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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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오실래요?"

"..."

"그래도 제가 월급은 두둑이 챙겨드리겠습니다."

"아서라. 벼룩에 간을 빼먹냐."

"만약에 제가 벼룩이 아니면요?"

"응?"

"부장님 월급 워킹휴먼 보다 더 책정해주면 올수는 있는 거죠?"

"당연하지."

"기다리십쇼."

아직 최부장을 데려오기에는 내 사업 사이즈가 너무 작다.

* * *

지잡대.

지방에서 흔한 잡다한 대학을 뜻하는 은어다.

경비만세 대표가 어떻게 이곳까지 청소 용역을 파견할 생각을 했는지 의아했다.

사업 외연 확장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 이곳저곳 무지성으로 입찰했다는 판단.

나는 정주임을 옆에 태우고 차를 끌고 경기 남부 인근의 대학교로 향했다.

"무작정 찾아가면 돈 받을 수 있는 거예요?"

"몰라. 그냥 가는 거지 뭐."

"너무 대책 없으신 거 같은데.."

"야."

"네?"

"이번에 돈 받으면 너 20% 떼 줄게."

"빨리 밟아주세요. 빨리요."

내가 아무리 로또라는 이능이 있더라도. 떼인 돈도 못 받는 호구처럼 살기는 싫고, 왜 노동의 대가를 주지 않고 뻐기는지도 궁금한 참이었다.

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한 뒤 대학 행정 본부라며 우뚝 솟아있는 건물로 향했다.

거리낌 없었다.

원래 채권자의 걸음걸이는 당당하다고 해야 할까.

무작정 대학 행정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고, 사무실 책상마다 달린 이름표를 확인한 뒤 팀장에게 향했다.

-오창식 팀장.

"저기요."

"네? 어떻게 오셨어요?"

"떼인 돈 좀 받으러 왔는데요."

"...?"

"구 경비만세, 현 휴먼매니저 청소 용역비요. 4천만 원."

"아.."

팀장은 내 말을 듣자 급히 고개를 숙여 딴청을 피워댔다.

뭐지? 이 개 같은 기분은?

"저기요."

"네?"

"돈 받으러 왔다니까요. 청소 용역비 3명 6개월 치 사천만원이요. 안 들려요?"

"아..죄송한데 저희 돈 없는데요."

"왜..요?"

"총장님이랑 말씀 나눠보시겠어요?"

* * *

총장을 한 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용역비를 주지 못한다는 양반들이 왜 건물 내에 청소 아줌마들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정주임을 대동하여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어느 업체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거죠?"

"클린 빌딩이라는 업체요."

"아.. 혹시 급여는 다 받으셨나요?"

"어휴. 말도 마세요. 지금 그거 때문에 난리예요. 3개월 치가 지금 밀리긴 했는데,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계속 다녀야지."

"네."

아줌마와 이야기를 끝낸 뒤 다시 총장실 앞 의자에 앉았다.

정주임이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학교에서 용역비도 못 주는 상황인데 그래도 청소는 시켜야 하나 보네요."

"..."

때마침 복도에 한 사람이 나타났고, 걸음걸이가 이상하게도 굉장히 투박하고 어깨도 널찍하니 덩치가 장난 아니었다.

순간 직감이 왔다. 저 새끼 총장 아니다. 깡패다.

그런데 어쩌겠나. 받을 건 받아야지

"뭡니까?"

"떼인 돈 좀 받으려고 왔는데, 총장님 맞아요?"

"예."

총장이란 양반이 이 인간을 대신 보낸 것 같았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돈 받아야 될 것 같은데"

"청소가 개판이잖아요."

"네?"

"일도 안 하고 대학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놨는데 우리가 어떻게 돈을 줘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무튼 일이나 똑바로 하고 말씀하세요. 그 돈 못 주니까. 법적으로 소송을 걸든 알아서 하세요. 저희들은 전부 증거 있으니까. 업무태만."

"저기요."

"왜요?"

덩치가 우락부락하여 솔직히 조금 쫄았다. 그래서 입이 머뭇거렸다.

"얼마 하지도 않는 돈 가지고 이러지 맙시다. 예?"

"못 준다니까."

-쾅!

이내 이 깡패녀석이 총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아.

정주임이 옆에서 화가 난 듯 보였지만 팔뚝에 그려진 문신 앞에서 그녀도 잔뜩 주눅이 든 것 같았다.

"가자."

"이대로 갈 거예요?"

"그럼 어쩌냐. 돈이 없대잖아."

"..."

정주임과 아무 말 없이 내 차에 올라탔다. 결국 받지 못할 것 같았다.

차 시동을 걸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내 앞차에 고급 벤츠 한 대가 서 있는 걸 보니 아마 총장의 차인 것 같았다.

항상 그랬다.

매번 이 지랄 맞은 인간들은 돈은 못 준다면서 차는 아주 고급 차를 끌고 다녔다.

어렸을 때 기억이 스쳤다.

