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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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하다.

총장이 홀로 청소를 끝내는 몇 시간 동안 옆에서 감시했다.

"지금 해 떨어져요! 빨리 움직입시다! 빨리!"

* * *

널찍한 거실에 홀로 TV를 켜놓고 맥주를 마시는 게 꿀맛이었다

경술대학교 총장은 이번 사건으로 휴먼매니저 측의 조건을 들어주기로 했다.

6개월간 못 받은 간접노무비, 즉 4대보험 비용을 모두 받아냈고, 3개월 치 급여, 그리고 그간 부당하게 청소했던 구역까지 모두 소급 적용하여 용역비용으로 청구했다.

빚을 떠안고 양도받은 계약이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이번 흑자를 청소 아줌마들에게 돌려줄 계획이었다.

과거 워킹휴먼에서 근무했을 당시 용역 대금 미지급으로 소송까지 갔던 경험이 있었다.

영세한 물류센터에 청소 인력을 파견했는데, 사장이란 놈이 당시 출퇴근 입력기를 강제로 고장을 내서 파견인원의 출퇴근 시간을 누락시켜버리거나, 수천만 원에 달하는 용역비용을 3개월에 한 번씩 50%씩 줬었다.

결국 방법이 있나.

소송으로 가는 건데, 결론은 항상 우리가 승소한다는 거다.

미지급 용역 대금과 변호사 비용까지 합산해서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문제는 승소를 하더라도 돈을 전부 받지 못한다는 거지.

이미 돈독 오른 업체 사장들은 파견과 아웃소싱이라는 값싼 인건비에 독이 올라버렸으니, 용역 대금에서 조금씩 야무지게 빼먹은 돈은 어느 시골 마늘밭이나 집안 보일러실에 묻어 뒀을 거다.

결국 중간 업체는 용역 대금을 받지 못해 파산하거나, 더 나아가 원청도 위장 파산을 통해 가족들 명의로 돈을 감춰 놓거나 명의 변경으로 법망을 회피한다.

결국 근로자는 돈을 받지 못한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나는 소송을 기피한다.

의미가 없으니까.

결국은 직고용이 답인데.

이미 그러기엔 중간업체가 너무나도 많고, 값싼 인건비에 맛이 오른 기업들도 이걸 포기 못하지.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법이다.

* * *

다음날

점심이 되기 직전에 현준이 성희와 함께 밥이나 먹을 겸 출근을 했다.

낡은 빌라 건물 3층에 위치한 휴먼매니저.

나는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한번 올려다봤다.

낡았다.

사업을 조금 더 키우면 얼른 이사먼저 가야할 것 같았다.

“대표님이 월급 얼마 주신대"

“월급에 1.5배? 흐흐. 대박이지?"

사무실 문이 조금 열린 탓에 그 틈 사이로 정주임과 현준이의 대화가 들렸다.

그냥 들어갈까도 싶었지만,

문득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격식을 차려 드려야지.

현준이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과거 워킹휴먼에서 회사 생활을 할 때도 궁금했던 점이었다.

과연 부하 직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정주임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한테 잘해. 철딱서니 없는 놈 업어다 키우는 거니까.

-나도 알아.

-바보 같이 굴지 말고, 너한테 월급을 그만큼 준다는 거는 책임감을 부여한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어.

-말하는 투가 띠껍다?

-내가 알아서 할게. 나도 대표님 실망 시켜드리고 싶지 않거든?"

-너는 모를 거야. 대표님 같이 사람 생각하면서 일하시는 분 드물어.. 내가 너 워킹휴먼 때려치웠을 때도 솔직히 대표님한테 피해만 끼칠 것 같아서 얘기 안 하려고 했거든?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워킹 휴먼 때처럼 멍청하게 굴면 안 된다는 거야. 그때는 내가 너 사수였지만 여기서는 동료야. 네 사수도 아니고, 널 가르칠 의무도 없다고.

-아..

-왜? 이렇게 얘기하니까 서운하니?

-누나. 막말로 내가 그렇게 못난 거는 아니잖아? 비록 컴퓨터 능력은 떨어지지만 반대로 현장 관리는 잘했거든?

-그래서 여기서 무슨 현장을 관리할건데? 경비? 경비실 현장을 관리할 이유도 없고 반장님 잘하고 계셔, 아니면 대학교? 지금 대표님도 허덕이는 현장을 네가 무슨 수로.

-할 말이 없네.

-그러니까 대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격증을 먼저 따. 어차피 대표님이 너한테 크게 바라는 거 없는 것 같으니까..그리고 정말 네가 그 돈을 받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나도 옆에서 성질 날 것 같거든?

-...

-야!

-아 왜!

-삐졌냐?

-삐지긴 뭘 삐져. 아주 뼈를 잔뜩 때려놓고..

