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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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레슨강사보다 더 친절한 휴먼매니저를 발현시켰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도움을 주고 나의 모든 기능을 발휘 시킬 수 있는 매니저가 있는데, 홀인원 따위야 확률도 깨부숴버리지.

로또 1등 확률이 814만분의 1이라면 파4홀에서 홀인원 확률은 600만분의 1, 게다가 초보자라면 더 확률이 더 높겠지.

그런데 로또 확률보다 더하겠어?

파4홀 거리는 약 310m.

드라이버샷으로 풀스윙을 날려 한 번에 도달해야 가능한 수준.

[휴먼매니저의 시스템이 발현됩니다.]

[김도일님의 스트레스를 파악 중입니다.]

[스트레스 지수 약 80%]

[김도일님의 스킬 「로또LV7」을 일부 초기화하여 「무력」 「계산」을 활성화합니다.]

[필드 동기화 완료.]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무력스킬과 계산스킬이 활성화되는 순간 내 몸이 비약적으로 발달되는 느낌이 들었고, 빠른 계산으로 홀인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모두 파악했다.

곧게 뻗은 페어웨이.

가운데가 높이 솟아 티샷에서도 홀이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내 몸이 틀어지거나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버리면 공은 해저드, 즉 연못에 빠져 버린다.

그린존의 언덕이 좌에서 우로 내리막이 형성 된 상태. 그렇다면 해저드를 뚫고 에임을 왼쪽으로 형성하여 티샷을 쳐야 했다.

현재 바람은 남동풍, 2m/s, 바람이 꽤 불고 있었다.

"안치세요?"

그때 참다못한 레슨 강사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나를 보며 말했다.

"홀인원 준비 중이요."

"불가능해요. 그냥 치세요."

심호흡을 한번 내신 뒤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계산된 방향으로 드라이버샷을,

타앙!

"굿샷!"

내 옆에 붙어있던 레슨강사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왜 이런 샷이 지금 나옵니까. 이야. 자세도 완벽했어요!"

"..."

레슨 강사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내 시선은 골프공으로 향해 있었다.

힘이 너무 세나?

생각보다 높이 솟은 공이 바람을 타고 쭉 뻗어나가고 있었다.

이제 계산한 방향대로 흘러가 준다면 언덕으로 떨어질 것인데, 310m나 되는 거리 탓에 육안으로 볼 수가 없었다.

"공이 안 보이는데요?"

레슨강사가 공이 보이지 않는다며 말했고, 캐디가 급히 카트를 타고 그린 존으로 향했다.

나는 지영씨에게 다가가 말했다.

"지영씨."

"네?"

"지영씨가 말한 초심자의 행운인 것 같은데요."

"..."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캐디가 저 멀리서 깃발을 흔들었다.

홀인원.

"제가 이겼어요."

* * *

홀인원을 했을 경우 골프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축하 상품이 있었다.

50% 할인 1년 회원권, 당일 숙박비 무료, 홀인원 트로피, 기념품, 그리고 리조트 공식 홈페이지에 인터뷰를 담을 수 있겠냐며 요청까지 했다.

귀찮아서 그건 패스.

파4홀에서 홀인원이 터졌다며 투숙객들은 나와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이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인가?

리조트에 투숙 중인 골퍼들 사이에서도 이번 사건은 뉴스에 나와야 할 일이라며 신기해했다.

나는 초심자의 행운이 발휘된 것뿐이라며 겸손을 떨었다.

사실 그렇게 말해야 그나마 상식을 깨버린 이번 홀인원 사건이 무마될 것 같았다.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심지어 리조트 대표까지 찾아와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물론 그 과정을 지영씨와 함께했다.

홀인원.

골퍼들 사이에서도 평생 한 번 해보지 못한 일은 단 한 번에 이뤄냈다.

행운은 노력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했고, 노력할수록 운이 더 좋아진다고 말하지만, 이미 내게는 그런 상식도 통하지 않는 수준이다.

지영씨와 홀인원 기념식을 모두 끝낸 뒤 숙소로 들어와 앞마당에 마련된 식사 장소에서 바비큐를 준비했다.

리조트 내에서 구매한 고기와 해산물을 깔아 놓고,

숯불에 불을 지피며 그릴에 고기를 올렸다.

