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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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맛?

골프공을 치는 순간 손맛이 느껴졌다.

낚시도 손맛에 중독된다더니,

손끝에 울리는 약간의 진동이 꽤 재밌었다.

"그런데 지금 제가 하는 걸 뭐라고 하죠?"

"퍼팅이라고 해요. 왜 드라마에서 회장들이 사무실에서 골프 하죠? 그걸 퍼팅 연습기라고 하거든요."

"아. 그래요?"

"손목보다는 어깨를 최대한 이용해보세요."

"넵!"

"반복적으로 15분간 계속해보세요."

강사의 말을 듣고 계속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탁.

-탁.

그때

-타앙!

시원하게 울리는 소리에 옆을 돌아봤다.

지영씨의 멋진 드라이버샷!

그녀도 이제 곧 적응이 된 듯 아주 시원시원하게 풀 스윙하고 있었다.

멀리 쭉쭉 뻗어나갔다.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으니 강사가 내게 말했다.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일단 체계적으로 속성으로 밟아보면 풀스윙까지는 할 수 있을 거예요. 일단 퍼팅 반복적으로 연습해 보시고요. 그거 끝나시면 제가 다음 스윙 알려드릴게요."

"네."

강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시간에 나는 지영씨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지영씨 실력이 만만치 않네요,"

"골프는 정말 오랜만에 해보는거라서요. 아직 감이 잡히려면 멀었어요. 도일씨는 잘 배웠어요?"

"재밌고 쉽네요."

"이게 쉽다고요? 골프처럼 어려운 운동도 없던데."

"원래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제가 아는 게 없으니까 다 쉬워 보이는 거죠."

"기본자세 알려준 거 계속해요. 저도 도일씨가 했던 똑딱이 연습 꽤 오래했어요. 그래도 필드 나가서 공은 한번이라도 쳐봐야겠죠?"

"제가 정말 공도 못 칠 것 같아요?"

"정말 그런 일도 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잡담할 시간 없어요. 얼른 조금이라도 자세 연습 해봐요."

지영씨가 채근했다.

그런데 너무 진지하게 하면 재미없지.

"지영씨 저랑 내기할래요?"

"네?"

"이기는 사람 소원 들어주는 걸로."

"그러죠."

지영씨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마 그녀가 쉽게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지영씨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그녀의 자세를 감상했다.

자세는 확실히 좋았다.

그래도 TV에서 줄곧 바온 프로들의 자세처럼 굉장히 정직했다.

"연습하러 안 가세요?"

결국 지영씨의 일갈로 나는 미니 연습장으로 돌아가 자세 연습을 했다.

-탁.

-탁.

반복적으로 퍼팅을 연습하며 집중했다.

치면 칠수록 자세는 안정됐지만 이제 퍼팅보다는 다른 걸 배워보고 싶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내 자세를 유심히 지켜본 강사가 다시 나타났다.

"확실히 운동 신경이 좋으니까 빨리 배우시네요."

"감사합니다."

강사는 내게 하프 스윙과 체중과 균형을 잡는 법, 마지막으로 풀스윙까지 알려줬다.

"자, 봐요. 이 허리, 허리의 회전이 중요하거든요. 암만 어깨를 휘둘러봐야. 허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힘을 못 받아요."

"아.."

"처음 하신 분들 대부분이 남들보다 더 멀리 쳐보고 싶다. 그것만 보고 어깨에 힘만 엄청나게 주거든요. 포인트는 허리입니다. 그리고 풀스윙은 하프 스윙에서 좀 더 허리를 좀 더 돌리시면 돼요. 한번 해봐요."

-타앙!

"오."

"괜찮아요?"

"처음 한 거 맞아요? 자세도 처음 한 것 치고 너무 좋고, 비거리도 굉장히 많이 나온 것 같은데요?"

"흐흐. 재밌네요."

"그런데 마지막에 중심 조금 흐트러지니까 스윙 이후에 오른발 뒤꿈치 축을 더 들어봐요."

"넵!"

-타앙!

"굿 샷!"

"이 정도면 필드 나갈 수 있을까요?

"어쨌든 예약하셨으니 무조건 나가보는 거죠."

"잘 좀 부탁드릴게요. 제가 여자 친구랑 내기했거든요."

"걱정 마시죠. 제가 옆에서 다 케어 해드릴게요."

"넵."

이제 서서히 필드 예약 시간이 다가왔다.

지영씨와 나는 라운딩을 돌면서 먹을 간식거리를 샀고 이제 카트를 타고 필드로 향했다.

"도일씨."

"네?"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내게 긴장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지영씨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도 긴장되겠지.

"원하는 방향으로 공이 안가더라도 어쨌든 홀컵에 넣기만 하면 되니까요."

"아.."

"남들이 가는 방향으로만 갈 필요 없잖아요? 도일씨가 10타에 성공해도 괜찮아요."

"고마워요."

"즐기면서 하죠. 실수해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벙커에 빠져도 자책하지 마요. 비거리가 짧으면 남들보다 몇 타는 더 치면 돼요. 그러니까 자신감 있게 해봐요. 천천히 차근차근"

"네."

