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으로는 불법 파견이었다. 회사는 경술대학교와 도급 계약을 맺어 청소 도급을 맡은 경우. 그래서 대학교에서 지휘하고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대표님.."
"반장님 나무랄 마음 없어요. 반장님이 그간 열심히 해주신 덕분에 사원들도 버텨낼 수가 있었겠죠. 그런데"
"..."
"앞으로 하지 마세요."
"..."
"반장님께서 확실히 마음을 굳히셔야, 제가 경술대학교에 있는 부당한 부분을 전부 뜯어고칠 수가 있어요. 도와줄 수 있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때 학생 한명이 미화 반장과 내가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쓰레기를 바닥에 툭 버리고 갔다.
미화 반장이 급히 일어나 쓰레기를 줍기 위해 일어섰고, 나도 함께 일어나 그 학생에게 다가갔다.
"이봐요."
"네?"
"쓰레기 바닥에 버리지 맙시다. 네?"
"뭐야 짜증나게."
학생이 내 말을 무시하고 가려는 찰나, 옆에서 지켜보던 고현준이가 나섰다.
"어이."
"뭐? 지금 어이라고 했어요?"
"쓰레기 다시 주워"
"..."
"주우라고."
"누구세요?"
"네 선배야 새끼야. 어디서 눈깔을 확."
선배...아니겠지?
목소리를 조금 높이자 학생은 하는 수 없이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다시 버렸다.
역시 현준이.
그리고 나는 환경미화반장을 보며 말했다.
"학생들 수준이 어때요?"
"...허허. 대학생들이기 때문에 다들 뭐.."
"네?"
"제가 대학생들의 수준을 따질 만한 위치가 아니라서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수준이 뭐가 있겠습니까. 똥통이지."
내 말을 듣자 환경미화반장이 웃어댔다. 그간 참았던 웃음이 한꺼번에 터진 것 같았다.
현준이가 머쓱한 웃음을 지어댔다.
"똥통 대학교 맞잖아요. 이 똥통 대학교를 반장님이 그간 애써주셔서 이렇게 깔끔한 대학교가 되지 않습니까. 이거 대학교에서 상 줘야 돼요. 안 그래 현준아?"
"맞습니다! 대표님!"
"허허허"
"반장님."
"네."
"이번에 급여 3개월 치 밀린 거 있지 않습니까."
"..."
"제가 내일까지 반장님하고 미화원분들 급여 전부 보내드릴 테니까, 앞으로 저 믿고 따라와 줄 수 있겠어요?"
"알겠습니다."
"일단 현재 근무 중인 미화원분들 전부 불러주세요."
* * *
청소 휴게실이 따로 마련된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사무실도 없어서 정원 테이블에 모두 모여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클린 빌딩에서 계약을 넘겨받은 휴먼매니저 대표 김도일이라고 합니다."
미화원 아줌마들이 잘생긴 내 얼굴에 미소 지으며 박수를 쳐댔다.
"아이고 총각이 잘생겼네."
"총각 결혼은 하셨어요?"
"결혼은 아직 안 했고요.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반장님께도 말씀드린바 밀린 월급은 제가 내일까지 모두 이체해 드린다고 약속 드렸습니다."
"와."
미화원 아줌마들이 기분이 좋은 듯 서로 부둥켜안으며 웃어댔다.
"그리고 한 가지 더요."
"네!"
"현재 제가 말씀드리는 구역 외에 청소가 진행된다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나는 어제 외워둔 계약서에 나온 내용대로 청소 구역에 대해 말했고, 꽤나 젊어 보이는 한 여성이 손을 들며 말했다.
"저희가 맡은 게 그 정도 수준이에요?"
"네. 맞아요. 모르셨나요?"
"전혀 몰랐어요. 저희는 여태 건물 내에 있는 모든 구역 다하고 있었는데요."
"아닙니다. 엄연히 과업 지시서에 할당된 장소만 청소하시면 되는 일입니다."
"아.. 제가 여태 맡고 있는 곳이 대학 행정실, 총장실, 뭐 많거든요..어쩐지..일이 너무 많아서.."
"총장실이요?"
"네. 예전 클린빌딩 대표가 하루에 한 번씩 총장실 청소 좀 해달라고 얘기했거든요. 저는 그래서 당연히 해야 되는 줄 알고 있었죠."
"아.. 그랬어요?"
"..."
"앞으로 하지 마세요."
"네?"
