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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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강형식이 말도 맞다.

80명을 관리하는 거 힘들지.

그런데 관리가 개판이라 문제지.

"현장 둘러보고 왔습니다. 왜 저희 관할 구역에 있는 정수기는 텅텅 비었고 종이컵은 다 떨어져 가고 있는 거죠?"

"오늘 마침 떨어졌나 보네."

"아.. 오늘 떨어졌다?"

나는 강형식이 앉아 있는 사무 책상 옆 책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파일들을 열어보며 그간 거래 내역이 있는지 살피려고 했다.

"책장에 무슨 먼지가 이렇게 많아. 인력 관리 명부, 근로자 명부, 일일 근로계약서, 일일 안전교육, 컨베이어 점검 일지, 이거 제가 오늘 안에 전부 탈탈 털어 볼까요? 만약 당신이 이거 하루라도 빠지지 않고 다 했으면 내가 인정할게요. 그리고 생수? 대체 무슨 생수 업체를 쓰기에 여태 영수증 하나가 없을까?"

"..."

"강형식 반장님. 당신 말마따나 80명 관리하는 거 힘들죠. 그런데 지금 현장 관리가 개판인 거 본인도 알고 현장 사원들도 알고 있는데, 이걸 저희가 그냥 보고 지나칠 수가 없는 거죠. 이해하죠?"

"우리 김과장님 소문자자하더니 진짜배기 맞네. 허허. 부장님 나 오줌 쌀 뻔했다니까. 그리고 서울서 내려오셨으면 적어도 목이라도 축이게 자리를 미리 만들어야지, 이렇게 대면하는 거 좀 예의에 어긋나지 않나?"

"어쩔까요. 술이라도 먹을까요?"

"어허 그만들 해!"

최부장의 일갈에 강형식 반장이 그저 침을 삼켰고 나도 입을 다물 수밖에.

그리고 강형식을 바라보더니 단호히 말했다.

"시급 줄여. 이건 합의가 아니라 지시니까. 다음 달 근로 계약서 작성할 때 시급 만 천 원으로 줄이고, 나머지 세이브 친 금액 우리가 직접 현장 사원들 복지에 쓸 테니까. 알아들었어?"

최부장이 결론을 꺼냈다. 만약 여기서 강형식이가 수긍만 해준다면 공성전은 잠시 뒤로 미루는 거다.

그런데 강형식이는 수긍할 마음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최부장의 말에 쓴웃음을 한번 짓더니 한숨을 푹 쉬어댔다.

굉장히 화가났나보다.

"최부장님. 이런 식이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지금 제 밑에 있는 애들 총 80명입니다. 게 중에 제가 까라면 까는 애들만 40명이에요. 감당 할 수 있겠어요?"

"하아. 참. 강형식 반장. 일을 이렇게 꼬아 버리나?"

막말로 최부장의 말 한마디면 일은 쉽게 끝난다.

‘해고’

그런데 강형식이가 즉시 해고 처분을 당할 만한 짓을 저지른 건 아니다.

만약 황부장이 2팀에 있을 당시 강형식이에게 사원 복지 금액이라는 내역을 달고 급여를 입금했다면 이건 강형식이가 업무상 배임에 해당되겠지만 퉁쳐서 월급이라는 명세로 들어간 상태라 해고 사유도 안 된다.

그래서 해고를 시키려면 결국 부당해고를 해야만 했다.

부당해고를 당한 강형식은 어차피 노동부 신고하면 1개월 치 급여가 또 들어가거나 구제 신청하면 민사 소송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최부장 성격이라면 부당해고가 무서운 게 아니다. 그거 회사 마이너스 좀 나더라도 몇 달 좀 아껴서 쓰면 금방 세이브 친다.

이 강형식이란 인간한테 그 돈을 주는 게 아까운거다.

나는 최부장을 데리고 잠시 흡연실로 나갔다.

