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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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알겠습니다!]

* * *

"사귀는 게 맞다니 까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지영씨가 재밌다는 듯 박수를 쳐댔다. 현준이는 덩치가 곰만 하고 성희는 덩치가 작으니 꼭 푸우와 피글렛을 보는 것 같다며 말했다.

"현준이가 한 살 어리나요?"

"그렇죠? 매번 누나라고 하니까. 하아. 성희가 예전에 현준이 얘기를 그렇게 하더라고요. 제 회사에 데려오고 싶었는지."

"잘 됐다고 봐요. 성희도 할아버지 돌아가셨으니 혼자 살고, 현준이하고 서로 잘 의지하면서 만나면 좋죠."

"그렇겠죠?"

"그럼요."

지영씨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씩 웃었다.

"저희는 어쩌죠? 도일씨?"

"..."

"지금 집안에서도 선 자리 알아보고 있는데요. 도일씨는 왜 그렇게 느긋하실까."

"부모님을 한번 뵙고 정식적으로 말씀을 드리죠."

"저희 부모님을요?"

"뵙고 인사는 드려야죠."

"도일씨가 꼭 그렇게 하고 싶다면 저야 마음 편하죠. 사실 동거를 허락받는 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도일씨."

"네?"

"쉽지 않을 텐데요."

"나름대로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고집이 상당하시거든요. 제가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기죽지 마세요."

"제가 기죽을 성격 아닌 거 알잖아요?"

"예행연습 해볼까요?"

"그럼요."

지영씨가 갑자기 허리를 쫙 펴더니 남자 목소리 비슷하게 내며 내게 말했다.

"자네는 내 딸 지영이를 왜 좋아하나!"

"좋아하는 데 이유 있습니까."

"탈락!"

"하아."

"세상에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좋아하는데 당연히 이유 있죠. 너무 편하게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다시 할게요."

내심 지영씨도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다시 한번 내게 질문했다.

"자네는 왜 좋아하나!"

"돈이 많아서요."

"진심이세요?"

"그리고 얼굴도 예쁘고, 키스도 잘하고, 몸매도 좋아서요."

"아.."

"이해심 많고 배려 잘해주고 대화 통하고 제가 지영씨를 좋아하는 건 강아지가 사람을 좋아하는 것처럼 아주 당연한 겁니다."

"하.."

"지영씨 김빠질까 필살기는 제가 아껴두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이렇게 하면 웃기긴 하겠죠?"

"해보세요. 저희 어머니는 엄청 웃으실 거예요. 동생이나..아버지는..모르겠네요."

그런데 나한테는 필살기가 있었다. 장이어른 될 사람이면 분명히 주사 정도는 확인할 터, 술을 먹이려 하겠지. 나는 술에 취하지 않는다.

"혹시 아버님 술 좋아하시나요?"

"그렇죠? 그러고 보니까 저희 아버지가 술이 굉장히 좋아하시는데, 도일씨 이겨낼 수 있겠어요? 주량이 몇 병이죠?"

"걱정 마세요 지영씨. 저도 말술이랍니다."

지영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공용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옆에 찰싹 달라붙어 의미 없고 음도 없는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요?"

"그냥요. 날이 좋으니까요. 들어가기 좀 아쉽네요."

"집에서 외박하는 거 간섭 심해요?"

"외박? 제 맘이죠? 나이가 몇인데."

"그죠?"

"그럼요. 설마 여태 제가 통금 시간 있는 줄 알고 그 집에 안 데려 간 거예요?"

"부모님이 되게 엄격하실까 그랬죠."

"서운했어요. 치."

"지금 갈래요?"

"그럼 집에 들렀다가 가요. 챙길 것도 있어서요."

지영씨 집 앞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대고 그녀를 기다렸다.

내일 입을 옷이나 화장품 등을 챙기기 위한 것으로 봤다.

나는 지루한 시간을 축내기 위해 차에서 잠시 내려 담배를 물었다.

오늘 밤을 위해 며칠을 기다렸던가. 지영씨도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오늘 밤 한번 죽어 보는 거다.

그때

"저기요."

"네?"

"차 여기다 대시면 안 돼요. 저희 주차 구역인데요."

"네. 금방 빼 드리겠습니다."

한 남자가 내게 차를 빼달라고 했고, 나는 주차 자리를 벗어나 좀 더 앞으로 움직였다.

때마침 지영씨가 나왔다.

그녀는 잽싸게 조수석에 올라탔고, 나는 시동을 다시 켠 뒤 가려는 찰나.

그 남자가 다시 창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

나는 운전석 창문을 열어 그 남자를 노려봤다. 차 빼줬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는 게 있는 걸까.

"차 빼드렸는데 또 문제 있나요?"

"거기서 뭐해."

나는 순간 당황해 지영씨를 바라봤고,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그 남자에게 말했다.

"지훈아."

"뭐야 갑자기 지금 어디 가는데. 가족 꺠톡방에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더니. 옆에 분이 친구인가?"

친동생인가보네.

격식을 차려 드려야지.

저만 바라보잖아요.

지영씨의 친동생은 현재 은행원으로 근무 중이었다.

나이는 33살.

지영씨와 두 살 터울이었고, 미혼인 상태.

이런 경우가 있나.

하아.

하늘이 원망스럽다.

결국 동네 근처의 작은 선술집으로 왔다.

동생을 마주쳐버렸으니 정식적으로 인사를 해야 했다.

"술 잘 드세요?"

지영씨의 동생 지훈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아마 동생으로서 매형 될 사람을 테스트해보고 싶겠지. 나는 지훈씨에게 존칭을 쓰며 말했다.

"적당히 먹습니다."

"말 놓으셔도 돼요. 제가 나이가 어린데요."