지영씨의 말이 와닿았다.

이리로 가든

저리로 가든.

정해진 방향은 없다.

나는 지영씨를 보며 씩 웃었다.

"지영씨."

"네?"

"제가 골프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그런 거예요."

"...?"

"조만간 아버님 뵙죠."

"...!"

"부모님에게 말씀드리세요. 연예하는 사람 있다고."

"갑자기요?"

"그게 맞는 것 같아서요."

최근 명석이와 술자리를 가졌을 때 그 친구가 내게 이기적이라고 했다.

정확히는

‘지영씨는 붙잡고 싶고, 결혼은 아직 싫은 거고, 좀 이기적인데.’

라고 했었다.

그래서 지영씨 입장이 돼서 생각해봤다.

그녀는 왜 나에게 결혼 얘기를 꺼내지 않는 걸까.

그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결혼 전에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내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지영씨와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필드로 향하는 전동카트에서 갑자기 고백한 게 지영씨는 꽤 당황스러웠나보다.

그러더니 지영씨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긍정적인 반응인걸까?

어깨를 쫙 펴더니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리곤 내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도일씨."

"네?"

"쉽게는 안 되죠."

"...!"

"내기하자고 했죠? 만약 도일씨가 이기면 제가 그 소원 들어 드릴게요."

"네? 제가 지영씨를 어떻게 이겨요. 저 처음인데."

"갑자기 겁쟁이가 되셨나요?"

"하! 이러기예요?"

"왜요? 초심자의 행운이란 말이 있잖아요. 도일씨 자신감이면 가능할 수도 있죠?"

약속 하나만 해줘요.

-타앙!

"굿샷!"

캐디가 연신 칭찬 일색으로 박수를 쳤다. 지영씨의 실력이 서서히 물이 오르고 있었다.

4번홀을 파4를 5타로 마무리했으니 우리와 함께 따르던 레슨 강사도 거의 준프로와 가까운 실력자라면 감탄했다.

이 정도 양민 학살 수준으로 나를 누르고 있다면 아버님을 보여주지 않을 작정인가 싶었다.

그래서 조금 서운해지고 있었다.

좀 봐주지.

나는 1번홀부터 티샷을 치고 홀컵에 넣기까지 약 10타를 소비했다.

스윙도 막상 하려니 잘 안됐고 공은 매번 원하는 방향보다 반대로 흘러갔고, 헛땅을 쳐서 필드까지 손상됐고, 심지어 공 찾는데 몇 분을 소비하기도 했다.

1번홀부터 10타를 소비했고, 전반전을 내가 대체 몇 타를 쳤는지 기억을 못 할 정도니 이제 캐디도 점수를 세는 건 무의미하다고 느낀 것 같았다.

이미 끝난 게임.

캐디나 레슨 강사도 이제 빨리 게임을 끝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영씨를 바라봤다.

워낙에 압도적인 점수 차이라 이제 곧 시작될 8번홀에서 지영씨가 대충 넣기만 해도 게임은 끝난다.

"게임 끝내야겠죠?"

지영씨가 한 손에 아이언을 들고 말했다.

"너무해요. 좀 봐주면서 하면 좋을 텐데."

"제가 너무 봐주면 도일씨가 자존심 상해 할 것 같아서요."

"흐흐. 그런데 이렇게까지 이기려는 건 아버님을 안 보여주려는 생각인 건가요?"

"맞아요. 그런데 아직 게임 안 끝났잖아요?"

지영씨가 내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물론 나에게는 한방이 있었다.

내가 골프를 매력적인 스포츠라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

한 방이 있다는 것.

8번홀이 시작될 무렵 나는 지영씨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영씨 룰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요?"

"네. 도일씨 편한 방식으로 해보세요."

"홀인원 하게 되면 게임 끝내는 거로."

"불가능해요."

"해보는거죠."

지영씨는 파4홀에서 홀인원을 하는 확률은 600만분의 1이라고 했다.

그만큼 난코스이며 굉장히 길었기 때문에 드라이버샷으로 300m이상을 날릴 수준이면 이미 프로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 번에 홀인원 하는 경우는 세계에서도 찾기 힘든 수준.

그런데 이제 조금씩 어둑해지고 있어서 게임을 얼른 끝내고 싶었다.

나는 이제 마지막이 될 8번홀 티샷을 치기 위해 자리에 섰다.

레슨 강사가 내게 7번 아이언을 또 건넸다.

여태 드라이버샷 한번 못해보고 계속 7번 아이언만 건넸다.

초보자가 겨우 쓸 수 있는 아이언이라고 했다.

"벙커에 빠지면 또 허덕입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최대한 오른쪽으로 보낸다는 생각으로, 멀리 보낸다는 생각하지 말고 짧게 치세요."

"네."

아이언은 짧은 거리를 칠 때나 쓰는 것, 아무래 쌔게 쳐봐야 200m이상 날아가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이제 게임을 끝내야만 했다.

"드라이버로 할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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