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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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어. 얼마 남았어?"

"많이 남았지."

"다음 주까지 다 안 쓰면 엄마 아들 결혼 안 할 거니까 알아서 해."

"아이고 참."

엄마와 함께 집을 나와 벤츠에 올라탔고 엄마는 차량 내부가 신기한 듯 이리저리 훑어보기 바빴다.

"도일이 너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데 이런 차를..."

"엄마. 그거 몰랐어?"

"응?"

"월 이백 벌어도 외제차 충분히 몰아. 할부금 갚으면서 살면 그만이지. 크크."

"이 녀석이."

"농담이고. 이번에 일이 좀 잘 풀려서. 내가 그간 고생했으면 좀 잘 풀려야지?"

L호텔의 식당에 들어가니 동생과 가족들이 미리 자리에 앉아있었다.

엄마는 오랜만에 손주 볼 생각에 걸음걸이가 빨라졌고 동생은 내 얼굴을 보며 일어났다.

"한참 기다렸잖아. 너무 하네 진짜."

"미안해. 엄마 화장하느라. 제수씨 잘 계셨죠?"

"서울 머러요. 네 시간..걸렸어요."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았어요."

한식당은 굉장히 고급스러웠다.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곳이라 고층 창가 너머 서울 시내가 한눈에 펼쳐졌다.

가격도 적당히 인당 14만 원 정도였고 코스요리를 시켰다.

코스로 딸려오는 음식들이 하나같이 소박하고 정성이 가득하면서 고급스러웠다.

나는 식사를 하면서 동생의 겉모습을 살폈다.

동생은 현재 조선소에서 근무 중이다.

바닷바람 맞으며 일을 하니 피부가 검게 타고 생전 없던 점이 많이 생겼다.

동생의 손에 거친 상처로 짐작하면 일이 고된 게 아닐까 싶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다부진 몸매는 옛날의 모습은 사라졌고 육체노동을 하는 어느 평범한 가장의 모습처럼 단단해 보였다.

옛날에는 저 새끼 힘이라도 좀 쓸까 싶었는데 말이다.

동생은 연신 엄마를 챙겼다.

동생과 엄마는 성장기에 애정 관계가 성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엄마 앞에서 아이같이 굴었다.

"엄마 이것 좀 먹어봐. 맛있지?"

"도현이 너는 엄마 챙기지 말고 네 안사람 챙겨."

"에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내가 알아서 잘 챙기니까 엄마 먹어."

나는 타이밍을 살펴 제수씨에게 반찬 하나를 건넸다.

"동생이 어릴 때부터 엄마 없이 살아서요. 이해 좀 해주세요. 솔직히 저도 밖에서 이러면 쪽팔리거든요."

그때 엄마가 내 등짝을 한 대 갈겼고.

"얘는 무슨 말을 못하니."

"맞잖아. 팩트."

제수씨가 엄마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이름은 프엉이다.

"감사하므니다. 어머니"

"그려. 그려. 얼른 먹어라. 아가."

"네에."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 말은 잘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동생이랑 제수씨는 잘 어울렸다.

연애는 짧게 1개월 했고 제수씨를 배려하여 베트남에서 결혼하고, 한국에서도 결혼했다.

총 두 번의 결혼을 한 경우다.

나는 동생을 위해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축가를 두 번 불렀다.

베트남어를 배워 베트남 노래까지 했으니 동생과 제수씨가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었다.

물론 하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한국에서 연예인이 왔다며 싸인까지 요청 받았으니 인기가 뜨거웠었다.

크크.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나고 후식이 나왔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서로의 근황을 얘기했는데 동생은 본인이 현장에서 꽤 위치가 높다라며 허세를 떨어댔다.

내 밑에 있는 애들이 몇 명인데 내 말을 잘 들어서 일이 수월하다는 둥 본인은 일을 안 하고 작업 지시만 하고 돌아다닌단다.

그런데 내가 동생을 모르겠나.