"총장실 청소는 계약 내용에 애초에 없으니까 안 해도 되는 일이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화연씨가 해맑게 웃으며 나이스를 외쳤다. 그리고 다른 아줌마가 손을 들었다.
"행정 사무실도 대표님이 말씀하신 내용에 없었는데요."
"여태 행정실도 청소 하셨나요?"
"네.. 이건 행정실 직원들이 부탁하신 경우라.. 당연히 해야 하는 줄 알고 있었죠.."
"하아.."
순간 쌍욕이 목울대에서 멈췄다.
"하지마세요. 또 다른 건요?"
"건물 외곽 배수로 작업도 있나요?"
"없어요. 하지 마요."
그 외에도 약 여섯 가지가 더 나왔고, 일단 계약에 없는 청소 구역은 하지 않기로 담합을 했다.
그리고 차후 문제가 불거질시 내 번호를 알려줬고 나에게 바로 전화를 달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4대보험 관련해서 들으신 게 있나요?"
"..."
"고용보험, 의료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가입여부에 대해 들으신 게 없다고요?"
"가입은 돼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하아..6개월간 가입은 전혀 안 돼 있었습니다. 애초에 계약했을 당시 없던 부분이라서요."
"그러면 어떻게 되죠? 고용보험에 가입돼야 저희가 나중에 실업급여를 타 먹을 수가 있는데요."
경술대학교와 계약만료 되면 청소 아줌마들도 마찬가지 근로계약 종료와 동시에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소급 적용 가능하니까, 제가 다음 달에 전부 가입시켜 드릴게요."
사실 소급 적용해서 그동안 가입이 안 된 6개월 치 4대보험을 가입시킨다면 근로자들도 10%를 떼서 사업주와 반반씩 부담해야만 했다.
그런데 차마 그 얘기는 하지 못했다.
일단 전액 내가 내주는 걸로.
* * *
그리고 나는 화연씨를 따로 불러들였다. 그녀의 나이는 42살.
이른 나이에 청소 미화 일을 시작한 탓에 이곳에서 가장 막내였다.
그녀는 특별하게도 총장실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총장실을 청소 해야만 했기 때문에, 유일하게 이 대학교에서 총장실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현준이와 화연씨와 함께 총장실에 들어갔다.
총장실에서 살펴본바 몇 가지 특이사항이 있다면, 중역 책상이 굉장히 고급스럽다는 것이고, 읽지도 않은 것 같은 새 책들이 매우 많은 것.
경영 관련된 서적이 많은 것과 경영 전공 박사 학위증이 보였다.
유명 인사들과 찍은 액자를 보고, 이리저리 살핀 뒤 총장실을 빠져나왔다.
"총장실 청소는 매일 했었다고 했죠?"
"네."
"청소하다가 총장을 마주친 경우도 있었고요?"
"그렇죠..?"
"뭐라고 합니까?"
"청소가 잘 안됐으면 한마디씩 하시죠."
"아.. 그 외는요?"
"가끔 커피도 한 잔씩 타드리고, 서류 정리도 도와드리곤 했죠.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저 혼자 완전 무료 봉사하고 있었던 거네요?"
"클린빌딩 대표가 설명을 못 했을 겁니다. 대학교 총장 힘이 워낙 세잖아요?"
"아무리 그래도요.. 총장실 청소 한번 하고 나면 몇 시간을 허비해요. 워낙에 깐깐한 분이라 지적사항도 너무 많아서 이것 때문에 매번 일이 밀린다니까요."
"아.."
그리고 나는 현준이를 불러 몇 가지 일을 시켰다. 현준이는 내 부탁을 듣고 혀를 내두르며 그건 안 될 거라고 했으나,
이내 대표라는 완장질 몇 번으로 현준이가 내 말을 듣게 됐다.
사실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간 화연씨가 당해왔던 것과 부당하게 일을 해온 노동의 대가는 갚아줘야만 했다.
돈으로 받든 아니면 다시 돌려주든. 둘 중 한 가지 아닌가.
그리고 나는 총장실 앞 복도 의자에 앉아 총장을 기다렸다.
화연씨의 말에 따르면 매일 아침 10시에 총장실에 들려 간단히 업무를 보고 다시 나간다고 했다.
얼마의 시간이 걸렸을까.
나는 총장실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총장을 기다리고 있었고, 복도 멀리서 총장의 모습이 보였다.
총장은 총장실 앞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보며 청소부를 찾아댔다.
총장이란 인간과 예전에 전화로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과 정체를 알지만, 그는 내 정체를 모른다.