크크크

티격태격 거리는 게 왜 이렇게 귀엽냐.

-대표님 올 때까지 꽤 시간 남은 거 같은데.

-뭐? 무슨 말이야?

-어차피 오늘 대표님 안 나오는 거 보니까 회사 제치고 다른 곳 간 것 같거든?

-미쳤어? 회사에서?

-그게 뭐가 중요해? 그리고 누나한테 미친 거야 가 뭐야?

-미안.

-삐지기만 해.

-안 삐졌다니까.

-우쭈쭈 해줘?

-미친.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거지.

한숨이 팍 나와 버렸다.

얘들이 사귀는 건가

미쳐버리겠네.

-따르릉

하필 이 타이밍에 내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정주임과 현준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내게 인사를 했고 사무 의자에 앉았다.

도현이로부터 전화였다.

하여튼 이놈은 도움이 안 된다니까.

"어 도현아."

-형..

"왜 인마."

-내가 이번에 조선소 퇴직하는 과정에서 퇴직금을 받으려고 알아봤는데, 팀장이 월급에 퇴직금이 포함된 상태였다고 못 주겠다고 뻐기는데, 이거 맞는 거야?

"아냐."

-그치?

"어. 안 준다고 하면 그냥 노동부가서 신고한다고 얘기해. 월급에 퇴직금 포함해서 주는 거 불법이야. 그리고 퇴직금은 정확히 2주 안에 입금해 줘야 돼. 그런데 일 때려치웠다고 하면서 여태 퇴직금도 안 받고 있었던 거야?"

만약 직원이 사장에게 부탁해서 월급에 퇴직금을 포함해달라고 하는 경우 절대 해줘서는 안 되는 경우 중 하나.

기껏 퇴직금 다달이 포함해서 월급 많이 줬더니 1년 뒤에 노동부 신고하면 그간 줬던 퇴직급여는 인정이 안 되고 퇴직금을 2중으로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버린다.

사업주는 그간 지급한 퇴직금 명목의 금액을 부당이득으로 반환청구해서 다시 돌려받아야 하는데, 만약 서면이 아닌 구두 합의로 진행됐을 경우 받아내기도 힘들고 복잡하기만 하다.

퇴직금은 1년 채우면 주는 게 가장 합당한 방법.

반대로 이걸 악용하는 중간업체도 있었는데, 사측에서 퇴직금 중간정산이라는 명목으로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월급에 포함시켰으니 퇴직금은 없다고 한다. 그건 순전히 퇴직금을 삥땅 처먹기 위해 하는 말. 이런 경우는 퇴직금에 대해 잘 모르는 어르신들이 당한다.

-준다니까 기다렸지. 그런데 어제 전화 오더라고, 못 주겠다고.

"어휴."

-내가 뭘 알아야지. 내가 이쪽 부분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다들 스스로 공부해가면서 살아. 그리고 내가 뭐 노무사야? 나도 이런 일을 하니까 공부하면서 배운 거라고."

-알았어. 형은 지금 뭐 해?

"일 하지."

-나 저번에 형이랑 같이 샀던 로또 5등 됐다. 크크.

"잘됐네."

1등을 주려다가 5등을 먹였다.

마음 같으면 동생에게 2등 정도는 줄 법 하지만, 괘씸했다.

내가 동생에게 갖다 바친 돈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생색낸다고 표현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그저 제수씨 생활력에 기대어서 사는 녀석에게 1등을 준다면 동생이 망가질 것 같았다.

-내가 이번에 퇴직금 제대로 받으면 이천만원 정도 나올 것 같거든? 아파트 팔고 이걸로 서울에서 식당이나 하나 차릴까?

"뭐?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서울에 네가 왜 올라와."

-아니. 우리 아내가 베트남 음식을 기막히게 하거든. 엄마도 식당 경험이 많으니까. 일단 생각만 해보는 중이야.

"도현아. 제수씨한테 기대지 말고 네가 스스로 뭔가를 하려고 해봐."

-알잖아 형. 우리 아내 생활력 좋은 거.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만났다니까. 재능을 썩히는 것도 안 좋을 것 같아서.

"..엄마는 뭐라 시든?"

-별 말씀 없으시지, 만약에 하게 된다면 엄마도 도와주겠다고 하셨고.

"하아.. 일단 알았다. 끊어."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어 도일아.

"도현이가 식당 차린다고 전화했어?

-나도 그냥 귀 닫고 대꾸만 해줬지. 지방서 아파트도 있는 놈이 무슨 서울에 올라와서 산다고 그러는지 참.

"말려."

-응?

"말리라고. 그 새끼 뻔히 제수씨 능력 믿고 셧다맨 하고 싶어 하는 거 뻔히 보이니까. 엄마가 말려."

-이게 말린다고 될 문제니..

