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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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씨가 짙은 신음을 내뱉었고, 그의 몸과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갈수록 축축해져만 가는 그녀의 몸을 나는 좀 더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지영씨의 신음은 더 거칠어져 갔다.

지영씨의 생머리에 얼굴을 파묻으며 절정에 치달았다.

그리고 절정의 순간이 지났고 그녀와 나는 침대에 마냥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일씨."

"네"

"매번 이렇게 여자들을 홀렸나요?"

"기술이 좋았나요?"

"돈이요."

"아뇨. 저 돈 한 푼도 없는 그지였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많은 돈을 가질 수 있었어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돼서요. 혹시 도일씨.."

"...?"

"제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죠?"

지영씨가 몸을 옆으로 누우며 나를 바라봤다.

"어떤 거요?"

"도일씨가 하는 일이 파견이고 아웃소싱 이니까. 인건비 착복하거나..사람들 돈 빼먹고, 퇴직금 안 주고, 그런 거요."

"저는 안 그래요."

"정말요?"

"네.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어요. 예전 회사에서 근무할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요."

하긴 그럴만한 오해의 여지가 충분했다.

"미안해요. 제가 괜히.."

"저도 알아요. 이런 일 하면서도 그런 오해 많이 받거든요. 그런데 지영씨."

"네?"

"예전에 지영씨가 저한테 굉장히 방어적이라고 했잖아요."

"기억나요."

"맞아요. 저는 방어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거든요.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내가 가진 방어적인 기질이 굉장히 날카로워졌다고 해야 할까요?"

"계기라도 있나요?"

"어릴 때도 그랬거든요. 제가 어렵거나 힘들어도 남들한테 얘기하지 않았어요. 공과금을 미납했을 때도, 동생 학원비나 급식비도 그랬고. 남들한테 손 빌리기 싫었고 제 손으로 스스로 해결했어요. 지영씨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서 모르겠지만, 저는 굉장히 가난하게 살아서, 제 방식으로 돈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요."

"뭐죠?"

"남들한테 얘기하지 않는 거요."

"아.."

"제 손에 몇 푼이라도 생기면 그저 숨겨 놓기 급급했어요. 그게 저의 보험이었으니까요. 천 원이 있으면 천 원을 숨겨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썼어요. 쪼잔하죠?"

"그럴 수도 있죠. 어렸으니까.."

"그런데 학생이 무슨 돈을 그렇게 벌었겠어요. 너무 힘들어서 선생한테 딱 한 번 얘기했어요. 동생 급식비를 내주고 제가 그달 급식비를 내지 못할 것 같다고, 그랬더니 선생이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네?"

"우리 반 애들한테 쟤좀 도와주자고 천 원씩 모으자고 했어요. 물론 선생님은 좋은 마음이었겠지만, 그때 그 친구들의 시선이 정말 참혹했거든요."

"아..선생님이 그랬다고요?"

"네. 친구들에게 피해를 준 것도 싫었고, 친구들의 동정 어린 시선도 싫었고요. 그런 삶을 살아오다 보니까, 고집스런 내력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도 도움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앞으로 다시는 도움 받지 말자. 그리고 내가 여유가 생겨서 타인을 도울 수 있게 됐을 때 아무도 몰래 도와주자."

"아.."

지영씨가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저는 도일씨하고 반대에요."

"네?"

"어려운 사람들 있으면 제가 먼저 나섰거든요. 그리고 힘든 일이 있으면 의지할 상대를 찾아보고 상담도 해보고 이야기도 하는 편이라서요. 물론 좋은 일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잘됐네요."

"...?"

"제가 못하는 거 지영씨가 해주니까 옆에서 대리만족이라고 하죠."

"그런데 저도 도일씨의 그런 면이 좋아요."

"...?"

"저만 바라보잖아요."

지영씨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한 번 더 하죠."

"네?"

* * *

이제 몇 가지 변화를 줘야만 했다.

현재 내가 사는 이집은 분위기가 너무 투박했다.

어르신들이 살던 곳이라 수십 년 전 아파트 시공당시 인테리어가 그대로.

지영씨와 나는 집을 어떻게 꾸밀지 함께 상의했다.

지영씨는 만약 이곳에서 동거를 하게 된다면 주방은 본인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나도 마찬가지. 요리를 곧잘 했기 때문에 주방 욕심은 나도 있었다.

"주방 상하부장 전부 살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주방이 좁은데 상부장까지 있으면 답답하지 않을까요? 저는 차라리 상부장을 좁히거나 몇 개는 해체해서 선반으로 대체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지영씨가 좁은 집에 안살아 봐서 그래요. 주방에 수납공간이 최대한 많아야 살림하기가 편하다니까요."

