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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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만 일어 나볼게요. 제가 아무리 그래도 과장님 자리를 어떻게 뺐어요. 좀 더 즐기다가 들어가세요."

“그려.”

정성희가 룸을 나간 뒤 나는 한참을 홀로 앉아 있었다.

사실 정성희 정도 외모면 예쁘다.

이 클럽은 수질검사도 엄청 철저히 했던 경우라 평균 이상의 외모가 아니면 입구에서 거절을 당한다.

그런데 정성희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이상하게도 아무 사심이 생기지 않았다.

나이 차이에 거부감이 드는 걸 수도 있지만 그냥 말 잘 듣는 여동생 하나 옆에 있는 기분이었다.

하아

그렇게 돈 지랄을 해서 VIP룸을 당일에 뚫었건만 하필 정주임을 마주치고 자리를 피해야만 하는 게 아쉬웠다.

혹시라도 또 마주치지 않을까 싶어 한 30분은 앉아 있다가 몰래 빠져나가야지 싶었다.

그런데

내가 왜..?

일도 잘 풀려서 박찬혁이도 최부장 입김으로 나가게 될 거고

그냥 즐기러 왔으면 즐기면 될 일이지 내가 왜 정성희 눈치를 보는 거지?

됐다.

즐기자.

때마침

클럽에는 사람이 가득 찼는지 DJ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비록 DJ의 멘트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조금씩 세어 들어오는 그 멘트에서 나의 뇌리를 꽂는 단 하나의 단어.

-피크데이

그래.

모르겠다.

나도 피크다.

* * *

간혹 로또에 당첨된 인간들이 유흥으로 재산을 탕진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었다.

사실 그럴 만도.

나이트도 마찬가지겠지만 클럽 VIP룸을 잡는다면 이미 그때부터 헌팅이고 뭐고 아무 노력이 필요 없다.

많은 여성들이 서로들 내가 있는 VIP룸에 들어와서 술 한 잔을 기울이고 싶어 하니까.

저 인간은 대체 누군데 혼자서 하루에 수백을 태우는지 궁금하겠지.

VIP룸을 열고 나갔다.

시끄러운 EDM소리와 레이저.

그리고 나는 여유롭게 샴페인 한 잔을 들고 스테이지를 내려다보며 젊은 친구들이 노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2층 라운지에 있는 여자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내 옆을 지나며 윙크를 보내는 여자도 있었고 갑자기 내 옆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내가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는 여자도 있었다.

VIP라운지에 앉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가오길 기다리는 여자는 이내 내가 관심이 없다는 듯 눈길을 피하자 고개를 돌렸다.

이건 내가 어렸을 적 클럽에서 여자들에게 했던 행동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여성들에게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고.

이 시선은 꽤나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그 시선에 이끌려 여자들에게 바로 달려들기는 싫었다.

돈 없는 깡깡이 시절 내가 그렇게 절절하게 구애했던 여자들의 심리와 감정을 이제야 알겠다.

물론 2층의 VIP뿐만 아니라 이런 대형 클럽에서는 1층의 테이블도 꽤나 많은 돈을 써야 한다.

그리고 내 시선에는 1층에서 테이블을 잡지 못하고 스탠딩으로 놀고 있는 정성희와 그녀의 친구들이 보였다.

라운지에 있는 경호원을 불러들였다.

“저기 단발에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원피스 입은 여자 보이나요?”

“네?”

“아니. 저기! 저기요!”

“아! 네! 보입니다!”

“테이블 하나 잡아줘요. 술은 샴페인으로 두 병 깔아주시고...안주로 생일 케이크도 부탁할게요. 가능 하시죠?“

나는 경호원의 브레스트 포켓에 수표 한 장을 꽂아 주며 말했다.

그리고 케이크는 일부러 꺼낸 말이었다.

여자들 끼리 모인 테이블에 생일케이크가 있으면 남자들이 쉽게 접근 못한다.

접근금지라는 불문율이 있으니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만약 저 여자들이 궁금해 하면 절대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해줬다는 얘기 하지마시고, 단지 클럽 이벤트라고만 해줘요. 알았죠? 만약에 이거 수틀리면 사장 부릅니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리고 나는 아까부터 나를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고독을 씹으며 샴페인을 마시는 한 여성에게 다가갔다.

라운지 바에 앉아 고독을 곱씹고 있는 모습이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기도 했고 그 사연이 궁금하기도 했다.

VIP라운지 바에 앉아 있는 그녀와 살짝 떨어져 앉아 샴페인을 한 잔 마신 뒤 그녀를 슬쩍 바라봤다.

“혼자 왔어요?”

“...?”

내가 이 클럽에 온 것은 단순히 돈 지랄을 해대며 여자들과 하룻밤을 가지기 위한 게 아니었다.

내 20대와 함께 사라져버린 가벼운 연예 감성.

이제 곧 몇 년 뒤면 삼십대 후반이고 눈 깜짝 할 사이 마흔이다.

결혼에 압박 받기도 싫고 진지한 연애하며 현실과 마주하기도 싫다.

그걸 살리고 싶었다.

가벼운 연애감성을.

너무 힘들고 지치면 포기해.

따끈하고 지렸던 불타는 토요일을 보내고 귀가하니 새벽 2시였다.

