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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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독일 금리하고 연계된 상품인데요. 쉽게 말해 독일 금리가 떨어지지 않으면 수익을 얻을 수가 있거든요."

"아.."

"그런데 이게 금리가 떨어질 확률이 제로에요 제로. 독일이 무슨 국가입니까? 유럽에서 1등 국가잖아요. 얘들이 금리를 마이너스 이하로 떨어뜨리겠어요?"

"그렇죠."

순간 솔깃했다.

"원금 보장 100% 가능하고 독일 금리 조금이라도 오르면 최대 수익률 30% 보장해드립니다."

"와. 정말 괜찮은 상품인데 생각 좀 해보고 말씀드릴게요."

"에이."

"네?"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오늘내일 마감 되는 상품인데 이걸 어떻게 놓치겠어요? 벌써 6000억 원어치 팔렸어요. 이건 번호표 상품이 아녜요. 대표님처럼 재력 있고 능력 있으신 분들에게만 판매하는 상품이거든요."

"아.."

"혹시 가격이 조금 세나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게 영업의 기본인 건 안다.

이 인간이 어떻게 지점장이 됐는지 알 수 있는 말 빨이었다.

그런데 나도 만만치 않지.

"휴우. 그런데 제가 딱 하나 걸리는 게 있거든요."

"뭐죠?"

"여기 오는 길에 새똥을 맞았어요."

"네..?"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내리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내 소중한 앞 유리에 새똥이 딱 묻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새똥이 무슨 의미인지는 아시죠?"

"흐흐."

"새똥을 맞으면 빚에 허덕인다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영 찝찝해서."

"그러면 이렇게 하시죠."

"네?"

지점장은 이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댔다.

그리고 은행 경비가 들어왔고 지점장은 내게 차번호와 차종을 물었다.

나는 한사코 괜찮다고 만류했으나 이미 지점장의 눈은 영업 이익으로 눈이 돌아간 상태.

"세차는 제가 할 테니까 그만하시죠."

결국 은행경비가 물러났고 지점장이 내게 말했다.

"대표님. 대표님 새똥은 제가 깔끔하게 지워드리겠습니다. 저희 은행에 방문하실 때마다 세차는 기본으로 해 드리고요."

"..."

"그리고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은행경비가 예전에 세차장에서 근무했다고 하더라고요. 세차는 아주 기가 막히게 하는 친구니까 걱정 마십시오!"

이로써 현준이가 보내준 부당 업무 내역 3번째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세차.

이것도 체크완료.

그리고 이제 나도 본론으로 들어갈 때였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네?"

"혹시 예전에 이곳에서 근무했던 은행 경비 기억나시나요?"

"그럼요."

지점장은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냐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따듯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잔을 내려놨다.

"그 친구가 그간 못 받은 월급이 석 달 치 180만원이라고 하더라고요..휴."

"혹시 대표님 지인이십니까?"

"저희 회사 직원의 친구거든요."

"그런데 이게 저희가 급여를 주는 게 아니라 용역업체에 급여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표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그렇긴 한데..혹시 여기 은행 경비하고 맺은 업체가 굿타임즈 맞죠?"

"그렇죠."

"하아..지점장님 제가 진짜 일성은행하고 거래하고 싶은데요. 굿타임즈 같은 쓰레기 업체하고 연관된 은행이랑은 계약하기가 갑자기 껄끄러워지네요."

"..."

"어쩌죠?"

"크흠."

"제가 알기론 굿타임즈가 일성은행하고 맺은 네 군데에서 은행 경비 월급으로 한 달에 720만원을 부당이익을 올리고 있는 거로 알거든요."

"잠시만 기다려주시죠."

지점장이 사무실을 나간 뒤 몇 분이 다시 돌아왔다.

"그런 일을 저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저희는 용역대금만 업체에 보내주는 정도예요."

"어떻게 처리하셨나요?"

