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망할 수가 없지.
오과장님 신고식 해야죠.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여섯 번째 메인 퀘스트 투자의 성공률이 상승했습니다!]
[현재 달성률 20%! 앞으로도 꾸준한 재생 부탁드립니다!]
유도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덕에 이번 투자 퀘스트의 상승률이 올랐다.
고작 10%?
그런데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며칠 뒤면 로또는 2회차 이월로 천억 이상을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써나갈지가 더 큰 문제.
내가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주머니에 꽁꽁 숨겨두기만 한다면 발전이 없겠지.
천오백 억의 시드 머니가 있다면 이걸 1조로 불리는 건 내 영업 마인드라면 일도 아닌 수준이다.
돈이 돈을 부른다.
그런데 그 돈은 사람에게 있다.
사람에게 그 돈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인맥이 필요했다.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사실 나는 인맥이 없다.
그래서 명석이가 주관하는 동창회가 설레는 걸까
명석이와 동창회 관련 회의를 위해 내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명석이가 소주 한잔을 마시며 말했다.
"지금까지 참석인원은 한 20명 정도 될 것 같은데?"
"그 정도?"
"많은 거야 인마, 솔직히 내가 일을 너무 키운 것 같아서 걱정이었는데, 네 생각은 어때?"
굉장히 실망적.
20명이면 동네 호프집에서 해도 될 정도, 명석이의 사이즈를 키워야 했다.
"20명이면 괜찮지. 그런데 동창회라고 해서 꼭 우리 동기들만 포함시킬 필요는 없어, 중성대 선후배들 전부 포함시키자."
"총동창회?"
"어. 어차피 우리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동창회잖아? 그러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백 명 이상은 생각해두고 있었다.
"사이즈가 커지는데? 선후배들까지 온다면 장소가 중요해. 생각해둔 장소 있어?"
물론 있지.
"호텔 뷔페로 할까?"
"그것도 괜찮지. 그런데 호텔 뷔페는 따분할 것 같기도 하고."
"술집을 빌려?"
"쓰읍."
"클럽을 빌려?"
"전 재산 탕진할 생각이면 클럽도 괜찮고, 크크. 그런데 너무 정신 없지 않을까?"
"클럽 분위기는 우리가 직접 만들면 되는 거야. 정신없는 EDM이 싫으면 요란하지 않게 90년대 외국 힙합도 괜찮고. 어쨌든 우리가 만들면 되니까."
"음."
"사운드 적당히 하고 분위기 잘 주도해주는 DJ섭외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 아직 젊잖아? 미슐랭 식당에서 얌전히 밥만 먹기에는 따분하고."
"크크. 맞아. 생각해둔 클럽은 있고?"
"옛날에 우리 자주 갔던 클럽, 내가 저번에 혼자 슬쩍 가보니까 손님이 거의 없더라고."
"DMX할렘 얘기하는 거야?"
"어."
"거기가 아직도 있다고?"
"어차피 우리 선배들도 온 다면 연령대가 40대까지 있을 거고. 다들 이 맛을 그리워할 거라고 보는데?"
"콜?"
"콜."
이렇게 해서 장소는 클럽으로 정했다.
어차피 이번 동창회 선배들이야 대부분 30대 후반에 40 중반까지고, 동창생들도 마찬가지 현재 사회에 찌들어 사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왕 할 거 재밌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와이프 허락은 맡았냐?"
명석이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동창회 같은 모임을 자유롭게 오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클럽이다.
유부남이, 게다가 아직은 신혼인 명석이가 홀로 클럽에서 동창회를 한다?
이건 못 가지.
"괜찮아. 이미 허락 맡았어. 30대 마지막 불태우는 동창회라고."
그런데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것.
명석이 와이프 애라씨는 10살 연상이라는 것이다.
간혹 명석이가 부러운 점 딱 한 가지.
넓은 아량으로 명석이를 감싸주는 포근함.
그것 말고는 없다.
"크크."
"너는? 지영씨 허락 맡았고?"
"너 내 성격 알잖아. 연애 때는 서로 통제하는 거 금지. 그리고 30대 중반인데 동창회 간다고 허락을 받아? 그게 좀 웃긴 것 같은데. 지영씨도 의아해 할 것 같고."
