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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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무심코 나와 버렸습니다. 다시 보게 해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

"누구나 바라면서 살지 않나요?"

"그게 얼마나 무책임하고 대책 없고 생각 없는 말인지 도일씨도 잘 알고 있는 거 맞죠? 그런 말을 해서 상대방이 위로를 받지는 않죠."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도일씨가 그렇게까지 생각이 짧은 사람인지는 저도 몰랐네요."

지영씨의 반응도 이해가 됐다.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말을 했으니까.

그래도 살면서 기적을 많이 보고 살아왔다고, 그렇게 얘기해주고 싶었으나 어차피 말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기적의 차원을 넘어선 일이니까.

나도 내 머릿속이 이해되질 않았다.

대체 왜 그런 말이 갑자기 튀어나왔을까.

"도일씨가 그 얘기를 꺼냈을 때, 어머님 감정이 복잡하게 보였어요. 분노도 아니었고, 고통도 아니었어요. 저도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어요."

"..."

"제가 걱정되는 건 사람이 고인을 만나는 길은 한 가지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님도 잘못된 선택을 할까 두려워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도일씨는 대체.."

"삼촌이 있잖아요. 남겨진 사람의 고통을 아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요."

"앞으로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어딜 가서든.."

"제가 그렇게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불필요한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지영씨와 의견 다툼을 하거나 소소한 싸움을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다소 예민해진 지영씨를 더 건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귀가시킨 뒤 한참을 차 안에서 생각에 잠겼다.

돈은 능력과 행복을 살 수 있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다.

그런데 나는 돈도 있고, 말도 안 되는 능력이 있다.

내가 못 할게 뭐가 있담.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휴먼매니저의 능력이 대체 어디까지 발휘 될 수 있으며 실현 가능한지 모른다.

로또 스킬에만 매달려 왔으니 그 외 나머지는 일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휴먼매니저는 언제든 내가 1순위다. 내가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고초를 겪거나 위험한 일에 부딪쳤을 때 항상 내 곁을 지켜주는 매니저다.

그 능력을 이제 조금씩 꺼내볼까 했다.

일단 현재 퀘스트 달성율을 살폈다.

[현재 투자퀘스트 달성율은 20%입니다.]

진행 상황도 미진했다.

로또 레벨7 스킬로 독식해버린 금액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퀘스트 따위야 뒷전에 제쳐뒀다.

게다가 휴먼매니저의 퀘스트는 무기한이었고 실패시 페널티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퀘스트 실패에 대한 페널티는 현재 V1.0 휴먼매니저 버전에는 없습니다. 휴먼매니저는 김도일씨의 인생을 전적으로 매니지먼트 해주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V1.0보다 휴먼매니저의 상위버전이 있다는 건가?’

[맞습니다.]

‘상위 버전의 스킬을 미리 알 수 있을까?’

[현재 휴먼매니저의 버전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상위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줘.’

총 1만UNI 로 가능하며, 현재 김도일님이 소유한 UNI는 로또LV7의 총 7천UNI입니다.

1만UNI라면, 내가 퀘스트를 10번만 깨면 얻을 수 있는 금액.

게다가 내가 소유한 7천UNI가 있었으니 앞으로 3번의 퀘스트만 더 깨면 상위버전으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었다.

휴먼매니저의 상위버전이라면 스킬 목록도 변화하지 않을까 싶었다.

본격적으로 투자 퀘스트를 깨야만했다.

* * *

"오과장 최일재단측과 미팅을 잡아줬으면 하는데, 출자하고 싶은 금액은 한 100억 정도 잡아주고."

"100억이나요?"

"원래 대어를 잡으려면 미끼는 비싼 걸 꿰어야 하는 법이잖아."

"그렇긴 하죠."

"자리 잡아."

"알겠습니다."

최일 고등학교.

부티 나게 보이는 학생들, 그들을 태우기 위해 몰려든 부모들의 차량도 최고급 차량, 역시 지영씨가 나온 학교라 부잣집 도련님들이 모인 학교였다.

