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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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해?"

"네. 그리고 다음 슬라이드, 결론은 사람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약 120P의 글자 사이즈로 사람이라고 엄청나게 크게 쓰여 있었다.

"끝?"

"이게 끝이겠습니까. 자 다음 슬라이드. 그래서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저희가 저번에 경술대학교 갔을 때, 아줌마들이 청소하면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세요?"

"기억이 안 나는데?

"3개월 급여를 못 받아도 어쩔 수 없이 일한다고 했죠."

"그랬나?"

"넵! 그래서 다음 타깃은 대학교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아파트 입찰 한번 따볼게요. 대표님은 경술대학교 먹어보죠."

"지금 지시한 거 아니지?"

"회사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주임은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말을 내뱉는 걸까 싶다. 아파트 입찰 따내는 게 쉬운 줄 아나.

그리고 정주임이 말한 부분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경술대학교를 맡게 된다면 내 성질에 못 이겨 또 싸움 터질 게 분명하고 일만 복잡해질 것 같아 더러운 똥은 피하고 싶었다.

제 스스로 똥 밭에 들어가는 인간이 있을까.

하아.

"대표님"

"엉?"

"저희가 경술대학교를 간 건 그냥 우연이 아닐 거예요. 이번에 한 번 잡아보죠."

"..."

정주임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데, 대표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디 가세요?"

"경술 대학교."

* * *

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한 뒤 대학 행정 본부로 향했다.

오창식 팀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대학 행정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고, 오창식 팀장은 내 얼굴을 보고 뭔가 찔리는 게 있다는 듯 급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휴먼매니저 대표 김도일이라고 합니다."

"알아요. 아는데.. 좀 만 봐주십쇼. 네? 대표님이 총장님 벤츠 박살 낸 거 있잖습니까. 수리비 만만치 않게 나왔거든요. 이자는 그냥 좀 넘어가 주면 안 될까요?"

"안 되는데. 십 원짜리 동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제가 사이드미러하고 바퀴 두 짝하고 조수석 유리창하고 범퍼 한 대 갈긴 거 해봐야 수리비 팔백 안 나올걸요? 13년 식 C클래스 차 값만 2500인데. 안 그래요?"

"그럼 일단 저희 총장님을 만나셔서.."

"아뇨.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사실 이자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팀장이 먼저 얘기를 꺼내서 한번 덤벼본 꼴..

내가 팀장을 보러 온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경술대학교와 현재 계약을 맺고 있는 청소업체 클린 빌딩과의 용역 계약서를 살펴보고 싶었다.

오창식 팀장에게 부탁하여 클린 빌딩과 수의 계약한 용역 계약서를 받았다.

팀장은 뭐가 그렇게 눈치 보이는지 나를 이끌고 행정 실을 나왔고, 건물 구석진 곳의 화단에서 담배를 물었다.

나는 용역 계약서를 살피며 팀장에게 말했다.

"계약서 깨끗한데요? 별 다른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건물, 전기, 비품, 기타, 기구 등이 파손됐을 때에 갑의 요구에 따라 을은 지체 없이 보상해야만 하는 조항이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워킹휴먼에서 물류현장 청소 파견을 했을 당시 어느 청소 용역 계약서에나 있을 법한 조항이었다.

면밀히 살펴보진 못했지만 이렇다 할 문제 될 게 없어보였다.

그러자 오창식 팀장은 제일 뒷장을 보라며 내게 말했고, 그곳에 특약 사항이 몇 가지 적혀 있었다.

청소용역비 감액 관련된 특약사항 이었는데, 쉽게 말해, 너 청소 제대로 못 했으니까 돈 깎을 거야 하는 조항이었다.

워킹 휴먼에서 근무할 때도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청소 용역비 감액 관련 된 부분을 원청에서 제시했고, 청소가 안 된 부분은 평당으로 감액하여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건 갑의 보험과도 같았다.

청소에 충실히 임해달라는 을에게 압박하는 정도지, 이 부분을 지적하며 용역비에 감액하겠다고 달려들었던 원청은 없었다.

갑의 입장에서는 이런 보험 하나 정도는 달고 계약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저도 막말로 이러고 싶진 않거든요. 어떻게든 돈 안주려고 수를 쓰는 게 뻔히 보이는데요."

"팀장님은 그걸 알고 계신 거였네요?"

"알다마다요. 예산 집행하는데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니까 청소가 안 된 부분을 죄다 사진 찍어서 평당으로 계산해서 깎아 버리는 거네요?"

