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학과 장학금은 어떻게 할까?"
"음.."
"얼마면 되겠냐?"
"흐흐. 대표님 그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너네 사립이지?"
"네."
"학교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것보다 우리 회사에서 직접 관리했으면 싶은데."
"네?"
"앞으로 1년간 유도학과 전 학년 메달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삼백만 원씩 장학금 넣어주기로, 그게 괜찮지 않을까?"
내가 만약 회사 이름으로 경술대학교에 1억을 기부하면 당연히 학교 내 이름도 올리고 고액 장학금 명단에 오르겠지만, 그러기는 싫었다. 내 돈이 정확히 어떻게 쓰이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
"그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들었는데 어제 전국대회에서 동메달.."
"색깔 관계없이 메달 하나에 삼백이야. 그렇게 전해줘."
"넵! 알겠습니다!"
"흐흐. 선배 노릇 좀 하겠다?"
"그럼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학교에 도착한 뒤 현준이는 유도학과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향했고 나는 총장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사립대학교라 아무리 총장이라고 할지라도 임원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성과를 내준 게 고마운 점도 있었다.
총장과 나는 감정이 서로 좋지 않다.
총장에게 쓰레기를 이삭 줍듯이 시켰고, 총장실을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 놨으니 아마 나를 보면 질겁하겠지.
총장은 언론사에 인터뷰를 직접 요청했다고 한다.
대외적인 이미지도 중요한 양반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로 본인의 이미지 메이킹을 할 심상인 것 같았다.
이왕 돈을 썼으니 대학 이미지를 올리는 건 총장으로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개관식은 행정실 팀장과 총장과 교수 몇몇이 모였고, 기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미화원 직원들을 데리고 개관식을 참석했다.
아직 식이 진행되기 전이라 미화 직원들도 현재 휴게실이 어떻게 꾸며졌는지 모르는 상황.
휴게실을 대체 얼마나 잘 꾸며 놨기에 이렇게 난리법석을 해대며 기자들까지 끌어오며 개관식을 하는지 궁금하긴 했다.
커팅식이 끝나고 총장을 필두로 휴게실의 문이 열렸다.
기자들의 셔터세례를 맞으며 총장이 어떻게 휴게실을 개관하게 됐는지 설명했다.
"몇 달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한국의 대학교 중에 청소노동자가 창문도 없고 환기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휴게실에서 사망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찰칵!
-찰칵!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냉난방기도 없는 그런 곳을 휴게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청소부가 숨진 날 한낮 여름 기온이 38도를 육박했다고 합니다!"
-찰칵!
-찰칵!
"60대 이상의 고령을 고용하면서 이런 쾌적한 휴게실 한 평 내주지 못하는 대학들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경술대학교가 그 시작을 알리며 우리 대학을 보며 다른 대학교도 함께 했으면 합니다!"
-찰칵!
-찰칵!
아주 유세를 떤다. 유세를 떨어.
물론 총장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그래서 경술대학교를 시작으로 다른 대학들도 동참하여 청소부 휴게실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찬물을 끼얹기 싫지만 나는 할 말은 해야만 했다.
"이거 공사가 제대로 안 됐네."
휴게실내 설치된 평상을 살폈고, 살짝 튀어나온 못을 누르며 말했다.
내가 찬물을 끼얹자 일순간 총장과 학과장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기자들도 대체 뭔 놈이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나는 이런 시선을 개의치 않지.
그리고 내가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것.
"휴게실에 왜 CCTV가 있는 겁니까?"
휴게실내 모든 인원들이 천장 모서리에 설치된 CCTV로 고개를 돌렸다.
난처해하던 한 교수가 내 말을 반박했다.
"허허. 범죄 예방 목적으로 설치했습니다. 대표님."
"누구 범죄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누구시죠?"
"저희 청소부 직원들 대표입니다."
"대표님이 모르는 부분이라 제가 그건 차후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CCTV 설치 목적은 분명한 범죄 예방 목적이기 때문에 설치가 불가피한 경우입니다."
"제가 그걸 모르겠어요? 그런데 여긴 사무실이 아니라 휴게실이잖아요. 여기서 옷도 갈아입을 텐데 CCTV가 웬 말입니까."
"흐흠."
"CCTV는 어디로 이어져 있죠?"
"보안실입니다."
"CCTV는 떼죠. 사무실에 CCTV달리는 것도 엄청 짜증 나고 신경 쓰이는데, 휴게실에서 저희 직원들이 맘 편하게 쉴 수가 있겠어요?"
"범죄예방 목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당신네 사무실에도 CCTV하나씩 달던가요."
"..."
"왜 우리 직원들만 범죄 예방 목적으로 관리를 합니까? 어차피 휴게실은 쉬는 시간 제외하고는 잠가 놓을 거라 외부인 출입 못하게 할 거예요."
내 말에 따로 반박하지 못했다.
"이런 사소한 거로 사람 섭섭하게 만든다니까요. 해줄 거면 제대로 하던가 하여튼.."
"김 대표님!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희가 이번 휴게실을 만들기 위해 자금을 얼마나 썼는지 아십니까."
"그러니까요. 돈 좀 쓸 때 제대로 쓰잔 말입니다. 여기 교수님들 휴게실 아니고 청소부 아주머님들 휴게실이잖아요. 그분들 말은 들어보셨어요?"
내 말을 듣던 아줌마들이 극히 반색하며 맞장구쳤다.
"세상에 휴게실에 CCTV가 웬 말이람. 남의 벗은 꼴 보고 싶어서 그런 겨!?"