최일재단의 설립자 최일에 대해 알아본 결과 그는 과거 태성 그룹의 부회장으로 역임한 경영인이었다.

그렇다면 최일고등학교도 태성그룹의 지원을 받고 있을 것이고, 태성그룹에 딸린 계열사들이 최일재단에 금전적 지원을 하고 있었다.

최일재단을 먹기 위해서 태성그룹의 대주주가 되는 게 가장 빠른 수순이었다.

그런데 대주주가 되는 순간 태성그룹의 주인이 돼버린다.

나는 휴먼매니저의 대표이지, 태성그룹의 경영권에 개입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대주주 갑질은 식상하잖아?

어쨌든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대주주가 되는 것보다 깔끔하고 편한 방식으로 해보고 싶었다.

100억의 떡밥을 내던졌고, 곧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이정도 수준의 출자는 대기업과도 맞먹는 금액이기 때문에 최일재단의 임원들과 당일에 바로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김도일님의 잠재된 능력을 도식화하여 스킬 목록을 발현합니다.]

[스킬 목록]

「건강」 「기억력」 「로또」 「공감력」

「정치」 「친화력」 「식견」 「매력」

「무력」 「설득」 「혼란」 「체력」 「계산」

「이해」 「기합」 「희생」 「도발」 「공신력」

·········

도식화된 스킬 중 이사장과 임원들의 머릿속을 꼬아버릴 수 있는 스킬은 역시 설득이 괜찮았다.

「설득」

-주장을 따르도록 깨우쳐 말함.

-3000UNI로 스킬 레벨업 가능

역시 타인을 내 뜻대로 조형하기 위한 스킬이니 만큼 스킬 레벨업 비용도 꽤 비싼 수준이다.

현재 내가 가진 로또LV7을 초기화했다.

7000UNI라면 설득 스킬을 LV2까지 올릴 수가 있었다.

[설득 스킬 세부 능력]

「LV1 SKILL 호의적인 태도」

-상대방의 호의적 태도가 증가합니다.

「LV2 SKILL ??」

「LV3 SKILL ??」

「LV4 SKILL ??」

「LV5 SKILL ??」

[6000UNI로 설득스킬을 레벨업 합니다.]

「설득 LV1」

···

「설득 LV2 상승」

「LV2 SKILL 한 명을 대상으로 권위에 대한 복종」

-상대방이 김도일님의 권위에 복종합니다.

모든 준비를 끝낸 나는 최일재단의 임원들이 모인 학교로 향했다.

* * *

최일재단이 소유한 학교들은 자사고 특성상 부자들이 많다.

물론 최해랑씨처럼 공부를 곧 잘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부자들만 다닐 수 있게 조성된 학교다.

학생 교육 퀄리티도 역시 엄청나게 비싼 등록금답게 일반 사립이나 공립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다.

이사장실에 모인 임원들은 나를 보며 희미하고 미지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100억을 출자하겠다는 기업인이 굉장히 젊고 어려 보이는 게 신뢰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그런데 이미 아주 맛있는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이사장은 눈에 활기가 띄고 있었다.

이사장실에 들어가자마자 그가 나를 보며 손을 덥석 잡아댔었다.

이사장의 나이는 70대, 최영성 이사장이다.

"휴먼매니저 대표님 맞으시죠?"

매우 차분해 보였지만 걸걸하게 낮게 깔린 목소리가 독특했다.

"네. 안녕하십니까. 휴먼매니저 대표 김도일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상당히 젊으신데 그래도 교육에 참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관심까지는 아니고요."

"휴먼매니저란 회사는 제가 알아본바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아웃소싱 회사라고 들었습니다."

"기업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요. 근로자들 이윤을 위한 회사입니다."

"역시 생각이 남 다르네요."

이사장과 소소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을 때, 이사들은 그저 입을 꾹 다물거나 불편한 기색을 표하고 있었다.

