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급은 얼마 받고 싶어."
"대표님이 주시는 데로 받겠습니다."
"너 워킹휴먼에서 얼마 받았냐?"
"180받았습니다."
"그럼 내가 1.5배로 쳐줄게."
"...!"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뭐죠?"
"다음 달 안에 자격증 따. 인간적으로 회사생활 하는데 자격증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거든."
"..."
"뭐 따고 싶어?"
"컴퓨터를 제가 잘 못합니다. 엑셀도 성희누나가 알려준 거 기본적인 것밖에 못하고.."
"그럼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배워라. 알았냐? 회사에서 지원 해 줄 테니까 다음 달까지 자격증 2개 따. 만약에 이거 잘 되면 보너스도 줄게."
"알겠습니다."
"약속."
"넵!"
현준이와 새끼손가락 하나 걸고 약속했다. 예체능의 길을 걷다가 부상이나 사정으로 그만두게 된다면 굉장히 막막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노래를 하고 싶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관둔 것처럼.
결국 운동을 포기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격인데, 뭐 할 줄 아는 게 있겠나.
배운 게 운동인데.
그래서 이번 기회에 현준이가 잘못 끼웠다는 단추를 다시 맞춰주고 싶었다.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여섯 번째 메인 퀘스트 투자의 성공률이 상승했습니다!]
[현재 달성률 10%! 앞으로도 꾸준한 재생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응?"
"왜 그렇게 웃고 계세요?"
"그냥. 로또도 이월되고 투자도 쉽고. 삶이 재밌네?"
"그러고 보니 로또가 이월됐다고 하더라고요. 저 이번에 만원어치 샀습니다. 흐흐."
"야. 사지마."
"네?"
"사지 말라면 사지마 어차피 돈 만 날리는 짓이야."
"저는 1등 되지 말란 법 없잖아요."
"없어! 확률 제로야! 그러니까 사지마!"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법
다음 날 아침 일찍 휴먼매니저 사무실에 도착하니 현준이가 미리 와 있었다.
원룸처럼 방 한 칸짜리 사무실이라 안 그래도 비좁았는데 현준이가 들어오니 이제 이사를 가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좁게만 보였다
"경술대학교에서 연락 온 거 있어?
"아뇨 아직 없습니다."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
경술대측에서 이렇다 할 연락이 없다는 게 불안했다.
개판을 쳐둔 탓에 일방적 계약 해지를 들이 밀 수 있는 거고, 가능성은 낮지만 일이 잘 풀린다면 계약 조항을 수정하여 원만한 합의도 가능했다.
경술대학 오팀장에게 전화를 할까 싶었지만 괜히 먼저 아쉬운 소리는 하기 싫어 기다렸다.
그때 정석환 미화 반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표님
"네 반장님. 왜요? 무슨 일 터졌나요?"
-네..지금 학교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그리고 청소 미화반장이 내게 보내준 사진은 그야말로 쓰레기 천국이었다.
* * *
대학교는 사업체다.
학생들이 없으면 수입이 없으니 회사처럼 부도를 맞는다.
주식회사의 주인이 주주들인 것처럼.
대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학생의 뜻대로 움직여야 하고, 학생의 의지대로 흘러가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래서 이번 일은 내 손에서 해결하는 것보다 학생들을 구슬려볼 작정이었다.
어쨌든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이 상황은 가히 물류센터에서 쏟아지는 박스들처럼 느껴졌다. 현재 인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현재 우리가 맡은 청소 구역에는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쓰레기통은 이미 가득 차서 쓰레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신원 미상의 학생들이 갖은 쓰레기를 대량 투척하고 다닌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걸 사진을 찍어 용역비에 감액 시킨다고 했다.
나는 이게 그런 경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옆에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던 미화 반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어제 학교 축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몇 년간 대학교를 돌아다녀서 일을 해봤지만 유독 이렇게 심한 경우는 처음이네요."
그리고 문득 일전 최부장이 얘기했던 부분이 떠올랐다.
그 건물의 수준에 따라 미화원들의 업무 노동 강도가 달라진다고.