가장 연세가 많으신 아줌마가 말했다. 역시 연장자답게 나름 카리스마 있었다. 그리고 청소부 중에 가장 나이가 적은 화연씨가 받아쳤다.
"대표님 말이 맞아요. 휴게실은 저희 쉴 때만 개방하고 어차피 근무시간에는 잠가 놓을 건데, 무슨 범죄를 예방한다는 거예요? 저 젊어요. 아직 40초반이에요. 여기 어르신들이야 볼 게 없다지만 저는 굉장히 불쾌한데요? CCTV도 고화질 같은데."
"어휴 이년이 또 말을."
"그럼 이렇게 합시다."
총장이 말문을 열었다.
과연 경영학 박사로서 해결책을 내놓을 것인가.
모든 시선이 총장에게 쏠렸다.
"CCTV하고 연결된 보안실 영상기기 하나를 휴게실로 옮기시죠. 범죄 예방 목적은 맞지만, 도급법상 저희들이 감시할 의무는 없습니다. 휴먼매니저에서 관리해야 될 부분이니까, 휴먼매니저에서 CCTV 관리하는 거로 하시죠."
"다들 어때요?"
내가 아줌마들에게 물었다.
"그럼 그렇게 하죠."
* * *
야단법석 휴게실 개관식이 마무리됐고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모두가 떠난 휴게실 평상에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갖춰지지 않은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아줌마들이 밥 먹을 식탁과 널브러진 비품들을 정리하기 위한 수납장, 그리고 캐비닛.
한 며칠을 좀 더 꾸며야지 그나마 휴게실 구색을 갖출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누군가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현준이었다.
현준이가 잘 갖춰진 휴게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야. 진짜 깔끔하네요. 흐흐. 이제 좀 맘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빼먹은 게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
"현준아."
"넵."
"휴게실이 끝이 아냐. 우리 엄마도 옛날에 청소부 이었거든? 그런데 항상 일을 끝내고 집으로 오면 발이랑 손목을 부여잡았어. 욱신거린다고."
"아.."
"우리야 뭐 젊으니까 개의치 않지만, 건물 중에 승강기가 없는 곳도 있어. 그러니까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봐. 발 덜 쓰고, 손목 덜 쓰고, 요즘 청소용품 좋은 거 많잖아."
"넵 알겠습니다."
"아끼지 말고 해줘라."
"네!"
몇 가지 점검을 끝내고 나도 휴게실 문을 잠그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경술대학교 청소부 휴게실.
이거 하나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던가.
휴우.
나도 청소부의 아들이다.
엄마도 돈을 벌기 위해 빌딩 청소부, 고등학교 청소부로 일했었다.
그래서 이번 성과가 더 벅찼다.
매번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밥을 먹었던 그들에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줬다는 것.
그간 어떻게 참고 일했을까 싶다.
현준이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제 내가 경술대학교에 올 일은 많이 없을 것 같았다.
그때
화현씨가 멀리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나는 시동을 걸기 전에 문을 열고 나가 그녀를 마주했다.
"휴게실 고마워요. 그래도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저기 차 안에 젊은 친구 한 놈 보이죠? 앞으로 저 친구가 이 학교 전적으로 담당할 겁니다. 매번 전화해서 괴롭히세요. 필요한 거 바로바로 얘기하고."
"대표님은 어디 가세요?"
"사무실 들어가야죠."
"아쉽네. 오늘 어머님들이랑 회식하기로 했었는데."
"회식비 넣어드릴게요. 모자라지 않게 드세요. 그리고 화연씨?"
"네?"
"제가 화연씨 근로계약서를 보고 싶어서 본 건 아니지만, 그 정도 이력이면 이런 일 안 해도 될 텐데요."
"..."
그녀는 현재 청소부로 근무 중이지만, 서울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나왔다.
물론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어디 있겠냐 많은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제가 괜한 말을 했나요?"
"저마다 개인사가 있잖아요."
화연씨와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그냥 말았다.
"힘든 일 있으면 연락해주시고요."
"고마워요. 저도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언젠가 또 만날 날이 오겠지.
"들어가 볼게요."
"네."
그녀와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현준이가 궁금한 듯 내게 물었다.
"뭐래요?"
"다음에 또 보잔다."
"흐흐. 대표님 아줌마들한테도 인기 많으시네요?"
"현준아. 화연씨 앞에서 아줌마라고 하면 혼날걸? 너는 화연씨가 나이 들어 보이냐?"
"그럼 뭐라고 불러요?"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누님이라고 해. 물류센터처럼 사원님 사원님 그러지 말고 정 없어 보이니까."
"넵! 이제 회사로 들어가시는 거죠?"
"왜?"
"회식 한번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너 고기 먹고 싶어서 그러냐?"
"저는 대표님이 사주는 고기가 제일 맛있더라고요."
"크크. 가자."
그리고 문득 찝찝한 마음.
"현준아."
"넵."
"청소부 인원 더 증원해라."
"갑자기요? 급여 인상으로 마무리 짓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급여는 급여고, 청소 구역 넓어졌으니까 인원은 더 있어야지."
"하아."
"왜?"
"안 됩니다. 그러면 저희 경술대 측에서 얻는 이익이 너무 적어집니다. 급여도 올려줬는데요 인력까지 증원하면.."
"...?"
"저희 회사 망하면 어떡합니까. 솔직히 이건 대표님 생각에 반대입니다."
"많이 컸네."
"네?"
"시키면 시키는 것만 하던 녀석이 의견도 낼 줄 알고. 그런데 현준아."
"네."
"우리 회사 안 망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