"그것뿐이겠어요? 몇 주 전에는 미화원 한 분이 정원 정리를 하다가 나뭇가지 하나 부러뜨렸다고 용역비에서 깎았다니까요. 저야 뭐 먹고 살자고 여기서 근무하는 거지만..미화원 아줌마들만 안 된 거죠."

"이거 계약서는 제가 들고 가도 될까요?"

"사본이긴 해서 괜찮은데..비밀로만 해주세요."

"혹시 클린빌딩 업체 대표하고 총장하고 관계가 있나요?"

"네? 그 부분은 갑자기 왜.."

"제가 사실 클린 빌딩 업체 대표를 먼저 만나고 싶었는데요, 혹시라도 총장하고 유착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마. 그러진 않을 겁니다. 한 달 전에도 클린빌딩 업체 대표가 저희 행정실에서 온갖 고함을 질러댔거든요. 제발 돈 좀 달라고."

그때 팀장이 급히 허리를 숙이며 벽에 붙었다. 그리고 얼굴을 슬쩍 내밀며 행정동 건물 앞을 살펴댔다.

나도 얼떨결에 덩달아 벽으로 붙었고, 때 마침 경술대학교 총장이라는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저번에 박살내버린 벤츠는 어딜 가고 이번에는 링컨 차를 끌고 왔다.

나이는 최대 60. 보좌관으로 보이는 한 놈이 있었다.

그들이 행정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팀장이 이를 갈며 말했다.

"저 씹새끼."

그리고 자연스레 입에 담배를 물었다.

"왜요?"

"이번에 저희 직원들 연봉도 전부 깎아버렸다니까요."

"..."

"휴.. 사립에서 근무하는 제가 죄인이죠."

국공립 대학교의 행정실 직원들은 공무원이다. 다만 사립은 따로 채용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는 팀장의 하소연을 그저 들어주기만 했다. 딱히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팀장은 이내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한 말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너무 익숙해서요."

"제가 대학교 행정실 근무만 10년째거든요. 그런데 제가 여기 와서 느낀 게 뭔지 아십니까?"

"네?"

"여긴 학교가 아니에요."

"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오창식 팀장이 축 처진 어깨로 행정실 건물로 들어갔고 나는 이제 클린 빌딩으로 향해야만 했다.

클린 빌딩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평소 잊고 살았던 현준이가 생각났다.

예전에 정주임으로부터 현준이의 소식을 전해들은 바, 워킹휴먼을 관두고 백수로 살고 있다고 했다.

현준이는 덩치도 산만하고 곰 같지만 굉장한 순둥이.

그래서 내가 현준이의 강성적인 내력을 일깨웠고, 과거 박찬혁이의 팔을 휘어잡으며 꺾어버렸다.

내 충신이다.

그를 잊어선 안 되지.

전화를 걸자마자 1초 만에 현준이가 받았다.

"현준아."

-과장님..사실 과장님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 버리신 거 아니죠? 성희누나에게 들었는데, 거기가 대기업 복지 수준이라고..

"일 하냐?"

-아뇨. 지금 막노동하러 왔습니다.

"휴먼매니저에 면접 볼래?"

-지금 달려가겠습니다.

"잠깐."

-네?"

"너 예전에 운동한다고 했지?"

-예전에 유도 했습니다!

"됐다. 합격. 내일부터 출근해."

그것만 믿자.

현준이와 통화를 끝내고 나는 클린빌딩 대표를 만나기 위해 강서구에 위치한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면서도 나는 이내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계약 조항에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청소 용역에 필요한 모든 소모품과 비품들은 대학교에서 지원해주지 않고 클린빌딩에서 구매하여 사용하는 것.

물류센터 청소 용역을 맡았을 때 이런 소모품들은 원청에서 지원을 해주는 경우가 다분했다. 그런데 대학이라고 다를까?

나는 최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부장님."

-어이.

"제가 이번에 대학교 청소 용역을 맡아볼 생각인데요. 대학교 청소에 필요한 소모품들은 대학교에서 지원해주는 게 맞나요?"

-하아.. 그건 학교마다 다르지.

"네?"

-서울 중상위 대학은 거의 대부분 소모품은 학교에서 지원해주지..그런데 지방은..거의 없다고 보면 돼.

"아.. 학교마다 다른 거였네요."

