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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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장이 결단력이 있는 눈으로 내게 말했다. 그가 칼을 빼들면 내가 갈아주면 될 일.

어차피 황부장이 싸질러 놓은 똥.

최부장 홀로 견뎌내기 힘들다.

내가 옆에서 도와줘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때 흡연실에 일전에 마주했던 팔씨름 여자가 들어왔다.

최부장과 나는 한눈에 신입인 것을 눈치 챘다. 하지만 그녀는 흡연실에 우리가 있다는 걸 개의치 않았나보다.

그녀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첫 출근에 지각이라며 이번에도 꼬일 대로 꼬였다며 통화 상대에게 하소연을 해댔다.

조금 쎄한 감정이 들었다.

지각인데 태평하게....

최부장과 나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마주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나는 최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2팀. 인력 펑크 났다고 했죠?"

"엉?"

공성전 시작이다.

최부장은 현재 구미로 내려간 상태였고 송팀장이 물류2팀의 신입 팔씨름 우승자 김현주와 상담을 하고 있었다.

2팀이 인력난에 허덕이는 상황이라 내가 나서서 인력을 넘겨주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뭐. 또 언젠가 뽑으면 될 일.

크흠

-띠리리리

오랜만에 동생 도현이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은 현재 지방의 조선소에서 근무 중이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라 반가웠다.

저번에 건네준 벤츠는 어떻게 했으려나.

"어. 도현아."

-형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응."

-팀장이 우리 월급에 10%는 공제하거든? 근데 내가 4대 보험 가입 여부 확인해보니까 첫 달만 가입됐고 나머진 안됐는데? 이거 잘못된 거 맞지?

"팀장 번호 뭐야?"

-응?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전화번호 불러봐"

-아냐. 내가 알아서 할게. 어차피 나도 이번에 한번 들이받고 관둘 작정이거든?

"뭘 알긴 아냐?

나는 팀장의 번호를 받아 전화했다.

"안녕하십니까."

-누구시죠?

"예전에 조선소에서 근무했던 친구입니다. 팀장님이 4대 보험 가입해 주신다고 했는데 10% 공제만 하고 가입은 첫 달만 돼 있는 것 같아서요.

-부식비용 이것저것 해서 많이 빠졌어요. 종이컵에 커피에 식대에 전부 다 들어간 거니까. 그런데 누구예요?

"저요? 예전에 도망간 팀장 있을 당시 근무했던 친구라 모르실 겁니다. 아..그러면 공사비용에 직원들 실비청구까지 합쳐서 받은 거네요?"

-그렇죠. 그래서 제가 이걸 한꺼번에 몰아서 할 수가 없는 게 공사비용이 또 만만치 않게 들어가잖습니까.

"팀장님.. 그런데 왜 팀원들한테 4대 가입시켜준다고 해놓고 여태 월급에서 공제만 하고 가입은 안 돼 있는 겁니까."

-그거야.. 나중에. 네? 나중에 해주려고 했죠.

"어차피 직원들이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에 직접 신고하면 강제 가입되는 거 알고 계시죠? 10% 떼먹은 거 돌려줘서 4대가입을 아예 시키질 말던가요. 공사 현장이라 뜨내기들 많아서 그런 것도 알겠는데, 머리 쓰지 마시죠. 팀장님. 요즘 다 압니다."

-...

"신고하겠습니다. 아마 노동부에서 진정서 날아 갈겁니다. 혹시 근로계약서는 쓰셨나요? 그거 안 쓰면 벌금 꽤 쌜 텐데. 여튼 수고하세요."

-잠깐! 잠깐만요!

"네?"

-알겠습니다. 신고만 하지 말아주시죠.

"넵! 그러면 한 달 안에 4대 보험 전부 가입시켜주시거나 그게 어렵다면 여태 4대 명목으로 공제한 금액들 전부 돌려주세요. 혹시 제가 확인했는데 안 돼 있으면 그때는 노동부, 본사 감사실, 전부 전화 때려 박겠습니다."

-...

그리고 나는 동생에게 전화했다.

"해결됐다. 이번 달 안에 해주기로 했으니까 가입 안 돼 있으면 나한테 전화 줘."

-고마워. 형.

"벤츠는 탈 만하냐?"

-덕분에 아파트 빚 다 갚았어.

"잘했다."

-형은 요즘 뭐해?

"인력사무소 소장이다. 끊어라. 형 일한다."

-잠깐 형!

"어?"

-그 인간한테 전화 왔어?

"무슨 전화? 안 왔는데?

-아냐. 됐다.

"그 인간이 너한테 전화 한 거야? 전화 받지 말라고 했잖아. 뭐라든? 뭐래? 너한테 또 돈 달라 그러지? 어?

-아니라니까. 지방에 있데. 월세 좀 보내 달라고 하길래. 그냥 좀 보내줬어. 혹시라도 해서 형한테 전화 왔을까 싶어서.

