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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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쪽이 쿡쿡 쑤시고 가래가 끓고 황달이 왔다.

폐쪽에 문제가 있을 법한 상황이라고 짐작했다.

매일 담배 한 갑을 부지런히 피던 양반이라 그럴 수밖에.

* * *

오랜만에 오대리와 함께 찌개집에서 술을 한잔 마셨다.

테이블에 올려진 돼지김치찌개가 잔잔히 끓고 있었다.

나의 무거운 표정을 오대리가 내내 신경이 쓰였는지 술을 따라줬다.

"2팀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최부장님 만약 입원하시면.. 2팀.."

"모르겠다 나도. 천사장이 생각이 있겠지."

"하아. 설마 저희가 떠맡는 거 아니겠죠?"

"그럴 일은 없을 거다. 2팀 현장을 타 도급사에 넘겨버리던지 해서 일 부담을 줄여야만 하는 상황이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라,"

"네."

"오대리."

"네?"

"너는 이 회사가 어때?"

"갑자기요? 뭐, 제가 뭐 이 회사에 딱히 야망이 있는 건 아니고..먹고 살려고 하는 거죠. 허허."

"오대리.. 내가 2년 전에 사고 나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냐?"

"...?"

"내가 여기서 아무리 죽어라 열심히 일해도 최부장이 한계라는 거, 오대리도 날 보면서 무슨 생각이라도 했을 거 아냐."

"뭐..저야 안정적인 회사였으면 싶다. 그리고 난 과장님처럼은 못한다. 이 정도죠. 저는 과장님처럼 못해요. 그건 확실합니다. 혹시라도 불미스런 일 생기면 우리 가족 나앉게 생기는데요."

"너무 멋없는 대답 아니냐?"

"저야 뭐 대단히 현실주의자라.."

나는 오대리가 따라준 술을 한잔 마셨다. 자글자글 읽는 돼지김치찌개가 푸욱 익어가고 있다. 양은 냄비의 김치찌개가 넘치고 나서야 오대리가 가스버너의 불을 급하게 껐다.

그리고 오대리를 보며 말했다.

"일산에서부터 구미까지 내가 현장을 다 뒤엎어 봤지만 내가 이번 구미에서 뭘 느꼈는지 아냐?"

"...?"

"한계다."

"네..? 한계라뇨 과장님."

"최부장님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최부장님처럼 일에 얽매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내가 그간 참고 일했던 건 그래도 나름 부당함과 현장 사원의 고충을 들어주는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내가 최부장처럼 된다고 하더라도 그 한계? 보람 있으니까 참어. 그런데 내가 이번에 구미에서 느낀 건 보람이 아니라 회사의 한계였어. 이 한계를 마주해버리니까 내가 여기서 뭐하는지 모르겠더라고."

"..."

오대리가 내말을 듣고 불안한 기색으로 소주를 한잔 마셨다.

그리고 나는 정말 내뱉고 싶지 않았던 말을 내뱉어야 했다.

"난 관둬야 할 것 같다."

"네?"

오대리가 고개를 떨궜다.

"하아.. 과장님.."

"어차피 내가 관두면 1팀 책임자는 네가 될 거고 그래서 가장 먼저 오대리한테 말을 해야 할 것 같았거든. 그래도 과장 월급이면 대리보다는 많을 거고, 어디 가서 네 나이에 도급사 팀장 다는 친구 없다. 그러니까 경력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달어."

"..."

"1팀 현장이야 뭐 가만히 내버려둬도 돌아갈 정도로 안정화 잘 됐으니까, 그냥 하던 대로만 하면 될 거다. 이왕 관두는 김에 천사장한테 잘 말해 해놓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말아라."

"그게.. 하아. 너무 갑작스럽게.. 과장님 덕에 저희가 많은 힘이 됐는데요. 그럼 이제 뭐하시게요."

"오대리"

"네..?"

"내가 언젠가 술자리에서 말했지 않나? 때가 되면 내 이름 석 자 걸고 너희들 끌고 간다고."

"그러셨죠.."

"그때까지 버티고 있어라."

서른 중반의 백수 커플 탄생

"아주 치밀한 녀석이야."

결국 최부장은 입원했다.

폐렴 증상이 발견됐고 다행히 초기에 잘 잡은 경우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부장님 병가 15일 박아버리고 저는 퇴사하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부장님 새끼니까 부장님한테 배운 치밀함입니다."

"이 자식. 회사 걱정은 안 되냐?"

"부장님도 예전에 남양주 현장 무너졌을 때 저한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무너지게 놔두라고. 이 부분도 오대리에게 당부했습니다. 나하고 부장님 없으면 어차피 물류팀 무너질 테니까 너무 애쓰지 말라고요."

"아주 치밀해."

"링거 뽑고 회사 가실 작정이신 것 같은데요?"

"뽑지도 못해. 담배 한 대만 간절할 뿐이다."

"아직도.. 담배를요?"

