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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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뭔 소리야?"

"못 들으셨어요? 과장님이 저희 팀 책임자라고."

"뭐? 들은 게 없는데?"

"최부장님이 2팀으로 가고, 저희 팀은 과장님이 맡기로 했어요."

"언제 결정된 얘기야?"

"오늘 아침에요."

최부장은 2팀의 책임자로 무너진 2팀의 체계를 다잡고, 나는 1팀의 책임자가 됐다.

그렇단 말은

최부장이 그간 해오던 일을 내가 해야만 한다는 뜻이겠지.

하아..

최부장의 헤진 의자에 내가 앉게 생겼다.

내일 보면 안 될까요.

[도일씨 오늘 커피 한잔하실래요?]

지영씨가 뜬금없이 커피 한잔을 먹자고 문자가 왔다.

나는 멍하니 이 문자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주말에 영화 약속을 잡아놨기 때문에 갑자기 이런 커피 한잔의 제안을 받을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여태 만나왔던 여자들과는 조금은 다른 흐름이었다.

그리고 첫 만남 때는 남녀 관계 구분 없이 무턱대고 갑자기 만나자고 하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괜히 야근 일정이 잡히면 부담스러워지고 완벽하게 꾸민 모습으로 만나고 싶은데 이렇게 일에 치여 있는 겉모습을 보여주기도 싫었다.

집에 가서 샤워도 해야 하고 향수도 뿌려야 하고 사치품으로 장식을 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지 뭐.

[커피 좋죠^^ 어디서 만날까요?]

[강남역 4번 출구에서 괜찮으신가요?]

[네 제가 최대한 일찍 가면 7시까지 갈수 있어요.]

[네 7시에 뵐게요!]

어차피 나도 저녁 6시면 칼퇴근하는 성질이라 약속시간 정도는 맞출 수가 있었다.

지영씨가 내게 무슨 말을 위해 약속을 급하게 잡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건 설렘보단 긴장감이 엄습해왔다.

나는 최부장과 함께 회의실에서 지원자들의 이력을 검토하며 면접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재 시각 오후 1시 50분.

면접 예정 시간이 2시였으나 현 시각 까지 아무도 오질 않았다.

나는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최부장과 담배 한 대 피자고 흡연실로 내려갔다.

최부장이 물류2팀을 맡았다는 건 스스로 고생길에 들어선 경우였다.

사실 최부장의 위치면 내가 2팀으로 가고 최부장이 1팀에서 안정적인 현장을 둘러보면 될 일인데, 최부장은 나를 배려하여 스스로 2팀으로 간 것 같았다.

이걸 내가 잘 안다.

적어도 본인 동료였던 황부장이 싸지른 똥을 본인이 해결하겠다는 책임감이었다.

그래서 나도 눈뜨고 그걸 지켜볼 수는 없었다.

그간 1팀과 2팀이 서로 오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나 이제는 달라졌다.

최부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부장님 이번에 스펙 뛰어난 친구들이 많은데요. 저희는 신입 사원이면 충분하니까 부장님 1팀은 신경 쓰지 마세요."

"..."

"제가 모르겠습니까. 제가 2팀에 가도 할 말 없는 상황인데 부장님이 직접 가셨잖아요. 제가 그걸 눈 뜨고 못 보죠."

최부장이 내 말을 듣곤 의미심장한 표정을 내지으며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2팀 현장들 아주 작살 나버렸다. 김과장."

"그럴 줄 알았습니다. 뒷수습하기 힘들 텐데요. 현장 관리자들 몇 놈도 황부장하고 연관된 인간들 아닙니까?"

"말도 말아라. 아주 쓰레기도 그런 쓰레기 집단이 없더라. 관리자 필두로 뭉쳐서 일은 안 하고 내 농땡이만 피우고 말이야. 반장 편에 없는 다른 현장 사원들이 죽어 나가겠더라고.."

"한 번에 다 쳐낸다고 해서 인원 구하기도 힘들 텐데요."

"그러니까 말이다. 구미 쪽이 심각해. 거기 반장은 40대 중반 정도 되는 친군데, 편한 자리는 전부 자기 내 친인척들이 다 잡고 있더라고. 게다가 파벌이 심해서 신입들은 매번 힘든 곳에서 일하고."

