손을 뿌리쳤고, 이사장의 스마트폰이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지금 제가 묻지 않습니까."
"모르는 사람입니다."
"모른다? 그때 당시 고인이 되신 최해랑씨는 당신이 자부하는 학교에서 전교 1,2등을 다투던 분인데, 그걸 기억 못 한다고요?"
"저는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따듯한 차 한 잔을 들고 창가로 향했다. 몇몇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평화롭기만 했다.
나는 차 한 잔을 마신 뒤 찻잔을 창가에 내려놓고 그를 바라봤다.
"그럼 기억나게 해드릴게요."
"...!"
제가 가진 권위에 복종을 시켜야 돼서요.
"그럼 기억나게 해드릴게요."
이사장이 도리어 나를 바라보며 목청을 높였다.
"대표님, 저희가 그 부분을 알고 있었으면 왜 여태껏 진상규명을 하지 않고 방치해뒀겠습니까!"
"..."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최해랑이란 학생도 기억이 나질 않고! 그때의 사건이 있었는지도 전혀 모른다 말입니다."
이사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이사장의 말마따나 그가 정말 기억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시 교사였던 그가 한 학생의 폭력과 무관할 수 있었고, 전혀 개입을 하지 않았을 경우도 있다.
권력자에 대한 편견일수도 있는 거고.
지금 내 앞에 앉은 최영성이의 표정이 마치 그러했다.
학교 폭력이 왜 학교의 책임인지, 묵인했다면 왜 묵인했고, 가담을 했다면 어떻게 가담했는지 구체적으로 들어본 바가 없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피해자 삼촌은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묵인했다고 하며 그들이 가해자라며 소릴 쳤었다.
나는 피해자 삼촌을 만났을 당시 그가 얘기했던 부분을 다시 되뇌었다.
‘그 씹새끼들이 내 조카를 죽인 거라니까. 그 개새끼들이.’
‘세상에 우리 같은 인간 한둘인 줄 알아? 원래 돈 없고 가난하면 이런 식으로 사는 거야.’
삼촌이 말했던 그 씹새끼들은 학교폭력을 주동하여 조카를 죽인 새끼들이다.
그리고 본인이 가난하고 힘이 없으니 가해자들은 떵떵거리며 산다는 뜻으로 말했었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학교는 묵인했다는 것이 삼촌의 뜻이었다.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만 판단하기로 했다.
최고 수준의 교육과정과 부자들만 다닌다는 학교에서 전교 1,2등을 다투는 학생의 학교폭력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최영성 이사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데에 무게를 싣고 그를 몰아붙여 보기로 했다.
만약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괘씸죄를 부여할 작정이다.
"솔직히 말씀해주시죠. 피해자 학생의 어머님은 현재도 고통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지고한 학교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가해자들 색출해서 당연히 처벌 했겠죠."
"이사장님."
"말씀하시죠."
"제가 최일 재단에 기부하고자 하는 것은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과거를 제대로 잡지 않고 미래만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일 아닙니까."
"..."
"이사장님께서 몰랐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때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쨌든 진상은 밝혀져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사장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그가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안 됩니다."
"..."
"학교 이미지가 실추되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제 말을 이해 못하시는 겁니까? 당시 학교 폭력이 발생한 부분의 진상을 파악하는 건 학교에서 나서야만 할 수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학생들의 소음이 이사장실 내부로 들렸다.
"학생들 앞에서 한 치의 부끄럼도 없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
"대표님께서 17년 전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신 연유가 무엇이든 심히 유감입니다. 학생들이 즐겁게 운동하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저 목소리들이 미래입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나아가야지 않겠습니까."
"..."
"대표님께서 출자하시겠다고 했던 것은 저희도 사양토록 하겠습니다. 젊은 대표님께서 그래도 뜻이 깊은 줄 알았는데, 참 아쉽게 됐네요. 이만 정리하시죠."
이사장이 자리를 정리하여 중역 소파의 상석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이사장님."
"...?"
"제가 사람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저를 믿고 따르는 직원들이 있고, 제가 믿는 사람도 있어서요. 오히려 사람을 매우 잘 믿는 편이죠. 그런데 간혹 회의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
"이사장님은 권위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사장님 정도 나이면 나름 권위에 대해 생각해본바가 있을 거 아닙니까."
"힘이라고 할 수 있죠. 그 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권력의 노예가 되는 것이고, 권위의 복종에 도취하게 되면 악인이 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이사장님은 그 힘을 제대로 쓰고 있다고 보십니까?"
"물론입니다."
「설득스킬을 발현 합니다.」
「LV2 SKILL 권위에 대한 복종
-상대방이 김도일님의 권위에 복종합니다.
스킬을 발현시켰다. 설득 LV2 스킬은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는 스킬이었다.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편한 길을 두고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사장님."
"...?"
스킬 발현이 아직 되지 않은 것일까. 이사장은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초점 잃은 눈을 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똑똑!
-이사장님? 괜찮으세요?
이사장실의 문을 잠가버린 탓에 이사들이 문을 두드리며 상황을 살펴댔다.
내 마음도 서서히 더 급해지고 있었다.
"이사장님."
"네. 말씀하시죠."
"이사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권위가 힘이라면, 제 말을 믿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
이사장의 표정이 조금씩 뭔가 깨달아가고 있는 듯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그러더니 마치 광명을 발견한 듯 환해지고 있었다.