지영씨는 자리에 앉아 풀이 죽어 있었다.

"지영씨 무슨 일 있어요?"

"아뇨."

"인생은 한방이라니까요. 제가 마지막에 드라이버샷 치는 거 보셨죠? 연습할 때도 계속 그것만 했다니까요."

"..."

"설마."

"네?"

"지금 자존심 상해서 시무룩해 있는 거 아니죠?"

"아니거든요?"

엄청나게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당연히 이겨야 할 게임을 지고 말았다.

내가 너무 재수 없었나?

"원래 가끔 실력보다는 운이 적용될 때가 있잖아요. 제가 워낙에 운이 좋은 거고요."

"그러니까요. 실력보다 운. 제가 운이 없는 거죠."

고기를 어느 정도 구운 뒤 식탁에 올려놓고 나는 소주 한 병을 까서 지영씨에게 따라줬다.

술을 주고받은 뒤 지영씨에게 고기쌈을 싸줬다.

본인이 직접 싸 먹겠다며 한사코 거절한 것을 겨우 입에 넣었다.

한 쌈에 기분이 풀린 걸까.

지영씨가 말문을 열었다.

"도일씨 같은 친구들 학창 시절에 몇몇 있었죠."

"흐흐. 원래 운칠기삼이란 말이 있잖아요?"

"그러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런 말이 너무 싫어요. 어떻게 사람이 살아가면서 모든 일은 운에 달려 있다고 보는 거죠? 그러면 죽어라 노력하는 사람이 너무 안쓰러운 거 아닌가요?"

"지영씨 말이 맞아요. 제가 실력도 아닌 일을 너무 잘난 척 했네요."

나는 지영씨에게 소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사실 이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할 일이 아닌데,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아니요. 기분 좋아요. 도일씨가 말도 안 되는 홀인원 친 것도 기분 좋고, 왜 그런 말 있잖아요. 홀인원 한번 치면 3년이 운이 좋다고. 그런데 억울한 거죠. 제가 충분히 이겨야 할 게임이었는데요."

"흠. 그런데 본인이 운이 좋다는 사람들은 한 가지 간과하는 게 있어요."

"..."

"본인에게 따라올 불운은 생각하지 않는 거죠. 운에는 행운과 불운이 있잖아요? 그리고 운은 우리가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반면에 지영씨가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은 변함이 없어요. 앞으로 제가 지영씨와 골프 내기를 하더라도 저는 운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요."

"제가 너무 속이 좁죠? 그런데 매번 그랬어요. 저는 항상 진지하고 매사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간혹 이렇게 한 번에 뒤집혀 버리면 너무 상심이 컸던 것 같아요."

"아.."

"기분 좋은 날 죄송해요."

"괜찮아요. 지영씨."

사실 조금 미안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존심이 굉장히 세다는 걸 내가 잊고 있었다.

골프를 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부터 그녀는 매사 진지했고, 장난기 없는 얼굴로 게임에 임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제 동생보다는 더 나아야 된다. 동생보다는 더 뛰어나야 하고 공부도 더 잘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님 기대 밑에서 벗어나지 말고 정해준 방향으로 살아야 된다고요."

"아.."

"사실 제가 도일씨한테 골프는 방향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 있어요. 어떻게 하면 더 빠른 길로 가는지 공략법이 다 있다고요. 그래서 제가 골프를 좋아했고 공부하면 할수록 실력이 더 늘어나니까요."

"네."

"제 삶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살았는데, 지금 제가 남들보다 뭐 대단한 것을 이룬 것도 아니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억울해요. 제 주위 친구들 즐길 거 즐기고 다 놀았는데 저보다 더 앞서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요. 오늘 도일씨를 보면서 그게 느껴졌어요. 참 허무하다고.."

"소주 마실래요?"

"네. 한잔 주세요."

언젠가 지영씨의 학창 시절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지영씨는 굉장히 모범생이었나 봐요?"

"모범생 중에 모범생이었죠. 남들 다하는 바지 기장 한번 줄여보지도 않고, 머리는 귀밑으로 내려온 적이 없었고요. 지각 한 번 안 했고, 반장을 놓쳐본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장까지 맡았으니까요."

