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완 반장이 입주민 앞에서 머뭇거렸다.
"괜찮아요. 말씀해주세요."
정길완 반장이 지목한 구역을 토대로 cctv를 돌렸다.
그리고 시베리안 허스키가 단지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게 찍혀있었고, 개똥 감사는 치우지 않고 떠났다.
"이거 맞죠? 개똥감사 본인?"
"..."
"관리소장님."
"네."
"앞으로 단지내에 개똥 발견되면 이분한테 전부 소급적용 시키는 걸로 하면 어떨까요?"
"그렇죠. 그리고 CCTV에 확인 됐으니까 이거 과태료 내야 될 것 같은데요?"
"죄송합니다."
개똥감사가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래도 돈 나가는 건 싫은가보다.
참 별의별 인간이 다 있다.
그래도 유쾌하게 마무리 했으니 기분은 좋았다.
개똥감사는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확약서를 작성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런 사달들이 아주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게 큰 문제였다.
동대표 빌런들 뿐만 아니라 입주민들 까지 가세해 경비들을 못살게 구는 이 아파트는 내가 직접 겪어보니 경비원들이 못 참고 그만두는 게 이해됐다.
경비반장 정길완은 내내 어두운 표정으로 경비초소로 향했다.
아무래도 이번 일로 인해 보복을 해올까 두렵다는 것이었다.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보세요. 또 다른 게 있나요?"
정길완 반장은 이내 입을 꾹 다물더니 한숨을 푸욱 내쉬며 결심을 한 듯 창고 구석진 곳에 들어가 공책 꾸러미를 건넸다.
"...?"
"제가 여기서 1년 5개월을 그냥 버틴 게 아닙니다."
"네?"
"그간 제가 여기서 경비반장을 하면서 못 버티고 그만둔 경비들이 50명입니다. 일주일하고 그만두고, 하루 하고 그만두고, 그런데 이렇게 매번 그만두는 경비들이 또 다른 아파트를 간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싶더라고요."
"..."
"그래서 엮었습니다. 1년 5개월간 경비들이 당한 곤욕과 내가 당한 갑질들. 언젠가 책으로 출판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정길완 반장이 내게 꾸러미를 건넸고 나는 한 권을 펼쳤다.
정길완 반장이 1년 5개월 동안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당한 곤욕을 모두 기록해놓은 일지였다.
하긴 경비원의 무덤이란 곳에서 1년 5개월을 버틴 것은 단순히 급여만 보고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와.
매일 빠짐없이 빼곡히 쓰인 이 일지들은 가히 출판을 하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의 수기라는 책처럼 이건 현대판 경비 수용소의 수기라고 칭할만했다.
서두의 짧은 글 시작은 ‘30년을 회사에서 근무했고 은퇴했다. 그리고 수백 명의 감시인이 있는 수용소로 들어왔다.’
"이거 책으로 내셔도 되겠는데요."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이걸 책으로 내면 대표님께도 피해가 갈 것 같아서요."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저야 뭐 경비 업이 생업이 아닌데요."
"..."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출판 하셔도 됩니다."
"아니요."
"네?"
"경비 생활을 하는 동안 그래도 이렇게 인간적인 대우 받은 적은 처음입니다."
"..."
"제가 1년 5개월간 집필한 이 책의 2부를 작성하고 싶네요. 그럼에도 삶은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로 책을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정길완 반장의 말은 그간 1년 5개월간 작성한 갑질과 곤욕을 이제는 2부에서는 희망이라는 단어로 써내려가고 싶다는 뜻이었다.
사실 내가 정길완 반장에게 해준 것은 많이 없다.
그저 함께 경비 업무를 봐주고, 밥 시켜주고, 갑질하는 입주민들 대응해주는 거.
그 정도 수준의 일이었지 실질적으로 경비들의 업무가 질적으로 향상된 수준은 아니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정길완 반장의 나이는 이제 곧 있으면 일흔이다.
그래도 좋은 기억은 남겨주고 싶었다.
