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실 팀장에게 얘기해봐야 어차피 총장 귀까지 들리지도 않을 거고, 내가 아무리 총장실 문을 두드려봐야 총장 얼굴 쉽게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엎어버렸다.
엎어 버리면 만나주겠거니 했다.
총장실 청소는 역시 행정실 담당 직원들이 도맡았다.
그런데 측은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들도 내 직원에게 행정실 청소를 맡겼으니까.
청소가 어느 정도 끝나자 행정실 직원들이 나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눈으로 욕한다는 느낌?
아무래도 내가 그들에게 일거리를 만들어 줬으니 그럴 수밖에.
총장은 어딜 그렇게 전화를 해대는지 계속해서 큰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확실히 조질 수 있는 방법이 뭔지 강구한다거나, 대책 마련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듯 한 통화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연락한 곳은 첫째로 변호사고, 차선책은 노무사들이다.
특히 노무사들.
지금 당장 콜 때리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오겠다는 노무사들만 수십 명이다.
체불 임금의 10%를 떼주는 수입과 비싼 수임료를 준다면 노무사들이 못 참고 달려오지.
그런데.
이따위 일로?
이따위 일로 노무사를 불러?
클린 빌딩 대표나 경비만세 대표의 공통점은 본인들이 피해자라는 걸 알면서도 앉아만 있었다는 거였다.
그나마 클린 빌딩 대표는 소송이라도 걸었으니 제 할 일은 한 경우.
그런데 나처럼 무작정 들이댈 수 있는 용기는 없었겠지.
업계에서 한번 찍혀버리면 다른 거래처에 소문 파다하게 퍼질 테니 겁도 났을 거고..이해는 된다.
깨끗하게 정리된 총장실은 이제 접견이 가능한 수준으로 깔끔해졌다.
나는 중역소파에 앉았고 총장이란 인간도 상석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았다.
총장은 이제 좀 안정을 되찾은 듯 사뭇 아까와는 다른 어조로 내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나올 거면 저희 가만히 있지 않을 건데,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어요?"
"네. 총장님.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나의 당당한 어조에 총장이 다시 한번 뒷목을 잡았다. 살면서 나 같은 놈을 처음 본 탓이겠지.
"총장님은 대체 무슨 카드를 가지고 있기에 나쁜 짓을 하고도 이리 떳떳한 겁니까?"
"..."
"설마 이런 쪼잔 하고 사소한 일로 총장님 인맥을 낭비하려는 건 아니죠? 여기 총장님 액자에 걸린 사진들 보니까 법조계에서도 나름대로 인맥이 있는 것 같은데요."
나는 총장실에 있는 수많은 액자들을 살폈다. 사진을 살펴본바, 정계에도 몇몇 지인이 있는 것 같았다.
"크흠."
"총장님. 적어도 대학교 총장이면 총장답게 좀 모범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이런 식으로 학교 운영하면 똥통 대학교에서 진짜 똥통만 나오는 꼴 아닙니까. 보니까 경영학 박사님이 시더만."
"뭐...뭐!!!"
"어쨌든 이번 사달은 갑측에서 갑질을 너무 심하게 한 부분이 많습니다. 입장 정리를 확실히 하자면 저희는 피해자고, 대학교는 가해자라는 뜻이죠."
"그래서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건가?"
"계약할 거 확실히 계약하고, 아니면 아닌 거고, 어차피 총장님도 대외적인 이미지가 중요하니까, 이런 부분 기사 나가봐야 좋을 것 없을 거고."
"..."
"여태 청소 직원들 간접노무비 6개월 치 소급 적용해서 지급해 주시고, 여태 부당하게 일해 왔던 것들도 마찬가지 용역비용에 포함해서 청구하겠습니다.."
"하..."
"그리고 그간 3개월 동안 밀린 급여 지금 당장 결제해 주시고."
"싫다면?"
"총장님 제가 지금 총장님이랑 기 싸움하려고 온 거 아닙니다. 저희들이 잘 판단하고 결정해야 대학교가 더 깔끔해지는 거 아닌가요? 총장님 성격 보니까 유독 대학교 청소에 예민한 것 같은데.. 제 말이 틀렸나요?"
"허허 참나."
총장이 마른세수를 몇 번 하더니 한숨을 푹 쉬어댔다.
"그리고 모든 결정권은 총장님한테 있어요. 계약 해지를 하고 끝내버리면 될 일이거든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총장의 고민이 길어지는 것 같았다. 용역 계약을 해지 한다면 적어도 한 달 전에 통보하는 것이 계약서 조항중 하나다.