이게 내 판단이었다.
지영씨도 친구들하고 술을 마시거나 놀 때도 내게 얘기 하지 않는다. 간혹 물어보면 대답하는 수준?
그래서 내가 먼저 나서서 동창회 얘기를 꺼내기는 싫었다.
"그래도 얘기는 해야지. 지영씨가 섭섭해 할 거야. 네가 아무리 자유롭게 살고 싶어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는 갖추고 해야지."
"음.."
명석이의 연애관과 나의 연애관은 정말 극과 극이다.
명석이는 매번 여친에게 보고했다.
술을 먹을 때도 축구를 할 때도 알바를 할 때도 그의 철두철미한 보고 체계는 아주 기가 막힌 친구.
옆에서 보면 아주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막말로 네가 동창회 간다고 하면 지영씨가 반대하겠냐? 너는 참 여자 마음 몰라. 네가 나서서 한번 딱 얘기해주면 지영씨도 생각이 달라질 거야. 아, 이 사람이 이제 나에게 허락까지 맡는구나."
"미쳤냐. 난 그런 거 못하겠다."
"해보라니까. 왜? 너 찔리는 거 있어서 그래?"
"전혀."
"없기는 너 전 여친들 때문에 그렇지?"
"..."
"그건 걱정하지 마라. 형이 이미 네가 신경 쓸 만한 인맥들 전부 쳐냈으니까."
"..."
"너하고 관련된 여자애들은 안부를 거야. 예전에 너하고 사귄 애들은 아마 창수네 동창회 쪽으로 갈 것 같고."
명석이와 나는 서로의 연애사를 너무 뼈속 깊이 알고 있었다.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가장 먼저 내 친구라고 소개시켜줬던 놈이 명석이었고, 명석이도 마찬가지 자랑스럽게 나를 소개시켜줬다.
그런데 그게 지금 와 생각해보면 마냥 좋은 게 아니었다.
서로 입 열면 애라씨나 지영씨가 쌍심지 켜고 달려들 소재 거리도 너무 많고,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흑역사도 서로 너무 잘 알고 있으니 암묵적으로 그 선을 지켜줘야만 했다.
그리고 간혹 내가 미리 얘기하지 않아도 명석이가 내 생각을 꿰뚫고 있는 것을 보면 진짜 친구라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솔직히 전 여친들을 동창회에서 만나지 않을까 조금 걸리긴 했다.
그래서 명석이가 고마웠다.
"땡큐."
"그러니까 떳떳하게 가는 거야. 우리 이번 동창회의 주제가 뭐냐. 우리가 중심이란 거야. 위대한 개츠비 봤지? 개츠비가 돼보는 거라고."
그런데 개츠비가 돼보겠다면서 지 돈 나가는 건 없잖아?
명석이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흡연실로 향했다.
멍하니 별을 보며 담배를 태우고 있을 때, 명석이가 갑자기 분위기를 잡으며 내게 말했다.
"도일아."
"엉?"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대학교에 딱 첫 입학 했을 때 우리 서로 완전 지질이 이었잖아."
"그치."
"네 면상을 딱 처음 봤을 때 느꼈거든, 이 새끼는 내 과다."
"나도."
"봉지라면 하나로 이틀 버틴 거 기억나냐?"
"기억나지. 하루는 면먹고, 다음날은 국물에 밥 말아 먹고."
"사람일 정말 한 치 앞도 모르겠다. 그때만 해도 내가 10살 연상이랑 결혼할지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고, 너도 그지 깽깽이가 이렇게 부자 될 줄도 몰랐고."
"..."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지영씨 집에서 말 없냐?"
"아직 부모님도 안 뵙는데. 뭘."
"아직? 너무한 거 아냐? 지영씨는 붙잡고 싶고, 결혼은 아직 싫은 거고, 좀 이기적인데."
"맞아. 좀 이기적이면 어때."
"지영씨 생각도 해야지. 이제 나이가 곧 있으면 30대 꺾이는데."
"그래서. 그래서 그런 거야."
"뭐?"