해고는 쉽게 하지 못한다.

이거 잘못하다간 노동부에 부당해고 진정서가 날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박찬혁이를 자른 건 근로계약서상 즉시 해고에 버금갈만한 쓰레기 짓을 해왔기 때문이었으나

2팀의 현장 관리자들은 아주 영악한 수준이라 계약 내용은 지키고 있었지만, 현장 관리 방식이 완전히 개차반 수준, 그래서 줄곧 말하는 헬, 추노, 인성쓰레기 반장이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리는 곳이었다.

"이름이 뭡니까? 그 양반."

"강현식이"

"씁.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요."

"알 거다. 예전에 1팀 현장에서 부관리자로 일했던 경험이 있거든."

"아..그 빼빼 마르고 키 크신 분 맞죠?"

"그래. 맞다."

"와. 그 양반 그렇게 안 봤는데 참. 하여튼 완장만 달면 인간들이 변한다니까요."

"일단 구두 경고 정도 조치는 내렸는데 그 녀석도 사활을 걸고 있는 경우라 이거 내가 손쉽게 쳐내지도 못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때 정주임이 흡연실을 뛰어 들어왔다.

"여기서 뭐 하시죠? 면접자들 전부 도착했는데요."

정주임의 일갈로 최부장과 나는 재빠르게 회사로 다시 올라갔다.

현재 시각 2시.

면접 예정자 총 14명 중에서 8명만 도착한 상황이었다.

나머지는 연락 두절 아웃.

그리고 4명씩 면접을 보기로 하고 최부장과 나, 그리고 나머지 4명을 회의실로 불러들였다.

우리는 대기업들처럼 압박 면접도 없고 심층 면접도 없다.

그리고 구직자들도 마찬가지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스펙을 쌓거나 이 회사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자.

그리고 최부장의 물류2팀 인원이 최우선적으로 구인이 돼야 했다.

최부장이 이력서를 검토하며 이런 일을 어떻게 알고 있고 무슨 이유로 하고 싶어 하는지 한 사람씩 질문했다.

아웃소싱일이란 게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당길만한 일은 확실하다.

그래서 호기심으로 지원하고 단순 경험으로 생각하고 오는 경우도 많았다.

지원 이력서에서 가장 뛰어난 스펙을 자랑하는 친구는 예전부터 사람과 대면하는 일을 좋아했고 헤드헌팅 쪽에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재 물류2팀은 주된 구인 요건 중 하나는 언제든 지방을 오갈 수 있는 환경이 되느냐였다.

"지방 출장에 대해 언제든 가능하신 분이면 좋겠습니다. 현재 구미 김해 대구 부산 등 지방 쪽에 현장이 많아서요."

내가 직설적으로 말을 꺼냈다..

어차피 근무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고 이 부분 모르고 들어왔다가 지방 출장 가게 되면 추노 할 것 같았다.

역시 내 말을 듣던 구직자들이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리고 최부장이 말문을 열었다.

"지방 출장 가는 일은 한 달에 몇 번 안 될 겁니다. 사무실 업무 위주로 봐주시면 될 테니까 겁먹지 않으셔도 되고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언제든 지방 출장 환영이고, 사무업무도 자신 있습니다."

나이스.

다행히 업무 환경을 맞춰줄 수 있는 구직자를 찾았다.

나이는 28살. 남자였다.

스펙은 나와 비슷했고 사무업무에 필요한 자격증 정도야 충분한 수준.

최부장은 몇 번 질답을 하곤 면접을 끝냈다.

그리고 다음 4명이 들어왔다.

나는 그토록 기다렸던 팔씨름 대회 수상자를 만나게 됐다.

그녀의 나이는 26살

물류팀 홍일점 정주임이 맘 터놓고 얘기하는 동료 정도는 있었으면 했다.

"김현주씨?"

"네?"

"이력이 굉장히 독특하시네요. 팔씨름 대회에서 우승하셨으면.."

"아...사실 대학생 때 호기심으로 나가본 거라서요.. 지금은 딱히..."

"혹시 물류센터에서는 근무해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네. 오늘도 새벽에 하고 왔습니다. 쿠몬 현장에서요."