"새벽에 몰래 나가서 가끔 펴."

조금은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천사장이 아주 화가 많이 난 것 같더라. 이럴 때 나가는 인간이 어디 있냐고..."

"..."

"김과장."

"네. 부장님."

"네 말이 맞다."

"...!"

"내가 너무 무리했던 게 맞고, 밑에 애들 잘 살피지 못했던 것도 맞고, 입원해서 한동안 생각해보니 내가 여태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아."

"..."

"이제 뒤 좀 보고 살아야지. 내 건강도 생각하고 가족들도 생각하고, 이제 반백 년 살았는데 뭐 하나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병원에서 휴가를 보낼 줄 누가 알았어?"

"건강이 최고 우선이죠."

"앞으로 뭐 먹고 살 거야? 막막하지 않아? 30대 중반이고 이제 곧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해야 할 땐데."

"막막한 건 없고요. 이제 숨 좀 쉬면서 살고 싶어서요. 부장님처럼 살기에는 제가 아직 젊잖아요?"

"크흠. 그래도 너 같은 인간은 내가 처음 본다. 강단 있는 건 예전부터 알았지만 아무 계획 없이 일을 때려치우는 너도 참 성질머리 하곤."

"벌어 놓은 돈으로 사업체나 하나 꾸려볼 생각이에요. 큰돈 들어가는 건 없으니까."

"장사하게?"

"장사도 배워야 하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사람 장사 말고 해본 게 없는데요."

"함부로 덤비는 거 아니다. 괜히 돈만 날리고 쪽박 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어?"

"에이 뭐. 저 정도면 수월하지 않을까요?"

"넌 아직 멀었다. 사업체를 꾸리고 싶으면 적어도 천사장 밑에서 좀 배우지 그랬냐. 그래도 그 양반이 영업 하나는 기막히게 하는 사람인데."

"영업이요?"

"도급사가 뭐 별거 있나. 본사하고 계약 따내는 거 그거 웬만한 이빨로는 안 되는 거야. 아무리 단가를 낮춰서 한다고 해도 말이야. 그것도 영업이거든."

"술 먹이고 계약 도장 찍어버리면 되죠."

"미친놈."

"흐흐."

"정말 할 생각 있으면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거다. 내가 천사장이랑 황부장이랑 이거 시작할 때 뭐부터 했는지 아냐?"

"...?"

"경비원부터 시작해서 식당 아줌마, 사출, 가구 뭐 손을 안 뻗은 곳이 없었어. 거기서 나름 돈 좀 벌리고 나니 사람 한두 명에 성이 차나? 조금씩 판을 키우니까 그게 백 명이 되고 천명이 돼버린 거지."

그때 간호사가 들어와 최부장의 혈압을 체크했다. 그리고 간호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담배 피우셨어요?"

"아니요. 저놈이 폈습니다."

"..."

간호사의 일갈에 최부장이 진땀을 뺐다. 그리고 최부장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내게 담배 한 대 피자는 시늉을 해댔다.

"그러다 죽어요."

"하루에 한 대씩이다."

최부장이 링거를 꼽은 채 흡연실로 향했고 나는 말리진 못하고 그저 뒤따라 걸었다.

"김과장."

"네."

"내가 네 나이대로 돌아가면 난 이런 일 안 한다."

"..."

"세상 할 일 얼마나 많은 데 남들 손가락 질하는 일을 하고 자빠졌어?"

"..."

"벌어 놓은 돈이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그 돈 까먹기 싫으면 하지 마라. 내가 진심으로 당부하는 거다."

"저 돈 많아요."

"뭐? 이자식이."

"부장님. 사람이 살면서 내 사업체 한번 차려보고 내 뜻대로 회사 꾸려나가는 재미도 있잖아요? 내가 대통령은 못되더라도 내 회사에서 사장은 해봐야죠."

"크흠."

"그리고 부장님 말씀처럼 세상에 절박한 사람들이 좀 많습니까?"

"..."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회사 꾸릴 겁니다. 그게 뭐든 간에요."

"그래 해봐라."

최부장의 병실에 음식을 잔뜩 쌓아둔 뒤 홀로 집으로 향했다.

최부장에게 저런 말을 내뱉고도 나 자신도 그걸 지킬지 지키지 못할지는 장담 못 했다.

회사를 뛰쳐나가는 과정이 멋없게만 보이긴 싫었다.

적어도 내가 가진 신념이 있으니 그만두는 것으로 기억에 남았으면 했다.

언젠가 최부장을 또 볼 날이 있을 거다.

퇴사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예전에는 앞뒤 꽉 막힌 고속도로처럼 한숨과 막막함만 나왔는데 지금은 마치 뻥 뚫린 서울 시내 도로처럼 속이 시원했다.

이건 회사를 박차고 나온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지 않을까.

흐흐.

이제는 그간 미뤄뒀던 일을 진행해야만 했다.

회사에 다니는 주 5일의 기간 동안 미루고 하지 못했던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내 5회 중복 로또 당첨금을 찾는 일이었다.