그게 절실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나도 대학 축제를 몇 년간 해봤지만, 주점 차려놓고 분리수거나 제대로 뒷정리하고 가는 새끼들 거의 못 봤다.
일단 청소는 진행돼야 했다.
현준이와 나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일이 쓰레기를 쓸고 담았다.
캠퍼스도 꽤나 넓어서 청소 미화 인원 8명이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현준이가 내내 말이 없다가 화가 나는 듯 빗자루를 집어 던졌다.
"야 왜 그래 인마."
"대표님. 잠시만요."
현준이가 어디론가 전화했다. 그의 통화 내용이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뉘앙스였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곧 있으면 인력이 올 거라고 말했다.
"무슨 생각이야?"
"저희 과 애들 좀 불렀습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어디선가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유도학과 대학생들이 멀리서 뛰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현준이가 몇 번 소리를 질러대자 더 전력 질주하며 우리 앞에 도착했다.
"너희들 학교 축제했으면 적당히 치워가며 해야 될 것 아냐.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이야!"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런데 저희 과 애들이 한 게 아니라 아마 다른 새끼들이 했을 겁니다.."
"그래서? "
"..."
"같이 좀 치워주자? 응? 여기 미화원 아줌마들 힘드시잖아."
나는 이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선후배 위계질서가 강하다보니 후배들이 현준이 앞에서 꿈쩍 못하는 꼴이었다.
짜식.
그런데 유도부 무리 중에 최고 선배로 보이는 한 녀석이 입을 삐쭉 내밀며 성을 내기 시작했다. 왜 우리가 이 짓을 해야 하냐며 현준이에게 들으란 듯이 크게 말했다.
현준이가 후배에게 다가갔다.
"우리 학교잖아. 축제 기간이라고 할지라도 적당히 좀 치워가면서 해야지. 이게 돼지 우리지 뭐냐?"
"선배님."
"뭐?"
"졸업하셨으면 이제 그만하시죠."
"...!"
"저희가 말끝마다 선배님 붙여준다고 해서.."
"이 새끼가."
"선배님 이제 유도 안하잖아요. 다 들었어요. 허리 부상 심각한 것도 알고, 그런데..유도도 안 하는 선배를 저희가 선배 취급해 줘야 하나요?"
현준이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사실 그게 맞지.
현준이가 좀 오버스럽긴 했다. 아마 내 앞에서 뭔가 좀 보여주고 싶었을 거다.
"저희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런데 내 직원을 건드리면 안 되지.
유도부 학생들이 뒤돌아 떠나려는 찰나.. 나는 그들을 불렀다.
"친구들아."
"...?"
"여기 있는 네 선배. 허리 망가져서 운동 못하고 유도 포기한 건 맞는데. 너희들이 무시할 정도는 아냐."
"누구세요?"
"여기 청소미화원 직원들 대표거든."
"하!"
미화원 직원 대표라는 소리에 한 녀석이 비웃어댔다.
그들이 비웃으며 떠나려는 찰나, 무리 중에 왠지 낯설지 않은 녀석이 내 눈에 띄었다.
"어?"
나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고,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는 한 녀석. 분명히 맞다.
"너 저번에 총장실 앞에서 마주친 놈 맞지? 팔뚝에 문신 그려져 있고. 그치?"
덩치는 산만했고, 팔뚝에 문신 있었던 녀석,
내가 벤츠를 부수고 망가뜨릴 때 사정했던 놈.
"이야. 여기서 만나네. 깡패 새끼인 줄 알았더니 여기서 유도하고 있었어? 이야 팔뚝 좀 봐. 문신 잔뜩 있고. 맞네. 맞아."
"이제 그만하시죠."
그리고 이제야 머릿속에 퍼즐이 맞춰졌다.
신원 미상의 학생들이 갖은 쓰레기를 대량 투척하고 다닌다고 했었다.
그걸 사진을 찍어 청소 부족이라는 명목으로 용역비에 감액시킨다고 했다.
"이거 너희들이 했구나?"
"..."
