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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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된 듯 지영씨가 손뼉을 쳐대며 웃어댔다.

현준이가 정성희에게 쿠폰을 보여줬을 것이고, 성희는 나름 자랑이랍시고 지영씨에게 리조트 얘기를 꺼냈다는 결론이다.

"도일씨 계획이라면...마주치자?"

"그렇죠."

"아하. 나름 좋은 계획인데요? 그런데 너무 얄궂은 것 아닌가요?"

"뭐 어때요. 저희 회사가 사내연애 금지는 아니거든요. 둘이서 궁상떨며 만나는거 생각하니 보기 안쓰러워서 제가 팍팍 밀어주려고요."

"흐흐."

지영씨와 아침을 간단히 해결한 뒤 나는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

그리고 휴먼매니저 사무실에 오랜만에 일찍 도착하자 정성희와 현준이가 나란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일 없지?"

"네. 대표님."

성희가 별말 없이 노트북을 하며 내게 대답했다.

현준이는 보고서 양식을 직접 만들어 '경술대 휴게실 진행 보고서'를 제출했다.

나는 현준이에게 받은 보고서를 살폈다.

역시 투박하다.

차라리 양식을 베껴왔으면 싶을 정도로, 이건 뭐 대학생 레포트 수준도 안 되는 수준.

그런데 뭐 그게 중요하나

내용만 충실하면 되지.

현준이가 건넨 보고서에는 현재 휴게실 진행 현황이 담겨있었다.

그것도 아주 자세하게

유도학과 과대가 다른 학과 과대와 술자리를 가졌고 청소부 휴게실 개선 사항에 대한 대자보를 총학생회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자보의 내용은 뭐 나름 그럴싸했다. 이건 패스.

가장 중요한 성과는 현재 청소부 직원들이 여자 화장실을 휴게실로 쓰고 있었으나,

유도학과 학생들이 학과장을 설득하여 잘 쓰지도 않는 강의실을 임시 휴게실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추진력이 좋은데?"

"운동하는 애들이 하나에 빠지면 아주 미친 듯이 달려들거든요."

보고서를 내려놓고 정주임에게 말했다.

"정주임 이번에 법인카드 한도 올라갔으니까, 너희들 밥 먹을 때 이걸로 써."

"정말요?"

"엉. 한도 가득 채웠으니까 30만원 넘겨도 돼."

"감사합니다아!"

정성희가 아주 기분이 좋은 듯 카드를 받았다. 예전에 워킹휴먼에서 근무했을 당시에도 성희와, 현준이, 오대리는 내 카드로 점심을 막 긁어댔었다.

"영수증만 잘 챙겨놓고 사용 대장 하나 만들어놔서 기록해놔, 그리고 세무기장 맡길 곳 알아보고."

"넵!"

"다들 담배나 한 대 피러가자."

옥상으로 향했다.

정주임과 낮게 깔린 다가구 전경을 바라보며 담배를 물었다.

빌딩 전경은 아니지만 나름 정겹기도 했다.

"요즘 어때?"

"아파트 공시 입찰 낸 곳이 현재 네 곳인데, 제가 경쟁 회사 알아본 결과 저희보다 자본금도 딸려서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거 말고, 요즘 네 삶이 어떠냐고."

"아.."

성희가 다소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담배를 후 불며 말했다.

"재밌죠. 전부."

때마침 현준이가 음료수 세 캔을 들고 뛰어 올라왔다. 그리고 나와 정주임에게 캔 하나씩을 주며 내게 말했다.

"대표님. 제가 저번에 말씀드린 친구 있지 않습니까."

"청원 경찰?"

"대표님 말씀대로 중간에 가져가는 게 좀 심한 것 같더라고요. 제가 근로계약서 한번 보여드려도 될까요?"

"줘봐."

현준이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근로계약서를 보여줬다.

계약 내용에서 이렇다 할 특징을 발견하지 못했다.

월급은 180만원, 사대보험 전부 들어가 있고,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근무지 변경 발생과 업무지시 관련 된 일.

그때.

회사 직인에 익숙한 회사명을 발견했다.