"어차피 도일씨 집이니까 편한 방식으로 하는 게 맞는데, 요리할 때 매번 상부장 여닫는 거 얼마나 귀찮은데요. 상부장이 있다고 꼭 편한 건 아니에요. 요리할 때 바로바로 빼 쓸 수 있도록 선반 정도면 충분하다니까요."

"네. 그렇게 하죠."

나는 주저 없이 인테리어 업자와 통화했고 미팅을 가졌다.

착공일은 다음 달로 정했고 준공일은 착공일 이후부터 약 보름이었다.

정해진 준공일에 공사를 마치지 못했을 경우의 지연손해금과 공사 대금 30%는 계약금으로 걸고 공사 중간 기간에 중도금, 그리고 공사가 끝난 후 약 이주 뒤에 모든 잔금을 치르기로 했다.

혹시라도 하자 발생 시 불가피한 분쟁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바닥 마감재부터 자재, 공사 방식과 예산 일정을 세세하게 검토하며 의논했다.

업자와 집을 둘러보며 내 생각에 대해 말했다.

"방문턱은 제거 해주시고, 요즘은 몰딩은 잘 안 하죠?"

"몰딩 여부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긴 하죠. 고객님이 취향대로라면 몰딩은 없어도 될 겁니다."

"집 곳곳에 수납공간 최대한 많이 살려주세요. 죽이는 공간 없이요. 저는 모던보다 실리적인 부분을 더 추구하고 싶거든요."

"네."

화장실도 손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업자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천장 높이도 좀 올릴 수 있을까요? 좀 답답한 면이 있어서요. 그리고 안방 화장실에는 욕조 넣어주시고 중앙 화장실은 기존에 달린 욕조는 없애주시고 건식으로 하는 게 괜찮을 것 같은데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주방으로 향했고, 지영씨가 얘기한 부분에 대해서 말해줬다.

상부장은 해체, 하부장만 살리는 걸로.

"그리고 콘셉트이미지 3D도면으로도 부탁드릴게요. 비용은 상관없으니까 제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번 보고 싶네요."

"아우. 꽤 돈 많이 나가실 것 같은데요. 저희가 3D 도면은 외주로 맡기는 경우라서요."

"시방서 나오면 검토해 볼게요."

"네."

맘 같으면 금액 상관없이 마음껏 견적을 뽑아 달라고 얘기하고 싶었으나, 눈탱이 맞는 건 싫었다.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집 근방에 위치한 L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지영씨는 오늘 선약이 있는 탓에 내가 강남 인근에 내려줬고,

나는 지영씨의 동생이 근무하는 은행으로 향했다.

* * *

은행 뒤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려 실외에 위치한 흡연실에서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탓에 직장인들이 우르르 건물 내부로 들어가고 있었고, 흡연실에 몰린 직장인들도 하나둘씩 줄어가고 있었다.

뻥 뚫린 야외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지영씨가 좋게 얘기하고 돌려서 얘기한 거지만 결국 나는 외골수라는 뜻이다.

고집도 세고 남의 말 안 듣고 한 길만 파는 인간. 내 이름도 도일, 길은 하나라는 뜻인데 뭐 어쩌겠나.

휴.

담배를 깊게 내뱉고 흡연실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 정장 입은 남자가 차를 닦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들 점심시간이라고 미친 듯이 회사 내부로 들어갈 때 여유롭고 한가로이 세차를 하는 모습.

나도 충분히 저렇게 살 수 있는 수준이다. 건물 하나 사서 월세만 받아먹고 살아도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가 있지.

아마 저 사람도 건물주 아들이거나 로또를 맞았거나 주식부자이겠거니 했다.

담배를 다 태우고 지훈이가 근무하는 은행으로 향했다.

대출 창구에 앉아 있는 지훈이를 발견했다. 그가 내 얼굴을 보고 벌떡 일어나 인사했고, 나는 자연스레 자리에 앉았다.

지훈이의 직급은 계장.

아마 대졸 신입이라 계장먼저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는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어떤 투자 상품을 원하는지 물었고, 보험은 무슨 목적으로 들고 싶은지, 그리고 법인 대출의 최대한도에 대해 물었다.

지훈이와 이것저것 상담을 한 뒤 인덱스 펀드와 여타 보험에 가입을 해줬다.

법인 대출은 심사 기간까지 꽤 걸릴 수가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한도가 어디까지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최대한 맥스로 잡아달라고 얘기했다.

지훈이와 거래를 끝내고 나가는 길에, 주차증에 도장을 받고자 은행 입구에 있는 청원경찰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어디선가 낯이 익었다.

주차장에서 세차했던 사람?

더운 날씨 탓에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청원 경찰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아."

나는 그에게 주차도장을 받은 뒤 주차장으로 향했고, 현준이에게 전화했다.