"지영씨랑 정말 오래가고 싶거든, 결혼이야 현실적으로 언젠가 때 되면 하는 거고. 지금은 지영씨 삶도 있고 내 삶도 있으니까, 그전까지는 서로 암묵적으로 터치 안 해. 서로 말 안 해도 그게 느껴져."
"..."
"결혼 전까지는 자유잖아? 내 연애관을 네가 잘 알면서 그러냐."
명석이가 아무 말 없이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시발. 조금 부럽긴 하다."
그때
검정색 스타렉스 한 대가 도착했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더니 한 여자가 급히 차에서 내려 아파트 안으로 사라지듯 들어갔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여자였는데, 명석이로부터 들은바 그녀는 신인 여배우였다.
예전에 입주 떡을 돌릴 당시 본인이 누군지 아냐며 물었던 관심종자.
예쁘기는 정말 예뻤다.
명석이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쟤 우리 학교 후배야"
"뭐 진짜?"
"어. 저번에 여기 촬영할 때 인사 하긴 했는데, 진짜 착하더라고."
"가식이야. 아마 촬영하러 온다는 소식 듣고 연기했다는 거에 한 표."
"아냐. 쟤는 천사야. 내가 깜짝 놀랐다니까 촬영할 때마다 와서 이것저것 챙겨줬는데."
"그래?"
그런데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여태 수많은 인간군상을 만난 결과.
GN아파트 입주민회장부터 경술대 총장, 일성은행 지점장까지 지 손에 이득이 있어야만 제 발로 직접 나섰으니까.
함께 승강기를 타고 집으로 들어가려 할 때 뭔가 진득한 냄새가 올라왔다.
담배 냄새.
여배우가 계단 복도 창가에 얼굴을 내밀고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와 개념 없는 것 보소.
명석이도 조금은 놀란 표정이었다.
"저기요."
"네?"
"여기서 담배를 몰래 피우면 어떡합니까."
"최대한 냄새 안 나게 창문에 후 불고 있어요."
"단지 내에 흡연실 있는 거 뻔히 알면서."
"괜히 제 이미지도 있는데,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시면 안 될까요?"
"그냥 집에서 태우시지.."
"옷에 냄새 배요."
"중성대 나왔죠?"
"네?"
"제가 선배예요. 앞으로 담배는 나가서 펴요."
"네."
-쾅!
그녀가 집 문을 거세게 닫았다.
"내가 뭐랬냐. 가식이라고 했지?"
"와 싸가지 존나 없네."
명석이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넌 아직 사람 볼 줄을 몰라."
"와이프한테 얘기해서 전부 편집하라고 할까?"
"그럴 것까지야."
명석이와 집에서 소주를 몇 잔 더 마신 뒤 귀가할 채비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동창회 모임 장소는 내가 준비하기로 했다.
클럽으로.
* * *
다음 날 아침.
휴먼매니저의 아침은 언제나 현준이의 청소로 시작한다.
그가 쓸고 닦고 사무실 책상을 정리할 때 정주임이 등장하고 내가 마지막으로 도착한다.
현준이는 과거에도 그랬다.
사무업무는 좀 늦었지만, 사원들이 비품을 바로바로 찾을 수 있도록 정리 정돈을 참 잘했다.
그런데 매번 현준이만 이런 일을 한다는 것.
오늘은 귀중한 손님이 오는 날이었다. 그래서 현준이가 더 사무실을 깔끔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현준아, 적당히 쓸고 닦아. 어차피 곧 이사 갈 건데."
"그래도 오늘 오과장님 오시는 날이지 않습니까. 첫인상이 중요한데 먼지 쌓여있는 꼴 보여줄 수는 없죠."
"워킹 휴먼 때는 사무실이 개판이 되든 말든 신경 안 쓰더니."
"이제 회사가 제집 같아서 그렇죠. 흐흐."
"정주임."
"네."
"같이 청소 좀 해줘라. 현준이 혼자 고생하잖냐."
"현준아, 힘들어?"
"아니 괜찮아."
퉁명스러운 말투로 서로를 대했다.
"너희 싸웠냐?"
"싸우긴요. 저한테 혼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