고독한 여성과 이야기를 길게 나누고 번호만 서로 주고받은 정도였다.

언젠가 저 여자에게 문자를 하는 날이면 ‘클럽에서 봤던 남자입니다’라고 보내야만 서로 연락이 가능하겠지.

아니면 읽씹 당할 수도 있는 거고.

정성희는 클럽 이벤트라는 깜짝 거짓말에 속아 아주 재밌게 잘 놀았다.

간혹 남자들이 그녀의 테이블에 합석하기 위해 어리숙한 모습으로 들이대곤 했는데 정성희도 나름 방어기질이 탁월했는지 일절 끼어주지 않았다.

바보 같은 것들.

여자들 테이블에 생일케이크 있으면 접근금지라는 불문율도 모르고 쯔쯔.

로또 1등 당첨도 이제 일상이 돼버렸다.

이번에는 5회 중복 당첨으로 약 64억을 거머쥘 수가 있었다.

세금이 말도 안 되게 붙는다.

이번 회차는 로또 1등 당첨 인원이 꽤 많아서 총 합산 중복 당첨 금액은 약 세전 68억.

3억 미만은 22%를 공제하고 3억 이상은 33%를 공제한다.

68억에서 3억을 제외한 65억은 33%를 공제하고 나머지 3억에는 22%를 공제하여 세후 약 46억이다.

그렇다면 내가 로또로 벌어들인 총금액은 10회 중복으로 먹은 141억과 이번에 46억을 합해 약 187억.

전 회차 10회 중복과 더불어 이번 회차도 로또 5회 중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으니 로또 공식 사이트가 마비됐다.

-이건 조작이다.

-미친거 아님? 어떻게 같은 장소에서 계속 발생하는 이유가?

-국민청원 올렸음. 다들 ㄱㄱ 로또 조작이 확실합니다.

-로또회사랑 돼지복권방 유착관계 밝혀야함.

-이건 말도 안됨 돼지복권방 할아버지랑 로또회사 주작함

-다들 돼지꿈 꾸세요.

-시발 출근하기 싫다 ㅜㅜ

ㄴ ㅇㅇㅇ

ㄴ 존나 짜증남 ㅅㅂ

ㄴ 내가 주인공임.

하긴 연속으로 돼지복권방에 당첨자가 나왔고 게다가 수동 중복 당첨자니 기겁할 수밖에.

돼지복권방 말고 다른 편의점에서 구매해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이런 반응들이 궁금하긴 했다.

사실 로또가 조작이라는 의심을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흐.

로또 회사는 자체적인 감사를 통해 시스템을 재검토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일이 조금 커지는 듯 싶어 이번에는 몸을 좀 사려야 할 것 같았다.

농협 본점 앞에서 중복 당첨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잠복을 하고 있을 것 같고, 이미 집 창가너머 보이는 돼지 복권방 앞에서 기자들과 너튜버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TV를 켜서 너튜브에 돼지 복권방이라고 검색한 뒤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장면을 봤다.

너튜브 진행자는 돼지복권방 내부를 실시간으로 찍으며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역사상 유래 없는 장소라며 영상에 담아냈다.

할아버지는 뭐가 그렇게 쑥스러운지 계산대에 앉아 몰려드는 손님을 받고 있었고 매일 로또 연구하며 신기로 번호를 찍어내던 김씨 아저씨의 모습도 보였다.

너튜버는 무작정 할아버지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밀며 혹시 이곳에서 로또 중복 당첨자가 발생했는데 누군지 아냐는 질문을 했고

할아버지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카메라 좀 막 들이대지 말라고."

알고 있거나 모르거나.

어차피 상관없다.

나는 돼지복권방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 *

-띠리리리

이른 아침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한 건 내 동생이 상경하여 엄마와 함께 환갑 기념 식사를 위함이었다.

이제 곧 환갑이 되시는 엄마를 위해 간단히 밥 한 끼는 해야 하지 않겠냐며 약속을 잡았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오늘이었다.

식당 예약을 잡아 놓고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동생은 동서울터미널에서 내려 식사 장소까지 오기로 했었고 나는 엄마를 픽업하여 시청역 인근의 L호텔의 한식당으로 가야만 했다.

서둘러 옷을 입고 인근 공용주차장에 주차 된 벤츠에 올라탔다.

벤츠를 몰고 오는 모습을 보면 아마 엄마가 기겁하겠지.

사실 엄마도 로또2등 당첨금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따로 용돈을 보내주지 않았다.

그 돈으로 엄마가 사치를 좀 부렸으면 했지만, 엄마 성질상 그게 불가능한 것도 안다.

그래서 오늘은 가족들을 위한 플렉스를 할 생각이었다.

엄마가 사는 집 앞에 차를 주차한 뒤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

"도일이 왔냐. 동생도 새벽 일찍 출발했다더라."

"뭐 일찍 도착하면 기다리고 있겠지. 그것보다 엄마."

"응?"

"내가 말한 대로 했지? 2등 당첨금 말이야. 내가 엄마한테 다 쓰라고 했잖아."

"..."

"손 안 댔구나?"

그리고 엄마는 연신 쑥스러운 표정을 하며 집안에 있는 새로운 전기밥솥과 김치 냉장고, 그리고 TV를 가리켰다.

"새로 샀다. 이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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