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 (72/200)

"고소.."

"고소해요. 해. 맘껏 하세요. 해봐요. 그쪽 법무팀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는데, 청명이라고 알죠? 우리 대한민국에서 제일 쌘 변호사들 모인 곳. 나는 거기에 의뢰 해볼게. 한번 해보자고."

"..."

"어차피 씨발 당신 그거 협박하려고 하는 소리인 거 알어. 돈 없는 대표들이야 뭐 겁먹어서 말 못했겠지. 그런데 나는 아니거든, 나는 아냐. 당신들의 뇌 구조를 너무 잘 알거든. 그러니까. 고소로 한판 붙든, 순순히 돈 내놓든. 지금 결정해요."

"..."

"3초 드릴게. 3, 2,"

"알았네. 알았으니까 내 당장 지금 입금하지."

-뚝

아 열받아.

새끼들이 나를 아주 병신으로 알아요.

"정주임."

"네 대표님."

"작년 경술대학교 청소 용역 했던 아줌마 이력서 전부 가져와."

"네."

나는 그들의 이력을 살폈고 한명씩 전화를 돌려 휴먼매니저 업체로 와달라고 요청했다.

"저희들이 청소를 해놓으면 몇몇 학생들이 고의적으로 이리저리 어지럽혀 놨어요. 또 치우면 또 그러고, 아무리 얘기를 하고 싸워 봐도 반복적으로 악행을 일삼았다니까요."

"그걸 경비만세 대표님한테 말씀드렸어요?"

"네. 하루만 참아 달라, 며칠만 참아 달라, 그러더니 아예 포기한 것 같더라고요.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하려는 참에 마침 대표님한테 전화가 왔으니.. 어휴."

"신고는 하지 마시고요. 제가 지금 급여이체 해드리겠습니다. 정주임."

"네."

"이분들한테 급여 전부 이체해드려라. 깔끔하게. 지연된 만큼 10% 이자 붙여드리고."

"알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급여 들어갈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거기 총장이란 인간에 대해 아는 거 있나요?"

"말도 마세요. 대외적으론 엄청 깔끔하고 존경받고 그러는데, 실체는 완전 양아치에요. 뻔히 이러는 거 아마 그 인간 머리에서 나왔을 거예요. 어휴, 좋은 머리를 왜 그렇게 나쁜 곳에만 쓰려고 하는지."

"들어들 가보세요."

때 마침.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급여입금 내역.

-33,000,000

진짜 삼천삼백 보냈네.

크크

투자 개념이 단순하진 않을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떳떳해? 일을 했으면 돈을 줘야 될 것 아니냐고, 그런데 왜 그렇게 떳떳하냐고.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어? 아줌마들이 피땀 흘려서 일한 돈이 왜 너희 같은 개돼지 입에 쳐들어가냐고! 4천만 원이 우습지? 이딴 벤츠 한 대보다 더 적은 금액이니까, 우스워 보이는 거지 어!?"

정주임은 스마트폰으로 오늘 오전에 찍었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영상 속 깡패의 욕과 내 고함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이제 그만 봐라. 지겹지도 않냐?"

"신기해요."

"신기하다고 그게?"

"저는 영화를 볼 때도 액션이나 폭력적인 거 좋아하거든요. 권총으로 막 악당 쏴 죽이고 막 칼로 찌르고 베고, 그런 카타르시스? 그런데 진짜 제가 촬영하면서도 손이 떨렸다니까요."

"..."

"한 번 더 보고 싶을 정도예요. 그런데 대표님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예요?"

정주임이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며 내게 물었다.

"깡패들만 보면 화딱지가 나는 삶을 살았나보다."

"아무리 그래도.. 대표님 이러다가 무슨 사달이라도 날까봐 걱정이에요. 너무 무리한 게 아닐까 싶어서..저희가 마동식이처럼 주먹으로 정의구현 하는 사람도 아닌데."

"왜 못해?"

"네?"

"야. 우리가 경비업체 아니냐? 쪽팔리게 경비업체가 깡패들한테 뚫리면 되겠냐?"

"그렇죠..?"

"용역들 구하는 건 쉬워. 하루 일당 빌어먹고 사는 애들이 많아서. 너 그리고 깡패들의 공통점이 뭔 줄 아냐?"

"네?

"그 새끼들은 경찰에 신고를 못해."

"그게 더 위험한 거 아닌가요? 영화에서 보면 막 잃을 것 없는 사람들 마냥 때리고 치고받고 부수고 하던데."