"청소 상태가 왜 이래!"
총장은 복도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보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청소부를 찾아댔다.
하지만 이미 화연씨와 현준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 상태라 청소부는 없는 상태.
총장이 아주 화가 난 듯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는 찰나, 내가 그에게 말했다.
"이봐요."
내가 말한 것을 들은 총장은 급히 전화를 끊고 나를 불렀냐는 뉘앙스로 어이없게 바라봤다. 그래 너 새끼야.
"여기 당신 말고 누가 있습니까."
"하! 너 여기 학생이야?"
"학생 아닙니다."
"설마 이거 쓰레기 네가 한 짓거리야?"
"그렇죠. 제가 했어요. 왜요?"
"이 미친 새끼가!"
총장은 굉장히 화가 난 듯 뒷목을 잡아댔다.
"이제 내 목소리 기억날 때 안됐나? 벌써 기억력 감퇴가 온 건 아닐 테고."
"..."
"벤츠."
"이 또라이 같은 새끼가! 지금 당장 청소 못해!!"
"혈압 올라가니까 진정 하시고, 내가 하나만 물읍시다."
총장이 씩씩거리며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계약 내용에도 없는 일을 대체 왜 시킨 겁니까?"
"뭐?"
"그렇잖아요. 내 직원들이 여태 돈도 못 받고 매일 공짜로 당신 사무실 청소 했는데, 그거 아주 질이 나쁜 짓이거든. 사람을 노예로 부려 먹은 거 아닌가?"
"..."
"이유 묻잖아요."
"내가 시킨 일인데 뭐 불만 있어? 새파랗게 젊은 노무 새끼가 말하는 싸가지는."
"계약서 다시 쓸건 지 말건지 여기서 정하죠. 여태 6개월간 부당하게 일했던 일들 전부 소급 적용해서 용역비에 포함 시키던지, 그게 싫으시다면 뭐 어쩔 수 없고."
"그런 협박이 나한테 통할 것 같아? 세상 물정 모르는 노무 새끼가 감히 나한테? 하! 너 지금 아주 큰 실수 하는 거야."
"하아.. 그럼 어쩔 수가 없네."
"뭐?"
"어차피 계약 안 될 거 알고 있었거든, 문 열어봐요. 선물 있을 거예요."
총장이 총장실의 문을 열자 입을 떠억 벌려댔다.
그간 총장실에서 치웠던 쓰레기를 암산해서 계산해본 결과, 하루에 2L정도의 쓰레기가 나왔다고 한다면 6개월간 주말제외 대략 240L.
나는 240L의 쓰레기를 고스란히 총장실 중역 책상에 뿌려드렸다. 아주 골고루 야무지게.
고급스럽던 중역 책상에는 이제 쓰레기 더미로 변해 있었고, 소파와 중역테이블에도 마찬가지.
전부 부셔버리고 싶었으나 참은 수준이다.
총장이 차마 말문을 열지 못하고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거 범죄야. 무단 침입에 기물 파손에, 이거 감당할 수 있겠어?"
"..."
"왜? 이제와 생각해보니까 무섭냐?"
"당신이 범죄자야 이 씨발놈아. 그동안 우리 직원들한테 지시하고 청소시킨 거 자체가 불법이고 그걸 불법 파견이라고 해서 벌금 꽤 쌔거든. 뭘 알고 떠들어 새끼야. 내가 그 정도 계산도 없이 덤빈 줄 알어?"
"이 새끼가."
"그리고, 이게 왜 범죄야? 그동안 당신 사무실 청소한 거 돈으로 안 받는 대신에 퉁쳐서 다시 쓰레기로 돌려주는 건데..합당한 거래잖아. 경영 전공이 그런 것도 모르면 안 되지. 여태 당신 사무실에서 치웠던 쓰레기들 전부 제자리에 돌려놨으니까. 알아서 치워봐. 내가 사실 20L 깎아줬으니까 고마워해도 괜찮고."
"이 개새끼가!"
총장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며 온갖 고함을 질러댔고, 나는 한 대 쥐어박을 기세로 그에게 다가갔다. 총장이 다소 움찔거렸다.
그의 행커치프에 쓰레기 한 장을 꽂아준 뒤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말했다.
"진정 하시고,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요? 벤츠로 안 끝날 거라고. 이제 차분하게 앉아서 얘기 좀 하실까?"
로또도 이월되고 투자도 쉽고. 삶이 재밌네
편하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직진 한번 해버리면 일이 잘 풀리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