굿타임즈?

"친구가 여기서 몇 달 근무했다고 했지?"

"석달 했는데 어제 관뒀다고 들었어요. 이번에 시험 준비 때문에."

"아.."

"한번 와보라고 할까요? 걔 억울해서 지금 공부가 안 된다고 그러는데.."

"오라고 해봐."

나는 직원들을 먼저 사무실에 돌려보내고 홀로 옥상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업체명을 검색했다.

‘굿타임즈’

워킹휴먼에서 근무했을 당시 알고 지냈던 업체였다.

대표도 나름 강성이고 성질 있는 양반이라 물류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인물.

그래서 워킹휴먼에서도 적당히 견제하는 수준이고, 만약 업체 입찰경쟁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날은 천사장도 날 잡고 술판 깔았다.

어쨌든 둘 중에 한 놈은 포기해야 먹는 시장이기 때문에 서로 입찰 경쟁하느라 단가만 낮추는 치킨게임은 통하지도 않는다.

간혹 회사 자본금 몇 억씩 챙겨 들고 단가 완전히 낮춰서 입찰 따내는 업체들이 몇몇 있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쨌든 단가 경쟁에서 이겨봐야, 원청 입에 떡 하나 넣어주는 꼴이고, 계약은 따냈으니 해먹을 건 결국 파견 근로자들 연차수당이나 주휴수당에 손대는 꼴이다.

결말은 노동부 신고 먹고 벌금만 더 토한다.

굿타임즈 대표와 과거 쿠몬 신호수 계약 회의 당시 만났던 적이 있었다.

회사 직원일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굿타임즈 대표의 성질이 막상 회사를 뛰쳐나와 대표라는 자리에 올라서보니,

대표의 입에 치덕치덕 붙은 근로자들의 피가 선명히 묻어난 게 보였다.

현준이 친구란 녀석은 금방 우리 회사로 도착했다.

유도를 하는 녀석이라 그런지 덩치도 현준이와 비슷했다.

걸걸한 목소리로 내게 90도로 인사를 해댔다.

"청원 경찰로 3개월 근무했다고"

"네. 그런데 정확히는 청원 경찰이 아니라 경비업입니다."

"그렇지."

청원 경찰이란 직군은 실제 국가직 공무원이다.

예전에 은행에도 청원경찰이 가스총 들고 경비를 서곤 했는데, 요즘은 은행에서 전문 청원 경찰을 보기가 힘들다.

아파트 경비원처럼 은행 경비라는 명칭이 옳다.

이 친구 말대로, 현재는 은행 경비 수준. 경찰 공부하는 녀석이라 그런지 잘 아는 것 같았다.

"현준이한테 들었습니다. 저희 학과 애들에게 장학금도 주신다고.."

나는 현준이를 바라봤다. 아직 주지도 않은 장학금을 벌써 소문내고 다니는 건가?

"현준아 그걸 벌써 얘기하고 다니면 어떡하냐."

"야. 내가 얘기하지 말랬잖아."

현준이가 괜히 친구에게 타박했다.

"감사합니다. 저희 후배들 챙겨주셔서.."

"얼마 안 돼. 그리고 너희 후배들이 우리 청소 아줌마들 휴게실까지 내주셨는데, 할 도리는 해야지."

"네. 그런데 대표님 제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응?"

"제가 분명히 은행에서 근무할 때 계장님한테 한 달 월급 250만원이라고 들었는데, 실제 급여는 180만원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음.."

"제가 근로계약서를 180만원으로 쓴 건 맞지만, 은행에서 280만원을 보내줬으면 왜 저한테 그 돈이 안 들어오는 건가요. 업체에 물어봐도 4대 보험이나 재경비 피복비로 다 빠졌다고 들었는데, 4대 보험이 백만 원 이상 빠지는 건 아니잖아요."

"노무사 상담은 받아봤고?"

"방법이 없다고 했어요. 근로계약서를 그렇게 작성을 했다고."

"전화해 볼까?"

"네?"

"굿타임즈 대표한테."

".."

나는 그들 앞에서 굿타임즈 대표에게 전화했다.

