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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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 삥 뜯긴 돈 받아 줄 테니까 10% 떼 달라고 했어요."

"허허."

그리고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아 지점장을 바라봤다.

"지점장님, 그런데 여기서 영업이 발생하기 시작한 겁니다."

"네?"

"매일 괴롭힘을 당하던 친구가 저한테 20%를 부르더라고요. 그런데 조건이 뭔지 아십니까?"

"...?"

"양쪽 눈에 멍이 들 정도로 줘 패 달래요."

"하.. 허허허. 대표님께서 아주 허허."

"그래서 제가 그랬죠. 겨우 20%로 돈도 뺏어주고, 줘 패주는 것까지 하면 내가 남는 게 뭐가 있냐고. 10% 더 올려달라고 그랬더니 그 친구가 씩 웃으면서 하는 말이 뭘 것 같아요? 퀴즈예요. 맞춰봐요."

"크흠. 본인도 한 대 때릴 수 있게 해달라고?"

"아뇨. 저한테 다른 놈도 소개 시켜준다면서 소개비로 10%를 떼 달래요."

그 친구는 현재 사업을 하고 있다.

"크하하하."

지점장이 배를 잡고 웃어댔다.

"지점장님 이거 웃을 일 아닌데요."

"네?"

"제가 왜 이 지점에 돈 10억을 예치했겠어요?"

"..."

"저요. 막말로 10억 돈 빼버리고 그냥 계약해지하고 끝장내버리면 제 속도 편하고 이런 개 같은 갑질 안보고 살면 그만이거든요?"

"하아.."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어떻게 하실래요."

"대표님.. 하아..그런데 저희가 은행 잡일이 정말 너무 많아요. 너무."

"아 거참! 제가 그것까지 설명을 해줘야 돼요? 제가 이 은행 지점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십니까?"

"...?"

"제가 은행 본점 임원이면 지점장 모가지 당장 잘라버릴 정도로 영업이 개판이라는 겁니다."

"그게 무슨.."

"창구만 봐요. 손님들 쳐내기만 바쁘지 저게 영업입니까? 창구 직원들 표정 썩어 있는 거 보이죠? 안 그래요?"

"그건 창구가 많이 밀리니까.."

"지점장님 그게 포인트에요."

"네?"

"제가 여기 지점장이라면.. 창구 하나 없애요."

"...!"

"창구 없애고 손님들 줄 세우게 만든다니까요. 여기 은행에 오는 손님들 연령대가 대부분 높잖아요. 은행 예금 1% 목마른 양반들인데, 그걸 영업 안하고는 못 배기죠."

"..."

"제가 대안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창구하나 없애고 남는 인력으로 고객들 커피 한잔씩만 돌려도 훨씬 이득일 거라고요. 어르신들한테 ATM기 직접 설명해주면서 예금 상품 설명만 해줘도 언젠가 영업 이익이 돼서 돌아올 텐데요. 인근에 상권도 많은 지점에서 그 정도도 못하면 지점장으로서 무능력이죠."

"하.."

"어쨌든 앞으로 일성은행에서는 저희 경비인원은 경비만 볼 거니까 그렇게 아시고. 그리고 가스총에는 왜 가스가 없는 겁니까?"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옛날에는 간혹 한국에서도 은행털이가 발생하긴 했으나, 지금은 은행 털이범이 전멸을 했다.

워낙에 CCTV도 많고 주위 보는 눈이 많으니 2010년대 들어서 은행 강도의 검거율은 100%를 육박한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한국의 은행은 그래서 털기가 쉬운 구조다.

미국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강도들이 산탄총이나 기관총을 들고 돌격하는 경우가 일절 없기 때문에, 그만큼 은행 경비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은행 강도시에 대한 대처 매뉴얼도 알고 있을까 싶다.

만약에 미국이나 우범 국가에서 한국의 은행 구조처럼 은행경비가 흔한 가스총도 소지하지 않고 동전이나 바꿔주고 있다면, 아주 쉬운 먹잇감 수준이겠지.