"현준아."

-네 대표님.

"은행에서 청원경찰 한다고 했던 친구 있었지?"

-네 맞습니다.

"거기서 세차도 하냐?"

-친구한테 듣기론 이것저것 잡일이 엄청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세차까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음..”

-대표님.

“어.”

-방금 경술대 미화반장님한테 연락 왔는데 대표님 찾으셨습니다.

"그려. 지금 사무실 들어갈 테니까 이따 보자고."

-넵!

너희들이 학교 주인이잖아

현준이와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위해 옥상으로 향했다.

현준이가 청원경찰하는 친구에게 물어본바 세차는 하지 않으나 이것저것 잡다한 일이 많다고 했다.

"180만 원 정도 받는다고 들었는데, 이게 월급이 너무 적은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은행에서는 분명히 280정도 파견업체에 용역대금으로 보낸다고 했거든요."

"그래?"

"네. 그래서 친구가 대체 중간에서 얼마나 떼먹는지, 세금으로 얼마나 나가는지 급여명세서 달라고 했죠."

"그래서?"

"본인들이 은행 측에서 500만원을 받든 얼마를 받든 네 월급은 180만원으로 근로계약서를 썼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은행 측에서 네 친구한테 순수 월급을 얼마나 책정해줬는지 모르겠지만 업체 말이 맞아."

"네?"

"네 친구 소속은 파견업체 근로자야. 파견업체하고 근로계약서를 썼을 때 월급을 180만원으로 썼고, 최저임금만 지켰으면 문제없어."

"중간에서 그렇게 때가는 데도요?"

"어. 좆같지?"

"와.."

"왜? 넌 여태 몰랐어? 워킹휴먼에서 대체 뭘 배운 거야"

"몰랐죠."

"유도했던 친구야?"

"네. 동창인데, 걔도 운동 접어서 지금 경찰시험 준비하고 있어요."

"관두라 그래. 그런 쓰레기 파견업체는 사장 배만 불려주는 데라니까."

"네."

"궁금한 거 있으면 와서 나한테 물어봐도 된다고 해. 아니면 노무사한테 가던가. 그런데 사실 이런 경우는 합법적 착취라 딱히 답이 없다."

"아.."

"그리고 경술대 미화반장님한테 연락 온 거 있다며?"

"아..아직 휴게실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네. 어쩌죠? 제가 경술대 측에 연락해 볼까요?"

분명 도급법상 휴먼매니저 사무실이 필요하니 만들어 달라고 했으나 경술대측에서는 아직도 사무실겸 휴게실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나는 현준이와 함께 경술대학교로 향했다.

총장실 사건으로 대학교에는 몇 가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더러운 곳은 엄청 더럽고, 깨끗한 곳은 엄청 깨끗한 상태.

과업지시서에 할당된 구역만 청소를 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에서 먼저 나설 때까지 절대로 일절 손을 대지 말라고 당부했다.

여태 6개월간 부당하게 일했던 용역비는 받아 냈으나,

할당 구역을 넓혀 계약 조항을 수정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음에도 총장의 직인이 찍히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내 앞에서 인상 한 가득 담배를 태우고 있던 오팀장에게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개판 될 때까지 내버려 둘 겁니까?"

"그렇죠. 뭐 어쩔 수 있나요. 학생들도 관심 없고 총장도 손 놨고, 저희들은 힘없고, 그냥 내버려 두는거죠."

학교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외곽의 배수로는 담배꽁초와 나뭇잎으로 전부 막혀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몇몇 강의실도 예전에는 미화 아줌마가 해줬으나 현재는 쓰레기들로 더러워져 있었다.

게다가 화단과 정원은 여태 미화반장이 무보수로 해주고 있었는데, 한 며칠 손 뗐다고 쓰레기 천국이 돼버렸다.

"학생들도 청소를 안 하나 봐요?"

"비싼 등록금 내고 오는데 어떻게 청소까지 시키겠습니까. 요즘은 초중 고등학교도 청소도 쉽게 못 시켜요. 어휴."

"하긴 그렇죠. 그런데 저희 휴게실은 언제쯤 마련될까요?"

오팀장이 한숨을 크게 쉬어댔다.

"어차피 학생도 없다면서 놀리는 강의실 많을 거 아니에요. 하나 내줘요."

"일단 학과장님들한테 물어는 볼 텐데..아시잖아요. 총장님 허락이 떨어져야 하는 거.."

"오늘 안에 답변주세요."

* * *

청소 용역 8명과 나와 현준이 포함 총 10명이 식당에 자리했다.

이번 일로 인해 아줌마들은 궁금한 게 많은 듯했다.

"저희가 받는 월급에서 대표님이 가져가는 수당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한 아줌마가 밥을 먹으며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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