"그지? 맞네. 이거 너희들이 한 짓거리네."
"저희가 한 거 아니거든요? 어제 대학 축제 때문에 더러운 거라고요. 생사람 잡지 마시고 청소부는 청소나 하세요. 씨발 더워 죽겠는데 짜증 나게."
"우리가 치워야지. 맞지. 마땅히 치워야지. 그런데 너희들이 알아야 할 게 있어."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 새끼들이 아니면 누가 했단 말인가.
"이거 업무방해거든. 업무 방해가 뭐냐? 너희들이 메달을 따기 위해 수년간 노력했던 일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아주 질이 낮은 죄라는 거야."
"하아.."
"나도 너희들처럼 예체능에 목말랐을 때가 있었거든? 그래서 얼마나 절박한지 알고 있으니까. 솔직히 말해보자고."
"...."
"누가 시켰어?"
"저희가.. 안"
"누가 시켰냐니까!"
"..."
"너희들 인생 내가 한번 조져줄까? 간단해 지금 경찰에 신고하나면 끝나. 그러면 CCTV가 돌아갈게 분명하고, 너희들이 만약에 그런 행동이 찍혔다면..솔직히 미안한 얘기지만.. 운동은 때려치워야 되거든. 어떻게 할래?"
"저희가 치우겠습니다."
"이제 와서?"
"..."
"아까는 목에 핏대를 세워서 얘길 하더니.."
"죄송합니다."
"정확히 10분 줄테니까 다 치워라. 현준아 타이머 올려라."
현준이가 시계로 10분을 카운트다운하자 친구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청소를 해댔다.
"쓰레기 한 장이라도 남아 있으면 알아서들 해. 빨리빨리 움직이자. 빨리!"
"자 5분 남았다. 5분."
학생들이 연신 땀을 흘리며 청소를 해댔으나, 이 넓은 부지를 10분 안에 끝내는 건 불가능하지.
때마침 저 멀리서 링컨차가 보였고, 무리를 지어 대학 부지를 청소하는 모습을 본 대학 총장이 차를 세웠다.
총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쓰레기를 줍는 학생들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쉬어댔다.
그리고 나는 총장에게 다가갔다.
"아름답죠?"
"..."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뭐하고 있긴요. 당신 학생들이 청소하잖아요.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니까."
"대표님이 시킨 겁니까?"
"네. 나쁜 새끼들, 어디서 나쁜 것만 배워와서 어휴."
"뭐?"
"윗선에서 저희 청소 구역에 쓰레기를 투척하라고 시켰나 보더라고요. 하마터면 이거 저희가 전부 청소할 뻔 했다니까요. 하여튼 대가리에 똥만 들어찼으니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겠지."
"크흠.."
"총장님이 봤을 때 누가 시킨 거 같아요?"
총장은 본인이 시켰다고 차마 얘기하지 못하며 침음을 삼켰다.
"이제 그만하지."
"뭘 그만 해요? 저는 그만하고 싶지 않은데요."
"뭐요?"
그리고 나는 학생들을 보며 소리쳤다.
"스톱!"
정확히 10초를 남겨두고 타이머를 끊었고, 역시 운동부 애들이라 몸놀림은 엄청나게 빨랐다. 체력이 소진된 운동부 애들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런데 아직 청소를 해야 될 구역은 산더미.
나는 총장에게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주워요. 전부."
"꼭 이렇게까지.."
"나도 당신의 그 쓰레기 같은 명예를 이용 하는 거니까. 그거 잃고 싶지 않으면, 전부 주워요. 하루가 걸리든 이틀이 걸리든, 제가 옆에서 지켜봐 드릴 테니까."
총장이 하는 수 없이 허리를 숙여 쓰레기 하나를 주워 봉투에 담았다.
두 번째, 세 번째가 될 때쯤 그가 허리 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해서 하루 종일 해도 안 끝날 것 같거든요."
그리고 나는 미화반장을 찾았다.
"미화 반장님!"
"네. 대표님."
"업무일지에 기록 남기세요. 총장 외 유도학과 인원 청소 실시라고요."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