순전히 엄마 걱정 시켜 드리기 싫어서 하는 거짓말이겠지.

1년 차 조선소 직원이면 막내나 다를 바 없는데 말이다.

그리고 긍정적인 말투에 드문드문 보이는 동생의 어두운 표정은 일상이 엄청나게 힘들다는 뜻이다.

식사를 마무리한 뒤 나는 엄마에게 동생과 할 말이 있다는 핑계로 동생을 이끌고 호텔에 위치한 흡연실로 향했다.

"일은 잘 되냐?"

"..."

"똑바로 얘기해 새꺄. 내가 널 모르냐? 조선소에서 1년 됐으면 막내지 네가 무슨 사람을 부리냐."

"맨날 그렇지 뭐. 용접해."

"오. 그래도 용접 기술이면 괜찮지."

"그냥 보조야. 옆에서 시다나 해주는 거지."

"1년 했으면 사수 정도는 달아야 하는 거 아니냐? 위에서 짓눌러?"

"그런 거 없어. 그냥 좀 짜증 나는 거뿐이야."

"왜?"

"하아. 내가 이런 말 해서 형한테 좀 쪽팔리긴 한데 형."

"엉?"

"두 달 치 월급 밀린 거 때였다. 시발."

"도급업체에서?"

"팀장이란 새끼가 본사에서 돈 받아다가 우리한테 뿌려주는 거였는데. 어느 날 연락이 두절되더니 날랐어."

"너희 팀장이 도박을 했거나 사채를 썼거나 둘 중에 하나겠네. 하이고. 그래서 경찰에서는 뭐래?"

"수배 중이라는데 뭐 받을 수나 있겠냐. 포기했지 뭐."

"참나. 그러면 이제 소속은? 아웃소싱?"

"아니. 팀장 밑에 새끼가 팀장 달고 또 반복된 구조지. 크크."

"또 나르면?"

"그러니까 말이다."

"아유 답답한 새끼야. 거기서 뭐 하냐. 그냥 나와."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냐. 나도 맘 같으면 때려치우고 싶지 일도 존나 힘들고 죽겠어. 게다가 이번에 청약 당첨돼서 빚 갚으려면 죽어라 버텨야지."

"그러면 네가 팀장을 달던가. 10명 중에서는 네가 몇 등이야?"

"2등. 뒤에서."

"때려치워라. 내가 봤을 때 거긴 답이 없다."

동생이 담배를 비벼 끄며 한숨을 쉬어댔다.

"모르겠다. 나도 형처럼 그냥 혼자 살걸 그랬어."

"미친놈. 이제 와서?"

"기억나 형? 옛날에 우리 이모 집에서 살 때 형이 전단 알바 하면서 나 밥 먹인 거?"

"알지."

"그런데 이번에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형은 이미 그런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었더라고. 나는 그걸 이제야 알겠어. 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됐다. 옛날얘기 꺼내서 뭐 하냐. 다 지나간 일인데. 네 인생이나 신경 써. 형 걱정하지 말고."

"흐흐. 형 나중에 혼자되면 내가 먹여 살려줄게"

"미친 새끼."

"내가 딱 보면 형은 절대 결혼 못 할 것 같거든. 인정하지? 그러니까 동생 믿어. 나중에 나이 먹어서도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게 내가 잘할 테니까."

"네 제수씨한테나 똑바로 해 새꺄."

사실 동생의 이런 마음이 고마웠다.

어릴 때부터 산전수전 다 겪고 자란 사이라 우애가 남달리 깊은 건 맞았지만,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고 가장이 되는 상황에서 동생과 나는 서서히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먼 객지에 떨어져 있는 동생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데에 크게 감동할 수밖에.

"야. 따라와라."

"왜?"

"따라와 새꺄."

나는 동생을 이끌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아하게 주차된 벤츠 앞에서 나는 동생에게 키를 건넸다.

"타라. 팔든가 말든가 알아서 하고. 트렁크에 너희들 먹을 거하고 조카 옷하고 사놨으니까 잘 입혀."