"나하고 엄마가 너무 떠먹이기만 해서 그렇다니까. 이번에 도현이 서울 올라와서 식당 차리면 엄마도 고생이고 제수씨도 고생이야. 조선소 월급이 적은 것도 아닌데 걔는 왜 지 편한 일만 생각하냐고. 그러니까 꼭 말려. 알았지? 서울 올라오면 죽이겠다고 그래. 안 그래도 미어터진 서울 인구인데 그 새끼 올라오면 내가 더 답답해질 것 같거든?"

-도일아. 동생도 이제 가장이고 성인이야. 본인이 해보겠다는 걸 엄마가 무슨 수로 말리겠어. 생각이 있을 수도 있으니..

"무슨 생각. 걔 생각 없어 엄마.

-아유 참! 알았다! 내가 잘 얘기해 볼 테니까 너는 신경 쓰지 마라.

"믿는다?"

-그려!

휴우.

동생이 사고뭉치는 아니지만 그런 전조증상이 너무 많다.

지방에 내려가서 조선소에 취업한다고 했을 때 엄청 기뻤었다. 지 살길을 그래도 찾아서 가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간혹 힘든 일이 있거나 부담되고 막막한 일이 생겨버리면 본인이 그걸 감당하지 못한다는 거다.

매번 나를 찾고, 엄마를 찾는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만약 내가 없고 엄마도 없다면.

동생은 방황하겠지.

언젠가 제대로 뒤통수를 한 대 날려줘야만 했다.

한숨을 푹 내쉬고 스마트폰을 책상에 내려놨다.

그런데.

내 앞에 보이는 두 녀석의 등.

이 적막함 사이에 흐르는 어색함.

"야."

"네?"

현준이와 정주임이 뒤돌아 나를 봤다.

사귀는지 묻고 싶었으나 그러면 내가 엿들은 꼴이 될 것 같아 차마 얘기는 하지 못했다.

"이번에 경술대측에서 용역비 입금해 주기로 했거든, 파출 아줌마들 그간 6개월간 부당하게 일했던 거 전부 입금해주자고."

"기준을 어떻게 할까요."

"한 달 월급에 20%씩 가산해서 총 6개월 치 넣어드려."

"네."

"그리고 현준아."

"넵! 대표님!"

"기죽지 마라."

"네?"

"앞으로 잘하면 되니까 기죽지 말라고."

"넵! 알겠습니다!"

직원들하고 점심을 먹은 뒤 나는 회사를 개인 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하기 위해 법무사를 만나 상담했다.

주식회사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경비업과 파견업은 자본금 약 1억 원이 필요했다. 100억 원 이상이 있으니 이 부분은 패스.

그리고 상법상 1명이 법인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내이사를 둘 필요도 없었다.

1인 법인회사에 직원이 2명.

고현준이와 정성희.

계약 입찰시 법인 회사가 조건인 경우도 많았으니 불가피한 경우였다.

휴먼매니저의 사무실은 나름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현준이와 정주임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떠들어대고 있었다.

정 [휴먼매니저 깨톡방 개설을 축하합니다]

정주임이 휴먼매니저의 깨톡방을 개설했다. 예전에 워킹휴먼에 다닐 당시 매번 깨톡방을 통해서 소통했는데, 참 오랜만에 느끼는 감성이었다.

우리는 사무실 한 공간에 있었지만 깨톡을 해댔다.

고 [와. 정말 오랜만에 깨톡방이네요 ㅋㅋㅋ 옛날에 깨톡방으로 황부장 엄청 까댔는데요.]

정 [대표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휴먼매니저 깨톡방 개설을 축하하기 위한 훈시!]

고 [대표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 [에헴]

고 [다들 조용! 대표님 말씀하신다!]

나 [고현준!]

고 [넵!]

나 [경동대학교 청소 직원들 신상은 다 파악하였는가?]

고 [...]

나 [정주임!]

정 [네.]

나 [계약을 따오겠다더니 성과가 있는가?]

정 [네! 없습니다!]

나 [다들 너무 떳떳한 거 아냐?]

정 [현재 입질 오는 곳이 있긴 합니다. 제가 보고서 정리해서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나 [콜.]

고 [그런데 제가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나 [뭐야?]

고 [제 친구가 은행에서 청원 경찰로 근무 중인데 월급은 180정도 받는다고 하는데요. 이거 중간업체에서 많이 때가는 거 맞죠?]

나 [그렇지 않을까. 적어도 50만원은 떼먹는 것 같은데.]

고 [50만원씩이나요?]

나 [180은 너무 적지 않나? 내가 계약서를 보진 못했지만..왠지 그럴 것 같아서.]

정 [고현준 사원님^^ 회사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대화는 자제 부탁드립니다.^^]

나 [너희들 너무 티격태격하지 마. 그게 더 티나.]

정 [네?]

나 [사이 안 좋은 거 너무 티내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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