"영화가 아니라 현실도 간혹 그래. 진짜 부셔. 근데 오히려 그게 괜찮아."

"왜요?"

"나도 그러면 되니까. 너 내가 주먹 못 쓸 것 같아? 쌍방으로 가는 거지."

"예에."

정주임이 못미더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어릴 적 사채를 전부 갚자마자 깡패새끼가 엄마와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다신 보지 말자고.

그 이후로 동네에서 딱 한 번 마주쳤었다.

내게 다가오더니 일 배우고 싶으면 오라고 하더라. 병신. 그런 일을 배울 게 뭐가 있을까.

예전에는 깡패들만 보면 주먹 먼저 쥐어졌다. 마치 습관처럼.

그리고 잃어버린 습관을 다시 찾은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깡패 새끼들 앞에선 가끔은 상식이 필요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법도 의미 없다.

고발해봐야 나만 지치고 시간만 버린다.

더 피곤해진다.

처절했던 유년기에서 배운 방식이었다.

총장 이란 인간은 별 말없이 내게 삼천삼백만 원을 입금했다.

이 새끼를 잘못 건들면 피곤해지겠단 걸 깨달은 거지.

나는 삼천삼백만 원의 20%, 육백육십만 원을 봉투에 담았다.

20%는 정주임에게 주기로 했었다.

정주임이 침을 꿀꺽 삼켜댔다.

소리가 얼마나 큰지 내게 들렸다.

"정주임."

"네.. 대표님."

"돈 받으면 뭐 할 거야? 클럽 갈 거지? 술 먹고 노래방도 갈 거고."

"아뇨. 학자금 대출 다 갚아 버릴 거예요."

나는 정주임에게 돈을 건넸다. 그리고 정주임이 떨리는 손으로 받으려는 찰나.

장난기 발동.

"야."

"네?"

"뺏어봐."

"네에?"

"뺏어보라고, 내가 그 새끼들한테 돈 뺏은 것처럼"

"하.. 진짜 이러기에요?"

"너는 이 돈이 급하지 않은가 봐?"

"약속했잖아요."

"약속을 깨는 건 내 마음이지 뭐."

"하.."

"세상이 네 뜻대로 될 것 같냐?"

정주임이 한숨을 푹 내쉬며 나를 바라봤다. 화가 난 듯했다. 이제 그만 놀려야겠다.

"돈 가지고 놀리지 말죠. 치사하게. 학자금 대출 갚는데 쓴다고 했잖아요. 대표님한테는 그 돈이 우습죠? 네?"

"나도 딱 너 같은 심정이었어. 돈 가지고 장난치는 새끼들. 내가 아주 질색하거든"

"..."

"성과금이라고 생각하고 맘 편하게 받아, 남은 대출 다 갚고 이제 착실하게 돈 모아. 괜히 헛짓거리하는데 쓰지 말고 알았냐?"

"네."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뺏어봐."

"진짜!"

나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돈을 높이 들었고, 키 작은 꼬마 정주임이 점프를 해보지만 닿질 않았다.

"바보 크크크."

"아!"

사무실을 뛰어다니며 정주임과 술래잡기하듯 놀았다.

한창 신나게 놀고 있을 때 그만 발이 미끄러져 바닥에 털썩..

이내 정주임도 내 위로 넘어져버렸다.

순간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야..뭐하냐..나와."

"네."

"지금 당장 은행 가서 학자금 대출 갚아"

"..."

나는 아무 말 없이 사무 책상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봤고, 정주임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돈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다.

휴.

* * *

GN아파트의 촬영도 무사히 잘 진행되고 있었다.

휴먼극장의 ‘갑질 아파트의 변화’라는 제목으로 방송될 예정이었다.

애라씨는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있을 때 내게 전화했다.

"마지막 촬영인데 안 오실래요?"

조금 삐졌었다.

그래도 경비업체 대표인데 나를 한 번도 안 부르더라.

"제가 왜 가요. 7일차 촬영 중에 어떻게 한번을 안 불러 줍니까. 안 가요."

"이해해줘요. 여기가 시골이면 괜찮은데 이 근방 아파트가 한둘이에요? 괜히 경쟁업체에서 도일씨 피곤하게 할 게 분명하니까 제 판단이 맞아요. 내려와요. 입주민 입장으로."

"넵."