비서로 보이는 한 사람이 따듯한 차 한 잔을 내놨다.

"최일재단이 그래도 국내에서 알아주는 재단입니다. 후원해주시는 기업인들이나 정치인분들도 많고요. 우리 재단이 태성그룹과 연관된 건 아시죠?"

"알다마다요."

"최근에도 80억을 기부 받아서 학생들의 복지와 교육 수준을 대한민국 최상위 수준으로 이끌고 있거든요."

"그럼요."

"그런데 대표님께서는 어느 학교 나오셨습니까?"

"그냥저냥 평범한 학교 나왔습니다."

"아주 훌륭한 학교를 나오셨으니 이렇게 교육에도 관심이 많으시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 그래요 다들!"

이사장이 이사들을 바라보며 다소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이사들이 그저 턱을 긁적이거나 연신 불편한 기색으로 앉아 있으니 이사장도 그들의 태도가 불만스러웠던 것 같았다.

"그렇죠.."

이사들은 하는 수 없이 영혼 없는 맞장구를 쳐줬다.

최일고 이사장은 선생들에 대한 갑질로 유명하다고 했으나, 실제로 마주하니 그런 기질을 찾기가 힘들었다.

아마 선생들 앞에서 보이는 태도는 다를 수도 있겠지.

아무튼 가장 중요한 일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임원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이사장과 단 둘이 대면하고 싶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다른 이사님들께서 자리 좀 비워주셨으면 해서요."

"갑자기 이유라도.."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기분이 나쁜지 한 여성 임원이 내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출자 금액을 정확히 밝혀보시죠. 100억이라는 금액도 저희가 확인이 안 됐는데요. 그리고 아버지."

"응?"

그는 이사장의 딸인 것 같았다.

"휴먼매니저 알아보니까 회사법인 자본금이 5억도 안 되는데 대체 뭘 믿고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크흠."

"한번 까보세요. 저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다들 안 그래요?"

이사들이 일제히 수긍했다.

이사들 입장에서는 마치 막힌 고구마를 한 순간에 뚫어주는 것과 같았다.

까라면 보여주지.

"기분은 나쁘지만 그래도 이사 분들이 아까부터 불만스러운 자세와 표정으로 저를 대하고 있으니 이사장님에게만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스마트폰으로 계좌내역을 이사장에게 보여줬다.

이사장은 나의 계좌내역을 살핀 뒤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억 이상이 잠들어 있으니 이때부터 이사장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사들을 보며 말했다.

"이제 나가 주셨으면 합니다."

"다들 뭐해 일어나질 않고. 얼른 일어나"

"..."

이사장의 일갈에 다섯 명의 이사들이 일제히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사장은 무례하게 굴었던 딸의 언행을 내게 사과했다.

그리고 나도 본론을 꺼냈다.

"이사장님."

"네. 말씀하시죠."

"최일고가 서울에서 꽤 유명한 자사고이지 않습니까?"

"그렇고말고요. 제가 평생 자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사장님도 과거 17년 전에 이곳에서 교사로 계신 거로 아는데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님께서 그때 당시 이사장으로 계셨거든요.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셨죠. 태성 그룹의 경영진이셨고요."

"제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

그리고 나는 주머니에 잠든 최해랑의 명찰을 꺼내며 중역 책상에 올려놨다.

"혹시 누군지 기억나세요?"

"처음 보는데요. 명찰을 보니까..."

"명찰이 오래됐죠."

"이건 20년 전 제가 교사재직당시 학생들이 쓰던 명찰인데요. 어떻게 이게 아직까지."

"이곳에 다녔던 학생 명찰인데, 고등학교 졸업을 못 했어요."

"허허. 무슨 말씀이신지."

"게다가 학교에서 자퇴를 했고요."

"하이고. 왜 그랬을까요."

이사장은 굉장히 안타까운 얼굴로 최해랑의 명찰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학교에서 폭력을 당했나 보더라고요."

"그럴 리가 없을 겁니다. 대표님께서 잘못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자살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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