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흐. 너. 인별그램 친구 나밖에 없지?"
"응? 알잖아. 나 그런 거 질색하는 거."
"나도 그 새끼들하고 선 그어버렸다."
"잘했어."
"네 욕을 존나 하잖아, 매번 듣다가도 화나가지고 다 때려치우고 나왔어. 그런데 씨발 몇 놈이 인별그램에 내 욕을 해놨더라고. 하아. 애새끼들 나이 처먹어도 정신 못 차리는 거 같더라."
"누군데? 설마 그 창수 새끼 아니지?"
창수
예전에 나하고 대판 싸웠던 친구였다.
"시발..창수 뿐이겠냐?"
"하아. 그 새끼들 진짜. 걔들은 왜 그러고 사냐?"
"친구로 끼워주니까 본인 위치를 모른단다."
"뭐? 진짜? 진짜로 그랬다고?"
"어. 그래서 내가 댓글로 욕 존나 달았지. 너는 개새끼라고."
"하아."
"어차피 이번에 나도 인간관계 확실히 선 그어버리려고. 씹새끼들 내가 게네들한테 축의금으로 얼마를 냈냐? 많게는 30만원 내고 10만원 밑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거든? 5만원 냈더라."
"그래서 내가 뭐라 그랬냐? 아닌 건 아니라고 했지? 병신. 넌 꼭 당해봐야 아냐?"
"나도 알아.."
"하아. 명석아. 우리가 게네들에 비해 뭐 얼굴이 밀리냐? 뭐가 딸려? 씨발 돈 좀 없었다고 그런 식으로 우릴 생각하고 있냐? 우리가 뭐 걔들 시다 해주려고 만난 거 아니잖아?"
"..."
"야. 인별그램 켜봐."
"뭐? 야 다 끝났잖아. 그만하자. 엉?"
"줘봐 인마."
강제로 명석이의 휴대폰을 뺏어 들었고 인별그램에서 그들이 올려놓은 글을 확인했다. 정확히 10일 전에 쓴 글이었다.
[본인 위치를 알고 삽시다. 그 친구들 듣고있지?]
[세상 좁고 동네 좁다. 동창회에서 보진 맙시다. 그런식으로 살아봐야 좋을 거 없을 텐데.ㅉㅉ]
하트칸을 누르는 버튼에 좋아요가 꽤 많이 눌려져 있었다.
여 동창생들을 비롯해서 전 여자친구, 그리고 여타 친구들.
이 새끼들이.
"됐다."
"왜 그래. 도일아."
한숨만 나왔다.
솔직히 나를 욕하는 건 상관없다.
돈 많으니까 참으면 그만이다.
플렉스질로 인별그램에 자랑질 몇 번 해주면 오히려 연락이 오게 될 놈들이다.
그래서 그런 플렉스 짓거리 꾹 눌러 참았다. 혹시라도 연락 오게 되면 불필요한 소모가 싫었다.
그런데 명석이는 아니지.
실제로 뭣도 없는 놈이 명치를 쌔게 얻어맞은 격.
"너는 벨도 없어? 이거 우리가 확실히 조져 줘야 돼."
"어떻게 하게."
"..."
"매번 몸만 먼저 나서냐. 계획도 없으면서."
"동창회 가자."
"뭐?"
"막말로 못 갈게 뭐있냐? 동창회가 그 새끼들 거냐?"
"야 씨. 말이 동창회지 결국 걔들 필두로 해서 모이는 거잖아. 우린 못가는 게 맞지, 이제 친구가 아닌데."
"...그래 됐다."
"휴우. 너는 생각을 좀."
"그럼 우리가 만들어 볼까?"
"뭐?"
"명석이너도 마당발이고, 나도 재력은 있고, 못할 거 없잖아? 안 그래?"
"그렇게 까지 하고 싶냐?"
"어. 할거다. 대학교 선후배들 전부 불러버리고, 그 새끼들 동창회 잡은 날 우리도 같은 날에 잡아보자고..과연 누가 더 많이 모이는지, 괜찮지 않냐?"
"병신."
"걔들이 나하고 너 비아냥댄 거 그냥은 못 넘어가겠다."
"아이고..이제 나도 모르겠다. 하아."
다음 날 아침.
"우웩"
명석이가 변기를 부여잡고 토를 해댔다.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그렇게 마셔댔으니 그럴 수밖에.
"괜찮냐? 그러니까 적당히 처먹지. 왜 무리를 하냐고."
"야..큰일인데.. 지금 몇 시냐?"
"여덟 시."
"출근..해야 돼."
명석이가 화장실에서 겨우 기어 나와 씻지도 않고 좀비처럼 빠져나가려 했다.
"해장은 해야지."
"와이프한테 죽어."
-쾅.
어제 명석이와 무슨 대화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 숙취도 엄청나게 올라왔다.
뭔 동창회 얘기를 하긴 한 것 같은데..
아..머리 아파.
나는 침대로 쓰러지듯 누웠다.
그런데 이제 휴먼매니저의 기본 욕구 퀘스트도 전부 완료한 상태.
왜 다음 퀘스트가 나타나지 않는 거지?
[김도일님의 여섯 번째 메인 퀘스트를 발현하겠습니다.]
[인류 재생 프로그램의 여섯 번째 미션]
[투자]
「완료 보상 1000UNI」
「제한 시간 무제한」
그런데, 내가 왜 굳이 투자를 하는 건가 싶다. 로또라는 이능이 있는데, 그것만큼 좋은 투자가 없을 텐데.
[휴먼매니저는 김도일님이 1순위입니다.]
매번 그렇겠지.
이놈의 퀘스트는 매번 내가 1순위다.
그렇다면..
투자 개념이 단순하진 않을 것 같았다.
합격. 내일부터 출근해.