이제 중복 당첨자에 대한 이슈도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했던가.

김씨 아저씨의 당첨 이후 모든 이슈는 김씨 아저씨에게 향했고 국가에서 대대적인 로또 회사 감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뭐 문제가 있겠나?

정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로또의 진행 방식은 현재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매번 반복적인 공식 발표를 냈다.

그럴 수밖에.

문제는 나한테 있으니까.

내가 그 문제니까.

크크.

농협 본점으로 향했다. 한가한 평일 오후 시간대라 고객들이 많이 없었고 로또 1등 당첨금을 받으러 왔다는 말을 하니 익숙한 곳으로 안내했다.

처음 10회 중복으로 이곳에서 당첨금을 받았을 때 은행원들의 부러운 시선을 느끼곤 했었다.

특히 농협 지점장도 마찬가지.

그는 100억대 당첨금을 FP를 통해 자산관리를 해주겠다고 했었지만 나는 단번에 거절 해 버렸다.

어차피 또 당첨될 일이기 때문에 은행하고의 관계는 멀리하고 싶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그는 내 얼굴을 보며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듯 아닌 듯 그런 모호한 표정과 함께 내 앞에 차를 한잔 내줬다.

"은행 직속 FP를 통해 고객님의 자신을 안전하게, 수익률 높은 방향으로 설계해드리겠습니다."

"사양하겠습니다."

CMA통장을 새로 발급받고 나오는 길에 46억이 찍힌 금액을 확인했다.

141억과 이번에 46억을 합해 약 로또로 벌어들인 금액은 187억.

그중에 무지 성으로 주식에 박아놓은 금액을 제외한 현재 내 유동성 자산은 기존 현금 39억에 46억을 더해 85억.

그런데 왜 무덤덤한 걸까.

평생을 일해도 만질 수 없는 돈인데 나는 마치 이 돈을 언젠가 빨리 처리해야 하는 압박감으로 느껴졌다.

마치 범죄와 연관된 검은돈을 손에 쥔 느낌이라고 할까.

남들은 모르는 게임상 버그를 나 혼자만 알고 있는 느낌?

크크

참 알맞게도 직장을 때려치우는 것과 동시에 이제 곧 있으면 이사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돼지 복권방 앞을 지나치며 가게 안을 슥 살폈다.

역시 많은 사람이 집중을 하며 OMR카드에 로또를 찍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돼지복권방의 옆에는 새로운 식당이 생겨있었다.

‘돼지 식당’

응?

나는 가게 내부를 살폈고 그곳은 김씨 아저씨가 사장인 듯 카운터와 서빙을 오가며 바삐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통이 어려운 아이도 가게 한편의 테이블에 앉아 밝은 얼굴로 TV를 보고 있었다.

들어가 볼까?

나는 개업 첫날이라는 돼지 식당에 들어가 돼지 김치찌개를 시켰고 김씨 아저씨가 밝은 얼굴로 나에게 주문을 받았다.

"주문 뭐로 하시겠어요?"

"김치찌개 하나 주세요."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나는 씩 한번 웃어줬고, 여자아이가 손가락으로 ‘쉿’하며 해맑게 웃었다.

* * *

집으로 돌아가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푸욱 쉬고 잠이나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인별 그램에 접속하여 지영씨의 일상을 엿봤다.

평일에 나를 만나지 못하는 시간 동안 부모님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쇼핑도 하고 친구들을 만난 사진들이 보였다.

친구들도 매번 바뀌었다.

하루는 신림동에서 친구와 소주를 마셨고, 또 하루는 홍대의 초밥 집에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대학로에서 친구들과 카페를 갔고, 또 술을 마셨다.

뭔 놈의 친구가 저렇게 많은 걸까.

속으로 부러운 감정도 들긴 했지만 지영씨가 일을 어떻게 관두지 않고 버텼는지 신기할 정도로 잘 놀러 다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인별 그램을 확인했다.

며칠 전에 지영씨와 찍은 사진을 인별 그램에 올렸는데 ‘좋아요’ 하트에 단 3명이 클릭을 해줬다.

한 명은 지영씨, 명석이, 애라씨.

30대 중반에 소셜네트워크에서 친구가 3명이라는 건 좀 이상이 있는 거 아닌가.

물론 중고등학교 동창생들하고 대학교 동창 애들 언제든 내가 만나자고 하면 볼 수는 있지만, 인연 억지로 당기는 건 싫었다.

남들은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 한명이면 족하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돈이 없을 때는 그게 맞는 것 같았으나. 이제 여유와 재력이 생겨버리니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얽히며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금수저 친구들보다 내 재력이 딸리는 것도 아니다.

어느 자리에 가도 나는 빛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었다.

나는 지영씨에게 깨톡을 보냈다.

[지영씨 저 일 때려치웠습니다.]

[^^]

[ㅋㅋㅋ]

[서른 중반의 백수 커플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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