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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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과장."

".."

"고맙다."

내가 최부장 같은 책임감을 내가 짊어진다고 생각하는 거

솔직히 좀 버겁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의 내가 아니다.

절박하지 않아도 되고 뭔가를 해내기 위해 절실함으로 무장하지 않아도 된다.

노력이라는 단어도 이제 무색해졌고

성공이라는 단어는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그리고 나는 최부장의 자리에 올라가지 않을 거다

저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다.

* * *

사무실은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황부장은 아직도 감사가 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고

박찬혁이는 사무실에서 연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즐겁고 재밌는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게임에 집중을 하는 박찬혁이가 만약 일이 잘 풀려서 황부장을 몰아내고 부장을 달게 된다면 나 또한 여기 있을 필요가 없는 일이다.

-띠리리리링!

사무실의 정적을 깬 것은 황부장의 사무책상에 있는 유선전화였다.

유선전화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현재 우리 회사 사원들을 비롯해 천사장이 유일했다.

그렇다면 저 전화는 천사장의 전화겠지.

황부장은 전화기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박찬혁과 박대리는 황부장을 바라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나는 저 전화 내용이 원청감사가 들이닥칠 거라는 천사장의 비보라고 생각했다.

천사장도 이제 막 원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 같았다.

역시.

그저. ‘네.’ ‘알겠습니다.’를 반복하는 황부장의 목소리가 서서히 떨리고 있었고 주먹을 움켜쥐며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황부장은 이제야 원청감사가 뜬다는 걸 직면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모든 걸 설계한 박찬혁이는 가증스럽게도 황부장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어..? 아니다. 볼일 봐라."

"담배 한 대 피우시죠? 어제 김과장이랑 얘기했던 부분도 있고. 드릴 말씀도 있고."

"이따가 하자."

"에이. 한 대 피시죠. 부장님."

"나중에 하자니까!"

거친 일갈에 박찬혁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황부장의 난처한 상황을 지켜보며 즐기는 박찬혁의 모습을 보니 소시오패스의 모습과 같았다.

그리고 황부장은 이내 사무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이내 이렇게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는지 책상 서랍들의 서류를 잔뜩 챙겨 세절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박대리!"

"네 부장님!"

"이거 세절 좀 해라."

"지금요? 저 지금 바쁜데요."

"얼른!"

"네."

나 또한 황부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력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 그들의 피와 땀을 훔치는 인간 군상의 하나라 언젠가 워킹휴먼 회사에서 내쫓아버리고 싶은 사람이었다.

박대리는 역시 세절을 하는 시늉만 해댔다.

종이 한 장도 세절기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있는 황부장은 서류를 세절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현장 관리자들에게 전화를 해서 몇 가지 서류들을 폐기해달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이 부분도 박찬혁이의 머릿속에 이미 계획된 부분이겠지.

황부장은 어떻게든 본인의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또 머리를 굴렸지만

이미 게임은 끝나있었다.

반면 최부장의 사무 책상에도 유선전화가 있었다.

황부장이 땀을 삐질 흘리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대고 있을 때에 최부장의 유선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띠리리리링!

일순간

황부장의 시선이 최부장에게 향했고.

최부장은 미동 없는 자세와 변화 없는 표정으로 일관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네.’ ‘알겠습니다.’를 몇 번 반복하고는 그저 평화로운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최부장이 어떤 반응도 보이질 않았으니 황부장은 그제야 탄식을 내뱉었다.

황부장은 세절기가 돌아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박대리를 옆으로 밀쳐내고 본인이 직접 세절을 시작하기 이르렀고, 최부장은 그 꼴이 안쓰러운지 안대를 쓰고 사무 책상에 발을 올려 의자를 젖혀 버렸다.

그리고 이런 최부장의 모습을 불안하게 지켜보는 한 사람.

박찬혁.

박찬혁의 기대였다면 최부장 또한 황부장처럼 불안한 기색을 보여야 함에도 너무 태평하게 있지 않은가?

박찬혁이의 계산대로라면 이번 원청감사를 통해 황부장을 쳐내면서 최부장도 나가길 바랐다.

그런데 그 계산이 철저히 빗나갔다는 것을 최부장의 태도에서 느꼈는지 박찬혁이가 최부장에게 향했다.

"부장님. 오늘 날씨 참 좋죠?"

박찬혁이의 말에 최부장은 안대를 쓱 코밑으로 내렸다.

"..."

최부장은 박찬혁이의 얼굴을 확인 한 뒤 다시 안대를 올려 쓰고 무시로 일관했다.

그게 박찬혁이의 속을 더 긁어 놓았는지 한숨을 푸욱 쉬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최부장님이 많이 피곤하신가 보네. 그렇죠 김 과장님?"

"손 치우세요."

박찬혁이는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고자 정주임에게 윙크를 한번 해대고는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정주임과 오대리는 무슨 저런 미친놈이 있냐는 듯 표정을 지었고

고사원은 예전에 박찬혁이의 팔을 비튼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주먹을 쥐고 있었다.

한 번 더 칠 수 있는 기세였다.

현재 시각 10시.