스킬 발현이 제대로 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최해랑의 교내 학교폭력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네."
여태 거짓말을? 괘씸죄 추가다.
-똑똑!
-이사장님? 안에 계시는 거 맞죠?
"이사장님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작성해줬으면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학교폭력에 가담한 학생들과 당시 이사장님은 교사였으면서 왜 사건을 묵인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요."
"네."
-쾅! 쾅!
-문 좀 열어요!
이사진들의 압박이 서서히 강해지고 있었다. 나도 내 권위를 이용하여 이사장을 더 거세게 압박해야만 했다.
"그리고 대강당에 위치한 곳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최해랑 학교 폭력 진상 규명을 열었으면 합니다."
"네."
"그때 당시 학교폭력에 가담했던 모든 인원들도 초대했으면 하고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물론 없는 얘기를 거짓으로 지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권위 앞에 겁먹지 않으셔도 되니 진실만 작성하시면 됩니다."
권위에 대한 복종.
최영성 이사장은 그저 내 말을 듣고 단 한 번의 반박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사회 정족수가 어떻게 됩니까?"
"이사 및 감사 포함하여 총 5명입니다."
"이사장님 홀로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이참에 이사회 회의를 개최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쾅! 쾅!
-문 좀 열라니까! 이사장님! 괜찮으신가요.
-문을 부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사들은 문을 부수려는 작정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가능하십니까?"
"정족수를 채웠으니 이사장으로서 충분히 가능합니다."
됐다.
이제 내가 바라는 부분을 모두 이사장에게 말했고 승낙을 얻었다.
그리고 나는 이사장실의 문을 열었다.
"아빠 괜찮아?"
딸은 급히 아버지에게 달려가 살폈으나, 최영성 이사장은 이미 넋이 나간 상태로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이사장의 딸은 나를 보며 눈을 치켜세웠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17년 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진상을 좀 파악해달라고 얘기한 게 전부입니다."
"뭐?"
"최영성 이사장이 자부하는 학교에서 왜 학교폭력이 발생했고 한 학생이 자퇴를 했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진실을 밝혀보고 싶어서요."
"미친 새끼 아니야! 갑자기 지난 일을 왜 꺼내고 지랄이냐고! 아빠 저 미친놈 그냥 사기꾼이라니까. 딱 봐도 어린놈 새끼가 말하는 버릇부터 막 돼먹었잖아. 그냥 돌려보내. 응?"
딸은 최영성 이사장의 몸을 흔들며 말했다.
"아빠, 정신 차려, 왜 그래?"
"너도 최해랑 알지?"
"...!"
"갑자기 뭐야. 왜 그래 아빠."
"너도 앉아라."
"왜 그러는데!"
"앉으라면 앉으라니까!"
"..."
"이사들도 전부 앉으세요."
이사들은 이사장의 이상행동에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고, 딸은 나를 죽일 듯이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이사들 또한 이사장의 권위에 그저 중역 소파에 앉을 뿐이었다.
권위는 무섭다.
그저 말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이사장은 내 말을 반박 없이 순순히 따랐고, 이사장 또한 이사들에게 권위를 발휘하여 강제로 회의를 진행토록 했다.
* * *
교내 폭력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당시 전교에서 1, 2등을 다투던 최해랑을 시기 질투하며 폭력을 주도했던 친구는 현재 검사라고 한다.
별로 놀랍진 않았다.
현재 검사인 주동자를 필두로 다섯 명은 수시로 최해랑을 화장실과 체육관에 불러내며 괴롭혔다고 한다.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처박게 하거나, 자신들의 숙제를 대신 시키거나, 체육관의 창고에 불러내어 각목과 철근, 야구 방망이로 구타하였다고 한다.
기숙사에서 지냈던 최해랑이 잠도 제대로 못 자도록 괴롭혔다고 한다.
이유는
가난한 집안에서 장학금 받고 들어온 학생의 성적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 모든 내용들이 현재 이사장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최해랑의 담임이었던 현 이사장 최영성은 학교 폭력이 발생하고 있었음에도 묵인했다고 한다.
최해랑의 폭력을 주도했던 주동자의 부모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최해랑이 자진해서 자퇴를 할 때까지 그저 눈감아줬다고 한다.
그들의 목표는 자퇴할 때까지 괴롭히는 것이었다고 한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한 겁니까?"
"학생들의 내신 관리를 위해서였습니다."
"네?"
"당시 최해랑의 내신이 월등했기 때문에 순위가 밀리는 학생들이 불만이었거든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전액 장학금을 받은 가난한 학생이 내신을 잘 받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거죠."
"...!"
"당시 학생의 부모들에게도 많은 민원을 받았습니다. 왜 굳이 그런 학생을 받았느냐고."
"그래서 묵인 한 겁니까? 부모들의 성화에 못 이겨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학생의 부모들이 학교에 지원금을 출연했기 때문에 힘이 강했거든요."
결국은 권위였다.
학생을 학교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줘야 하는 교사는 부모의 권위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고 이리저리 끌려만 다니며 제 판단을 잃어버렸다.
머리가 아찔했다.
"그러면 이제 어쩌실 겁니까?"
"대표님 말씀대로 내일 회견을 열어야지요."
"사실을 적시하는 것만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고 보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