정길완 반장이 퇴근하는 길에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이곳에서 한 시간은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고 했다.
정류장 까지 함께 걸어가는 길에 이것저것 얘기를 나눴다.
"대표님."
"네."
"대표님께서 매번 신경써주시는 것도 알고 감사한 일이지만 너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아시다시피 경비업체 한번 미움 받으면.. 아마 다음에 경쟁 입찰에서 떨어질 확률이 높거든요. 대표님이 걱정돼서 하는 말입니다. 아직 젊으신데.."
"반장님."
"네?"
"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갑이나 을이 된 적이 없어요."
"...?"
"제가 예전에 했던 일도 갑과 을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했거든요. 그때 당시에는 무조건 을이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고 갑은 나쁘다라는 굉장히 일차원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깨달은 건..결국 사람이에요. 갑의 위치에서도 존경할 만한 사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르신."
"네."
"200명이 근무하는 물류센터도 관리자가 많으면 5명이에요. 그런데 경비원은 4명,6명이 근무하는데 대체 감시하는 분들이 몇 명이나 됩니까. 그래서 이건 제가 따로 생각할 게 없어요. 경비원은 완전히 을이에요. 을 중에서도 슈퍼을이요."
"하.."
정길완 반장의 눈시울이 다소 붉어졌다.
매번 듣는 소리고 뉴스나 기사에서도 지겹도록 듣는 소리지만, 회사대표에게 처음 듣는 말이었겠지.
정류장 앞에 도착한 뒤 그는 그래도 손주들이 치킨을 좋아한다며 통닭 한 마리를 포장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 * *
늦은 밤 불 켜진 관리사무실에는 관리소장이 사무실에서 홀로 안주도 없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말이다.
"소장님. 잠시 얘기 좀 나누시죠."
경비 휴게실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관리주체인 관리소장과 협의를 맺고, 입주민대표회의에서 결제가 떨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소장의 결정과 더불어 입주민대표회의에서 결정이 난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내 말을 듣던 소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빡센데.."
"처우개선 좀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경비실이 지하주차장에 있다 보니까 매연도 많이 생기고..자칫하다 호흡기 질환까지 생길수가 있을 것 같거든요. 방법이 없을까요."
"음.."
관리사무소를 증축하자는 건의를 했다. 만약 이게 가능해진다면 온전한 경비휴게실을 만들 수가 있었다.
예전에는 아파트 용적률 초과로 불가능 했으나 지금은 법이 바뀌어 경비휴게실 건축에 의한 증축은 구청에 허가를 받으면 가능할 수 있었다. 물론 입주민들의 돈이 들어가긴 했다.
관리소장이 수염을 매만지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저도 맘 같으면 하고 싶긴 한데..이번에 바리게이트 설치로 입주민들 주차비까지 걷은 마당이라.. 쉽게 못할 것 같은데. 대표님이 밀고 나가고 싶으면 한번 해보고요."
"흠.."
서로 개선 없는 고민만 얘기를 하다 관리소장과 나는 결국 불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구청의 허가를 받더라도 입주민회의에서 절대 반대하며 나설 것이라는 소장의 의견이었다.
사실 나도 그 부분을 가장 염려하긴 했다.
결국 관리사무소 증축이라는 단계가 까다로운 방법보다 가장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아파트 단지 외부와 가장 가까운 부동산으로 향했다.
"GN아파트 매물 나온 거 있죠?"
전월세로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106동 1층 22평대 아파트 매입가 27억.
현재 공실이었다.
1층이라는 매혹적인 층수에 그만.
"이걸로 할게요."
매수를 해버렸다.
크흠.
투자 목적 겸.
아파트 계약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집주인 분과 간단히 얘기를 나눴다.
집주인은 어느 회사에서 누가 숙직을 하느냐 물었고, 나는.
"경비원이요."
라고 대답해줬다.
요즘 로또 하냐?
아파트를 경비원들 휴게실로 쓸 생각에 벌써 기대됐다.