-그렇지. 그런데 그게 참 웃긴 게 학교가 오죽 넓냐? 하루에도 세제만 몇 통씩 써 데는데 깨끗이 치워도 금방 더러워진다니까. 계약만 확인해서는 안 돼. 건물 수준이나, 학교 수준에 따라 미화원들의 노동 강도가 다르다니까. 그런데 어디야?

"경술대요."

-...

"왜요?"

-안 했으면 싶은데..거기 똥통이잖아. 10년 전에 한번 입찰 넣었다가 천사장하고 도망 나왔어.

"하아.."

-아직 네가 경험이 없어서 그래..

"어쩌겠습니까..그래도 설립 초기라 무작정 한번 덤벼 보는 거죠.

-이왕 할 거면 계약서 잘 살펴라. 청소 구역이 다 나누어져 있을 거야.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어디가 우리 구역이고 아닌지 딱 선 그어서 해야 돼, 그 새끼들 조금씩 바라는 게 많아지거든. 그래야 청소 아줌마들이 덜 피곤해. 알았냐? 할 거면 아주 제대로 하고 아닐 거면 아예 손 떼버리는 게 청소용역이야. 일반 막노동 용역이랑은 차원이 달라. 무슨 말인지 알겠냐?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기야.

"네."

-현준이 네 회사에 들어간다면서?

"벌써 거기까지 소문났어요?"

-현준이가 오과장한테 얘기했나 보더라고. 암튼 현준이 녀석한테 전해줄 말이 있어서.

"뭐..죠?"

조금 불안했다. 현준이가 워킹휴먼에서 개판을 치고 그만둔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섣부른 판단이었을까.

-노트북 반납하라고 해. 이건 내가 쪼잔한 게 아냐. 개념 없는 노무 새끼. 일을 관뒀으면 집에 가져간 물건은 반납은 해야 할 것 아니냐고.

"크크크. 아니 노트북을 집에 들고 갔어요?"

-노트북뿐이겠냐? 마우스도 들고 갔다니까! 지금 신입 들어 왔는데 현준이가 쓰던 노트북이 없는 거야. 오과장이 한참 찾았잖아!

"개념 없네요. 제가 내일 만나거든 퀵으로 바로 보내라고 얘기하겠습니다."

-그려. 쉬어라.

"네 들어가십시오."

-김과장.

"크크크. 오랜만에 듣네요."

-부딪치는 일 많을 거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언제든지 전화 줘라. 알았냐? 언제든 도와줄 테니까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충성!"

맘 같으면 최부장을 당장 데려오고 싶었지만, 그는 현재 워킹휴먼의 총 책임자.. 게다가 아직 명분도 없다.

나는 계약서를 한 번 더 꼼꼼히 살핀 뒤 클린빌딩 대표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로 올라갔다.

"휴먼매니저 김도일 대표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죠?"

* * *

클린빌딩 대표와 나는 소파에 마주 보며 앉아 차 한 잔을 두고 말했다.

"이게.. 맘 같으면 대표님한테 던져드리고 싶은데.. 힘들어요. 안 돼요. 여긴."

"...?"

"워낙에 깐깐한 양반들이라..거의 뭐 3개월에 한 번씩 용역비 입금되는 수준이고, 감액도 심심찮게 해버리니까.. 저희도 지금 이거 계약 한 건 때문에 적자보고 있다니까요."

"소송은요?"

"지금 준비 중이긴 한데.. 변호사한테 물어보니까 전액은 받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청소가 미진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면서.."

"참나."

"이제 6개월 남았어요. 6개월만 좀 어떻게든 버티는 거죠."

"담배 피시나요?"

"나가시죠."

클린빌딩 대표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커피 한잔을 뽑아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저번에 경술대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청소하시는 분에게 물어보니까 급여를 못 받고 있다고 하던데."

"저도 지금 미치겠습니다."

"멱살이라도 잡고 싸워보든가 하지 그랬어요."

내 말을 듣던 클린빌딩 대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이런 새끼가 있나 하는 표정?"

"소송 걸었으니까..일이 잘 풀리기만을 기다려 보는 거죠."

"아줌마들은요."

"네?"

"아줌마들은 이런 일을 알고 있어요?"

"..."

"소송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변호사 말마따나 용역비 전액 받기는 힘들 거고, 그러면 아줌마들도 월급을 제때 못 받겠네요. 그죠? 결국 아줌마들이 노동부 신고 들어가면 대표님이 빚을 내서라도 줘야 할 텐데..대표님은 그럴만한 돈은 없고..결국 아줌마들은 돈을 못 받는다는 결론..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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