촬영은 경비원들의 일상과 주민들의 이야기로 풀어나가고 중간 중간 에피소드들은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려야 하기 때문에 자극적 요소 없이 물 흐르듯 진행됐다.

소수의 선한 주민들이 촬영에 많이 힘써줬고 덩달아 갑질 행사하던 부류들도 연기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도움을 줬다.

특히 윗집 아재는 셧다맨으로 살고 있어서 촬영을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사실 본인도 내가 사는 아파트가 갑질 아파트라는 이미지가 매우 싫었단다.

마지막 촬영은 경비 휴게실에서 이뤄졌다. 며칠 뒤 정길완 반장의 생일이라 경비원들이 모여 축하를 해주는 장면으로 마무리를 지을 생각인가 보다.

명석이가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찍고 있었고 경비원들은 이제 카메라가 익숙해진 듯 의식하지 않고 생일축하와 더불어 선물도 전했다.

오글거려서 도저히 못 보겠더라.

그래서 나는 잠시 단지 밖으로 나왔고 촬영이 끝나는 동안 기다렸다.

몇 분이 흘렀을까.

촬영이 끝난 듯 휴게실 안에서 박수소리가 여러 들렸다.

그리고 몇몇 경비원들이 환한 웃음으로 동을 빠져나왔고, 마지막에 다다라서 정길완 반장이 뒤따라 나왔다.

경비 업무를 위해 또다시 뿔뿔이 흩어지려는 찰나 나는 정길완 반장을 불렀다.

"고생하셨어요."

"별말씀을요. 카메라 앞에 처음 서보는데, 아주 재밌었습니다."

"반장님."

"네?"

"제가 반장님 믿고 맡겨도 되겠죠? 매일 이 아파트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요."

"걱정 마시죠 대표님. 아직 두 다리 멀쩡합니다."

"무슨 일이든 항상 회사에 연락하시고요. 그래도 제가 처음 맡은 곳이라 애정이 남다르거든요."

"그럼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 *

나는 애라씨와 명석이와 함께 촬영 뒤풀이를 위해 근방의 술집으로 향했다.

스텝들이 서로의 얘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술자리에서 나는 명석이와 따로 테이블에 앉았다.

명석이는 이번 촬영이 아주 잘 뽑혔다며 스스로 자화자찬해댔다.

"야 너희 아파트에 연예인 살더만"

"누구?"

"어떻게 걔를 모르냐. 걔 있잖아. 작년에 배우 신인상 받은 여자애. 하.. 이름이 뭐더라."

"...?"

"한수애. 맞아. 존나 착하던데? 경비초소에 와서는 막 먹을 것도 사다주고 음료수도 사주고.. 와.. 역시 천사라니까."

"야 사진 좀 보여 줘봐."

명석이가 내게 사진을 보여줬다.

직감은 항상 틀리지 않았다.

내 앞집에 사는 여자였다.

예전에 입주떡을 돌렸을 당시 그녀는 ‘저 아세요?’라고 묻고는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몇 년간 영화에 관심이 없던 게 화근이다.

언젠가 만나면 싸인이라도 받아야겠다.

그런데 걔가 그렇게 착한 짓은 안 했는데.. 아마 방송 촬영 소식을 듣고 연기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애라씨는 편집을 마무리하기 위해 방송국으로 향했고, 나는 명석이와 집에서 술을 더 마시기 위해 일어섰다.

물론 애라씨에게 간곡히 부탁해서 허락을 겨우 맡은 격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소주를 마셔댔다.

명석이 이놈은 술집에서 애라씨의 눈치를 보느라 맥주만 할짝거리더니, 소주 한 잔을 들이켜서야 술 좀 마시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이 자식은 내일 출근인데 괜찮을까 걱정이다.

물론 나도 긴장감이 풀렸다.

경술 대학교의 일도 잘 풀렸고, 촬영도 잘 끝났으니 오늘은 거하게 취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술자리 패시브 스킬도 꺼버렸다.

서로 실없는 소리를 해가며 술을 마셔댔다. 애라씨 앞에서 기죽지 않는 법은 스스로 돈이 많아야 한다며 내게 주식을 알려달라고 했으나 단번에 거절했다.

주식의 주자도 모르는 명석이 인생을 마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서운한 듯 스마트폰으로 인별그램을 켰다.

이 녀석은 마당발이라 친구들이 매우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필요 없는 인맥들을 전부 정리해버린 것 같았다.

잔뜩 취한 듯한 꼬인 혀로 명석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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