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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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현준아, 맞아?"

"네 맞습니다. 제가 혼난 겁니다."

"대체 현준이가 무슨 실수를 했기에 혼이 났을까?"

나는 다소 얄궂은 말투로 말했다. 아마 데이트하다가 싸웠겠지.

"제가 혼날 만했죠. 쓰레기봉투를 가득 안 채우고 내놨으니까요."

"이야. 그걸로 혼냈다고?"

"그러니까요. 서럽습니다. 대표님. 제가 쓰레기봉투를 반만 채워서 낸 것도 아니고 진짜 가득 채웠는데."

현준이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성희는 여전히 현준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성희야 현준이 좀 달래줘라. 애가 서운해하잖냐."

"혼나야죠."

"대표님 그런데 우리 회사는 직급이 어떻게 돼요? 성희 누나는 뭐고, 저는 직급이.."

"어떻게 하고 싶어?"

"일단 오늘 오과장님 오시면 과장님이 저희보다야 높은 게 맞고."

"문제는 성희랑 현준이네?"

"확실히 정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동등한 위치라고 했으면서 간혹 성희누나가 저한테 잡일을 시키는 게 많거든요."

"성희는 어떻게 생각해?"

"그냥 동등한 직급인데 현준이가 나이순으로는 막내니까 제 말을 듣는 거죠. 그리고 제가 입사 선배이기도 하고."

"음. 합당한 것 같은데? 안 그래 현준아?"

"그렇긴 한데.. 하아."

사실 정주임의 속마음을 캐치하자면, 제 남자친구가 직급이 낮은 게 싫은 거겠지.

그러면서도 본인 말은 또 들어야 하니.

크크.

"내가 딱 정리해주자면, 성희랑 현준이는 똑같은 주임이야. 현준이가 막내니까 성희말 듣는 게 맞지. 다들 괜찮지?"

"네."

"..."

현준이는 여전히 불만이었다. 현준이 이 녀석은 아직 여자의 마음을 알기에는 어리다.

"이제 곧 있으면 오과장 오겠네. 다들 기분은 어때?"

"좋죠. 오과장님이야 일을 잘하시니까."

"그런데 너무 얌전히 반기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뭐?"

현준이가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댔다.

"오과장님 신고식 해야죠."

"신고식?"

구색은 갖춰 진거 같은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오과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깔끔한 정장과 한 손에 들린 사무용 가방.

그는 휴먼매니저의 좁아터진 사무실을 보며 다소 놀란 듯했다.

오과장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나를 바라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왔냐."

"넵."

오과장의 시선은 현준이에게 향했으나, 사무 책상에 앉아 업무를 바삐 보고 있는 현준이는 오과장이 들어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오과장이 그를 보며 씩 웃어 보였지만 아무 대꾸도 없이 그저 대충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오과장은 이내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았다.

무겁고 눅눅한 분위기에서 오과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현준이가 연봉 계약서 한 장을 들고 오과장 앞에 앉았다.

“얼마 받을래요? 제가 휴먼매니저 인사과 팀장이거든요.”

“뭐?”

현준이가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짠 오과장 신고식중 일부였다.

“대표님, 오과장님 워킹휴먼에서 받던 거 그대로 연봉 계약하면 될까요?”

현준이가 나를 보며 물었고,

“깎아. 여기서는 막내잖아.”

막내라고 답해줬다.

오과장이 귀가 새빨개졌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데 일순간 이 엄청나게 묵직한 돌직구가 날아드니 그저 멍할 수밖에.

오과장이 현준이에게 말했다.

“현준아.”

“팀장이라고요. 팀장!”

현준이의 일갈에 오과장이 그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팀장님.. 제가 워킹휴먼에서 연봉을 받은 게 3,300입니다.”

“그러면 깎아요. 여기서는 그렇게 못 주니까. 대표님 여기서 정성희가 얼마나 받죠?”

“120만원?”

사백 받는다.

“그러면 오과장님은 막내니까 80만 원 받아야겠네요?”

“그래야 하지 않을까. 수습 기간도 있으니까.”

오과장이 깊은 한숨을 쉬며 쓴 웃음을 보였다.

“왜? 맘에 안 들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휴.”

오과장은 대체 이게 무슨 사달인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애써 그의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해댔다.

그때 정주임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한 손에 들린 케이크.

정주임이 잽싸게 사무실 조명등을 껐다.

빛도 잘 스며들지 않는 사무실 탓에 케이크에 꽂힌 촛불이 잔잔히 은은하게 밝혀졌다.

케이크에는 입사 축하라는 글이 쓰여 있었고, 오과장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오과장을 보며 말했다.

“몰래카메라, 입사 축하한다. 오과장.”

“하아.”

그제야 오과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웃음을 지었다.

“아..진짜인 줄 알았잖아요.”

“현준이가 하자고 해서.”

“현준이가요?”

“오과장님 얼른 촛불 끄셔야죠.”

현준이가 오과장에게 채근하자, 오과장이 케이크의 촛불을 후 불며 껐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 소파에 퍼질러 앉았다.

오과장이 현준이를 바라봤고, 현준이는 이미 책상 밑에 숨은 상태.

