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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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고등학교."

이것도 잘한 일이겠지.

애라씨가 왜 거기서 나와?

책상을 쾅! 치며 최일 고등학교를 먹어보자며 멋들어지게 말은 했으나,

사원들의 반응은 왜 갑자기 학교를 먹느냐는 투로 의아한 표정이었다.

우리 회사는 엄연히 따지면 아웃소싱 회사다.

기업과 근로자의 중간에 위치한 휴먼매니저 아웃소싱 회사가, 재단을 흡수하여 학교를 장악한다?

내가 직원이라고 할지라도 어불성설이다.

오과장은 내 말을 듣고 침묵했다. 아마 어디서 술을 먹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수준으로 봤겠지,

현준이는 최일 고등학교를 먹자는 내 말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있었고,

그나마 정주임이 말문을 열었다.

"검색해보니까 최일고등학교는 사립인데요. 이걸 우리 회사가 관리하겠다는 말씀이세요?"

정성희가 탐탁지 않은 투로 말했고 나는 확신에 찬 투로 대답해줬다.

"그렇지. 대기업들 다 하나씩 재단 가지고 있지 않나?"

"그렇죠..?"

"우리야 못할 게 없다는 거지. 공익사업에 이바지한다면 회사를 널리 알릴 수도 있는 거고."

"그러면 직접 만드시면 될 일이잖아요."

역시 정주임이 정곡을 찔렀다.

내가 가진 재산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번 목표는 최일 재단이다.

하나만 판다.

"물론 정주임 말처럼 재단은 차후에 만들기도 할 거야."

"하아."

"내가 왜 굳이 최일재단을 인수하느냐, 그건 내가 조금 이따가 설명해줄 거고, 일단 너희들 도움이 없으면 안 돼. 어떻게 할래?"

"대표님이 하자면 해야죠."

오과장이 말문을 열었다. 역시 금융치료를 해줬더니 충신이 됐다.

"인수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인수 과정을 거칠지는 나도 알아본 바 없어서 잘 모르지만 쉬울 것 같은데."

"...?"

재단법인은 비영리 법인이기 때문에 개인의 순수한 목적으로 기부 및 출자된 재산이 모여 법인으로 형성된다.

일반 사단법인의 주식회사는 회사의 주식을 대량 사게 되면 내가 회사의 주인이 되지만, 재단 법인은 교육, 종교, 예술 등의 비영리 목적의 법인이기 때문에 대주주도 없고 주주도 없다.

재단 법인을 먹기 위해서는 대량의 자금을 기부하여 이사회 투표로 이사장으로 올라서서,

휴먼매니저 법인으로 흡수하는 방법이 있었으나 그만큼 시간도 길고 자칫 이사회 투표에서 미끄러지면 기부만 해버린 꼴이 된다.

게다가 재단법인 이사회는 대부분 친인척으로 두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난이도는 훨씬 어렵다.

"그런데 왜! 하필 최일 고등학교 입니까?"

오과장이 정말 궁금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내 목적은 단순하다.

지영씨의 오래된 걱정거리를 해결해주는 거 그게 전부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오래전 일로 심경이 복잡하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지.

"17년 전에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학생이 있었나 봐."

"...!"

내 말을 듣던 사원들이 그저 충격을 받은 채로 나를 바라봤다.

이제 사원들의 표정도 사뭇 진지해지고 무거워지고 있었다.

"왜? 너무 흔한 일이라서 그래?"

"그게 아니라요. 하아. 혹시 대표님하고 관계된 일인가요?"

"그래. 엄청나게 중요한 사람하고 관계된 일이야."

지영씨하고 관련된 일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지.

"죄송합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괜찮아. 이제 생각들이 좀 바뀌나?"

그런데 정주임은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로 손으로 볼펜을 돌리고 있었다.

"대표님이 학생 때 발생한 사건이라면 지금으로부터 17년이나 지난 일인데요."

"그래서?"

"대표님 뜻을 제가 쉽게 이해 못하겠어요. 그러면 학교를 인수해서 그때 사건을 파헤치려는 작정인가요? 차라리 경찰을 통해서 그때 사건을 알아보는 게 나을 수도 있죠."

역시 정성희는 통찰력이 있었다.

정확하고 옳은 지적.

그런데.

"아냐."

"네?"

"내가 학교를 인수하는 건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디서부터 잘못되고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 해보고 싶어서야."

"아.."

"우리는 검경도 아니고 사법기관도 아니야. 할 수 있는 한계치가 있기 때문에 사건을 파헤치고 범죄를 해결할 수도 없어."

"..."

"물론 학교를 인수하게 된다면 그때의 일을 구체적으로 파헤칠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건 학교를 내 뜻대로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거야. 이제 좀 동기부여가 됐나?"

"네."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전혀 연관된 일이 없어서요."

현준이가 물었다.

"아. 그건 아마 학폭을 당했던 학생이 자퇴를 했기 때문일 거야."

"...?"

현준이가 이해를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쉽게 설명해줬다.

"쉽게 얘기하면 현준이가 휴먼매니저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왕따를 당하고 온갖 갈굼을 당했다고 쳐."