"죽어도 꿈도 꾸지 말라 그래라. 그리고 너도 앞으로 그 인간한테 전화 오면 그냥 끊어. 그리고 나한테 전화하라고 해. 알았냐?"

-어.

동생한테 전화한 그 인간은 아버지다.

가끔 동생과 연락을 하는 건 알고 있었다.

이제 나이 먹으니 먹고 살길 막막해 져서 그런지 동생한테 월세를 빙자하여 돈을 뜯어내고 있었다.

하아.

됐다. 신경 쓰지 말자.

* * *

최부장은 구미 현장을 뒤엎을 작정인데 이걸 홀로 해내기는 힘들다.

그간 강현식이에게 들어간 말도 안 되는 임금을 줄이는 게 그 목적이다.

강현식에게 들어간 그 돈의 일부는 현장 사원의 복지비용으로 쓰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강현식이의 주머니에 들어가고 있었던 것.

최부장은 최대한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강현식의 시급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득해 보겠다고 했으나 그가 본인의 월급을 줄인다는 데 과연 동의 할 수 있을까.

절대 결코 그럴 리 없다고 본다.

나는 돈 앞에서 회의적인 인간이라 이 부분은 내 판단이 맞다고 본다.

이미 돈맛 들린 사람이?

강현식이는 본인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현장에서 자신만의 파벌을 구축하여 철옹성을 쌓아뒀으리라 본다.

그 성안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고 쉽게 그 성을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체계를 잡아 놨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최부장이 강현식이에게 시급을 줄이자고 요구한다면 강현식이가 구축한 방어 체계를 가동하지 않을까 싶다.

그 방어체계란 본인의 파벌을 이용한 인력 대거 이탈이나 80명 정도 되는 인원을 태업시키는 거, 그걸 빌미로 협박하는 수단으로 삼겠지.

그래서

강현식이가 구축한 성을 무너뜨리려면 공성장비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걸 우리 표현으로는 찬스라고 했다.

찬스란 인력사무소였다.

언제나 일용직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바글바글한 전국 각지의 인력사무소에 전화하면 많게는 하루에 100명까지 인원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일당.

인력 사무소 기본 단가는 12만 원 정도 거기에 야간 근무 들어가면 20은 훌쩍 넘어간다.

현장 안정화 빌미로 야간 인원 40명만 불러도 하루에 800만 원이 인건비로 나가는 상황.

그래서 초비상사태가 아닌 이상은 쉽게 쓸 수 없는 경우다.

게다가 구미현장을 공략하기 위한 공성을 실패하면 회사는 치명타를 입는다.

막노동 아재들 일급 800만 원 깨질 것이고, 강형식이는 더 득세하게 되겠지.

그래서 솔직한 마음으로 최부장을 돕기 위해 내 돈으로 인력을 충당할까도 싶었다.

그런데

내가 미쳤다고?

내 회사도 아닌데?

천사장에게 전화했다.

"사장님. 이번에 저희 인건비 꽤 나갈 것 같은데요?"

-뭔 소리야?

"구미 현장 세탁하기로 했습니다. 최부장님이 별말씀 없으셨나요?"

-...?

"찬스좀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최부장님 계산이 좀 빠릅니까? 구미 현장 관리자에 들어가는 인건비하고 이제부터 정상적으로 현장 사원들 주휴수당 주고 이것저것 퍼주면 2팀 마이너스 납니다. 그럴 바에 관리자 정리하고 1팀 현장처럼 체계 잡고 정상적인 방식으로 꾸려나가는 게 멀리 보면 이득이죠."

-그래서? 찬스를 쓰자?

"네. 제가 알기론 40명 정도가 빠질 것 같거든요? 그래서 구미 인근 인력사무소 전화 돌려서 최대한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장님 설마 안 되는 거 아니죠? 안 되면 제 사비로...?"

-하..40명이면 하루 인건비가 얼만지 알아?

"알죠. 사장님이 판단해야 될 문제라 전화 드렸습니다."

-끊어봐.

뚝.

천사장의 전화가 끊겼다.

아마 최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게 진짜 회사에 이득이 될 일인지 따지고 들 기세일 것 같았다.

이미 최부장의 계산기에는 단 몇 푼이라도 회사에 플러스라는 산수가 끝난 상태.

.

그렇다면 천사장도 어쩔 수 없는 거지.

몇 초가 흘렀을까

천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해라.

"넵"

나는 정주임에게 부탁하여 구미에 위치한 모든 인력사무소에 전화해서 구미 현장의 출근시간 까지 최대한 많은 인력을 끌어당기라고 지시했다.

인력사무소 일용직 아재들은 펑크가 없다. 20명이면 20명 그대로 들어온다.

그래서 인력만 구해내면 무리 없는 일.

"과장님 구미시 인근에 인력사무소 전화 돌렸는데요. 대형 사무소에서 야간 일급 20만 원 맞춰주면 40명 바로 보내줄 수 있다고 합니다."