총장이 계약해지를 하든 말든, 내게 한 달이란 시간이 있다는 뜻.
그의 고민이 깊어지자, 좀 더 밀어붙이기로 했다.
"그런데 총장님."
"..."
"제가 얌전히 관두겠습니까?"
"지금 협박하는 거야?"
"저는 잃을 게 없어요. 총장님은 명예라도 있지 일게 도급회사 대표가 잃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
"그러니까 제 말 듣고 결제하시죠."
"..."
"그리고 한 가지 더요."
"또 뭐!"
"당신 직원들한테 설교 한 번만 합시다."
"하아...으아!!"
총장이 분이 삭힌 듯 소리를 질러대며 책상을 쾅 쳐댔다.
어차피 부당한 부분을 따지는 일이라 총장으로선 할 말이 없는 경우다.
그저 본인보다 어린놈한테 일일이 대응하지 못하고 입만 꾹 닫고 있는 게 자존심 상하겠지.
그리고 행정실 직원들에게도 설교가 충분히 필요한 부분이라 어쩔 수 없다.
행정실 직원들을 비롯하여 대학 내 교직원들도 우리 청소 인력들에게 잡일을 시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행정실로 향했다.
이미 나의 미친 행각이 소문이 퍼진 탓에 오창식 팀장은 나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켜댔다. 그대들의 최고 상사를 묵사발 내버렸으니 이제 내 앞에서 기어들 수밖에.
행정실 직원들의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총장에게 허락 받은 부분이니까 당신들한테 설교 한 번만 합시다."
내 말을 들은 행정 직원들이 인상을 구기며 나를 쳐다봤다.
"이거 불법인 거 뻔히 알면서도 저희 직원들한테 지시한 겁니까?"
오창식 팀장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내가 얘기한 부분은 도급과 파견이라는 구분이었다. 도급은 본사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
파견은 다르다. 파견은 인력만 파견해주는 일이기 때문에 본사의 지시를 받으며 근무를 한다.
그런데 도급계약을 맺어놓고 본사의 지시를 받고 일하게 된다면 불법 파견으로 벌금을 맞는다.
청소 용역도 마찬가지.
대학교 직원이라고 청소원에게 지시를 한다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왜
도급이니까.
그래서 도급사에서 반장을 선임하고 반장이 지휘결정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모른다.
그저 본사에서 돈을 주니까 마구 부려 먹으면 되는 줄 안다. 게다가 그 직군이 청소부니 말 다했지.
"대표님. 제가 행정실 청소는 다음부터 시키지 않겠습니다."
"저희 청소부 아줌마들한테 지시할 권한 없어요."
"네."
"그리고 대학교 내부에 휴먼매니저 사무실 하나 필요하니까 자리 하나 마련해줘요."
"네?"
"도급법상 그래요. 그러니까 만들어 줘야 해요. 지금 저희 미화원 아줌마들이 어디서 쉬고 있죠?"
원청과 도급 계약을 맺었다면 원청에서는 그에 준하는 도급사 사무실을 내줘야 한다. 원청의 일을 도급하는 겪이니까.
물류센터마다 워킹휴먼 사무실이 있었던 것처럼.
"화장실에서 휴식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안에 휴먼매니저 사무실 하나 만들어 주시고, 거기서 휴게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이게..쉽지가 않을 텐데."
"그러면 애초에 용역 계약을 하지 말고 당신들이 직접 고용하고 관리해서 청소 미화일을 했어야죠. 왜 본인들 편의만 생각하는 겁니까."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그리고 청소시킨 사람이 누구예요? 행정실 청소 시킨 사람이 있을 거 아니에요."
"접니다."
때마침 한 여자가 손을 들었다.
"왜 그랬습니까?"
"몰랐으니까 그랬어요. 앞으로 안 그럴게요."
"앞으로 안 그러면 끝날 일이에요? 제가 당신을 막 부려 먹고 부당한 일 시켜대고 다음부터 안 그러겠다고 하면 끝나는 일 아니잖아요. 당신들도 총장실 청소하면서 인상 가득 썼죠? 본인 일이 아닌 걸아니까. 그런데 저희 직원들은 몰라요. 청소라면 마냥 이 건물을 청소하는 줄 안다니까요. 그걸 뻔히 알면서 일을 그렇게 시키는 건 잘못된 거잖아요."
"그러면 진즉에 하지 그랬어요!"
"뭐요?"
"언제 회사에서 미화원 아줌마들 신경 썼냐고요! 저희도 몰랐으니까 그랬던 거지. 알았으면 했겠어요?"
"하!"