"어이 대표님."

-김과장?

"흐흐. 저 회사 차리지 않았습니까. 휴먼매니저, 이제 김대표죠."

-들었어, 최부장한테, 화환이라도 보내줄까?

"이미 늦었어요. 한 달 가까이 됐는데요."

-연락이라도 닿아야 뭘 해주든가 하지.

"어차피 인생 독고다이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웬일이야?

"대표님 내 직원 중에 친구가 대표님 회사에서 근무를 했나 보더라고요."

-뭐?

"때인 게 많대요."

-뭔 소리야 또.

"경찰 준비하는 친구, 몰라요?"

-아. 걔, 그, 누구더라..

"어제 때려 쳤다고 들었어요."

-몰라, 내가 뭐 관심 있나. 그런데 걔는 왜

"대체 얼마나 때 먹은 건지 아주 울상이라니까요."

능구렁이처럼 굴어야 했다. 자칫 감정싸움까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선은 적당히 지켜야만 했다.

-어허 참나. 김과장, 아니 김대표, 자네도 알지 않나. 요즘 사는 게 참 막막해. 응?

"대표님네 파견 직원이 우리 직원 친구라니까요. 내 앞에서 하소연을 해요 하소연을.."

-...

"대표님을 제가 옛날에 대리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인데, 식구 챙겨주는 게 뭐 어려워요?"

-크흠.

"원청에서 얼마 받았어요?"

-직접노무비 240에 이것저것 하면 280 정도 되지.

"그러면 우리 친구한테 180주고, 여태 60만 원씩이나? 너무했다. 너무했어."

-지금 앞에 있냐?

"바꿔줘요?"

-바꿔봐.

친구에게 전화를 넘겼다.

몹시 화가 난 듯했으나, 나는 최대한 자제하라는 투로 손짓했다.

스피커폰을 누른 뒤 책상 위에 스마트폰을 올렸다. 발신 마이크를 막고 소리가 세어 나가지 않게 친구에게 말했다.

"침착해, 화내지 말고. 적당히 얼버무리고"

"네?"

"내가 다 생각이 있으니까. 적당히 대답만 해줘."

"네."

그리고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태석씨, 우리 은행 경비라는 게 알다시피 경쟁률이 쌔. 육체적으로 힘들지도 않고, 적당히 은행원들 필요한 거 챙겨주고.

"알죠."

-막말로 저기 때문에 이렇게 술술 넘어가는 거지 딴 친구들 별말 없이 일해. 오히려 일자리 줘도 고맙다고 그러거든.

"네."

-경찰 준비 한담서?

"네 맞습니다."

-이번 기회에 사회 경험했다고 쳐. 어차피 경찰들도 다 똑같아, 무슨 말인지 알죠?

"..."

-퇴사 기념으로 친구 주소로 선물 세트 보내 줄 테니까.

"하아. 일단 알겠습니다."

-아무튼 김대표 바꿔봐.

스피커폰을 끄고 다시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내가 저 친구는 내가 조만간 밥이나 좀 사맥일 테니까, 적당히 넘어가자고.

"아..넘어가자?"

-내 밑에 식구들 월급 주면 남는 거 없다고 인마.

"그러죠. 넘어가죠."

-그려. 이 새끼이거. 요즘 어때? 잘 지내고?

"그러려니 하죠. 근데 대표님."

-엉?

"조건이 있어요."

-뭔데 또.

"계약 넘겨줘요. 저희들이 해볼 테니까."

-..

"저도 대표님하고 사이 나빠지기 싫어서 하는 말이에요. 막말로 대표님 회사야 이것저것 뚫어놓은 거래처가 많은데, 우리는 없어. 거지야 거지"

-하아.

"아니면 제가 뺏어요?"

-네가 뭔 수로 뺏어, 됐다. 더 할 말 없으니까 끊자.

"아니 진짜 제가 못 뺏을 것 같아요? 그냥 먹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끊어!

-뚝

일반적으로 전화가 끊기자 현준이 친구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 안았다.

여태 3개월간 일한 급여 180만 원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걱정하지마."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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