"...형 미쳤어?"

"도현아. 난 다른 거 안 바래. 너하고 제수씨 그리고 조카, 엄마, 다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니까 일이 너무 힘들고 지치면 포기해. 포기해서 나한테 전화 줘. 내가 너희들 책임지고 먹여 살려 줄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

"울지 말고 새끼야. 쪽팔리다."

동생은 나를 붙잡고 울어댔다.

아마 어릴 때 기억이 나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그간 일을 하며 겪었던 설움이 터져서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동생의 등을 토닥여줬다.

오랜만에 동생을 안아보는 게 어색했지만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나서 나도 눈시울이 좀 붉어졌다.

이 감동을 깨기는 싫지만 동생으로부터 존경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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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입국했냐?"

애라씨와 신혼여행을 떠났던 친구 명석이가 신혼여행을 끝마치고 입국했다.

명석이와 애라씨가 신혼여행을 간 곳은 멕시코 칸쿤이었다.

명석이는 멕시코 치안을 들먹이며 칸쿤보다 얌전한 괌이나 발리 정도로 가자고 했지만 애라씨는 가본 곳은 싫다며 언젠가 한 번 꼭 가보고 싶었던 멕시코로 가자고 떼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막상 도착한 칸쿤은 에메랄드 빛 해변이 펼쳐진 지상낙원이란다.

"도일아. 언제 한번 보자. 내가 너 선물 잔뜩 사 왔거든."

"왜 그랬어."

"축의금으로 삼백을 주는 친구가 어딨냐. 흐흐."

"제수씨 앞에서 어깨 좀 새웠냐?"

"어깨만 새웠겠냐. 피골이 상접해졌다. 이번 주말에 시간 비워놔. 몸보신 좀 하게."

"그래. 들어가서 푹 쉬어라."

"출근 중이다."

"끊어."

길었던 주말이 끝났다.

로또 번호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이후로 월요일 아침마다 당첨금을 찾으러 가야하는 루틴이 생겼다.

그런데 연이어 중복 당첨자가 발생한 탓에 사람들의 반응이 마치 활화산처럼 펑하고 터져버렸다.

이걸 쉬이 삭히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당첨금을 찾으러 가야 했으나 아직은 시기상조.

농협 본점 앞은 돼지복권방에서 중복으로 당첨된 인간을 수소문하기 위해 몇몇 기자들이 잠복하며 서 있는 것을 봤다.

지긋지긋하다.

열 번 수동으로 될 수도 있고 다섯 번 수동으로 될 수도 있지.

아닌가?

크흠.

사실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편의점이나 복방을 돌아다니며 소소하게 중복 없이 1등만 먹으며 묵묵히 야금야금 돈을 쌓아둘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고 싶었다.

이건 어렸을 적 정체를 감추고 돌아다니는 영웅 영화를 봤을 때의 기분이었다.

그래 내가 스파이더맨이고 슈퍼맨이다.

이런 기분?

슈퍼맨이 정체를 감추며 직장을 다니듯 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크크.

그리고 그 반응을 통해 내가 진짜로 말도 안 되는 이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심감하게 됐다.

게다가 내 수중에 돈이 많은 데 굳이 5회 중복 당첨 금액을 지금 당장 찾고 싶지 않았다.

수틀리면 그냥 찢어버리고 다음 회차 준비하면 될 일이다.

내가 찢어버려도 내 당첨금은 복권기금의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빠지니 상관없다.

아니면 주윤발의 영웅본색 마지막 장면처럼 로또 용지로 담배나 한 대 태우지 뭐.

50억짜리로.

그리고 로또 1등은 내 인생에서 가장 쉽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LV5 SKILL 로또 번호 전체 확인가능」

[현재 스킬을 발현하시겠습니까?]

「YES」

[1008회차 로또 당첨번호는 「18」「20」「24」「29」「33」「39」입니다.]

* * *

일주일 만에 나의 상담 선생님 지영씨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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