"저희한테만 계속 뭐라고 할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 부분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저 저희가 돈 주니까 당연히 해야 되는 줄 알았다고요!"
"그러면 제가 한번 제대로 머릿속에 새겨 드릴까"
"..."
"지시하고 청소시킨 거 벌금으로 따지면 당신네 학교 벌금 3천만 원 정도 할 텐데."
"..."
"제가 이렇게 화로 끝내는 걸 다행으로 아세요. 다들."
솔직히 살살 달래가며 사정이 이러하니 부탁조로 말할 수도 있었으나.
원청과 대립을 숱하게 해가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좋게 얘기하면 심각한 줄 모른다는 거다.
그리고 여 직원 말마따나 그들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중간 업체에서도 청소 구역과 지휘 체계를 미화원 분들에게 상세히 설명해줬어야 했다.
결론은 둘 다 문제다.
* * *
학교 벤치에 앉아 커피를 사오는 현준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1011회차에 1등 당첨 인원이 나오질 않아, 약 240억 원이 다음 회차로 이월됐다.
수년만의 로또 이월 탓에 인터넷 기사들이 줄기차게 올라왔다.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이월이 됐으니 말이다.
[240억 이월되다. 6년 만에 로또 이월, 과연 주인공은?]
[1012회차 이월 합산금액 약 500억 원.]
[일주일이 기다려진다. 로또 수년 만에 이월]
여기서 만약 1012회차도 이월이 돼서 판매율이 급상승 한다면 적어도 내가 1013회차에서 먹을 수 있는 독식 금액은 약 천억 원 정도 예상했다.
대학을 사버려?
예전에 이탈리아에서도 로또가 이월돼서 당첨금이 2천억 원까지 오른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전 유럽인들이 이탈리아로 향해 로또를 샀고 당첨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한 예로.
이탈리아의 어느 섬 마을에서 이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 2천명의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재산을 털어 구매하였으나, 실패했다.
어쨌든
아직은 크게 반응 없는 첫 번째 이월이지만, 아마 이월이 두 번째 된다면..분명히 반응이 올 거라고 봤다.
스마트폰을 하며 시간을 축내고 있을 때 현준이가 커피 두 개를 들고 내 앞에 앉았다.
"커피 대령했습니다."
"땡큐."
그리고 궁금했던 것.
"너 여기 학교 나왔냐?"
"..."
"솔직히 말해 괜찮으니까."
"네."
"미안하다. 똥통이라고 해서."
"똥통 맞습니다."
"..."
"여기서 유도학과에 있었는데요. 제가 얼마나 처 맞아가면서 운동했는데요."
"왜 관뒀어?"
"허리 부상을 당해서요. 지금도 허리를 무리하게 쓰면 통증이 찌릿찌릿하게 와요."
"아.."
"다 지난 일이라 이젠 미련도 없어요."
현준이가 미련이 없다는 투로 말했지만 내심 그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의 앞에서 학교 욕을 해댔으니...
"잘했다.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사람을 때려가면서 운동 시키냐? 사람 때리는 새끼들은 상종해선 안 돼."
"흐흐. 대표님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정말 괜찮아요. 하아. 그래도 오랜만에 학교 오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좋네요."
"여기서 날아다녔겠네."
"흐흐. 말 다했죠. 선배들이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서 추억은 많죠."
"여기 한 학기 등록금이 얼마야?"
"제가 있을 때 한 학기 한 400만 원 정도 했죠?"
"와. 사립이라 쌔구나."
"그런데 저는 학기 중에 메달도 몇 번 따고 해서 장학금을 받기도 했거든요."
"대학 졸업은 한 거야?"
"겨우 졸업하긴 했는데..결국 유도장 알바 정도 하다가 돈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아예 접어버렸죠."
"아쉽네. 네 덩치에 엎어치기 한 번이면 다 나가떨어졌을 텐데."
"흐흐흐."
"그러면.. 여태 허리 통증을 참아가면서 막노동도하고 물류센터 상하차도 했던 거네?"
"네. 어쩔 수 없죠.. 매번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일이 안 좋게 돼서 포기했으니까요.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
"제가 미련은 없다곤 했지만 후회는 좀 되더라고요. 차라리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다면..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아요. 제 인생은"
현준이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현준아."
"네."
"그럼 풀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야. 새꺄. 어린 노무 새끼가 벌써 그런 말을 하면 어뜩하냐."
"흐흐."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여기서 계속 일 하고 싶냐?"
"네..하고 싶습니다."
현준이가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꼭 하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따 사무실에 들어가서 근로계약서 쓰고, 월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