"어차피 곧 있으면 인력들 몰려 올 겁니다. 강형식이가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저희 판단이 맞는 것 같으니까. 이제 끝내죠."

"우리가 잘못된 생각을 하는 건가? 도저히 생각을 고치려 해도 말귀가 통하지 않으니 원."

"...부장님. 강형식이 지금 받는 만 사천 원 시급 정상적으로 만 천원만 잡아주고, 삼천 원 세이브 친 거 한 달로 따지면 200만 원이고 1년에 1400만 원입니다. 그 돈이 현장 사원들에게 돌아가야 될 금액이었다고요. 그런데 그걸 강형식이는 알고서도 본인 주머니에 쑤셔 넣기 바빴지 않습니까."

"...."

"그리고 강형식이 저 꼬락서니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면 최부장님도 마음 약해지신 거예요. 강형식 입에서 나온 말이 뭡니까? 커피? 물? 제가 현장 오는 길에 살펴봤더니 한 방울도 없더라고요. 아니지 강형식이가 만든 파벌에 있는 인간들만 처먹고 있겠죠. 이게 현장입니까? 이거 잘못된 거 맞습니다. 바로잡자고요 부장님. 저 이럴 거면 안 내려왔습니다. 해고 시킵시다."

"..."

최부장이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내쉬었다.

"그래. 씨발. 하자.."

공성전 시작이다.

퇴사 고민 해볼 필요도 있어요.

[일이 바쁘네요.ㅜㅜ괜히 죄송해요. 제가 약속 잡아 놓고..펑크내서.]

지영씨에게 DM을 보냈다.

현재시각 06:20분.

40분 후에 작업은 시작하지만, 아직 인력사무소에서 증원한 40명의 아재들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현장의 도크에 걸터앉아 잠시 지영씨와 DM을 하고 있었다.

[헉..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일 보셔도 돼요. 저는 백수라 도일씨 시간에 맞춰야죠. ㅎㅎ]

[ㅎㅎ 혹시 상담 가능하세요?]

[ㅋㅋㅋ 상담비 받겠습니다.]

[ㅋㅋ만약에 지영씨가 돈이 엄청 많아요. 남부럽지 않게. 그러면 뭐 하고 살 거예요?]

[음.. 이건 상담이 아니라 그냥 질문이 잖아욬ㅋㅋㅋ 저는 건물주 할 겁니다 ㅋㅋ 건물에 제 회사도 차리고요]

[그게 최고죠^^]

지영씨와 이리저리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느덧 10분이 흘러 있었다.

인력 사무소 소장에게 작업시간 30분 전에 도착해달라고 요구했었다.

역시, 저 멀리서 검은 무리가 우르르 몰려오는 게 보였다.

버라이어티했다.

40명의 든든한 아재들이 가방을 짊어지고 입에는 담배를 물며 현장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막노동 아재들 나도 숱하게 겪어봐서 알았다.

비록 하루 빌어먹고 사는 군상들이라고 할지라도 평생 노동으로 일궈진 무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

특히 그들은 곰방을 주로 뛰는 아재들이었다.

곰방이란 막노동 전용 은어였는데, 주로 건설 현장이나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옮기는 인력을 뜻했다.

40명을 이끌고 온 사무소 소장이 나와 대면했다.

"뭐하면 됩니까?"

"일단 잠시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그리고 수기 출근부 작성해주시고 근로계약서 작성도 부탁드릴게요."

"예."

“그리고 소장님.”

“예?”

“아재분들 담배 좀.. 흡연실에서만 흡연이 가능합니다.”

“담배 끄란다.”

인력 사무소 소장의 일갈에 현장 외부에 위치한 흡연실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 강형식 반장은 난데없이 출몰한 인력에 당황한 낯빛이 역력했다.

강형식 밑으로 40명은 오늘 태업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강형식이가 실수한 건 40명의 현장 사원들이 이 광경을 보고도 따를 수 있느냐 문제.

넓은 현장 공터에 총 120명의 인원이 조회를 위해 모였다.