"부지점장에게 얘기는 해놨습니다. 아시다시피 위임계약이라 신뢰관계가 깨지면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는 권한이 있거든요. 일단 그런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보고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아시네요."

"은행 지점 대표지 않습니까. 잘 알아야죠."

"그리고 한 가지 더요."

"네?"

"아마 굿타임즈에서 부당이익으로 착취한 월급뿐만 아니라 연차수당, 퇴직적립금도 은행에서 받아낼 수 있을 겁니다."

도급계약이나 위임계약의 차이는 환수여부 차이라고 보면 쉽다.

일반적으로 도급 계약은 선보수를 지급하여 일정 기간 또한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계약하는 것이지만 위임 계약은 원청이 상대방에 대하여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는 것.

도급은 선 보수 금액을 받고 마진을 남겨도 원청에 지급할 의무는 없으나, 위임은 용역업체에서 근로자들에게 미지급한 연차수당이나 퇴직급여등 부당이익을 환수할 수 있었다.

법 해석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성은행과 굿타임즈의 계약은 분명히 위임계약이었다.

그리고 다시 본론.

"지점장님. 굿타임즈에게 부당이익을 환수 받으면 그간 월급 못 받은 친구들에게 돌려줄 수 있겠어요?"

"당연히 가져가야 될 거 아닙니까? 당연히 드려야죠. 그리고 이걸 알면서도 환수 못하는 건 지점장으로서 배임이죠."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 사무용 가방에서 서류 몇 장을 꺼내들었다.

용역경비위탁계약서.

지점장에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지점장님?"

"네?"

"제가 세금 걱정하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

"은행 예금으로 10억 넣겠습니다. 굿타임즈하고 계약해지 하면 저희랑 계약하시죠."

* * *

"미친놈. 너는 정말 내가 본 인간 중에 제일 미친놈이야."

최부장이 내게 술을 한잔 따라주며 말했다. 오랜만에 온 노가리 포차.

이곳에서 항상 최부장과 술을 마셨었다.

은행에서 일어났던 나의 기행을 들려줬더니 최부장은 아주 기겁을 했다.

"그래서 계약은 했고?"

"내일 중으로 될 것 같습니다. 아마 굿타임즈하고 계약 해지 되면 저희랑 하지 않을까요?"

물론 공짜는 아니다. 내 은행 예금 10억이라는 보증금이 들어간 꼴.

"굿대표는?"

"일성은행에서 저희랑 계약한 거 알게 되면, 조만간 연락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마 벌써 굿대표 귀에 들어갔을 거다. 어떻게 감당할래?"

"감당할게 있나요? 어차피 먹고 먹히는 시장인데. 최부장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이 바닥 쓰레기 업체들 싹 쓸어버리려면 이정도 깜냥은 있어야죠."

"그래. 네 말이 맞다."

때마침 굿대표에게 전화 왔다.

"받아봐."

"받아서 뭐라고 하죠?"

"그 정도 뒷감당은 생각 안했냐?"

"흐흐."

갖은 쌍욕이 나올게 뻔했으니 뭐.

"여보세요."

-야.

"예?"

-너 이 씨벌놈아. 네가 얘기했냐?

"뭔 얘기를 해요."

-하. 이 개새끼보소. 일성은행 지점장이 왜 나한테 전화가 와서 지랄이냐고. 이 개새꺄.

"욕 그만하시고요."

-너 씨발 이 바닥에서 남 뒤통수치는 회사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

-두고 봐 씨발놈아.

"이보세요."

-뭐 이보세요?

"제가 당신한테 욕먹을 짓한 게 뭡니까?"

-뭐..뭐?

"당신이 월급 안주고 삥땅 쳐 먹은 거, 연차수당에 퇴직적립금 쳐 먹은 거 다시 원청에 반납하는 게 불법입니까? 예?

-하. 이것보소.

"어차피 당신이 쓴 계약서 보니까 퇴직금줄 마음도 없더만."

-이 새끼가.