"무슨 일 하셨죠?"

"피킹했습니다"

"아.."

역시..

사람 보는 눈 하나는 탁월하다니까.

"다들 고생 많으셨고요. 저희가 개별적으로 전부 연락드리겠습니다."

* * *

이제 남은 건 최부장처럼 물류 현장을 다시금 재정비하는 것이었다.

우리 현장 관리자들도 권력이란 손에 맛 들여 간혹 월권을 휘두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2팀의 관리자들처럼 분명히 암암리에 파벌을 만들어 놓고 현장을 굴리며 보스 행세를 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내 뜻대로 사람을 굴리고 내가 지시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그 희열을 한번 느껴보면 그걸 맛본 인간은 현장 관리자라는 명함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이건 그 현장에서 대통령보다 더한 권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무게가 감히 다르긴 하지만 일용직 사원들은 그저 현장 관리자 앞에서 고개 숙이고 조아린다.

이 맛을 잘못 들리면 사람이 심각하게 비뚤어져 버린다.

그래서 내가 1팀의 책임자로 올라섰을 때 가장 먼저 휘어잡아야 할 일은 현장 관리자들이었다.

일산과 남양주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영세한 센터를 비롯 가장 큰 센터 인천은 살펴 볼 필요가 있었다.

"오대리"

"네 과장님."

"인천 현장 관리자 조직도 좀 볼 수 있을까?"

"넵."

오대리가 내게 인천 관리자 조직도를 출력하여 건넸다.

"조장급들이 대거 물갈이 됐습니다. 아마 과장님도 처음 보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음.."

"그리고 인원을 재정비해서 그런지 요즘 인천에서 분실 상품도 조금 생기고 파손 건도 잦아서 원청에서 수시로 메일 날아옵니다."

"그래."

인천의 현장 관리자는 꽤 많았다.

반장 급으로 1명이 있었고 그 밑으로 2명 이 부반장 급이었다.

그리고 줄줄이 딸린 조장급이 4명.

인력을 충원하고 알바들의 근태를 책임지고 총괄하는 알바팀장 1명.

현장 사원들이 많은 탓에 다른 물류센터보다 조금 체계를 잡아놔야만 하는 현장이었다.

더럽게 넓기도 해서 간혹 화장실에서 몇 시간째 나오지 않는 사원들도 있었고

흡연실에 죽치고 있는 사원들도 있어서 이렇게 조반장급들을 선임해 놓지 않으면 현장은 완전히 박살 나버린다.

나는 알바팀장과 관리자들이 있는 깨톡방에 20개입 박카스 20박스를 선물로 보냈다.

[와아. 감사합니다. 물류1팀 총괄 책임자 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과장님^^]

[별말씀을 사원들에게 잘 나눠주세요.]

[네!]

그는 김형식 총괄 반장이었다. 그리고 줄줄이 부반장과 조장급들이 깨톡에 글을 달았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과장님 짱^^ 박카스 400개는 처음 보는 플렉스입니다.]

[ㅎㅎ 다들 힘내시라고 돈 좀 썼습니다. 뭐든지 힘든 일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혹시 뭐 더 필요한 게 있나요?]

[현재로선 없습니다!]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현장 사원들 요구사항들 놓치지 마시고 항상 사무실에 피드백 주시고요.]

[넵! 감사합니다 과장님!]

물류1팀이 맡은 작업 구간은 집품과 패킹, 그리고 하차 팀이었다.

집품은 실시간으로 받는 주문 상품을 선별하여 PDA라는 기계로 상품을 스캔하고 카트에 담아서 전동 컨베이어에 태운다.

고객이 주문한 물품을 대신 바구니에 담아주는 일이다.

컨베이어를 타고 내려오는 물건을 짚어 포장하는 것

그게 패킹이라고 하는 포장이다. 집품된 고객의 제품을 포장하는 일.

이렇게 실시간으로 주문과 포장이 동시에 이뤄지고 지역별 배송 터미널로 뿌려진다. 그리고 배송터미널에서 세부적인 분류를 통해 지역 택배 기사들이 배송을 한다.

이렇게 하루 만에 배송이 가능한 직매입 물류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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