나는 사채업자들에게 일일이 빚을 갚았다. 무식한 엄마와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불법추심이라는 법도 몰랐으니 그저 그들의 윽박질에 지레 겁먹어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엄마도 무슨 일이든 했겠지. 청소일도 했을 것이고, 식당 파출도 했을 것이고, 뭐 잡다한 일 다 했을 거다.

일하면서 못 받은 돈도 있을 거고, 그 돈 받기 위해 처절하게 싸워보기도 했을 거다.

씨발.

그렇게 죽어라 빚만 갚았다.

사채가 있다는 이유로 한없이 고개를 숙이며 살았다.

그런데 왜..저 깡패 새끼들은 고개가 뻣뻣하기만 한 걸까.

저 인간들이 갈취한 건 엄마들이 일했던 땀이다.

차문을 열고 내린 뒤 트렁크 비치된 기본 공구함에 연장을 챙겼다.

깡패 앞에선 깡패처럼 굴면 되는 일.

벤츠 앞에 서서 범퍼를 발로 갈겨버렸다.

-삐용 삐용.

차량 경고음이 울려 퍼졌고, 이내 깡패 새끼가 급히 튀어나와 차를 살피며 나를 바라봤다.

"씨발 당신 미쳤어!"

"야."

"이 개새끼가."

"왜 그렇게 떳떳해?"

"뭐?"

"일을 했으면 돈을 줘야 될 것 아니냐고, 그런데 왜 그렇게 떳떳하냐고."

"..."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어? 아줌마들이 피땀 흘려서 일한 돈이 왜 너희 같은 개돼지 입에 쳐 들어가냐고!"

"지랄하고 있네. 씨발 진짜."

"4천만 원이 우습지? 이딴 벤츠 한 대보다 더 적은 금액이니까, 우스워 보이는 거지? 엉?"

"하! 뒤질라고. 진짜."

깡패새끼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내게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기세에, 나는 선빵을 날려야 할 차례.

"그래서. 난 너한테 빚을 안 받기로 결정했거든."

"뭐?"

그리고 벤츠 사이드 미러를 발로 차버렸다.

"이게 백만 원 정도 하지?"

그가 부러진 사이드 미러를 들어 올리며 미친 듯이 고함을 질러댔다.

그리고 나는 연장으로 바퀴에 구멍 냈고.

"이게 네 짝에 사백정도 하나?"

조수석 유리창을 깼다.

"이건 좀 비싸겠다. 자 합계 칠백."

"잠깐! 잠깐만!"

때마침 그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외쳤다.

"아직 삼천삼백 남았는데."

"씨발 이거 우리 총장님 차라고..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하자..어?"

"..."

"줄게. 준다고!"

"정주임!"

"넵!"

"찍었냐?"

"네. 찍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 주인한테 전해."

"..."

"오늘까지 안 보내면 벤츠에서 안 끝난다고."

깡패가 진땀을 흘려댔다. 총장의 차가 개박살이 나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씨발..너 정체가 뭐야?"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새꺄."

* * *

사무실에 도착한 뒤

대학 총장 이란 인간의 이력을 대학 홈페이지에서 살폈다.

뭐 이것저것 자선 사업을 많이 한 것 같아 보였으나, 내 입장에서는 완전히 양아치.

겉으로 보이는 대외적인 이미지는 깨끗했다.

지금 시간 오후 3시.

아직도 급여가 입금되질 않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런 걸까.

나는 대학 행정실에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휴먼매니저 대표 김.."

-뚝.

"아놔. 이 쌍노무"

이럴 줄 알았으면 벤츠를 불태워 버릴 걸 그랬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경술대학교 총장입니다."

"저기, 총장씨 제가 아까 잘 말씀드렸는데 왜 입금이 안 되는 거죠?"

"소식 들었습니다. 벤츠를 아주 박살을 내셨다고."

"그거 얼마 안 하잖아요. 딱 보니까 연식도 꽤 된 것 같아서 조기 폐차 좀 시켜드리려 했지."

"제가 사진 몇 장 보내드릴 테니 한번 봐요."

문자로 사진이 몇 장 도착했다.

청소 상태 불량이라는 제목의 사진은 복도에 갖은 쓰레기들과 벽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사진을 확인한 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뭡니까?"

"예전 경비업체 대표에게도 내가 누누이 설명했는데, 청소 상태가 개판이라서 이거 업무태만으로 용역비 지급 안 해주기로 했거든요. 애초에 계약서에 명시된 부분입니다."

"..."

"그러니까 이번 일은 제가 그냥 넘어가 드릴 테니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끊겠습니다."

"잠깐만요."

"네?"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여보세요. 그게 우리 파출 아줌마가 했다는 증거 있어요?"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사진으로 명백히 나와 있잖아요."

"그러니까. 뻔히 당신들이 조작한 걸 수도 있잖아. 어디 사람을 병신으로 아나. CCTV 전부 까볼까요? 예?"

"..."

"총장씨. 잔머리 굴리는 소리 여기까지 들리고 당신들이 하는 짓거리 내가 다 알아. 내가 원체 경험이 많거든. 그러니까 되지도 않은 뻘소리 하지 마시고 돈 입금 시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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