명석이에게 전화 왔다.
-그런데 진짜 할 거냐?
"뭘 해?"
-동창회 하자는 거 진짜냐고. 어제 술 먹을 때 얘기한 거..
"내가 어제 동창회 하자고 했냐?"
-그래. 인생 뭐 있냐. 우리가 주인공 한번 해보자고.
이놈의 술이 웬수다.
"그래. 하자."
-정확히 한 달 뒤다. 내가 인맥은 넓으니까 사람들 끌어올 게, 네가 자리만 만들어라.
솔직히 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저것 피곤한 일도 많을 것 같고 휴먼매니저의 투자라는 새로운 퀘스트도 생긴 마당에, 허튼짓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자존감이 낮아 지 인맥으로 살아가는 녀석이다.
금수저 친구들과 절연했을 때 심정은 제 팔을 스스로 자르는 격.
게다가 나를 대신하여 같이 욕해주고 싸웠다. 그래 인생 뭐 있냐.
친구 놈 기 좀 펴주고, 동창회 제대로 해보는 거지 뭐.
이번 휴먼매니저의 퀘스트는 나에게 투자하는 퀘스트인 것 같았다.
그런데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투자한다는 개념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국 플렉스.
휴먼매니저 사무실에 들르기 전에 인근의 명품 백화점에 들렀다.
오랜만에 백화점에 가서 플렉스를 하면 퀘스트 상승률이 오르지 않을까 싶어 백화점에서 지영씨에게 서프라이즈 선물해줄 에르메스 빽하고 내가 신을 구두를 샀지만, 상승률은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시선으로 퀘스트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
기존에 있던 주식에 돈을 더 넣어봤다. 그런데도 무반응.
암호화폐의 알트코인에 한 10억을 넣어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펌핑이 되더니 금방 11억이 됐다.
그래도 무반응.
하아.
부동산?
인근 부동산에 들러 꼬마빌딩이라도 살까 생각했으나 주식이나 비트코인도 퀘스트 상승률이 오르지 않는데.. 부동산도 아닐 것 같았다.
그럼 대체 뭐냐고!
아무 소득도 없이 휴먼매니저 사무실에 들어갔다. 정주임은 혼자 점심을 먹으러 간 듯 아무도 없었다.
배가 고파 오랜만에 라면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작게 마련된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렸다.
후후 불며 한 젓가락 먹으니 그 맛이 일품.
예전에 엄마가 반찬을 싸준 탓에 냉장고에도 몇 가지 반찬이 있어서 꺼내 먹었다.
내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라면은 절대 끊지 못할 것 같다.
그때 아메리카노 두 개를 사 들고 사무실에 들어온 정주임이 나를 보며 웃었다.
정주임은 빚을 다 갚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전보다 훨씬 밝아진 표정이었다.
매번 어깨를 짓누르던 그 빚이 사라졌으니, 내가 그녀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
"대표니임."
"갑자기 왜 그래 징그럽게."
"제가 커피 하나 사 왔어요."
"땡큐."
"왜 갑자기 라면이요? 저한테 말씀하시면 끓여 드릴 텐데요."
"괜찮아. 내 라면은 내가 신경 쓸게. 아직 시간 안 됐는데, 좀 더 놀다가 일해."
"그럴 순 없죠. 우리 회사가 계약을 하나라도 더 따내야죠."
"연락은? 안 오지?"
강남 인근의 모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연락해서 홍보했건만 아직 한 통의 연락도 오질 않았다.
"이번에 방송한 것까지 얘기해서 연락드려도..딱히 반응이 없더라고요. 구미를 당기게 할 만한 특별한 계약 조건을 제시하며 좋을 텐데요"
"구체적으로?"
"음.. 청소 서비스?"
"우리가 봉사 단체냐? 아파트 청소 파견 따로 있는 거 몰라?"
"알죠. 아는데.."
"어차피 이 바닥 영업이야. 전화만으로 되는 거 없어. 그러니까 애쓰지 말고 GN아파트 건이나 신경 써라. 그리고 며칠 뒤에 정길완 반장님 생일이니까 선물 세트 정주임이 알아서 챙겨주고."
"넵."
정주임이 사다 준 커피를 쭉쭉 마시면서 굉장히 들떠있는 정주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빚 갚으니까 기분은 어때? 좋냐?"
"날아갈 것 같아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요."
"그 정도야?"
하긴 나도 빚을 다 갚았을 때 엄마하고 부둥켜안으며 울었으니.
"대표님은 모르실거예요.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는데요. 하루를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보내는 것 같다니까요. 오늘도 빚 갚고, 내일도 빚 갚고."
하긴 나도 성희 나이를 겪어봐서 안다. 학자금대출이라는 빚을 떠안고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의 그 심정을.
그런데 여기까지.
"성희야."
"네?"
"넌 휴먼매니저가 뭐 하는 회사 같아?"
"경비업체요."
"경비업체면 경비매니저라고 이름을 지었겠지. 그런데 휴먼매니저잖아."
"그렇죠."
"오늘 안에 휴먼매니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PPT만들어와."
"네? 대표님 앞에서 발표하고요?"
"좋소 처음 다녀?"
"넵! 알겠습니다!"
회사 직원이 휴먼매니저의 방향을 몰라선 안 되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주임이 노트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사무실에 있는 흰색 커튼에 빔을 쐈고, 정주임의 PPT가 시작됐다.
"우리 회사는요. 메인테마는 사람이에요. 대표님 말마따나 경비업체면 경비매니저라고 했겠죠?"
"그래서?"
"자 다음 슬라이드를 보시면, 저희가 이번 GN아파트에서 나름의 성과를 보여주자면, 갑질 근절과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PPT에는 갑질X 소통O 이라는 단어가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다. 역시 좋소 다운 퀄리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