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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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떡 잘 먹을게요."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안심이 된다는 표정으로 문을 닫았다.

본인이 꽤 유명한 연예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으로 내게 질문한 것 같았다.

처음 봤다

연예인들 관심도 없어서 누군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심한 관심종자 일수도.

나는 일을 마무리했다는 상쾌함에 담배를 한 대 물고 단지로 향했다.

그리고 때마침 101동 앞에 차 한 대가 도착했다.

롤스로이드 팬텀이었다. 대표회장 아들을 비롯해서 이제 회장 차까지 발렛을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롤스로이드 팬텀을 끌고 다닐 정도면 고용 기사 정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발렛 파킹 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고, 때마침 험상궂게 생겨 먹은 대표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를 빤히 바라봤고 대표는 나를 보며 인상을 써대고 있었다.

될 대로 되라지.

"택배 기사여?"

"아닌데요."

"여기 흡연 금지여."

"왜 흡연을 못 하는 거죠?"

"화단이거 뭐고 죄다 담배꽁초를 버리니까 낙엽을 쓸어 담아야 할 마대자루에 꽁초가 섞여 들어가잖아요. 꽁초가 섞이면 구청에서 안 가져간다고, 그러면 어떻게 할 거예요?"

"아."

대표의 말은 구청에서 무상으로 수거해주는 낙엽 마대 자루에 꽁초가 섞여 있으면 수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경비원들이 마대 자루에 담긴 낙엽을 전부 쏟아내어 담배꽁초를 걸러내야 한다.

뭐지. 이 이중적인 인간은.

경비원에게 발렛을 시키면서도 나름 고충은 생각해주는 인간인가.

"저는 꽁초 안 버리는데요?"

"당신 뭐야?"

"입주민이요."

"새로 이사 오셨나?"

"네."

"지킬 건 지키고 삽시다."

"제가 뭘 안 지켰는데요?"

".."

"당신 몇 살이야?"

"당신한테 반말 들을 나이는 아니지."

"..."

"아파트 단지 조경만 신경 쓰다 보니까 쓰레기통도 없고 흡연 부스도 없는 것 같은데..구석진데 부스 하나 만들죠."

"조경에 돈이 얼마나 들어간 줄 알아요? 수억 들어갔어요. 그런데 흡연 부스 설치하면 미관상 어쩔 건데요?"

"조경하고 어울리게 가든처럼 꾸며보죠."

"입주민 허락받는 거 알죠?"

"그럼요. 알죠. 그런데 뭐하나 물읍시다."

"왜요?"

"경비원분들이 왜 발렛을 해주는 거죠?"

"이봐요."

"...?"

"여기 근무하는 경비원들 내덕보면서 근무하는데, 그런 정 하나 없겠어요? 내가 부리는 것도 아니고 경비원들이 좋은 마음에 알아서 해주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시죠."

"그거 갑질인데."

"..."

"제가 시킨 적 없어요."

"참나."

"암튼 꽁초는 버리지 마세요."

물류센터에서 상대했던 반장들과는 조금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대표는 나를 째려보며 아파트 공용현관으로 향했고, 때마침 발렛을 끝낸 경비원이 대표에게 달려가 차키를 건넸다.

끝까지 나를 노려보는 모습에 나도 뚫어져라 쳐다만 봤다.

승강기의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그는 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승강기 문이 닫혀서야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저 미친놈.

캬악...

이게 자동으로 나오는구나.

나는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생각했다.

이렇게 백수로만 지낼 수 없었다.

뭔가를 해야만 했다.

나는 관리소 소장에게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몇 시간 전에 함께 담배 폈던 801호 김도일이라고 합니다."

-집에 하자 있어요?

"아뇨. 저희 아파트 있지 않습니까."

-네.

"경비는 위탁관리로 진행하는 거죠?"

-그렇죠.

"대표 전화 번호 알 수 있을까요?"

-어허..이거 좀 불편한 요청인데..딴지 걸려는 건 아니죠?

"흐흐 소장님. 제 얼굴 봤지 않습니까. 제가 그런 인간으로 보여요?"

-문자로 보내드릴게.

"제가 또 연락드릴게요."

소장에게 전화번호를 받고 나는 업체 대표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GN아파트 관리소장님 소개받고 연락드렸습니다."

"아...무슨 일이신가요?"

"회사 인수 좀 하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언제 미팅 한번 잡으시겠어요?"