강형식 반장은 여유 만만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기존의 현장 사원들도 갑자기 들이닥친 40명의 아재들 탓에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아마 오늘 물량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증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강형식이는 목을 한번 가다듬고 이리저리 뒤섞인 현장 사원들과 아재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미 일은 불거진 상태라 강형식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의 병력을 빼버리는 게 급선무였다.

"지금 워킹휴먼 도급사에서 그간 우리의 노고를 몰라주고, 얼마나 힘들게 일 해 왔는데 현장 사원들 인원 물갈이를 하겠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아닙니다!”

“저 믿고 오늘 일 빠지세요. 저희가 흘린 땀 헛되지 않도록.”

강형식이의 말에 몇 명의 인원이 열외 했다. 그리고 눈치를 보던 현장 사원 몇 명이 그들을 따라 빠졌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강형식의 말마따나 현장 사원들의 절반의 인원이 순식간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남은 현장 사원 40명은 눈에 불을 띄고 있었다.

아마 강형식의 파벌에 끼지 못하고 그간 부당한 일만 당해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말문을 열었다.

"기존자 40명은 최대한 분류 쪽으로 맡아주시고, 인력 사무소 통해 들어오신 분들은 상하차로 빠지겠습니다. 혹시 새로 오신 분들 중에 경험 있으신 분 있습니까?"

역시.

대부분의 인력 사무소 직원들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현재 강형식 반장이 태업 중이니까 혹시라도 현장 통제 가능한 분 있으면 손 좀 들어주시죠. 인력배치 정도만 해주시면 될 겁니다."

내 말을 듣자 누군가 손을 들었다.

나이는 50대 초반.

흰머리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있었고 굉장히 점잖을 것 같은 분이었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여기서 근무한 지 1년은 됐으니 인원 배치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10분 뒤에 현장 레일 돌아갈 테니까 어르신께서 인원 배치 좀 부탁드립니다."

"네."

그리고 나는 최부장과 함께 현장으로 들어갔고, 강형식 필두로 뒤따르는 나머지 40명도 팔짱을 끼거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아직은 여유 있는 태도로 뒤를 따랐다.

레일은 정시가 되자마자 돌아갔고 박스들이 레일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1T에 상차 할 수 있도록 박스를 분류하는 인원들이 각자 레일 앞에 붙었고, 나머지 인력 사무소 직원들은 전부 11T 차량 안으로 들어갔다.

강형식이가 내게 다가왔다.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오늘 물량 꽤 많은 거 알죠? 저희 빠지면 오늘 현장 무너집니다. 그러니까 서로 기 싸움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죠.”

강형식이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이미 인력배치가 끝난 순간이라 이건 팔다리만 달린 사람이라면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수준.

나는 강형식이에게 말했다.

“이미 늦었습니다.”

강형식이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최부장은 나의 리더십을 보고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었고 눈이 마주치자 담배를 한 대 피자는 시늉으로 흡연실로 향했다.

"이제 남은 건 오늘 물량만 제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야. 그런데 김과장."

“네?”

“이제 끝났으니까 강형식이하고는 말 섞지 마라. 괜히 싸움만 일거진다.”

“네.”

그때 강형식이가 들어왔고, 뒤이어 강형식의 파벌로 보이는 현장 사원들이 합세했다.

"김과장님? 이미 늦었다는 게 무슨 말씀이죠?"

최부장은 내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을 섞지 말라는 건 이제 강형식이도 발악을 할 때란 걸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질문에 답은 해줘야지.

"좋게 얘기할 때 알아 들으셨어야죠. 당신이 저희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면 이런 일까지 없었을 거예요."

"하. 참나. 인력 사무소에서 인원도 미리 준비해둔 거 같은데."

"맞아요. 당신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미리 준비 해뒀어요. 그런데 우리 판단이 맞는 거 같은데?"

강형식이가 얼굴이 굳어졌다.