"뻔히 근무지 변경 발생 될 수 있다는 계약서가 무슨 뜻이겠어요? 경비들 1년 채우기 전에 근무지 뺑뺑이 돌릴 것 아니냐고. 내말 틀렸어요?"

-참나.

"그러니까 당신이나 뒤통수 쳐서 살 생각하지 말고, 착하게 삽시다. 예?

-너 지금 미쳤구나. 완전.

"한판 붙든가. 씨발."

-너 최부장 믿고 설치냐?

"예? 최부장님 얘기는 왜 또 나옵니까."

-너 이 씹새꺄. 내가 딱 보니까 최부장 뒷배 믿고 까부는 거 같은데. 최부장도 날개 잃었어. 새끼야. 썩은 동아줄 잡고 버팅기지 말고 무슨 말인지 알아?

최부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제야 내 휴대폰을 뺐었다.

"어이. 굿대표. 내가 썩은 동아줄이라니."

-어. 최부장?

"거 말이 좀 심하네."

-아니 그게 아니고.. 하. 김대표 이 개새끼가 내 뒤통수를 깠잖아.

"너는 내 뒷담화 안했고?"

-..

"이봐 굿대표."

-...

"내 성질 아직 안 죽었는데, 어떻게 여기서 끝낼까, 아니면 더 나아가볼까.

-미안하다.

"끊어라."

한바탕 욕지거리가 오고간 술자리.

최부장이 쓴 잔을 한잔 마셨다.

"죄송합니다. 괜히 최부장님한테 안 좋은 소리 들어가서."

"다들 그래. 워킹휴먼이 옛날 같지가 않거든."

"네?"

"다 죽어. 물류 업계도 초비상이고, 그나마 있는 계약들도 양아치 업체들한테 다 뺏기고 있고."

"..."

"그나마 숨 쉴게 우리 물류1팀 현장들인데, 거기도 간당간당하지. 지금 사원들 밀린 월급도 대출로 겨우 주고 있다니까."

"많이 힘든가보네요."

"심각하다."

"..."

최부장이 소주를 혼자 따라 마셨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김대표."

최부장이 내게 김대표라는 표현을 썼다. 단 한 번도 듣지 못했었던 말.

그의 얼굴에 근심이 드리워졌다.

"오과장 너희 회사로 넣어줄 수 있겠냐?"

"...!"

"부탁한다."

가스총에는 왜 가스가 없는 겁니까?

최부장의 침묵이 이어졌다.

현재 워킹휴먼의 사정이 어렵다는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부장이 오과장을 정리해야 되는 수준이라면 굉장히 심각한 상태.

오과장까지 데려온다면 현재 휴먼매니저가 가진 거래처로는 감당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GN아파트와 경술대학교 측에서 들어오는 용역대금은 한 푼도 빠짐없이 근로자들에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겨우 수입을 얻는 루트는 위탁관리수수료.

사실 이것도 얼마 되지도 않는 수준이라 오과장까지 넘어오게 된다면 거래처를 열군데 이상은 뚫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최부장은 오과장을 내치면 그만이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해고 통보하는 게 좋소에서 어디 하루 이틀 있는 일인가.

그런데 최부장은 본인의 자존심을 전부 내려놓고 내게 오과장을 휴먼매니저로 입사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자기가 데리고 있던 식구는 어떻게든 챙겨주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내가 봐온 최부장의 모습이었다.

물론 나도 최부장의 덕을 많이 봤고.

최부장은 내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담배를 물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부장도 안다.

현재 휴먼매니저가 가지고 있는 거래처로 오과장을 커버치기 힘들다는 것을.

"그냥 없던 얘기로 하자. 내가 너희 회사 사정 뻔히 아는데 괜한 말 꺼냈다. 미안하다."

"그런데 어차피 창업 초기 1년은 적자 맞고 시작하는 게 국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뭐?"

"인재들을 끌어올 시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우리 회사가 한 푼이 아까워서 인재들을 놓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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