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통화했을 때가 동생의 현장에서 팀장이란 인간이 4대보험 명목으로 돈을 갈취 했다는 통화였다.
때마침 엄마도 2등 로또 당첨 복권을 거의 다 써 갈 게 분명하고, 동생도 차후 어떻게 일이 진행 됐는지 모르겠지만, 거길 얌전히 다니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때려 치웠거나 다른 일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만 정 먹고 살기 힘들면 전화를 달라고 했으나 한통의 전화가 없는 걸보니 적당히 벌이는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차를 끌고 엄마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곧장 집으로 들어갔다.
몇 가지 변화라면 도배를 했다는 것. 그리고 도배와 함께 새로운 가전제품들이 더 생겼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해맑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아무래도 2등 당첨금을 홀로 쓰고 있다는 게 내내 마음에 걸리겠지만 나 또한 마찬가지.
크크.
"집이 깔끔해졌네. 매번 누런 벽지 볼 때마다 도배 좀 했으면 싶었는데."
"백만 원 들었다. 얼마 하지도 않더라. 진즉에 해버릴걸 왜 그렇게 뜸들이고 살았는지 몰라."
"벽지는 실크벽지로 했네."
"사장님이 다 알아서 해주셨어. 밥은 안 먹었지?"
"이따 동생오면 먹자고. 그런데 외식은 안하고 집에서 먹어? 힘들게 요리 하지 말라니까."
"그냥. 엄마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너희들 엄마 집에 있는 거 오랜만에 보고 싶네."
"..."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엄마가 깎아준 과일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을 때 동생네 가족이 도착했다.
동생의 얼굴은 예전처럼 붉기만 했다. 바닷바람 맞으며 일을 하는 탓에 저 피부는 피부 재생 술을 받지 않는 이상은 재생시키기 어려울 것 같았다.
엄마가 손주를 들써 앉으며 연신 뽀뽀 세례를 해댔다.
동생은 내 얼굴을 보며 씩 웃으며 담배나 한 대 피자며 나를 끌고 나갔다.
"형 덕분에 여태 때 먹힌 돈 다 받았어. 고마워."
"여태 얼마나 때였던 거야?"
"300만 원 정도? 흐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인마. 너는 그렇게 물러 터져가지고 어떻게 가족들 먹여 살리려 그러냐."
"아내가 생활력이 좋아. 아주 장난 아니거든."
"미친놈."
동생은 베트남 여자와 결혼했다. 생활력 하나는 기똥찼다. 고기가 먹고 싶으면 도매상에서 킬로그램 단위로 싸게 산 뒤 직접 발골 하는 수준.
동생과 담배를 한 대 씩 나눠 피고 집으로 올라갔다.
엄마와 제수씨가 밥상을 차리기 위해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오랜만에 만난 조카를 안았다.
"몇 달 안본사이에 쑥쑥 커버리네."
조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내 앞에서 방긋 웃어대며 깔깔거렸다.
밥 먹자는 엄마의 불호령에 나는 미리 준비해둔 조카의 생일 케이크를 식탁에 올려놓고 생일 축하를 해줬다.
도현이가 연신 밥을 먹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응?"
"요즘 어때? 예전에 만났던 남자 친구는?"
"별 소리를."
"왜. 예전에는 나보고 엄청 부자 같다면서 좋아했잖아. 별로야?"
"꾼이더라."
"어?"
"사기꾼이라고. 어디 건물도 있고 뭐도 있다더니 순 뻥쟁이야. 혹해서 내 명의로 대출까지 해줄 뻔 했다니까."
"그러게 내가 조심하라고 했지? 예전에 한번 슥 보니까 관상이 안 좋더라고."
"엄마 재혼할 생각은 없는 거지?"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밥이나 먹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불안해서 그렇지. 세상 흉흉해. 엄마 재산보고 다가오는 사람도 있을 거고, 등쳐먹으려 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함부로 도장 찍어주지 말고."
"내가 애니? 그리고 내가 무슨 재산이 있다고. 탈탈 털어보라 그래라. 빼 먹을 거라도 있나."
"말을 또"
"너희들이나 신경 써. 엄마 인생 알아서 할 테니까. 도현이는 밥 더 먹을래?"
"응. 더 줘."
엄마가 도현이 밥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고, 도현이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빤히 바라봤다.
"왜? 할 말 있으면 해."
"요즘 아버지한테 전화 온다?"
"뭐?"
동생은 또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유일하게 아버지와 연락하는 사이라 그런지 동생은 간혹 가족모임 때마다 꺼내곤 했다.
그래서 나한테 욕도 많이 먹었다.
"밥 맛 떨어지게 그 인간 얘기는 하지 말자. 응? 기분 좋은날 망치고 싶어서 그러냐."
"그게 아니라 형. 아버지가 지금 일을 하다가 다치셨나보더라고."
"뭐?"
"연세도 있으시고 하니까 이제 어딜 가서 일을 하려니 몸이 힘드신 거지.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아서."
"하아. 또 돈 이야?"
"..."