"예?"

"거절할 수 없는 좋은 제안이 될 겁니다."

* * *

2015년도에 설립된 소규모 경비회사였다.

대표는 자본금 5억으로 시작했으나 이제 탈탈 털리고 용역 임금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런 회사가 어떻게 아파트 경비 업체에 선정 됐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업체 대표의 말에 따르면 2년 전 적격심사제와 입주민 동대표 추천으로 선정이 됐고 잘 꾸려 나갔는데, 1년 째 되던 해부터 아파트 회장이 바뀌고 나서부터 문제가 발생 됐다고한다.

적격심사제란 경비업체의 점수를 산출하여 가장 높은 점수의 업체와 아파트가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지금 경비원들 월급만 3개월 째 못 주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게 아파트에서 저희 측으로 용역비가 들어오려면 회장 직인이 필요하거든요.. 그걸 3개월에 한 번씩 찍어주니까.."

"아..왜 그런데요?"

"아파트 회장이 관리소장이랑 마찰이 심한가 보더라고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죠 뭐."

경비업체대표의 말에 따르면 아파트 소속의 관리소장과 입주민대표 회장의 갈등과 마찰로 인해 용역 관리비 집행 예산서에 직인을 한 달에 한번 찍어주던 걸 차일피일 미루며 세 달에 한번으로 바뀌었다는 것.

파견업 특성상 원청에서 제때 정산을 해주지 않는다면 이런 영세한 파견회사는 결국 용역직원 월급이 밀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

"그러면 여태 밀린 임금이 얼마정도 됩니까?"

"3억 정도 되죠..사실 경비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못 받는 돈이 좀 있거든요..젊은 친구라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는 거예요. 막말로 이 짓 좀 그만하고 제발 좀 인수해가라고 부탁하고 싶긴 한데..양심에 좀 찔리네요."

대표가 울상인 얼굴로 말했다. 이정도 수준의 회사를 인수하는 미친놈이 있을까 싶겠지.

"체불 임금은 제가 다 떠안겠습니다."

"네?"

"도장 찍죠. 인수금액은 얼마가 좋을까요?"

"그냥 넘기겠습니다."

회생 절차 밟는 것보다 빚더미 회사 넘기는 게 낫겠지

망해가는 회사 시원하게 먹어버리고 정주임에게 전화했다.

백수가 된 정주임에게 일자리 정도는 주고 싶었다.

"성희야."

-네 과장님.

"취업했냐?"

-아뇨.

"너 나랑 일 하나 하자."

이제는 사업가다. 계산은 확실히 해야지.

경비업체 대표와 사무실 건물 앞에서 얘기를 나눴다.

빈손으로 시작해 빈손으로 나가는 그를 보니 안타깝지만..멋모르고 파견업에 손댔다가 돈 떼이고 회생 밟는 사람들 숱하게 봤었다.

경비업체 대표가 입에 담배를 물며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관리소장 관둔다고 일이 해결되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이 바닥에서 조금 굴렀다고 얘기해 드리자면..관리소장은 문제없어요."

"무슨 일이 있었죠?"

"이게..정말 사소한 일 하나로 시작된 건데요."

"네."

"저희 경비원 한 분이 회장 차 발렛하고 다음날 열쇠를 건넸는데 시동이 안 걸리더래요."

"네?"

"그거 가지고 막 차를 고장 냈다고 온갖 지랄을 떨어대면서 관리소장이랑 대판 싸워버렸죠. 그때부터 저 지랄인 거죠. 제가 직접 나서서 대표회장 술도 좀 먹여주고 아무리 달래 봐도 풀리지가 않는다니까."

"그러면 그냥 신고해버리지 그랬어요."

"그럼 우리 회사 찍혀요. 신고한 회사를 어느 아파트에서 계약해 준 답니까? 그냥 1년만 버티자고 눈 딱 감고 있는 거지 뭐. 대표님도 아마 1년은 못 버틸 겁니다."

"음.. 회장은 뭐 하는 사람이죠?"

"돈놀이 좀 하는 분 인거로 아는데.. 구체적으로는 몰라요. 암튼 언제든 제가 필요하면 말씀해주세요. 사실 제가 영 맘이 편치 않네요."

하긴 경비업체대표 입장에서는 내가 모든 폭탄을 떠안은 거나 마찬가지.