심지어 보험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으니 은행이 털려도 전액을 보상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강도들에게 그냥 돈을 줘도 그만이다.

요즘 강도들 너무 착하다.

이걸 안 털어?

지점장은 내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은행경비에게 잡무를 시키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아직 정리를 해야 될 일이 남아 있었다.

부지점장의 떡볶이.

본인이 처먹고 싶으면 본인 다리로 가서 사와야지 그간 은행경비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있었다.

이건 아주 혼쭐나야 하는 경우.

그리고 내 인생을 이곳까지 끌고 온 나의 매니저에게 자문했다.

‘휴먼매니저?’

[휴먼매니저V1.0의 시스템이 발현 됩니다.]

[김도일님의 잠재된 능력을 도식화하여 스킬목록을 발현합니다.]

[스킬 목록]

「건강」 「기억력」 「로또LV7」 「공감력」

「정치」 「친화력」 「식견」 「매력」

「무력」 「설득」 「혼란」 「체력」 「계산」

「이해」 「기합」 「희생」 「도발」 「공신력」

······

······

왜 여태 이 많은 스킬 중에 단 한 번도 호기심을 가지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간 내가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별로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였다.

내 두뇌로 해결 가능한 일을 시스템에서만 의지한다면 내가 인조인간이지 사람인가?

휴먼매니저 시스템의 주의사항을 다시 읽었다.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 위한 시스템이니, 무분별한 사용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도식화된 스킬 중 내가 일성은행의 부지점장을 아주 멋있게 뒤 엎어버릴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설득」과 「혼란」 이란 스킬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허나 설득이라는 단순한 스킬로 일성은행의 안전 불감증과 무사안일주의를 깨뜨릴 수가 없었다. 너무 얌전한 건 싫었다.

때마침

부지점장이 현재 내 옆에서 멀뚱히 서 있는 은행경비 김창환씨에게 다가왔다.

"창환씨 떡볶이하고 순대하고 2인분씩 포장 좀 부탁드려요."

"네."

김창환씨가 은행 경비로서 업무가 맞느냐는 눈치로 나를 바라봤다.

김창환씨에게 다가갔다.

"하지마세요."

"네?"

"우리 부지점장님 떡볶이는 제가 사 올게요. 괜찮죠?"

내 말을 듣던 최영숙 부지점장이 굉장히 당황한 기색으로 난처해했다.

"아니..경비분이 하시면 될 텐데.."

"아뇨. 제가 하고 싶어요."

"흐흐..대표님 그러면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런데

꼭 휴먼매니저의 스킬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능을 남발하기에는 나의 뇌는 아직 촉촉하고 잘 돌아가는 수준이다.

나는 부지점장에게 돈 만 원을 받고 분식집으로 향했다.

"떡볶이 배달되나요?"

"어디 배달해드리면 됩니까?"

"배달비는 제가 미리 결제하고요. 일성은행으로 떡볶이 배달 좀 부탁드릴게요."

"넵!"

그리고 나는 다시 은행으로 돌아갔고, 부지점장은 빈손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며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대표님 떡볶이는요? 우리 직원들 기다리고 있었어요."

"곧 올 겁니다."

몇 분이 흘렀을까.

배달 직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은행 앞에 내렸고,

떡볶이를 배달했다.

“와. 감사히 먹겠습니다. 대표님!”

부지점장이 아주 기분이 좋아진 듯 나를 보며 웃었다.

하지만

더 줄지어 들어오는 떡볶이 배달에 부지점장이 토끼눈을 뜨며 나를 바라봤다.

-여기 최영숙 부지점장님 어디 계십니까?

-떡볶이 시키신 분!

-최영숙 부지점장님 앞으로 떡볶이 10인분 배달이요.

-로제크림떡볶이 30인분 여기 맞나요?

-엽기떡볶이 20인분 최영숙 부지점장님!

배달기사들이 연신 부지점장님을 찾아댔고, 그의 업무 테이블에는 떡볶이 약 100인분이 쌓였다.

"이렇게 많이요?"