"너 그 인간한테 받친 돈이 얼마야?"
"별로 안 돼."
"안되긴 병신아. 저번에도 월세 보내줬다며? 다달이 보내주는 돈이 따로 있을 것 아냐."
"한 달에 삼십만 원 정도 밖에 안 된다니까. 형. 막말로 우리 아버지잖아. 엄마 앞에서 그런 얘기도 못해? 아버지 앞에서도 나는 엄마 얘기 꺼낸다고. 꼭 이렇게 까지 따지고 들 이야기는 아니잖아."
"네가 그 인간 앞에서 무슨 얘기를 하던 상관 안 하는데, 엄마 앞에서나 내 앞에서는 꺼내지 말라고."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도현이의 밥을 한가득 퍼서 내려놓으며 식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도현이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그만해라. 내 손주 생일 밥에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라. 그리고 도현이 말이 맞다. 누구든 너희 아버지다. 그리고 너도 형이 싫어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꼭 네 자식 생일밥 먹는 데 그래야겠니? 응?"
엄마의 불호령에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묵묵히 밥을 먹으면서도 도현이와 나는 이상 기운이 흘렀다.
어릴 때 내 밑에서 설설 기던 녀석이 군대 갔다 오고 30대에 접어들며 가정이 생기니 본인 주장을 어떻게든 이겨먹으려는 성질이 생겼다.
옛날 같았으면 어휴.
도현이가 묵묵히 밥을 먹다 망가진 분위기에 미안한지 내게 말했다.
"미안해 형. 괜히 말을 꺼내서."
"..."
"그래도 가족이니까. 아무리 지랄 맞은 인간이라도. 피가 섞였잖아. 그래서 한번 얘기해본거야"
동생은 가세가 기울었을 때 그 참혹했던 순간을 잘 모른다.
이모 집에 살았을 때도 나는 동생을 책임지기 위해 일을 했고 엄마도 외지로 나가 돈을 벌어 꼬박 이모에게 돈을 보냈다.
사실 이것도 나중에 알게 된 것이었다. 엄마가 보내 준 돈을 이모는 죄다 지 자식들에게 써버렸으니까.
그때 동생 나이가 11살이었고 내 나이 15살이었으니, 아마 그때 상황을 잘 모를 거라고 봤다.
그저 응석만 부릴 나이니까.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난 뒤 동생과 나는 집 밖으로 나가 방금 말다툼을 한 얘기로 사과했다.
"괜찮다고."
"..."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아버지란 사람이 대체 무슨 일로 병원 신세를 졌는지.
"그 인간은 뭐야? 병원은 왜?"
"며칠 전에 입원했다는 전화 받고 한번 갔다 왔는데 심한 건 아니고."
"지금 어디 있는데?"
"전라도 쪽에 있나보더라고."
"..."
"그런데 형. 아버지한테 너무 악한 감정 가지지마."
"뭐?"
"아버지 인생도 있는 거야. 아버지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인생도 있는 거라고. 현실이 그래서 그런 선택밖에 할 수 없었던 거고."
"..."
"나도 알아. 우리 집에 옛날에 빚이 많았던 것도 알고, 사채 쓴 것도 알아. 그런데 그게 꼭 아버지 책임만 있는 건 아니라고."
"누가 그러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어찌됐든 우리 어릴 때 엄마하고 아버지 관계를 우린 모르잖아. 그들이 어떻게 살았고 왜 빚이 생겨야만 했는지. 그런데 내 말은 꼭 아버지 책임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야."
"뭐?"
"부부니까."
"..."
"형이 결혼을 아직 안 해서 모르겠지만 아버지하고 엄마는 서로 합의하에 이혼을 한 거고, 아버지는 그래도 혼자 감당 해보겠다고 이혼 한거야. 그 일부 빚은 어쩔 수 없이 엄마가 가지고 온 거고."
"..."
"그러니까 형도 좀 알았으면 좋겠어. 아버지가 형한테 얘기 하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도. 너무 안됐잖아. 형도 가장이 돼보면 알거야."
"..."
"그냥 못들은 걸로 하자."
"형!"
"난 신경 안 쓰고 살 거니까 너나 신경 써. 네가 알아서 해라. 나는 벅차니까."
"너무 쪼잔한 거 아냐? 돈도 잘 번다면서."
"뭐 이 새꺄? 쪼잔? 네가 보태준거 있냐? 어?"
"하아.."
"막말로 너 학교 보내고 뭐 하고 누구 돈으로 내줬냐? 어? 내가 매일 알바 해서 번 돈으로 네 대학까지 보내줬잖아. 내가 뭔 힘이 있었는데. 나도 존나게 일했어. 내 대학등록금도 벅찼다고. 그런데 뭐? 아버지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고? 조까라 그래. 씨발. 그게 가족이냐? 정말 가족을 생각했으면 같이 이겨냈어야지."
"그래. 그래. 알았어. 형은 매번 그 얘기로 생색내는데, 나도 다 생각이 있고 갚으려고 하는 중이야."