"네."

"그리고 퇴사를 했고 회사 욕을 해대며 유서를 쓰고 죽었어."

"..."

"책임이 누구한테 있을까?"

"회사에 있죠."

"그런데 회사는 발뺌해. 그런 일이 없다고. 증거도 없어. 그러면 억울하겠지?"

"네."

"그러니까 죽어도 회사에서 죽어."

"하."

현준이가 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 현실적으로 말해줬나.

"더 궁금한 거 있는 사람?"

"..."

"그러면 각자 맡아서 할 일을 정해 줄 테니까 각자 메모하고 잘 들어."

"넵."

"오과장."

"네. 대표님."

"최일학원 재단 관련해서 조사해줬으면 싶은데."

"어떤 부분을 말씀이십니까?"

"이사장부터 임원들까지 간단히 신상 좀 파악해보고 특히 재단에 들어가는 자금이 어디서 가장 많이 흘러 들어가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해주면 더 좋고."

재단은 비영리회사이기 때문에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회계자료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이 부분을 좀 유심히 보고 싶었던 것은 학교 재단이라고 할지라도 자금줄이 있을 것이라는 내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사회 신상을 파악하는 건.."

"오과장 인별 그램이나 페이즈북 안 해?"

"합니다."

"미국 CIA도 그걸로 신상 따거든? 그러니까 잘 해봐."

"알겠습니다."

오대리가 열심히 내 말을 메모하며 대답했고, 이제 다음 타자는 현준이.

"그리고 현준아."

"네. 대표님."

"조만간 알바 하나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저녁에 시간 비워."

"알바요?"

"돈 많이 줄게."

"감사합니다."

현준이는 상황을 봐서 최일 고등학교에서 알바를 시킬 작정이었다.

"정주임!"

"네. 대표님."

"너는 내 비서 한 번 하자."

"비서요?"

"그래도 회사 대표가 비서 정도 있어 줘야 하지 않아?"

"...네."

이렇게 최일재단을 잡아먹을 팀의 구색이 맞춰졌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언제 앞일 생각하고 저질렀나,

한번 해보는 거지.

* * *

"용기가 나질 않네요."

"..."

"이게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괜히 그때의 기억을 꺼내서 친구 부모님을 더 힘들게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영씨와 차를 타고 향하는 곳은 학교 폭력 피해자 부모님을 만나는 길이었다.

과거 학창시절 피해자에게 상담을 해줬다.

대체 어떤 전후 사정이 있었는지 더 캐묻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내가 믿는 건 지영씨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영씨는 상담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본인 탓을 하며 반평생 가슴에 담아두고 살았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바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절절하게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지영씨."

"네?"

"겁먹지 마요. 지영씨가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아주 사소한 거 하나라도 얘기해주면 부모님이 그간 묵혔던 감정이 조금은 풀릴 거예요."

"네."

"그때 당시 최일고 이사장은 임기가 끝났고 퇴직했겠네요?"

"그렇지 않을까요. 17년 전 일이니까."

"수사도 단순 가출 및 자살로 끝낸 거고, 학교 측에서는 선 그어 버린 거고."

"네. 맞아요."

"학교 폭력 가해자들은 현재 잘 살고 있고."

"네."

"알아보니까 최일고가 사립이라 등록금도 꽤 비싸던데요. 일대에서 꽤 유명한 학교인데 그런 일이 묻혔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요. 언론사에서 학교를 취재하지 않았나요?"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뉴스에 났었던 적은 있어요."

"정말요?"

"네. 가출 여학생 자살이라고요."

"..."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랭해지고 우울해지고 있었다.

이런 건 싫다.

잽싸게 주제를 돌려버렸다.

"로또 2등으로 뭐 할 생각이세요?"

"아직 계획 없어요."

"그래도 지영씨 꽁돈 생겼는데 그걸로 뭐라도 해야죠. 쇼핑이라도 맘 편하게 해봐요. 기분 풀어지게."

"..."

"저라면 진짜 비싸고 좋은 명품백 하나 살 것 같아요. 보니까 사천만 원 정도 하는 명품 백도 있더라고요. 흐흐."

"도일씨."

"네?"

"저 돈 필요 없어요. 알잖아요."

"알죠."

지영씨는 이상하리만큼 무소유의 성질을 가졌다.

어릴 때부터 워낙에 풍족하게 살아서 그런 건가? 아니면 부모로부터 그런 교육을 받고 살아서?

내 머리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생활이다.

"도일씨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고 믿어요?"

"..."

갑작스러운 지영씨의 질문에 잠시 뇌사고가 정지가 됐다.

솔직히 말하면 돈이면 다 된다.

안 되는 일 없다.

그런데 지영씨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기가 싫었다.

"세상에 돈으로 다 해결되는 세상이면 선거를 왜 합니까? 돈 많은 놈 1등 시켜주면 되지."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때마침 네비상 목적지에 도착하였고, 지영씨는 아무 말 없이 조수석에 내렸다.

"같이 갈까요?"

"아뇨. 저 혼자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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