"콜 때려라. 출근 시간 30분 전까지 도착해서 안전교육 받아야 한다고 전해. 인력 명단 지금 당장 팩스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주민번호랑 성함, 전화번호까지 나와 있는 거로"

"네."

"그리고 나이 불문 상관없으니까, 힘만 쓰면 괜찮다고 그래."

"알겠습니다."

40명의 인건비 800만 원이 하루아침에 날아간다.

이거 실패하면 온전히 천사장에게 욕바가지 얻어먹을 게 분명하고 최부장의 입지는 좁아지겠지.

그런데 최부장 홀로 그 관리자와 파벌들을 이겨낼 수 있을까.

괜히 걱정됐다.

내가 나서줘야 할까?

솔직히 얘기해서 이 상황이 과거의 황부장이 겪고 있는 일이라면 그저 눈 뜨고 불구경하면 될 일인데, 최부장이 나선 일이라 이걸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나하고 최부장이 뭐 서로 욕심 부리는 사인가?

최부장에게 전화했다.

"최부장님."

-어이.

"저도 곧 내려가겠습니다. 인력은 현재 구해 놓은 상태입니다. 출근 시간 30분 전에 도착하기로 했으니 인력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맙다.

"이따 뵙죠."

-오는 거냐? 섭섭할 뻔했다 이놈아.

나는 지영씨에게 오늘 일이 너무 바쁜 관계로 약속을 취소해야 한다는 DM을 보냈다.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구미까지 2시간이면 도착한다는 장거리 총알택시에 올라탔다.

현재시각 오후 3시.

작업 시작시간이 오후 7시라 빨리 가면 한 시간 전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 * *

구미 현장은 대한민국 중심에 있는 택배 허브 센터였다.

엄청나게 많은 물량이 이곳에서 분류가 되고 상차되고 전국 각지에 뿌려졌다.

그래서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물류복합단지라고도 불렸다.

하루에만 150만 개 정도의 물량을 처리할 수 있는 정도니 엄청나게 많은 사원이 이곳을 오간다.

그중에 워킹휴먼의 인력은 총 80명 정도.

나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최부장에게 전화했다.

"부장님 어디 계십니까"

-현장 사무실로 와라. 어딘지 아냐? 길 잃는 거 아니지?

"금방 갑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강형식 반장과 최부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에겐 칼날이 있다.

40명의 인원이 언제든 준비가 돼 있는 상태.

최부장과 나는 이 부분을 강형식 반장에게 얘기를 따로 하지 않았다.

최부장의 말을 빌리자면 이빨을 먼저 보여서는 안 된단다.

강형식 반장이 거들먹거리며 책상에 발을 올렸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오랜 시간 근무를 하다 보니 이미 보스 성질이 몸에 베어버린 모양이다.

최부장의 안색이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강형식이의 거만한 태도를 내색하지 않았다. 그도 이런 일 허다하였으니 포커페이스 정도는 유지할 수 있지.

"강반장. 시급을 꼭 깎아내야만 하는 상황이야. 이게 강반장이 불합리한 부분이 아니라니까."

강형식이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니. 그러니까. 왜 내 시급을 줄이냐고. 예전에 황부장이 다 쳐놓은 건데. 왜 이제 와서 이러실까."

"그게. 하아. 황부장이 너무 일을 개차반으로 해놓은 거야. 강반장에게 들어간 시급이 대부분 현장 사원들 간식이나 부대비용에 들어가야 할 금액이라니까."

"아니. 알지. 그걸 왜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챙겨준다니까? 내 돈으로 다 사 먹여요. 어제도 믹스커피 한 박스 사다놨고, 물도 꼬박꼬박 채워놓고. 새벽에 컵라면도 사 먹이고."

나는 이미 현장을 둘러봤지만, 커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물도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 종이컵도 없어서 정수기에 입을 대고 마셔야 할 지경. 게다가 물이 없는데 컵라면?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강반장 시급은 그대로 동결하고, 현장 사원들이 먹어야 될 부식이나 비품은 회사에서 전적으로 책임져 달라? 이 말이지? 그럼 우리 회사 마이너스다."

"에이. 꼭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시급하고 관리수당은 깎지 말자는 거지. 아시면서 그래. 그냥 지금처럼 흘러가자는 게 어려운 일 아니잖아요?"

"..."

"최부장님이 만약 내 시급 깎으면..나 엄청 삐져. 그러니까 그냥 적당히 져주는 척해줘요. 네?"

강형식 반장의 권위가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최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정도로 말귀가 통하지 않을 줄 몰랐던 것 같다.

내가 강형식이에게 말했다.

"강 반장님.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거예요? 아니면 저희들 한번 떠보는 거예요?

"당신 뭐야?"

"워킹휴먼 김도일 과장이라고 합니다. 제가 천천히 칠판에다가 써드려요? 당신이 받고 있는 그 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 본인도 잘 알고 있잖아요."

"뭐가 말이 안 되는데요? 하루에 80명 정도 인원 관리하는 게 쉬운 줄 알어요? 최부장님. 좀 적당히 합시다. 뭡니까.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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