"갚긴 병신. 그 인간 신경 쓰지 말고 네 가정이나 책임져. 꼴에 가장이라고 기어오르지 말고."
"..."
"됐다. 오늘 일은 내가 못들은 걸로 하고, 어쨌든 난 아버지까지 떠안기 싫다. 네가 능력껏 모시고 살든 용돈을 보내주든 알아서 해."
".."
나는 아버지 까지 신경 쓸 정도로 사랑이 넘치는 아들이 아니다.
아버지가 직접 찾아온 것도 아니고 내가 굳이 달려가서 아버지를 신경 써야 하는 것도 싫다.
내가 왜?
동생은 담배를 다 태웠는지 한숨을 쉬듯 후 불며 먼저 집으로 내려갔고, 나도 뒤따라 향했다.
분위기가 다소 무거웠다.
그래도 조카 생일이라고 모였는데 이런 무거운 분위기는 싫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는 조카에게 미안했다.
"제수씨."
"네."
"동생이 집안일은 좀 도와줘요?"
제수씨가 씩 웃으며 동생 눈치를 봤다. 그러더니
"아니. 안 도와요."
"제수씨가 고생이 많아요. 도현이가 아무래도 고된 일을 하다보니까.."
"집에 오면 잠 자요."
"흐흐. 야 도현아. 집안 일 좀 도와주고 그래라. 그런데 제수씨 한국말 많이 늘었네요"
"알아서 해."
이 자식은 끝까지 토라질 생각인가보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가족들과 tv를 볼 때 엄마가 먼저 잠을 자겠다며 방으로 들어갔고, 동생네 가족들도 방에 들어갔다.
투룸이라 내가 자야할 곳은 거실.
그런데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잠을 자고 싶었다.
몰래 엄마 방에 들어가 옆에 찰싹 달라 붙어 자연스럽게 이불을 덮었다.
"자?"
"안 자."
"그래도 동생이 손주까지 보여주고 엄마는 좋겠네."
"..."
"나도 있어. 그러니까 걱정 하지마."
내 말을 듣던 엄마가 벌떡 허리를 일으켰다.
"누구?"
"그것까지는 아직 비밀이고, 조만간 보여줄게. 그리고 딱 한 가지만 얘기하자면 우리 집안에 비해 엄청나게 월등해. 그러니까 시월드니 뭐니 엄마가 갈구면 도망갈걸? 어떻게 할래?"
"딸처럼 모셔야지."
"크크. 엄마는 정말 요즘 시대를 모르는구나. 그게 시월드야."
다음날 아침 일찍 동생은 귀가를 위해 채비했고 나는 동생에게 사줄게 있어 담배나 사러가자는 핑계로 함께 편의점으로 향했다.
동생은 어제 일로 여전히 토라져 있었다.
자식이 한번 삐지면 오래 가는 녀석이다. 내가 말을 섭섭하게 한 것은 맞지만 그래도 나는 동생을 가장 아끼고 사랑한다.
"요즘 로또 하냐?"
함께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에 동생에게 말했다. 동생은 갑자기 로또 얘기를 꺼내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매주 하지. 만 원씩."
"로또나 해보자."
"갑자기?"
"희망을 돈 주고 사는 거지 뭐."
동생과 나는 수동으로 로또를 찍었고 나는 옆에서 동생의 번호를 살폈다.
「11」「14」「15」「21」「28」「30」
동생이 수동으로 찍은 번호였다.
이번 회차의 로또 당첨번호를 동생이 찍은 번호로 선택하고 싶었다.
그런데 염려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동생은 마음이 여리고 착하다.
인정하긴 싫지만 첫째인 나는 아버지를 닮았고 동생은 엄마를 닮았다.
"도현아."
"응?"
"1등 당첨되면 뭐 할 거냐?"
"뭐하긴 우리 가족들한테 아파트 한 채씩 돌려야지."
"그러지 말고 병신아."
"응?"
"원래 가족들도 돈 앞에서는 눈 돌아가거든. 우리 부모님 보면 모르겠냐? 돈 때문에 이혼하고 찢어진 거야. 그러니까. 만약에 당첨되면 아무한테도 얘기 하지 말고 너만 알고 있어. 제수씨한테도 얘기 하지마. 로또 1등은 평생 네 보험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
"형은?"
"형도 당연히 그렇게 살거야. 네가 아무리 내 동생이라고 할지라도 절대로 얘기 안 할 거고 나만 평생 편하게 살거야. 아무도 몰래."
"서운하게. 말을 그렇게 하냐."
"내 말 명심해. 알았냐? 순둥이 마냥 이리저리 떠벌리지 말고."
"무슨 1등 된 것 마냥 그러네. 알았어."
동생 가족이 택시를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향했다.
벤츠를 선물해줬더니 팔아버리고 아파트 빚 갚는데 썼다고 했다.
그래도 이번에 1등 당첨되면 아주 풍족하게 살 수 있겠지.
그러니까 제발 얘기하지마라.
부탁이다.
내 유일한 방송국 인맥을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