곧 있으면 원청감사가 들이닥칠 것이고

박찬혁이와 나는 그저 시계만 보며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때마침.

사무실의 정적을 깨고 들어오는 6명의 본사 감사실 직원들.

[감사]라는 중소형 단프라를 챙겨온 그들은 아무 말 없이 황부장의 자리에 향했고

황부장은 그저 땀을 훔치며 앉아서 감사실 직원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고발 내용을 토대로 감사 진행 예정입니다. 사무실 직원들 전원 자리 좀 비워주시죠."

"하. 참나. 이거 지금 왜 이러시나. 저희 당신네들 회사하고 인연을 맺은 게 몇 년인데 이런 식으로 감사를 합니까? 저희들 못 믿으세요?"

"비켜주시죠."

"..."

그리고 역시

의자를 뒤로 젖히고 안대를 쓰고 있는 최부장에게도 감사실 직원이 다가갔고, 최부장은 이제 때가 왔다는 듯 그저 안대를 벗어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 상황을 모르고 있는 1팀 직원들과 2팀 직원들을 둘러보며 최부장이 말했다.

"다들 잠시 나가있어"

최부장의 말 한마디에 직원들이 서로 눈치만 보며 상황 파악을 하고 있었다.

너무 급박하게 벌어지는 일이라 정주임과 오대리 현준이도 마찬가지 그저 내 눈치만 보며 상황을 살펴댔다

"나가자. 다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로또에 10회 중복 당첨된 100억대 자산가도 회사를 내 의지대로 끌고 갈 수 없다는 게 회사생활의 묘미다.

막말로 내 수중에 있는 현금으로 워킹휴먼을 사버리고 내 뜻대로 회사를 굴릴 수도 있었지만

갑자기?

일개 회사원이 워킹휴먼의 자본금을 통째로 삼켜버릴 만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게 주위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그건 삶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이고 결국은 내가 로또 10회 중복 당첨자라는 걸 스스로 까발리는 결말이겠지.

로또 10회 중복당첨자의 신상은 인터넷 여기저기 퍼질 게 분명하고, 당첨자를 수소문 하고 있는 방송이나 기자들이 달려들어 인터뷰할 생각 하니 지레짐작만 해도 피곤하다.

그리고 조만간 있을 로또 추첨에서 중복으로 1등 다섯 번은 먹어야 하니 나는 아주 조심히 행동해야 될 몸.

결정적으로 내 타고난 성질은 정의의 사도처럼 불의를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성골 인간이 아니다.

내 잇속 챙기기 바쁘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거 싫어하지만 노력하는 건 적당히 귀찮아하고 불의와 싸우는 정의로운 인간을 옆에서 응원하는 어느 동네에서나 볼법한 평범한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 평범함이라는 게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지 않을까 싶었다.

참 다행이다.

내가 평범해서.

최부장과 황부장은 15년 전.

물류센터에서 그들은 처음 만났고 천사장과 도원결의해서 회사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들 각자의 노선이 있었다.

그 노선을 최부장은 사람을 향했고 황부장은 돈을 보고 따랐다.

황부장을 욕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요즘 시대는 회사 공금 화끈하게 해 먹고 감옥에서 한 몇 년 살다 마늘밭에 꽁꽁 숨겨 놓은 돈으로 먹고 사는 게 유행 아닌가.

그런데 황부장이 정말 크게 실수한 건.

단순히 기업 공금을 횡령한 수준이 아닌 현장 일용직들의 피와 땀을 갈취한 것이다.

현장에 정해진 정원을 맞추지 않고 유령 인간을 만들어 본사에 청구하여 뒷돈을 해먹었고 주휴수당과 산재 및 고용보험을 들어야하는 현장 사원들의 돈을 빼먹었다. 특히 고용보험은 정말 단 몇 푼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현장관리자 몇 놈도 연관됐을 것이고 더 나아가 본사 직원들도 관계가 됐겠지.

그래서 이건 괘씸죄가 추가되는 거다.

조선시대였다면 마을 입구에 매달아 돌파매질을 당해야 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황부장은 사람 보는 눈이 없었을 거다.

아니 사람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서서히 사라졌다고 본다.

돈만 보고 달려왔으니 사람이 보일 리가 없지.

박찬현이라는 인간이 황부장 뒤에서 칼날을 들이밀고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고 황부장 옆에서 온갖 아양을 떨어대며 굽실거렸던 박대리가 그 칼날을 갈았다는 것도 몰랐을 거다.

이런 일은 내 삶에 아주 큰 교훈이 될 수가 있었다.

돈 만보고 쫓다가는 사람을 놓친다.

언젠가 뒤통수를 맞는다.

그리고 나는 아주 감사하게도 돈이 아주 많은 인간이니 사람만 보면 될 일이다.

최부장의 지시로 1팀의 사원들은 전부 건물 계단에 앉아 상황이 정리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정주임은 연신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고 오대리는 한숨만 푹푹 내쉬며 이 사달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머릿속을 헤집는 것 같았다.

고사원은 그저 황부장 저 새끼 좆 됐다며 해맑게 웃어 보였다.

사원들의 행동을 짐작해 본건데 스스로도 찜찜한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닌 모양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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