아마 상황을 다시 되돌리고 싶을 거다.

"현장 관리자 부당해고로 노동부에 신고하면 감당되겠어요?"

"압니다. 그런데 당신한테 들어가는 돈이 더 아깝거든요."

강형식이 내 말 빨에 휘둘리자 몇몇 현장 직원들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가는 게 보였다.

나는 이 찰나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당신들도 썩은 동아줄 쥐고 있지 말고 지금 현장으로 들어가서 일해도 됩니다. 어차피 서로 먹고살자고 강형식이한테 붙어먹은 거 알고 있으니까."

"..."

"현장으로 들어가세요. 인력 사무소에서 오신 분들 옆에 붙어서 일 알려주고 같이 상차하면 오늘 편하게 돈 벌어가는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러자 몇몇 현장 사원이 강형식을 배신하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강형식의 눈이 돌아가기 직전.

"하아. 시발 김과장님. 이거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제가 너무 한 겁니까? 황부장이 너무한 겁니다. 황부장이 그간 당신한테 많은 시급을 책정해 준 거 그게 너무한 거라고요. 당신을 아주 망쳐놨으니까."

"참나."

"그러게 왜 혼자서 다 해 먹으려고 했습니까.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거 본인도 알고 있었지 않아요? 네? 황부장이 당신한테 시급 책정해준 거, 그리고 직급 수당 백만 원씩 찔러 준거 그거 황부장이 귀찮으니 당신한테 현장 사원들 책임지라고 해서 준거잖아요. 그런데 당신은 뭐 했어요? 주머니에 찔러 넣기 바빴죠? 그죠?"

"..."

"남의 피땀 갈취해서 먹는 거 그거 아주 못된 거거든요.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그것도 모자라서 파벌을 만들어서 현장을 굴리질 않나. 아까 조회할 때 인력들 빠지라고 했죠? 몇 명 빠졌어요? 40명? 내 사람이 40명이나 된다고 뿌듯했겠죠. 그런데 그걸 알아야죠. 나머지 40명은 당신한테 울분을 토하고 싶었단 걸,"

"..."

"그리고 부당해고? 맞아요. 강형식 반장님 부당해고 당한 거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지막 기회를 줄게요. 현장 한번 제대로 살려 볼지 아니면 이대로 끝낼 건지."

"..."

최부장이 내 말에 이해가 되질 않는 듯 인상을 써댔다.

그리고 강형식이가 담배를 후 불며 그래도 주어진 기회라고 한번 잡아보고 싶었는지 짧은 대답을 했다.

"살려보죠."

현장은 쉬는 시간이 시작된 듯 컨베이어벨트가 일제히 멈췄고, 나는 현장 사원들을 불러 모았다.

어차피 정원보다 40명이 더 많은 상황이라 법적 휴게시간보다 휴게시간을 더 부여해줄 참이었다.

"강형식 반장이 다시 현장에 오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기존 사원분들께서 정말 원하면 저희 회사에서도 강형식 반장님을 현장 관리자로 선임할 의향은 있는데, 어떻게 해드릴까요?"

현장 사원들이 서로들 눈치만 보고 있었고, 그제야 아까 흰머리가 자욱한 어르신이 손을 들었다.

"너무 부당한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1년을 근무했지만 제대로 된 간식이나 휴게시간도 제대로 부여받지 못했고, 매번 힘든 곳에서 일을 했습니다. 다른 현장 사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형식 위주로 파벌을 만들어서 편한 자리는 전부 꿰차고, 만약 강형식이가 다시 들어온다면 저는 관두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최창훈입니다."

"최창훈씨가 말한 것처럼 강형식이가 들어온다면 관두겠다는 사람 있습니까?"

인력 사무소 사람들을 제외한 손을 든 사원들의 숫자만 봐도 어림잡아 60명은 돼보였다.

그리고 나는 강형식을 돌아봤다.

"이건 부당해고 아닌 거죠?"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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