주간에 근무하는 경비원 4명과 경비반장 1명, 총 5명을 내 앞에 불러들였다.
"따라오세요."
경비반장을 필두로 경비원들이 내 뒤를 졸졸 따라 왔다.
그리고 106동 104호 앞에 멈춰섰다.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최근에 공실로 나와 있던 매물입니다. 그런데 제가 듣기론 어제 저녁에 매매가 된 거로 알고 있습니다."
박씨 경비원이 손을 들어 말했다. 104호 앞에 6명의 인원이 모여 있으니 주민들 몇 명이 구경을 나왔다.
"앞으로 여기가 휴게실이자 숙직실입니다."
내가 대표로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경비원들이 멀뚱히 서서 들어오질 않고 있었다.
"...?"
"저희 휴게실이라는 말씀이 이해가 안 됩니다."
"휴게실이 뭐 다른 뜻이 있겠어요."
그제야 정길완 반장을 필두로 경비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고, 현재 공실인 탓에 별다른 가구도 없고 가전제품은 없었지만, 보일러와 따듯한 온수가 나온다는 데 그들은 이미 감동 받은 것 같았다.
하나하나 둘러보던 한 어르신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손바닥으로 바닥을 매만졌다.
"살면서 평생 아파트에 살지도 못했는데, 휴게실이 아파트라는 게 믿어지지 않네요."
정길완 경비 반장은 보일러를 점검하고 있었고, 한 어르신은 물이 잘 나오는지, 그리고 다른 어르신은 전기가 나오는지 방마다 불을 켜보고 있었다.
"정상적인 집이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당부 드릴게 있습니다."
일순간 경비원들이 나를 쳐다봤다.
"관리입니다."
"아."
"제 명의로 된 집입니다. 투자 목적 겸 어르신들 휴게실로 쓰는 거니, 관리가 필수로 잘 돼야 합니다."
내 말을 듣던 정길완 반장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파트도 관리하는 데 집 하나 관리 못 하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대표님. 제가 책임지고 관리하겠습니다."
"네."
휴게실 구경이 끝난 뒤 경비원들은 업무를 위해 뿔뿔이 흩어졌고, 나는 정길완 반장과 아파트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새로운 장이 시작됐네요."
"네?"
정길완 반장이 이내 이해한 듯 웃음을 내지었다. 정길완이 집필하는 책의 ‘희망’이라는 새로운 장이었다.
"입주민들도 이제 보는 시각이 달라질 거예요. 제가 휴게실을 아파트로 결정한 이유도 그런 거니까. 혹시라도 딴죽 거는 입주민들 있으면 일일이 대응하지 마시고 제게 말씀해주세요."
"네."
"아파트를 숙직실로 이용하는 직장인들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자부심 가져도 돼요."
"네. 알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다섯 번째 메인 퀘스트 자아실현의 욕구 성공률이 상승했습니다!]
[현재 달성률 80%! 앞으로도 꾸준한 재생 부탁드립니다!]
내 재산을 살폈다.
로또 5회 중복으로 먹은 금액의 절반을 경비원 휴게실 구매로 써버렸으나 부담 될게 하나도 없었다.
곧 있으면 출자될 주식 배당금도 나올 것이고 이미 주식 상승률은 12%를 호가하고 있어 투자 수익 금액으로 아파트를 구매해버린 셈이었다.
법인으로 회사를 변경하여 법인 기숙사로 절세 혜택을 좀 받고 싶었지만 로또로 얻는 수익이 현재 대부분이라 오히려 복잡해질 것 같았다.
차후 회사 매출이 더 많아진다면 그때는 불가피하겠지만.
그리고 로또LV6의 로또 번호 선택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능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건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거지.
곧 있으면 자아실현의 욕구도 달성하기 때문에 로또 LV7까지 올릴 수가 있었지만 그때까지 이 능력을 썩히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내 조카의 생일이라 동생도 지방에서 엄마 집으로 올라오는 중이라고 했다.
동생과 오랜만에 만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