맘 같으면 여기에 당장 취업시켜서 일 좀 시키고 싶었으나 그건 이 양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조만간 또 연락드릴게요. 경비원 분들에게는 아직 말씀하시지 마시죠."

"네."

경비업체대표가 떠난 뒤 나는 홀로 정리되지 않은 사무실에 앉아서 그간 대표의 업무 이력을 살피고 있었다.

GN아파트 경비업체 경비 용역비를 간단히 살펴본 결과 기존 대표가 자금난에 허덕였던 이유를 알게 됐다.

파견회사들이 주로 이익을 얻는 경비원들의 퇴직적립금과 연차수당을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적립하고 있었다.

경비원 한 명당 퇴직 적립금이 약 20만 원이라고 따지면 GN아파트로부터 약 8명의 경비원 퇴직적립금 월 160만 원을 꼬박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경비원이 1년을 채우지 못한다면 그 이득은 고스란히 파견회사로 돌아간다. 연차수당도 마찬가지.

어쨌든 이 부분을 관리사무소에서 직접 관리를 하고 있었고 경비원 퇴직 시 실비 정산 차감하여 지급이었다.

파견회사 입장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계약서지만 경비원들의 퇴직적립금과 연차가 투명하게 관리됐기 때문에 이 부분은 만족스러웠다.

아마 관리소장의 입김이 들어간 조항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간혹 질 나쁜 경비업체에서 이런 퇴직적립금을 수십억 거둬드리며 경비원들이 퇴직할 때 퇴직금을 주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GN아파트의 8명 경비원들 전원 4대보험에 가입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 부분도 내가 건드릴 게 없었다.

GN아파트에서 1인당 경비원에게 산출하는 총 용역비는 약 324만 원.

여기에 재경비와 4대보험 제하면 경비원 한 달 월급은 200만원 초반.

그리고 위탁관리 수수료로 아파트로부터 한 달에 70만 원 정도 들어 왔다.

그런데 여기서 경비원들 복지에 좀 쓰고 나머지 회계업무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 청소용품, 경비용품등 따지면..와아..

경비업체 대표가 GN아파트로부터 월 80만 원의 순수익을 얻는 다는 결론이었다.

휴우.

대체 생각이 있는 양반인가 싶다.

-띠리리리링

정주임이었다.

-대체 어디로 가면 되죠?

"주소 찍어 줬잖아."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이는데요.. 혹시 저기 빨간색 벽돌 빌라에 2층에 ‘경비 만세’ 간판인가요?‘

"맞아."

-....

"왜에?"

-저를 저기에 취업시키려고 한 거예요?

"일단 들어가 봐. 너 언제까지 백수로 살 거냐. 그래도 좋은 직장 될 거니까 맘 딱 먹고 해."

정주임에게 거짓말을 했다.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데려오고 싶었으나 솔직히 일이 꽤나 힘들 것 같아 현실적으로 말해줬다.

그리고 허름한 건물을 보니 현실을 자각했겠지.

크크.

아마 내가 대표라는 걸 알면 꽤 놀라지 않을까 싶다.

-하아. 완전 겉모습만 보면..워킹휴먼보다 더 최악일 것 같은데요. 아악!

"왜 그래?"

-쥐가 있어요.

"어디서 약한 척을 하고 있어."

-과장님 그런데 여기 회사 사장이 누구예요? 과장님 지인이세요?

"들어오면 알게 될 거야."

때마침 정주임이 문을 열고 들어왔고, 대표의자에 앉아 사무 책상에 발을 올리며 씩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다시 나갔다.

-쾅.

"야!"

나는 급하게 정주임을 붙잡았다.

"여기 뭐예요? 과장님이..대표..?"

"인수했어."

"..."

"너 과장 달래?"

성희가 한숨을 푸욱 내쉬며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소파는 가죽이 다 뜯겨 노란 스펀지가 튀어나와 있었고, 정리되지 않은 사무실 전경을 보며 성희는 힘없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과장님 무슨 생각이세요? 제가 아무리 절박하고 돈이 급한 건 맞지만 이런 회사는 처음 봐요. 회사 맞아요?"

"맞아. 내 인생 첫 회사. 그리고 넌 첫 직원. 커피 한 잔 먹을래?"

"네."

허나 사무 책상 서랍과 캐비닛을 뒤져 봐도 커피의 흔적은 보이질 않았다.

먹다 남은 과자부스러기와 컵라면 부식 등을 모두 남겨두고 도망가 버린 전 회사 대표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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