동생 지훈이의 말에 지영씨가 부언했다.

"말 놔요. 얘 앞에서 그럴 필요 없어요. 그게 편할 거예요."

"그럼 말 놓을게요."

소주 한잔을 주고받으며 지훈이와 한 잔 마셨다.

"캬아. 역시 소주라니까."

지훈이가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예비매형이 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서로 어렵지 않을까 싶었지만, 지훈이는 생각보다 서글서글했다.

"저희 누나가 사실 딱 티가 나거든요?"

"네?"

지훈이가 안주 하나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아니 그렇잖아요. 지금 일도 관두고 백수로 살거든요. 그런데 화장이며 옷하며 이것저것 꾸미고 다니는 모습 간혹 보는데, 제가 딱 느낌 왔죠. 남자 있다고. 그런데 제가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그냥 형이라고 하세요."

"형, 우리 누나가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나는 지영씨를 바라봤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하여 카페에서 얘기했던 대로 말하고 싶었으나 지영씨가 테이블 밑에서 발로 나를 쿵쿵.

"누나, 예쁘잖아요. 제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제가 과거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 많은 도움 받았었거든요."

"아. 이제야 알겠네. 누나 환자였구나? 그런데 환자랑 이렇게 사귀어도 되나?"

"그래서 지영씨 일 관두게 했어요."

"네?"

"다른 남자랑 상담하는 게 싫어서요."

"와 대박."

지영씨는 내 말을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은행원이라고 했죠?"

"네."

"제가 듣기론 은행원도 실적으로 스트레스 많이 받는 거로 아는데요."

"휴. 말도 마세요. 말이 은행원이지 영업이에요 영업. 제가 대출 업무를 맡고 있긴 한데, 요즘 워낙에 경제가 안 좋아서 거의 부결 나요. 실적이 날래야 날수가 없다니까요."

"제가 도움 될 만한 게 있을까요?"

"네?"

지훈이가 누나의 눈치를 살펴댔다. 지영씨가 나를 보며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도일씨 꼭 그러지 않아도 돼요. 얘 신입행원이라 실적 이런 거 신경 안 써도 될 때예요."

"아뇨. 지영씨 동생인데, 제가 할 만큼 해드려야지."

지훈씨가 아주 호탕하게 웃어댔다. 도움 될 만한 수준이 뭐 적당히 적금이나 신용카드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형, 마음만 받을게요. 그런데 혹시 도와주실 부분이면 신용카드 정도만 해주셔도 괜찮죠."

"제가 빚지는 건 싫어해서 신용카드는 잘 안 쓰는데"

"아.."

"그런데 지영씨 동생이니까 제가 가입해드려야죠."

"한 잔 받으시죠."

지훈이가 기분이 좋은 듯 내게 술 한 잔을 따라줬다. 그런데 신용카드로 끝내긴 싫지.

"제가 펀드 가입해주면 어차피 은행 수수료 꽤 먹죠?"

"네?"

"가입해드리면 지훈씨 어깨 좀 펴질까 싶어서요. 1억 정도?"

"...!"

"그리고 제가 보험도 필요해서요. 실비, 종합, 종신, 연금 지훈씨가 한번 맡아봐요. 그리고 가능하면 법인 대출도 받아보고 싶은데요.."

-꿀꺽.

지훈이가 냉수를 급히 마셔댔다.

어차피 펀드는 은행 위탁 판매이기 때문에 수수료로 먹는 수준이다. 신입 행원이 이 정도 성과면 지점장에게 예쁨은 받겠지.

그리고 법인 대출은 아직 회사 실적이 없어 한도가 많이 나오진 않겠지만, 회사 이사 비용으로 쓰고 싶었다. 빚지는 건 싫어하지만 은행과 거래를 터줘야 신용 평가도가 올라가니, 불가피한 경우였다.

"그런데 제가 형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요. 요즘 대출 심사가 워낙에 까다로워서, 기본 회사 자본금 여부에 따라 부결 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혹시 무슨 회사에요?"

"인력 파견업이요, 아웃소싱."

"아.."

"현재 회사 자본금 3억 정도 있고, 현재 못 받은 대금이 조금 남아있긴 하지만 회사 운영에 전혀 지장 없고요. 가능할까요?"

"형님. 번호 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기본적으로 필요한 서류 말씀드릴게요. 꼭 저한테 와주세요."

"그럼요."

나는 지훈이에게 번호를 넘기며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말씀해주시죠."

"오늘 누나랑 데이트 좀 하고 싶은데."

"제가 부모님한테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일어나실까요?"

지훈씨의 에스코트를 받고 대리기사를 불러 집으로 향했다.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으니 뭐 말 다했지.

집으로 향하는 길 지영씨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깔깔 웃어댔다.

동생의 태세 전환이 웃긴 모양이다.

* * *

늦은 밤 지영씨와 함께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TV로 영화 한편을 봤다.

그녀의 숨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지고 있다는 판단, 먼저 씻고 나온다는 핑계로 화장실로 향했다.

아직 내 똘똘이는 건재하다.

비록 최근에 관계를 맺은 게 달동네가 마지막이었지만 한 여자를 만족시킬 만한 정도의 힘은 충분하지.

지영씨는 침실에 있는 화장실에서, 나는 거실에 있는 화장실에서 씻고 있을 때, 문득 야릇한 기운이 들었다.

내가 먼저 씻고 나와 지영씨가 씻고 있는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안 돼요."

"뭐가 안 돼요."

"안된다니까요!"

안되긴.

이제 막 몸을 닦고 있는 것 같은 지영씨를 둘러업고 곧장 침대로 향했다.

푹신한 침대에서

물고, 지지고, 볶고.

그렇게 한참을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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