"네. 앞으로 떡볶이는 배달로 시켜 드시라고요. 어려운 거 아니죠?"

"네?"

"저희 직원한테 한 번만 더 떡볶이 심부름시키시면 제가 매일 백 인분 씩 배달해드릴게요."

"..."

"아셨죠?"

부지점장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궜고, 이 사태를 직면한 은행원들이 나를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나는 이 적막함 속에서 은행 경비를 찾았다.

"떡볶이 먹게 이리 오세요."

"넵!"

은행원들과 은행 경비와 지점장과 부지점장과 떡볶이를 배터지게 먹었다.

그래도 남은 탓에 부지점장이 포장해서 집으로 들고 갔다.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 * *

[2회 연속 로또 이월! 1등 누적 당첨금액 약 980억!]

[로또 역사상 최초의 2연속 이월! 당첨금액 약 천억 이상!]

[로또는 이월이 대세? 한국과 독일 동시에 로또 이월!]

[이월 3회차에도 당첨자가 나오지 않으면?]

[로또 당첨금액의 새로운 역사!]

1011회차에서 240억 원이 1012회차로 이월됐고, 1012회차도 1등 당첨인원이 나오질 않아 1013회차로 이월됐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반응은 엄청나게 뜨거웠다. 인터넷 신문기사마다 달린 댓글이 그 증거였다.

-로또에 십만 원 태웠다.

-현재 독일 로또도 이월 됨, 600억. 독일 로또 사셈.

-이월이 연속으로 두 번된 경우는 없잖아? 이거 조작 아님?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인데..

ㄴ 갓챠겜 0.0001% 확률은 말이 되고?

ㄴ ㅇㅈ

이제 마지막 1013회차에서 내가 독식을 한다면 현재까지 누적 1등 당첨금액은 980억 원,

그런데 아직까지 1013회차의 로또 판매가 계속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단언컨대 1,500억 원 이상을 독식할 수가 있다.

1,500억 원의 당첨금액을 독식 한다면 나는 한국에서 0.1%의 상위 부자가 된다.

그리고 아직까지 로또 레벨을 만렙으로 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1,500억 원에서 더 재산을 부풀릴 수가 있었다.

이정도면 로또를 레벨업 하는 건 의미가 없지 않나?

크크.

현재 내가 가진 재산은 GN아파트의 내 자가와 경비 휴게실 한 채, 그리고 주식을 합하면 약 170억 원 정도 했다.

휴먼매니저 회사의 자본금을 제외한 순수 내 자산 금액.

주식은 현재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떨어지면 또 오르겠지.

-깨톡.

오 [대표님! 인사드립니다. 혹시 전화 통화 가능하신가요?]

나 [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지금 내 앞에 펼쳐진 L호텔에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와인 한잔을 마셨다.

물론 이런 사치를 즐기는 건 순전히 내 몸의 피로를 풀기 위함이다.

은행에서 있었던 감정 소모와 스트레스도 풀 겸.

GN아파트의 리모델링을 시작하면 이곳에서 지내야 했기 때문에 미리 한번 와보고 싶었다.

하루 숙박비 700만 원의 이곳은 사면의 통유리 창에서 보이는 서울의 동서남북 전경을 즐길 수 있었다.

북쪽은 북한산과 도봉산, 그리고 한강뷰가 보였고, 남쪽은 송파구 주택가와 석촌호수가 보였고, 서쪽은 빌딩 숲과 남산타워, 동쪽은 올림픽 공원과 재개발 단지들이 곳곳 보였다.

물론 이런 황홀한 파노라마 시티뷰와 더불어 곳곳에 비치된 최고급 가구들과 푸욱 꺼지는 침대, 그리고 가장 기가 막힌 것은 주차장.

한 가구에 7대를 주차 할 수 있는 여유로움.

지금은 거금의 하루 숙박비를 내고 있지만 언젠가 내가 이곳의 입주민이 된다면 그때는 상위 0.1%의 삶을 누릴 수가 있었다.

-띠리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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