"와. 이거 학창시절 최고 인풋은 다해보셨네."

"그런데 후회되는 거 많죠. 그때 좀 놀아봤으면 하는 생각도 있고요."

"설마 지영씨 지금 늦바람 든 거 아니죠?"

"늦바람까진 아니고 사실 요즘 많이 우울했죠."

"아.."

"우울한 얘기는 하지 말죠."

"네."

지영씨와 술을 한잔 주고받은 뒤 내 얘기를 꺼냈다.

"저는 지영씨하고 참 반대되는 삶을 살았는데요. 달라도 너무 달라서 이게 어떻게 인연이 됐는지도 신기할 정도라니까요."

"일진 이였어요?"

"아뇨. 일진들 줘패는 일진이요."

지영씨가 피식 웃어댔다.

"도일씨가 일진이면 저 지금 당장 뛰쳐나가서 집으로 택시타고 도망갈 거예요. 그러니까 솔직히 얘기해줘요. 도일씨 학창시절 때 약한 애들 막 괴롭히고 그러셨어요?"

"아뇨. 오히려.."

솔직히 일진들을 쥐어 패서 돈을 뺏고 돌려준 대가로 수수료를 받았다고는 말 못하겠다.

"제가 보호해준 꼴이죠. 약한 친구들을."

보호비 명목으로 보호해준 건 맞으니까.

"아..그죠? 도일씨 그런 사람 아닌 거죠?"

"네 안심 하셔도 돼요. 영 불안하면 제가 증인 세워둘 친구도 몇몇 있고요."

"네."

"그런데 학폭에 되게 예민하시네요."

"..."

지영씨가 술 한 잔을 마셨다.

"혐오하죠. 아니 증오하기도 하고요."

"무슨 일 있었어요?"

"꼭 무슨 일 있어야 그걸 증오하나요? 당연히 증오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맞죠."

"..."

지영씨가 한참을 빈 소주잔을 바라보며 회상에 젖은 눈을 했다.

아무래도 큰 상처가 있는 것 같았다.

학폭을 당한 건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지영씨가 학생회장까지 했을 정도면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지영씨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도일씨의 인생 첫 홀인원, 아마 평생 기억에 남겠죠?"

"그럼요."

"저도 그래요. 제가 살면서 처음으로 상담해 준 친구가 평생 기억에 남아요."

"아.."

"반 친구 중 한명이 심각하게 따돌림을 당하고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제가 유일하게 그 친구와 상담했거든요."

"와. 그때부터 상담사의 재능이 싹트고 있었나 봐요?"

"아뇨. 차라리 그때 제가 그 친구를 상담하지 않았다면 후회가 돼요."

"네?"

순간 지영씨의 말이 이해되질 않았다.

"도일씨는 살면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을 뒷전에 두고 미루는 일이 있나요?"

지영씨의 질문을 한참 생각했다. 뭐가 있을까.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까먹고 있을 뿐이지.

"지금 당장은 모르겠네요."

"저는 있어요. 제가 처음으로 상담해준 그 친구 부모님 찾아가서 사과하는 거요."

"대체 무슨 상담을 했기에.."

"그걸 19살 때부터 16년 동안 홀로 감춰두고 살았어요."

"..."

"언젠가는 꼭 해야지. 꼭 부모님을 찾아뵙고 용서를 빌어야지 하면서도 매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도일씨라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지영씨의 미래를 바꾼 일이고, 계속 기억에 남고 후회가 된다면 다 잡을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때의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게요?"

"네. 지영씨가 대체 왜 첫 상담을 기억하는지 잘 모르겠지만..그래도 그때의 사건이 지영씨가 전문 상담사가 된 계기잖아요?"

"도와주실래요?"

"그럼요."

"도일씨가 제게 부모님을 뵙자고 말했을 때, 기쁘고 행복하고 좋은 일만 생각이 나야 하는데, 그간 계속 미루어 뒀던 일이 먼저 생각이 났어요. 제가 도일씨랑 결혼을 하게 되고 가정이 생기고 책임이 생기면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것 같아서요."

"이해해요."

그제야 지영씨가 골프내기에서 나를 이기려 했던 게 이해됐다.

정적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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