“현준아 오랜만에 나랑 대화 좀 할까?”

* * *

오과장은 정주임보다 50만 원 더 받기로 했다.

이정도 금융치료는 들어가야 회사에 충성하지 않을까 싶었다.

오과장의 등장 이후 연신 떠들어댔다. 아마 예전 워킹휴먼에서 느꼈던 물류 1팀의 분위기가 느껴진 덕이겠지.

사무실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현재 가지고 있는 계약된 현장들 모두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별일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저녁이 됐을 때 오과장 입사 축하를 위해 회사 인근의 양곱창집에서 회식을 했다.

오랜만에 모인 멤버들이라 내 기분도 한껏 들떠 있었다.

워킹휴먼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오과장님 표정 보셨죠? 제가 인사팀장이라고 말 꺼내자마자 완전 굳으신 거. 크크크. 성희누나도 그 표정을 봤었어야 했어요.”

현준이가 오과장의 신고식 얘기를 꺼내며 즐거워했다.

“대표님 제가 이번에는 머리 제대로 쓴 거 맞죠? 오과장님이 그렇게 당황하는 거 진짜 처음 봤어요. 크크.”

“맞아. 머리 제대로 썼어.”

현준이의 말에 내가 맞장구를 쳐줬다. 그런데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은데. 현준이가 계속 아까의 얘기를 꺼냈다.

“휴. 사실 제가 큰 그림을 그린 거죠. 오과장님이 오시게 되면 어색해질 것 같아서 그런 분위기 좀 없애고 싶었습니다.”

“잘했어. 현준아.”

“흐흐. 올해 한 일 중에 제일 뿌듯했어요.”

때마침 정주임이 오과장의 눈치를 보며 현준이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야. 1절만 해. 오과장님이 네 친구야? 한번 들어 줬으면 됐지 계속 떠드네.”

“오과장님도 재밌어하셨거든?”

“내가 오과장님 이었으면 벌써 집게 던졌다. 그죠 오과장님?”

오과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현준아.”

“네..”

“계속 해. 난 괜찮으니까.”

“아닙니다.”

“괜찮다니까. 현준이가 예전처럼 기죽어 있지 않은 모습 보니까. 나도 기분이 좋은데?”

“흐흐.”

오과장과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위해 식당을 빠져나왔다.

“애들이 많이 변했네요.”

“그렇게 보이냐?”

“워킹휴먼에서 같이 일 했을 때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 보여요.”

“...”

“특히 성희요. 물론 예전에도 일은 곧잘 하긴 했는데, 풍기는 분위기부터 뭔가 책임감이 다부져졌다고 해야 할까요?”

“맞아. 그래도 성희랑 내가 휴먼매니저를 같이 창립했으니까. 아마 책임감이 남다를 수도 있지.”

“대표님.”

“...?”

“제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뭘까요. 가만 보니까 성희나 현준이는 각자 알아서 할 일을 하는데, 막상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워킹휴먼에서 하던 대로 해. 어차피 내가 사무실을 비우는 시간이 많으니까, 애들 기강 좀 잡아주고.”

“...”

“왜?”

“대표님 말씀처럼 제가 그렇게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성희도 입사 선배인데요. 선은 확실히 지켜야죠.”

“...”

물론 성희나 현준이도 과거처럼 오과장이 그들을 관리한다고 해도 반감을 품지는 않겠지만, 오과장의 말은 내가 확실히 체계를 잡아달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도 이 부분이 고민됐다.

오과장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아니면 제가 영업이라도 해볼까요?”

“뭐?”

그런데 오과장은 사회생활을 오래 한 친구다.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오과장은 단번에 사내에 빈자리를 알고 있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흐흠.”

“제가 그래도 워킹휴먼에서 알고 있는 회사들이 많지 않습니까. 새끼 쳐서 계약 따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워킹휴먼?”

“네.”

“워킹휴먼 계약 쪽은 터치하지 말자. 최부장님도 계시는데 우리가 건드리면 양아치 소리 듣기 딱 좋지 않나?”

워킹휴먼 계약 건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아직 최부장이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흐흐 대표님 워킹휴먼도 양아치 다 됐어요. 최부장님 계셔서 그나마 숨통 트이는 거지. 제가 봤을 때 예전 황부장 있을 때보다 더 심해졌는데요.”

“뭐?”

“다른 업체들한테 단가 경쟁에서 밀리고 뒤처지니까, 결국 남은 현장이라도 빼먹어야 하니까요. 최부장님이 관리하는 현장 제외하고는 전부 개판이죠.”

“아..”

“아마 최부장님도 이건 아니라고 느끼고 있긴 한데, 천사장을 계속 설득하기가 쉽지 않죠.”

“천사장이 주도하고?”

“그러지 않겠어요? 솔직히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황부장 횡령 사건도 천사장이 눈감아 준거지, 똑같다고 봅니다. 저는”

“음..”

“대표님이 콜만 때려주시면 워킹휴먼에서 허덕이는 계약 건들 제가 전부 가져올 수 있는데요.”

워킹휴먼이 맺고 있는 계약들도 전부 타 회사에게 뺏기고 있는 상황.

내가 만약 덤벼든다면 모조리 가져올 수 있었지만.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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